플라톤에게 富는 정의 실현 도구… 정직과 올바른 처신 가능하게 해 쇼펜하우어 “재난 대비 방호벽” 노년에는 재산 유지 노력이 본능 富는 단순 소유 아닌 자유 조건
부자가 케이크 위 마지막 체리 한 알까지 모조리 먹어치우는 모습을 가난한 사람들이 분노하며 지켜보는 우화. 치릴 호리아크 작품(2010년).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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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이 말하는 富의 미덕
‘철학자는 돈에 어둡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철학은 언제나 부(富)의 의미를 탐구해 왔다. 소크라테스는 폴레마르코스의 초대를 받아 그의 아버지인 케팔로스를 만난다. 소크라테스는 케팔로스에게 재산을 상속받았는지 아니면 스스로 벌었는지 물었다. 이어 노년의 삶이 어떠한지 질문한다. 케팔로스는 “그럭저럭 평온하다”면서 모두 재산 덕분이라고 답했다.재산 덕에 남을 속이지 않아도 되고 신에게 제물(祭物)을 바치지 못하거나 남한테 재물(財物)을 빚진 채 저승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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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쇼펜하우어는 ‘행복론과 인생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재 지닌 재산은 일어날 수 있는 재난이나 사고에 대비한 방호벽으로 봐야지, 세상의 즐거움을 얻게 해주는 허가증이나 그럴 의무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쇼펜하우어는 소크라테스처럼 재산을 스스로 번 것과 상속받은 것으로 나눈다. 원래 재산이 없던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통해 많은 돈을 번 경우 능력을 고정자본으로 착각해 소득을 그로부터 나오는 ‘이자’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재능은 소모되고 행운도 금방 나쁜 상황으로 바뀔 수 있다. 아무리 거장 예술가라도 번 돈을 자본으로 축적하지 않고 이자라고 여겨 흥청망청 쓴다면 노년에 궁핍한 삶을 피할 수 없다. 반면 상속을 통해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은 자본과 이자의 차이를 명확히 안다. 그래서 대부분 자본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고, 가능하면 이자의 일부분이라도 저축해서 돈줄이 막히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려 한다. 그들이 부를 지키는 이유는 절약과 검소라는 습관 때문이다.
돈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자신의 힘으로 재산을 불려 경제적 여유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가난을 경험한 사람은 오히려 낭비하는 습관을 갖기 쉽다. 쇼펜하우어는 가난에 익숙해지면 궁핍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면 ‘거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부자가 있다. 어떤 행운이나 재능으로 부를 쌓은 부자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를 상속받은 부자다.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재산은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산을 신중하게 관리한다. 반면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한 이는 빈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또 부를 일시적인 행운으로 보고 향락과 낭비의 도구로 삼는다. 그래서 재산이 사라졌을 때에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라고 여긴다. 예전처럼 궁핍하게 살아갈 수 있고 오히려 걱정거리 하나가 사라진 것처럼 생각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운이 좋게 부자가 된 사람은 궁핍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확고하게 신뢰한다.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추락해도 ‘다시 위로 올라갈 것’이라고 쉽게 착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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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화가 헤르베르트 마르크센이 그린 ‘신흥 부자들’(1950년경). 신흥 부자를 큰 풍채와 다소 심술궂은 표정으로 탐욕스럽게 묘사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그가 활동했던 19세기 전반 기준) 서른여섯 살까지의 사람은 오늘 소진된 생명력이 내일이면 다시 채워져 마치 이자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나이를 지나면 자신의 자본을 갉아먹기 시작하는 연금 생활자의 처지와 비슷해진다.
쇼펜하우어는 생명력과 건강의 중요성을 비교하며 두 가지의 힘이 탕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과 경제력에서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노년기에 빈곤은 커다란 불행이다. 궁핍에서 벗어나고 건강이 유지되면 노년기는 인생에서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노인의 주된 욕구는 편안함과 안정이다. 이 때문에 노년이 되면 이전보다 훨씬 더 돈을 사랑한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에는 돈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탐욕이 아니라 본능이다.
쇼펜하우어는 벌어들인 재산과 물려받은 재산을 유지하도록 애쓰라고 충고한다. 충분한 부를 가진 사람은 경제적으로 독립해 노년을 편히 살아갈 수 있다.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사유했다. 부는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삶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남에게 빚지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나이가 들수록 재산의 중요성을 더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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