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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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자전거 페달과 같다. 계속 밟아야 넘어지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일 “사법개혁, 가짜 조작 정보로부터 국민 피해를 구제하는 개혁도 추석 연휴 이후 발표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대표가 개혁과 관련해 여러 차례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자전거론’이다. 멈추면 서 있을 수 없는 두발자전거, 뒤가 아닌 앞으로만 갈 수 있게 설계된 자전거의 특징에 개혁을 비유한 것이다.
개혁 페달을 밟은 결과 정 대표의 공언처럼 ‘검찰개혁’ 입법은 민주당 주도로 추석 전 마무리됐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 미완에 그쳤던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등 근본적인 검찰개혁이 이재명 정부 출범 넉 달 만에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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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은 시작부터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과 지귀연 부장판사의 접대 의혹 등으로 이들에 대한 탄핵과 사퇴를 주장하며 사법개혁의 명분으로 삼으려 한 것은 악수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대선 한 달 전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는 사실뿐 민주당은 사법부 대선 개입 의혹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분풀이식 사법부 탄압’이라는 야당의 비판 속에 사법개혁의 본질은 흐려졌고 의혹만 남은 셈이다. 재판 지연을 줄이기 위한 대법관 증원도 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관을 늘려 ‘조희대 대법원’에 대한 힘 빼기 아니냐는 의구심만 더해지고 있다.
이럴수록 시간을 두고 왜 사법개혁이 필요한지 공론화를 하면서 설득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도 강경파 의원들은 ‘단독 드리블’로 좌충우돌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표가 앞장서서 페달을 밟으라고 하니 의원들도 경쟁적으로 질주하는 격이다. 지도부와 상의 없이 이뤄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조 대법원장 청문회나 일부 의원이 확실한 근거 없이 제기한 조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4인 회동 의혹이 대표적이다.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제’ 관련 법안도 3심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좌충우돌 사법개혁의 여파가 당정 지지율의 동반 하락으로 이어지자 다급해진 건 오히려 대통령실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이 ‘조용한 개혁’을 주문했지만 당은 귀담아듣지 않는 분위기다. 윤석열 정부와 180도 다른 수직적 당정관계가 형성됐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정 대표의 자전거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하는 건 평지나 오르막길에서다. 범여권 의석만 188석인 현재 정치 지형은 가만히 있어도 속도가 붙는 내리막길과 유사하다. 내리막길에 밟는 페달은 충돌 사고의 위험만 높이기 마련이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건 정교한 핸들링과 속도 조절을 위한 브레이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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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