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찍박골정원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강원 인제군 ‘찍박골정원’ 김경희 대표의 말은 귀에 쏙쏙 박혔다. 김 대표 남편 김철호 씨에게 “(아내가) 말씀을 너무 잘하시네요. 일타 강사 같아요”라고 하자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실제로 일타 강사였어요.”
부부는 12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시동은 남편이 걸었다. 아내와 함께 입시학원을 운영하던 김 씨는 “산속에 살고 싶다”며 지금의 땅을 구입했다. 이후 터를 잡고 나오지 않았다. 결국 아내도 이삿짐을 쌌다. 김 대표의 어머니는 찍박골에 처음 왔을 때 땅을 휙 둘러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여기 돈 들이지 말아라.” 이어지는 ‘일타 강사’의 부연 설명. “1970, 80년대 부동산으로 재미를 본 분이거든요. 척 보니 돈이 될 성싶지 않았던 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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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박골정원에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안내 푯말이 없어 그저 감으로 올라가야 하는 오르막길엔 큼직한 꽃송이를 단 목수국이 도열하듯 이어졌고, 9개의 정원은 높고 낮은 단차를 두고 퍼즐판처럼 어우러졌다. 집과 마당이 있는 고지에 서서 주변 풍광을 바라보니 저 멀리 강원도의 늠름한 산들이 굽이굽이 조용한 거인처럼 우뚝했다. 남편 김 씨가 했던 말이 새록하다. “처음 이곳에 와서 3, 4년은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쌓이니 몸도 점점 회복되더라고요. 서울살이가 힘들잖아요.”
미국 월가 고액 연봉자들의 꿈이 은퇴하고 자신의 와이너리를 갖는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자연에 파묻혀 ‘돈독’ 빼는 것을 꿈으로 삼는 인생이다. 정원 역시 와이너리와 다르지 않다. 치유된 내가 새롭게 써 내려가는 챕터, 새삼 느끼는 희로애락, 그리고 건강한 하루하루와 삶에 대한 이해. 정원에서 자라고 여물어 가는 가장 큰 열매는 나 자신일 것이다. 그러니 굳이 유실수는 심지 않아도 될 듯하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