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는 법을 통한 사회적 계약… 받은 것 돌려줘야 ‘교환적 정의’ 과거 상환 의무 강제하기 위해 고통의 기억 새기는 형벌 가해 부채 많을수록 의무감도 커져… 빚 탕감받으려는 것 정의 아냐
‘도덕의 계보’는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말기 저작이다. ‘도덕의 계보’ 1990년판 표지.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상환 능력을 넘어선 채무의 증가는 개인의 파산을 가져올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투자한 사람)이라는 신조어가 있듯이 돈을 최대한 빌려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내수 부진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이와 관련이 있다. 많은 돈이 대출받아 산 부동산에 묶여 있어 은행에 원금과 이자를 갚고 나면 쓸 여윳돈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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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망각하는 동물에게 기억을 새겨넣는 과정은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 많다. 니체는 망각의 동물이 잊어버리지 않도록 각인시키는 방법을 ‘기억술’이라고 한다. 기억은 잔인하고 무서운 고통을 주었을 때 깊이 남게 된다. 확실한 기억을 위해서는 ‘피, 고문, 희생’이 필요한데, ‘불로 달구어 찍어 남은 상흔’이 바로 ‘양심’이다. 양심은 인간에게 타고난 도덕적인 성향이 아니라 사회적인 필요성에 의해 새겨진 고통의 기억이다. 이러한 잔인한 기억술은 형법에 고스란히 체계화된다. 인간은 잔혹한 형벌을 통해 사회적인 규범을 지키게 됐고, 고통을 수반하는 기억 덕분에 이성과 숙고의 능력도 차츰 갖추게 됐다.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가 니체 사후에 그린 니체의 초상화(1906년). 사진 출처 티엘 갤러리
경제적 교환 관계에서 상환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채무자는 채권자가 겪게 되는 손해에 보상해야 한다. 여기에는 신체형을 포함해 여러 가지 잔인한 방법이 사용돼 채무자에게 계약 관계에서의 약속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채무자에게 상환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기억을 새기기 위해 ‘냉혹함, 잔인함, 고통’이 수단으로 사용된다. 채무자는 빚을 갚겠다는 약속을 양심에 새겨야 하며 상환의 약속을 어길 경우에는 재산이 저당 잡히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 자유, 생명까지도 포함된다는 점을 알게 된다. 심지어 채권자는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의 육체에 고문을 가할 수 있었는데, 부채의 액수에 비례해 정확한 단계의 고통을 줄 수 있었다. 과거에 채권, 채무 관계는 이러한 형벌의 과정을 통해 완전히 해소됐다.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해진 잔인한 형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적 정의는 주는 자와 받는 자,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에서 ‘값을 정하고, 가치를 측정하고, 등가물을 만들어 내고 교환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채권자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서는 사물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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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빌리는 것은 자유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꼭 되갚으려는 의무감이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빚을 되갚지 못할 상황이라면 심각한 심리적인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일은 자신의 양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정의감에도 반하는 일이다. 니체의 지적처럼 경제적인 채무 관계에서 죄책감이 생겨나는데, 부채가 많을수록 갚아야 할 의무감은 커지고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때 생기는 자책감은 깊어질 수 있다. 빚이 많은 사람일수록 평생 돈의 노예로 살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심리적인 부담을 덜려면 자신의 경제적인 상환 능력을 고려해 채무를 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빚에 대해 탕감받거나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면서 빚을 갚지 않으려는 행동은 옳지 않다. 인간답게 사는 법은 자신의 약속한 것을 기억해 미래에 지키는 데 있다. 자신의 빚은 스스로 갚는 것이 정의로운 행위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