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접 운전대 잡다니”… 시각장애인 꿈에 날개 달아준 운전 체험 행사

  • 동아일보

15일 서울 마포구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서 시각장애인 민희홍 씨(66)가 시뮬레이터카를 활용해 운전 연습을 하고 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과 서부운전면허시험장은 이날 ‘흰 지팡이의 날’을 맞아 시각장애인 운전 체험 행사를 열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실명되기 전에 면허라도 따볼 걸 하는 후회가 많았어요. 이렇게 직접 운전할 수 있다니 좋네요.”

전신에 만성 염증을 일으키는 희귀병(베체트병)으로 30대 초반에 시력을 완전히 잃은 민희홍 씨(66)는 15일 서울 마포구 서부운전면허시험장 장내 기능 시험장에서 차량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를 꽉 쥐었다. 긴장한 듯 운전대를 뻣뻣하게 돌리던 민 씨는 시험장을 2바퀴 주행하고 나자 활짝 웃으며 부드럽게 운전대를 돌렸다. 민 씨는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브레이크와 액셀레이터를 밟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니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서 ‘제46회 흰 지팡이의 날 기념 시각장애인 운전 체험’ 행사가 열렸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과 한국도로교통공단 서부운전면허시험장이 개최한 행사에는 시각장애인 6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1시간가량 실내에 있는 시뮬레이터카를 활용해 자동차 기능과 운전 방법을 익힌 뒤 장내 기능 시험장으로 이동해 시험용 차량을 타고 4바퀴를 주행했다.

15일 서울 마포구 서부운전면허시험장 장내 기능 시험장에서 시각장애인 민희홍 씨(66)가 주행 체험을 하기 위해 시험용 차량 운전대를 잡고 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과 서부운전면허시험장은 이날 ‘흰 지팡이의 날’을 맞아 시각장애인 운전 체험 행사를 열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 행사는 2021년 ‘시각장애인들의 소원을 말해봐’라는 복지관 프로그램에 접수된 ‘한 번쯤 운전대를 잡아보고 싶다’는 요청에서 시작됐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두 눈을 동시에 뜨고 잰 시력이 0.5 이상이거나,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쪽 눈 시력이 0.6 이상이어야 2종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시각장애인 대다수는 운전면허 취득이 어렵다. 이번이 7번째 행사지만 운전대를 잡아보고 싶어하는 시각장애인은 많다. 이번 행사에는 15명의 대기자 중 6명이 선발돼 참여했다. 시각장애인 안마사로 일하고 있는 박소영 씨(30)는 “다섯 번 시도한 끝에 드디어 체험에 참여하게 됐다. 운전이 정말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참가자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행사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이 홀로 설 수 있는 주체임을 느낄 수 있는 기회로 평가된다. 체험에 참여한 박재한 시각장애인여성회장은 “실제로 면허를 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늘 운전자 옆자리에만 앉아있다 운전대를 잡아본다는 것 자체가 시각장애인이 독립된 주체임을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신동선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스포츠여가지원팀장은 “운전체험은 시각장애인의 꿈과 도전을 응원하는 행사”라며 “앞으로도 해당 행사를 계속해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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