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전산망 복구에 막막한 현장
“복구돼도 다시 일일이 입력 까마득”… “자료 통째로 사라져 업무파악 못해”
민영 클라우드 이전, 비용부담에 꺼려… “단순 복구 넘어 예산-인력확충 필요”
27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현장에서 소방당국 관계자들이 소실된 리튬이온배터리에 대한 반출 작업을 하고 있다. 2025.9.27 뉴스1
“밤샘 출동으로 잠도 부족한데 구급차에서 일일이 손으로 보고를 써서 올리고 있어요.”
서울소방본부 관계자는 22일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로 전산 시스템이 먹통이 되면서 출동 일지를 수기로 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부에 따르면 하루 평균 작성되는 구급일지는 1428건, 한 달이면 4만2000건이 넘는다. 그는 “복구가 언제 될지도 모르겠고, 복구돼도 다시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니 까마득하다”고 했다.
국정자원 화재로 709개 정부 전산 시스템이 피해를 입은 지 한 달이 됐지만 복구는 여전히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대구 분원의 민영 클라우드로 시스템을 옮겨 긴급 복구를 추진하고 있지만, 기관들의 부담과 절차 문제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3일 오후 기준 전체 복구율은 66.9%(709개 중 474개)다. 정부는 10월 말까지 국가 핵심 서비스와 국민 생활과 직결된 전산망이 포함된 중요도 1·2등급 핵심 시스템을 우선 복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복구율도 1등급 82.5%, 2등급 76.5%에 그치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일부 핵심 시스템은 복구 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으로 행정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하는 ‘모바일전자정부시스템’은 2등급인데 “대구 이전 후 재가동”이라는 계획만 세워진 상태다.
전자 시스템이 멈춘 기관들은 수기로 문서를 작성하고 직접 결재를 받으며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의 한 경찰서 민원 담당자는 “정보공개청구 시스템이 멈춰 수기로 작성한 문서를 스캔해 결재받는다”며 “예전보다 일이 두세 배 늘었다”고 했다. 인사혁신처의 한 사무관은 “9월 인사 이동자 중에는 자료가 통째로 사라져 업무 파악조차 못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복구돼도 걱정”이라는 말도 나온다. 화재 이후 손으로 작성한 보고서를 다시 입력하고 기존 데이터와 대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경찰서 직원은 “수기로 관리된 자료가 체계적이지 않아 분실이나 누락이 생길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시민 불편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의 한 주민센터 직원은 “모바일 주민등록증 발급이 중단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며 “언제 복구되는지 몰라 ‘뉴스 보고 정상화되면 다시 오시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했다.
● ‘비싼’ 민영 클라우드 이전 꺼려
국정자원 대구 분원의 민영 클라우드로 시스템을 옮기는 작업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행안부는 13일 20개 시스템을 이전한다고 발표했지만, 23일 기준 실제 이전 대상은 16개로 줄었다. 국정자원 관계자는 “새 환경을 구축해야 해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비용 부담 탓에 민영 이전을 꺼리는 기관도 많다”고 말했다. 초기 이전비는 예비비로 지원되지만 이후 운영비는 기관이 부담한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복구를 넘어 예산과 인력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데이터 이중화·이원화, 즉 DR(Disaster Recovery) 체계를 제대로 갖추려면 충분한 정부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정자원 배터리 이전 공사가 경험 없는 불법 하도급 업체에 맡겨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전기공사업법 위반과 업무상 실화 혐의로 관련 업체 5곳과 관계자 5명을 입건해 수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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