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신분증 필요없다” 미성년자에 위고비 불법 판매 기승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0월 23일 15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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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에 비대면 처방 제한에도
해외직구-대리 구매 편법 성행
코인-상품권으로 약값 받기도

비만치료제 ‘위고비’의 모습. 뉴스1
“미성년자도 ‘위고비’ 많이 찾습니다. 처방전, 신분증 필요 없습니다.”
23일 기자가 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미성년자도 위고비를 구매할 수 있느냐”고 묻자, 판매자는 1분도 안 돼 구매 절차를 안내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위고비 등 비만 치료제를 구매할 수 있는 해외 직구 사이트와 구매를 대행해 주겠다는 텔레그램 채널이 줄줄이 검색됐다. 이들은 “부모님 동의는 필요 없다”며 구체적인 용량과 부작용 등을 마치 의료기관처럼 설명했다.

“17세 학생은 5mg 추천”… 처방전 없이 주사제 직구

이처럼 미성년자가 처방전이나 부모 동의 없이 비만 치료제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부터 비대면 진료 시 비만 치료제 처방을 제한했지만, 해외 직구나 심부름 대행 서비스를 통한 편법 거래가 여전히 활발했다.

위고비는 주 1회 복부에 직접 주사하는 자가투여형 전문의약품으로, 식욕 억제 및 혈당 조절 호르몬 작용을 모방해 체중 감량 효과를 낸다.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인 고도비만 환자거나, 27이 넘으면서 고혈압 등 동반 질환이 있는 경우에만 처방받을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다.

특히 메스꺼움이나 구토 같은 초기 증상부터 담낭염, 급성신부전, 급성 췌장염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부작용에 취약한 미성년자의 경우 더욱 위험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약을 투여받은 12세 이상 청소년 환자는 성인 환자에 비해 담석증, 담낭염, 저혈압, 발진 및 두드러기의 발생률이 높았다”고 고시했다.

하지만 해외 판매자들은 이런 기준을 무시한 채 미성년자에게까지 ‘용량 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인도의 한 해외 직구 사이트 관리자는 “한국인이라도 신분증이나 처방전은 필요 없다(not required)”며, “처음 복용하는 17세 학생은 5mg을 추천한다”고 답했다. 또 다른 판매자는 “부모 동의나 처방전이 필요 없다. 집으로 바로 발송해 준다”며 거래를 유도했다. 대다수가 복잡한 절차 없이 e메일과 주소 등만 적으면 입금 후 약을 받아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국내에서도 미성년자에게 위고비를 대신 사준다는 텔레그램 ‘심부름 대행’ 채널이 성행하고 있었다. 기자가 한 채널에 문의하자 “미성년자들이 특히 많이 찾는다. 불법이라 계좌 거래 대신 코인이나 상품권으로 결제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오전 9시 전 결제 시 대도시는 당일 배송 가능하다” “근육량 감소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부작용 설명까지 덧붙였다.

● 비만치료제 불법 판매 적발 1년 새 5배로 급증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위고비 관련 이상 사례는 총 270건에 달했다. 앞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고비 오남용을 우려하며 의료기관의 처방 행태를 개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비만 치료제 온라인 불법 판매 알선·광고 적발 건수는 2021년 39건, 2022년 106건, 2023년 103건, 지난해 522건으로 지난 1년 동안에만 5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올해 1~8월에도 이미 218건이 적발됐다.

여전히 온라인에서는 미성년자가 쉽게 위고비에 접근할 수 있는 만큼 전문가들은 규제 강화와 더불어 청소년들의 외모 압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성인보다 부작용에 취약한 청소년들이 비만 치료제에 의존하게 되면 요요 현상으로 인해 고도비만이 되거나 골다공증까지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의 다이어트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을 줄일 수 있도록 비만을 외모의 기준이 아닌 건강의 문제로 인식시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인향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미성년자의 위고비 편법 구매에 대해 “청소년들이 또래 집단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외모에 대한 압박 심해져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찾아오는 우울증이 발현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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