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방명록 작성 때 쓴 만년필을 선물하고 있다. 2025.08.26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한미가 3500억 달러(약 500조 원)의 대미(對美) 투자펀드를 두고 상당 부분 이견을 좁힌 가운데, 현금 직접 투자 액수가 막판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분할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한국의 입장을 일부 수용했지만 여전히 상당액의 현금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1일 방미 협상단으로부터 미 측의 요구 사안을 최종 보고받은 가운데, 양국 정상 간 최종 결단에 따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관세 및 안보 분야 합의를 담은 공식 문서가 발표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이 대통령 美 측 제안 최종 보고받아
이 대통령은 이날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등 방미 협상단으로부터 관세 협상 상황과 미 측의 최종 요구안에 대해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APEC에서 관세 합의를 원하는 미국이 사실상 최종 제안을 전달했다”며 “이제 우리가 이를 ‘받을 거냐, 말 거냐’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가 조율이 있더라도 최종 결정은 한국과 미국 정상이 내려야 하는 단계”라며 “결단 여부에 따라 APEC 때 합의문을 발표할 수 있을지가 결정되는 구조”라고 했다.
정부 협상단은 대규모 외화 유출과 외환시장 충격을 우려해 ‘분할·단계형’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펀드를 현금으로 전액 선불 투자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직접 투자와 함께 대출·보증을 통해 투자금을 분할 조달하겠다는 것. 원화와 달러를 섞어 투자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미 협상단은 2박 4일간의 미국 방문 기간 동안 외환위기를 겪었던 나라로서 대규모 선불 투자 시 외환시장 위기 가능성을 집중 설득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국 측은 분할 투자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3500억 달러 투자의 상당 부분은 현금으로 직접 투자해야 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과 보증 대신 전액 현금으로 투자해야 한다던 기존 입장에선 물러섰지만 한국에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의 직접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현금 투자를 많이 받아서 이를 APEC 기간 성과로 내세우려고 하는 것”이라며 “당초 정부가 밝힌 (직접 투자 비율) 5%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의 현금 투자를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연간 감당할 수 있는 현금 투자 규모가 200억 달러 내외인 점을 고려해 최대한 대출·보증액을 높이고, 10년가량 분할 투자하는 방식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 APEC 기간 공동선언 발표 추진, MOU는 시일 걸릴 듯
양국은 관세 협상의 합의를 공동문서로 발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해소되지 않는 일부 쟁점을 제외하고 일단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고 미국은 한국산 수입품에 매기는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내용을 담은 설명자료(fact sheet)가 나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29, 30일 국빈 방문 기간에 맞춰 설명자료를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관세 협상 외에도 한미동맹 현대화와 한국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등 안보 합의를 담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방안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산 대두 수입 확대도 협상 목록에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양국이 관세 협상을 타결하더라도 APEC 정상회의에서 양국이 대미 투자펀드 양해각서(MOU)에 서명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이견이 남아 있는 만큼 APEC 전에는 완전한 합의가 쉽지 않다는 것. 정부 관계자는 “공동선언문을 먼저 발표하고 추가로 조율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정부는 공동선언문 발표 시 미국이 즉각 관세 인하에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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