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5년에 걸쳐 전국 시군구의 절반 가까이를 규제 사정권에 넣었다면, 이재명 정부는 출범 4개월 만에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을 ‘규제 3종 세트’로 묶었다. 1978년 토지거래허가제 도입 이래 전례 없는 초강력 조치다. 암세포가 번지는 걸 막겠다며 주변 장기를 모두 도려낸 격이다. 정부와 여당 인사들은 10·15 부동산 대책을 두고 “실수요자 보호를 위한 초강수”, “과열을 차단해 장기적으로 주거 사다리를 보장한다”는 자평을 내놓지만, 고개를 끄덕일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증폭되는 서민·청년층 주거 불안감
가장 억울한 이들은 서울 ‘노도강’(노원·도봉·강북), ‘금관구’(금천·관악·구로)와 경기 외곽 지역 주민이다. 이들 지역은 3년 전 집값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했는데 강남이나 한강벨트와 똑같은 규제를 적용받으면서 집을 제때 사기도, 팔기도 힘들어졌다. 정부는 풍선효과 차단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대책에서 빠진 구리, 동탄, 다산신도시 등의 집값은 벌써 들썩이고 있다. 이러다가 토지거래허가구역 면적만 더 키울 판이다. 게다가 잠실 시그니엘, 강남 타워팰리스 같은 초고가 주거용 오피스텔과 연립주택은 규제를 비켜 가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크다.
이제 규제지역에서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는 원천 봉쇄됐고 무차별 대출 규제까지 더해졌다. 15억 원이 넘는 주택은 대출 한도가 4억 원으로, 25억 원이 넘으면 2억 원으로 축소됐다. 이는 문 정부가 15억 원 넘는 주택에 대한 대출을 금지한 2020년 12·16 대책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당시 ‘초고가 아파트’의 기준이던 15억 원은 서울 아파트값 평균이 됐다. 지난달 KB부동산 시세로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4억3600만 원을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수억, 수십억 원 빚내서 집을 사게 하는 게 맞느냐”는 여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현금 부자’가 아닌 서민과 청년들은 집을 살 자격이 없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더군다나 이번 대책은 가뜩이나 불안한 전월세 시장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요즘 서울 주요 아파트들은 전세 매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2년 실거주 의무’까지 적용돼 다주택자와 갭투자자의 전세 공급 물량이 사라지게 됐다. 여기에다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해보다 60% 넘게 급감한다. 전세난은 물론이고 전세의 월세 전환을 가속화해 월세 가격까지 끌어올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이미 서울 아파트 월세 가격이 역대 최고치로 치솟은 상황에서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가중되면 내수 활성화도 멀어진다.
서울 주택 공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 역시 차질이 불가피하다. 재건축·재개발 조합원을 겨냥해 전매 제한, 주택 공급 수 제한, 재당첨 제한, 대출 제한 등의 규제가 한꺼번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재건축에 본격 시동을 건 분당, 평촌 등 1기 신도시까지 사정권에 포함됐다. 그러잖아도 지지부진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위축되면 중장기적으로 수도권 집값을 더 끌어올릴까 우려스럽다.
무주택자 숨통 틔워 주고 공급 속도 내야
이런데도 이 대통령은 21일 “가용한 정책 수단과 역량을 집중 투입해 비생산적 투기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며 규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으니 주식으로 갈아타라”, “돈 모아서 집값 떨어지면 사라”고 할 게 아니라 날벼락을 맞은 실수요자와 서민, 청년들의 숨통을 틔워 줄 후속 보완책부터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수요자들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주택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공급 없이 징벌적 규제로만 집값을 잡으려다가는 수십 차례 대책에도 시장의 내성만 키워 되레 집값 급등을 부추긴 문 정부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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