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노벨상의 계절이 지나갔다. 노벨위원회에 따르면 한국 출신 수상자는 3명이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1987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찰스 피더슨이다. 피더슨은 1904년 부산에서 태어나 8세까지 한국에서 살았다. 수상 당시 국적은 미국이었지만 노벨위원회는 출생지를 기준으로 그를 한국 태생으로 분류했다.》
박재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노벨상 시즌마다 한국 과학계는 ‘왜 우리는 과학 분야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할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로 술렁인다. 오랜 기초과학 투자 부족,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연구문화 등이 단골 원인으로 지목된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막연할 뿐만 아니라 수십 년이 걸리는 문제들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경로와 연구방식을 분석한 최신 연구를 통해 실마리를 찾아본다.
첫 번째 연구(연구①)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출생지와 수상까지의 여정, 즉 획기적 발견을 이뤘을 때 그리고 상을 수상할 당시의 소속 기관 등을 추적했다. 연구팀은 1901∼2024년 노벨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을 받은 649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수상자의 무려 43.2%가 노벨상의 계기가 된 연구를 수행한 기관과 수상 당시 소속된 기관이 달랐다. 이는 많은 연구자들이 중요한 발견을 한 이후 다른 기관으로 옮겼음을 의미한다. 국가 간 이동 역시 활발했다. 전체 수상자의 29.2%는 태어난 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연구경력을 쌓으며 노벨상급 발견을 이뤄냈고, 10.6%는 발견을 한 국가와 수상을 한 국가가 달랐다.
미국은 젊은 인재를 유치해 획기적 발견을 이끌어내고, 그들이 수상할 때까지 머무르게 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국가였다. 반면 스위스, 영국 등은 젊은 과학자를 유치하는 데는 강하지만, 발견 이후에는 다른 나라로 떠나보내는 경향을 보였다. 캐나다와 독일은 이미 성과를 낸 저명한 과학자들을 유치하는 데 더 강점을 보였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국제적 이동의 대부분이 획기적인 발견을 하기 이전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창의적인 연구환경을 제공해 젊은 과학자들을 유치하는 것이 노벨상 배출의 핵심 전략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두 번째 연구(연구②)는 혁신을 이끈 과학자의 연구방식에 대해 보여준다. 연구팀은 전 세계 2460개의 과학상을 받은 2만3000명 이상의 수상자들을 같은 분야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수준의 논문 수와 피인용 횟수를 기록한 비수상자들과 비교 분석했다.
분석 결과, 수상자들은 상을 받기 약 5년 전부터 비수상자들과 혁신성에서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수상자들은 ‘새로운 방식의 아이디어 결합(novelty)’과 ‘과거와 현재 연구의 연결(convergence)’ 측면에서 꾸준히 높은 혁신성을 보였고, 이 격차는 수상 이후에 더욱 유의미하게 벌어졌다. 특히 수상자들은 경력 전반에 걸쳐 비수상자들보다 월등히 높은 다학제적 연구 성향(interdisciplinarity)을 보였다. 이는 수상자들이 본질적으로 더 융합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혁신성은 그들의 협업 네트워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수상자들은 비수상자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짧은 기간 동안 협업하고,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주제에 더 자주 노출됐다. 또 협업하는 동료들의 연구 네트워크가 서로 겹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그들이 안정적인 연구 그룹에 안주하기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지적 경계를 확장해 나갔음을 뜻한다.
두 연구는 과학자 생애주기의 어느 단계에 집중할 것인지, 또 혁신적인 연구환경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시사점을 준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고등교육 혁신 담론이 활발하지만, 매번 구체적 방향성을 잃고 해외 우수 대학의 장점과 전략을 나열하는 데 그치고 만다. 이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적 연구기관은 어떤 강점과 전략을 가지고, 어떤 연구자를 양성하는 곳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비단 자원 투입에 그치지 않고 과학자들이 창의적인 협업을 통해 혁신을 꽃피울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과학계가 노벨상으로 다가갈 ‘제3의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연구① von Zedtwitz, Max, Tobias Gutmann, and Pascal Engelmann. “The Nobel “Pride” Phenomenon: An analysis of Nobel Prize discoveries and their recognition.” Research Policy 54.1 (2025): 105150.
연구② Tian, Chaolin, et al. “The distinctive innovation patterns and network embeddedness of scientific prizewinner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22.40 (2025): e242414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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