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車 사고 환자 몰리는 한방병원… 보험치료비 연 1조 원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0월 21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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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운전 중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나면 “일단 한방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응급실로 가봤자 환자 대접은커녕 귀가를 종용받곤 하지만, 한방병원에선 바로 입원해서 치료받기 쉽다는 것이다. 교통사고 환자가 한방병원으로 쏠리면서 자동차보험 한방병원 치료비가 지난해 1조 원을 넘어섰다. 9년간 약 6배가 늘어났다. 지난해 양방병원 치료비가 1329억 원이고 같은 기간 1.6배 늘어난 것에 비하면 그 증가세가 가파르다.

▷교통사고 환자의 94%는 상해 급수 12∼14급에 해당하는 경상 환자이다. 응급실에 가면 엑스레이를 찍고 이상이 없으면 돌려보내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교통사고 환자가 몰리는 일부 대형 한방병원에선 자기공명영상(MRI)처럼 비싼 검사를 받고 입원부터 한다. 침도 맞고 뜸도 뜨고 한약도 먹는다. 한방병원은 객관적 임상 데이터보다 의사 진단 의존도가 높다 보니 적정 치료에 대한 기준이 상대적으로 애매하다. 그래서 가벼운 타박상을 입은 환자도 “통증이 있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고 몇 달씩 치료를 받는 일이 벌어진다.

▷지난해 4대 손해보험사 경상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는 한방병원(100만7000원)이 양방병원(32만5000원)의 3배가 넘었다. 한방병원은 양방병원 대비 진료 기간이 2배 가까이 길고, 기본 침을 제외한 대부분이 ‘부르는 게 값’인 비급여 항목이다. 햄버거·감자튀김·콜라를 묶은 세트 메뉴처럼, 침·뜸·부항을 묶은 ‘세트 치료’ 청구가 급증한 것도 이유라고 한다. 뒤 범퍼를 살짝 긁는 사고를 당한 운전자 커플이 2년 넘게 뒷목 통증을 호소하며 1684만 원의 치료비를 쓴 보험업계의 전설도 있다.

▷적잖은 환자들에게 한방병원이 자기 돈 들이지 않고 온갖 검사와 치료를 받고 쉬어가는 일종의 웰니스센터처럼 여겨지나 보다. 여기에 ‘나이롱 환자’를 받아서라도 수익을 올리려는 몇몇 한방병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과잉 진료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교통사고가 난 뒤 상대 차주나 보험사가 비협조적이면 ‘어디 당해보라’는 식으로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워낙 치료비가 많이 나오니 보험사가 적당히 보상금을 챙겨 주고 합의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올해 자동차보험은 약 5000억 원대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2500만 명이 가입한 자동차보험료가 내년에 약 3% 오를 요인이 된다. 일부 환자와 병원의 도덕적 해이로 발생한 손실을 온 사회가 나눠서 떠안는 셈이다.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은 1인당 평균 69만 원의 연간 보험료를 낸다. 이들 상당수는 1년 내내 무사고이고 병원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정직하게 진료하는 의사, 정직하게 치료받는 환자가 오히려 손해를 본다면 그 제도는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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