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No Kings”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0월 20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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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미국 수도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서 백악관에 이르는 약 2.5km 구간에 ‘노 킹스’(No Kings·‘절대 권력’은 없다)를 외치는 수천 명의 반트럼프 시위대가 집결했다. 워싱턴 외에도 50개 주에서 700만 명이 넘게 참여해 6월보다 규모가 커졌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는 트루스소셜 계정에 왕관을 쓰고 ‘킹 트럼프’라고 쓰인 전투기로 시위대에 오물을 투척하는 가짜 영상을 공유했다.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가 이처럼 시위대를 대놓고 조롱한 적이 있었나 싶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끝날까 봐 두렵다.” 이번 시위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민주적인 국정 운영과 삼권 분립을 흔드는 권력 남용에 대한 저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헌 다툼이 있는 관세 전쟁을 밀어붙이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 불법 이민자 단속과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민주당 아성’ 지역에 주 방위군을 투입한 것도 논란이다. 트럼프 가족 기업의 부정 대출에 소송을 제기했던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을 대출 사기로 기소했고, 자신을 비판한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재판에 넘겼다. 정부 기관을 동원해 정적 제거에 나서면서 ‘정치 보복은 없다’는 미국 정치의 암묵적인 합의도 깨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 킹스’ 시위를 언급하며 “나는 왕이 아니다”라고 했다. 왕은 아니지만 왕을 동경하는 건 사실인 듯하다. 각국 정상에게 무례하기 짝이 없던 그도 영국 왕실 앞에선 공손해진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주석,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는 “똑똑하다”, “강하다”며 부러움을 드러낸다. 이들이 다자주의를 비웃고, 민주주의를 하찮게 여겨도 개의치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에 돈바스 지역을 넘기라고 침략국의 편을 들었다. “이 전선 지도, 이제 지겹다”며 전황 지도를 내던졌다고 한다. 양자 회담 내내 수차례 고성이 오갔고, 일방적으로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캐나다에는 “51번째 주가 되라”, 그린란드에는 “100% 가져올 것”이라며 팽창주의적 영토 야심을 감추지 않는다. 주권국의 권리를 보장해 온 전후 70년 국제질서를 깡그리 무시하고, ‘아메리카 제국’의 왕이 되고 싶은가 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인터뷰에서 “진정한 힘은 공포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가 사업가로서 자신을 부풀리고 과장해서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대통령은 다르다. 워싱턴 ‘노 킹스’ 시위에서 연사로 나선 시민은 “트럼프는 뭐가 두려워 이러는 것이냐”고 물었다. 공포에 실체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민주적 정당성을 쌓지 못한 그의 권력 행사는 거센 저항을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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