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위시해 자국 이익 중심 국제정치 본격화
동맹 활용-자주성 동시 추구할 절호의 기회
美에 반대급부 정교히 설계, 적극 거래해야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실리의 국제정치가 본격화됐다. 협상과 거래는 점점 더 불규칙해지고 있다. 하나의 큰 협상을 발판으로 안정 국면이 도래하리라는 기대는 자리를 잃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거래의 시대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리의 시대에도 진정한 강자는 존재한다. 눈앞의 이익에 집중하는 외교는 당장의 성과를 안길지 모르지만, 원칙을 방치하고 국제질서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장기적인 이익을 놓치게 된다. 반면, 원칙을 지키면서 전략적 유연성을 갖춘 진정한 의미의 실용외교는 상황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지속되는 국익을 추구할 수 있다. 다양한 전략자산과 외교 채널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외교를 ‘이익의 기술’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전략의 설계’로 접근한다.
여러 국가의 실리 전략이 교차하는 가운데 한국이 느끼는 전략적 압박과 조급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미국은 자국 중심의 실리 전략을 강화하며, 경제적 강압과 국방 전략의 재조정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동맹을 유지하는 대가로 고비용의 구조적 부담을 떠안게 됐다.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한국의 이익을 지키며 지역안보를 둘러싼 한미 간 전략 조정을 해나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도 직면해 있다.
북한은 러시아, 중국과의 전략적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핵 보유의 정당성을 전제로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도 타진하는 모습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전략적 무시와 외면으로 일관하며 대화의 문을 닫고 있다. 국제사회 역시 북핵 문제의 긴급성과 위험성에 점점 둔감해지고 있다. 최근 유엔총회에서도 북핵은 실질적 주목을 받지 못했다. 평화 구축과 북핵 문제 해결을 민족의 과제로 인식해 온 한국으로서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맹 중시 대 자주 지향’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어리석고 위험한 접근이다. 한국 외교는 동맹의 최대한 활용과 진정한 자주성을 동시에 추구할 절호의 기회 앞에 섰다. 미국의 동맹 정책이 자국 이익 중심의 거래적 구조로 재편되면서, 역으로 한국은 전략적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외교 환경을 맞고 있다.
국익 중심의 자주적 외교 목표 없이 동맹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으로는 국제질서 재편의 파고를 헤쳐나갈 수 없다. 역설적으로 지금이야말로 자주적 관점에서 동맹을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 미국이 북한 문제에 전략적 관심을 쏟을 여유가 줄어드는 가운데, 동맹이 제공하는 전략자산을 우리의 독자적인 대북 목표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은 넓어질 수 있다. 미국이 경제·안보·기술 분야에서 한국을 더욱 필요로 하는 만큼, 선제적이고 정교한 반대급부를 설계해야 한다.
동맹의 유용성을 과소평가해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거나, 동맹 강화의 명분 아래 대북 정책 목표를 희생하는 것은 모두 전략적 오판이다. 자주성과 동맹 활용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추구하는 실용 전략, 즉 거래를 통해 동맹을 조정하고 그 조정된 동맹을 통해 독자적 국익을 실현하는 전략적 유연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당분간 북한과의 협상은 남북 간보다는 북-미 정상회담을 매개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 경제가 한국의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할 만큼 절박하지 않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 구도 역시 견고하다. 남북 교류 확대가 북한 체제의 내부 결속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경계심도 여전한 상황에서, 직접적인 남북 협상의 진전은 중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할 사안이다.
한국의 대북 정책은 일정 기간 북-미 관계의 전개 흐름에 연동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북-미 양자 협상보다 앞서 나가려면 상당한 외교적 레버리지와 정치적 자산을 선제적으로 투입해야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오히려 북-미 협상이 실질적으로 진행되는 단계에서 한국의 외교·경제적 참여를 요구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 한국이 보유한 실질적 자원과 실행능력을 전략적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우리의 대북 정책 방향성과 원칙을 미국이 수용하도록 동맹 내에서 적극적으로 거래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동맹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남북 관계에서 자주적인 운신의 폭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다. 한국은 경제 분야에서 한미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대북 정책과 관련해 필요한 메시지를 정교하게 설계해 전달해야 한다. 더불어 정부 내부의 혼선을 최소화하고 정책 일관성을 확보함으로써 실용외교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 하나의 목표를 향한 집단적 노력이 전략적 단견이나 개인적 이익 추구로 인해 훼손되지 않도록, 동맹과 자주의 이분법을 초월하는 성숙한 전략적 준비와 실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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