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스로 ‘해방의 날’로 명명하고 전 세계에 관세 폭탄을 퍼부은 지 반년이 흘렀다. 당시 미국의 선전포고는 온 나라를 향해 무차별 난사하듯 했지만 어느새 지금은 슈퍼파워 미국과 중국 간의 혈투로 전선이 응축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 등 많은 나라는 전쟁의 유탄을 대신 맞거나 어느 한쪽 편의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전 세계가 피아(彼我)를 가리기 힘들고 끝을 예단하기도 어려운 ‘경제 대전’에 휘말리고 있다.
주요국들이 이번 전쟁에 동원하는 카드는 전방위적이다. 고율의 관세 부과, 상대국 기업에 대한 제재 및 조사, 전략물자의 수출 통제 등을 거침없이 꺼내 든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상대를 겨냥한 공격을 쏟아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응해 중국은 자국의 희토류 수출을 틀어막았고 양측은 나란히 서로의 선박에 입항료를 부과했다. 이들의 전선은 대기업이나 첨단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 부과에 맞서 수확기에 접어든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중단하자, 농가의 반발로 수세에 몰린 트럼프는 중국과의 식용유 교역을 단절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양국이 상대를 향한 압박 수위를 계속 높여가면서 결국 미중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美中 싸움에 모두가 휘말려 피해 입어
이 전쟁의 주연은 미중 양국이지만 그로 인한 고통과 피해는 모든 나라가 받고 있다. 중국이 한미 조선 협력 사업 ‘마스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들에 제재를 발표한 것이 그 사례다. 유럽연합(EU)의 50% 철강 관세는 애초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한국 등 각국의 철강업계가 동시에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며 부과한 입항 수수료는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 선박도 함께 부담해야 한다. 각국은 미중 어느 편에 설 것인지에 대한 선택도 강요당하고 있다. 중국산 자동차를 많이 수입하는 멕시코는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중국 차량에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인도는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항해 최근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하는 등 줄타기 외교에 나섰다.
살아남기 위한 우리의 무기는 무엇인가
주요국들은 상대가 무시할 수 없는 각자의 무기를 내세워 이 혼돈의 시기를 헤쳐 나가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 폭격에 의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은 미국과의 무역에 의존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광활한 내수시장을 둔 덕분이다. 그리고 선진국 수준에 범접하는 제조 기술력, 희토류 같은 전략 자원들도 중국을 든든하게 한다. 일본은 소·부·장에 대한 강점과 세계 금융시장에서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지위, 막대한 해외 자산 및 외환보유액이 무기다. 4억5000만 명의 단일 소비 시장을 갖고 있는 유럽은 고부가가치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 ‘슈퍼 을(乙)’로 통하는 ASML이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이런 각자도생 정글에 내던져진 한국이다. 지금은 냉전 때처럼 한쪽 편에 줄 선다고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미국은 플라자합의나 미일 반도체 협정처럼 과거에도 동맹국을 탈탈 털어 자기 이득을 취한 적이 많았다. 3500억 달러라는 투자 청구서가 매우 가혹하긴 하지만 이런 역사적 맥락을 볼 때 그렇게 난데없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겪고 나서 “국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처럼 모두가 뒤엉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상황에선 상대가 두려워할 만한 무기와 맷집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그 숙제를 잘하고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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