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들으면 어느 카페의 메뉴 같지만 아니다. 소비자가 업장에 무단 반입해 먹는 음식의 목록이다. 올 추석 연휴 기간, 서울의 한 디저트 전문점이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카페의 메뉴와 겹치는 외부 음식을 반입해 먹는 손님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다가 무단으로 먹은 뒤 그대로 버리고 간 음식 사진을 보면서 ‘시민의식이 참 엉망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글은 강력한 경고문도 아니었고, 어투도 매우 정중했기에 “잘하셨습니다. 그러셔야 합니다!”라고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나도 1년 6개월째 특정 카페에서 주 5, 6일 두세 시간씩 시간을 보내는데, 정말 별의별 외부 음식을 먹는 이들을 본다. 찐 옥수수 같은 건 기본이고 떡이나 근처에서 사온 호두과자나 빵 등을 천연덕스럽게 먹는다. 사실 이런 풍경은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나는 카페 측의 게시글이 많은 공감을 얻을 것이라 예상했다. 아뿔싸, 내가 틀렸다. 공감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반응과 인신공격에 가까운 항의도 만만찮게 이어졌다. “그렇게 사진까지 올리면 매장을 찾은 사람을 특정하는 것 아닌가”라는 비판을 시작으로, “소비자 돈 받고 영업하는 사업체라면 지갑을 여는 사람을 대놓고 모욕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주를 이뤘다.
정녕 그런 걸까? 직원이 아니기에 자주 찾는 카페에서 그런 광경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편이다. 하지만 가끔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외부 음식을 꺼내 먹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참고 참다가 조심스럽게 항의한다. 외부 음식 금지라고 공지된 공간에서 대놓고 규칙을 어기는 모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항의를 듣는 이들은 대부분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먼저 규칙을 어겨 지적을 받은 것인데, 괜한 망신을 당했다며 민망해하거나 되레 화를 내는 경우도 봤다. 소셜미디어에 게시물을 올린 디저트 전문점도 분명 참고 참다 결국 글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규칙을 깨고 업장에서 외부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거나 그것을 괜찮다고 믿는 이들이 마치 자신이 공격받는 것처럼 느낀 탓일까. 게시글을 향한 항의의 물결은 점점 거세졌다.
결국 카페 측은 게시글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소금빵, 귤, 크림빵, 케이크, 커피 등은 팔지 않는 것이니 드실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저희가 전문적으로 파는 메뉴와 겹치는 걸 드시는 건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속도 좀 상한다”고 했다. 나는 음식평론가로서 이 매장이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메뉴와 겹치든 겹치지 않든, 업장 규정이 그렇다면 외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각종 규칙의 준수는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덕목이라 믿지만,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서울 시내버스에서는 이제 ‘앞문 승차, 뒷문 하차’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형성된 시민의식이 채 40년도 안 돼 무너져 가는 방증으로 보인다. 카페의 외부 음식 섭취 문제도 그래서 결코 사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회 전반적으로 빠르게 느슨해지는 시민의식을 이제는 다시 다잡아야 할 때다. 우리 사회의 수준은 이보다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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