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대한민국 대통령이 좌향좌 하면 안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0월 16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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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난제 풀려면 李, 좌파·친중 의심
완전 떨치고 트럼프와 신뢰 쌓아야 하는데
자주파 활개치고 남북 두 국가론 복창
전작권은 실체도 모르면서 환수 몰이

이기홍 대기자
이기홍 대기자
좋든 싫든 우리는 트럼프의 미국과 3년 3개월을 더 동행해야 한다. 트럼프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잠시 트럼프의 눈으로 들어가서 한국을 바라보자.

트럼프 정치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는 팍스아메리카나를 위협하는 중국을 상대로 한 무혈 전쟁, 둘째는 만성적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라는 쌍둥이 적자 해결을 위한 우방국에의 전방위적 압박, 셋째는 미국 내 좌파 진지를 부수기 위한 이념전쟁이다.

미 지식인 사회 내의 좌파 헤게모니와 PC(Political Correctness)주의에 대한 트럼프의 적대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화 전략처럼 곳곳이 좌편향됐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하버드대 등 주요 대학과 뉴욕타임스 등 언론, 실리콘밸리 등 진보진영의 심장부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번 건드려 보는 수준이 아니라 너가 죽나 내가 죽나 보자는 결기로 칼을 휘두른다.

트럼프가 잘하고 있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미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서 정작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마구 훼손시키는 행태를 서슴지 않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어쨌든 이게 현실이라는 뜻이다.

이런 트럼프에게 이재명 정권은 어떻게 비쳐질까. 트럼프 진영 핵심에 연계를 가진 미 전직 관료의 워딩을 소개한다.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총리와 여당 대표를 다 반미 활동가 출신들이 차지했다. 국정원장에는 대표적인 자주파 인사를 앉혔다. 미군기지가 압수수색 되고, 친미파 종교지도자들(‘미국은 그들을 한국 내 반공을 지켜온 핵심 세력으로 본다’고 부연)이 소환조사 받고 있다.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이 직접 나서 노란봉투법에 우려를 전달했는데도 묵살됐다. 예상대로 개성공단을 되살린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 체제를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제2의 문재인 아닌가?’… 대략 이런 인식이 MAGA 진영이 트럼프에게 주입시킨 한국 정권의 이미지다. 트럼프가 이를 어떻게 소화했는지는 당사자만 알지만 대략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동의하기 힘들어도 이게 현실이다. 이 대통령은 냉철하게 트럼프 입장에서 역지사지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피투성이가 되어 중국 및 좌파와 싸우고 있는데 당신은 셰셰하고 있나? 우리가 수십 년 지켜준 나라라면 이럴 때 당연히 우리를 도와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의구심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기 위한 획기적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현재 미국의 3500억 달러 압박이 한국 정권에 대한 트럼프의 호오(好惡) 감정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의심의 여지는 있어도 객관적 근거는 없다.

베테랑 통상협상 전문가의 설명이다.

“트럼프의 한국 정권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를 유추해볼 사례는 몇 있다. 이재명 당선후 첫 통화가 이례적으로 늦어진 점, 첫 정상회담 직전에 트럼프가 SNS에 올린 숙청 혁명 운운하는 메시지, 정상회담이 분위기는 좋았다고 했는데 동맹관계와 관세무역협상 두 주제 모두 합의문이 안 나온 점 등등이 그 예다.

하지만 매크로하게 보면 미국은 한국을 콕 찍어서 공격한다기보다는 우방국인 일본 한국 유럽연합(EU)을 굴복시켜서 그 내용을 제3국, 제4국에 적용하려는 그랜드 디자인 속에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협상에서 후퇴하면 앞으로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에서 자기 패를 다 까고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강경한 것이다.”

이번 협상뿐만 아니라 앞으로 방위비 분담, 주한미군 역할 변경, 원자력 협상 등 숱한 난관들은 실무자들 차원에서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트럼프를 직접 공략해야 한다. 즉 트럼프의 시각을 최대한 우호적인 것으로 만들어 놓는 게 결과에 직결된다는 얘기다. 필수 선결조건은 한국 정권이 좌파가 아니며,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미국의 든든한 동지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거래적 관점’을 충족시킬 딜을 해야 한다.

정권 주변의 자주파들을 대통령이 확실히 제어해야 한다. 특히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남북 두 국가론을 외치고 다니는 건 정상적인 정부 체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방치하면 북한 핵무장의 길을 완전 열어주고, 통일의 길을 막아버린 정권으로 역사에 낙인찍힐 수도 있다.

남북한은 국제법적으로는 별개 국가가 맞다. 하지만 별개의 다른 두 질서가 병존한다. 너하고 나하고는 한 가족이었고 다시 한 가족이 될 때까지 우리는 가족의 일원인 특수관계라고 하는 게 남북 기본합의서다. 김정은이 입장을 바꿨어도 우리는 불변이라고 해야만 대외적으로 북한 문제에 발언할 기반이 생긴다.

만약 동조하면 통일 탈북자 북한인권 북-중 북-러 관계 등등에 대해 한국은 아무런 상관없는 존재가 된다. 북한 급변 사태 시 중국군이 북한 땅을 점령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자주파가 밀어붙이고 이 대통령도 힘을 실어 준 전시작전권 전환도 위험천만하고 무책임한 질주다. 자주파 인사들 그리고 이 대통령이 전작권 시스템의 실체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현 집권당 인사들의 인식 수준을 엿볼수 있는게 전작권이 소재로 쓰인 영화 등에 대한 반응이다. 좌파감독들이 만든 영화나 드라마엔 미군이 자국 이익만을 염두에 두고 한국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미칠 군사작전을 결정해도 한국 대통령이 속수무책인 상황들이 단골로 등장한다. 그런 영화를 보며 민주당 정치인들은 쌍수를 들고 전작권 전환을 외치는데 전작권은 그런 제도가 아니다.

전작권은 미군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미 간에는 데프콘(DEFCON·방어준비태세)의 각 단계별로 한미연합사에 배속시킬 부대를 규정한 ‘포스 리스트(Force List)’가 있다. 이 리스트엔 ‘자동배속(automatic)’과 ‘요구에 따라(requested)’의 두 항목으로 각각의 부대들이 구분돼 있다. ‘요구에 따라’로 규정된 부대는 연합사령관의 배속 요청을 한국 측이 수용해야지만 배속된다. 데프콘 격상은 한미 양국 합의로 정한다. 한국 대통령이 데프콘 격상에 동의 안 하면 아예 지휘권이 넘어갈 수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리고 연합사령관은 양국 합참의장으로 구성된 군사위원회(MC), 그리고 그 위로 양국 대통령이 대표하는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NCMA)’의 지휘를 받게 된다. MC와 NCMA는 양국 간 합의제여서 항상 양국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어느 한쪽의 반대가 있으면 연합사령관은 아무 작전도 할 수 없다.

연합방위체제를 구축한 나라들은 다 전시 단일지휘체계를 택한다. 서유럽 국가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참여해 미군인 나토 사령관에게 지휘권을 맡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32개 국이 다 국방자주권을 포기한 나라들인가?
사실관계와 국제현실이 이런데도 수십 년 전 낡은 패러다임에 고착된 자주파 인사들은 끊임없이 대통령에게 ‘작전권도 뺏긴 나라’ ‘우리 민족’ ‘미중 균형론’을 불어넣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좌파든 우파든 투표에 이긴 쪽이 노선을 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대통령에게 외교안보는 그런 선택의 자유가 없다. 국익을 생각한다면 선택지는 하나고 정답은 확실히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미국#중국#무역적자#한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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