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허정]美中 통상 갈등 2라운드, 관세 전쟁에서 ‘룰의 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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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조업 르네상스’ vs 中 ‘쌍순환 전략’
산업-기술-자원 결합된 경제체제 경쟁 중
韓, 바뀐 통상질서 기반 생존 능력 키워야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허정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과 중국의 통상 갈등이 다시 시작된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부터 현재 중국산 제품에 적용 중인 관세에 추가로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고, 핵심 소프트웨어 수출 통제도 예고했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이튿날 시장 불안을 의식해 “중국이 불황에 빠지는 걸 원치 않는다”며 유화 제스처를 취하긴 했다. 하지만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직후 나온 그의 날것이 담긴 언어는 단순히 협상을 위한 수사가 아니라 새로운 미중 갈등 전선을 규정하는 선언으로 들린다.

트럼프 1기의 관세 전쟁(2018∼2019년)은 주로 무역수지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상품 중심의 마찰이었다. 미국은 세탁기, 냉장고, 철강, 알루미늄 등에 고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과 반도체에 대한 고관세로 맞섰다. 그때의 논쟁은 시장점유율과 가격경쟁력의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 미국과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갈등 2라운드는 성격이 전혀 달라 보인다. 외견상 고관세 갈등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산업·기술·자원이 결합된 경제체제 간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중국에 30%의 관세를 적용하고 있는데, 여기에 100%가 더해지면 대부분의 제품은 미국 시장 접근을 잃게 된다. 중국은 희토류와 흑연 등 핵심 광물 수출을 허가제로 전환했고, 역외에서 생산된 제품에도 동일한 통제를 예고했다. 양국 모두 교역 품목을 전략자산으로 취급하며 공급망을 무기화하고 있다. 무역의 언어가 ‘시장’에서 ‘안보’로 바뀐 것이다.

이번 충돌은 단발적 제재나 보복의 반복으로만 볼 수 없고, 구조적인 갈등 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제조업 르네상스’를 내세우며 통상정책을 산업정책의 연장선에 두고 있다. 중국 역시 ‘쌍순환’ 전략을 강화해 내수 중심의 자립경제를 구축하고 있다. 양국의 정책 방향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협상이나 합의로 갈등이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은 낮아졌다.

이 새로운 갈등의 구조는 세 가지 전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자원과 공급망의 전선이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광산 생산의 약 70%를 차지하며, 정제·가공 단계에서는 전 세계의 90% 안팎을 장악하고 있다. 세계 첨단산업의 핵심 소재를 사실상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반도체 장비,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등 첨단기술의 대중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자원이 단순한 원료가 아니라 전략적 무기가 되면서 공급망이 곧 안보망이 됐다. 공급의 효율보다 통제의 우월성이 우선되는 새로운 갈등 구조다.

둘째, 기술과 표준의 경쟁 전선이다. 미국은 기술 통제를 통해 산업 생태계의 주도권을 확보하려 하고, 중국은 자국 중심의 기술 표준을 세워 독자적 체제를 구축하려 한다. 기술의 기준이 곧 시장의 질서가 되는 시대다. 과거에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이러한 문제를 조정했지만, 지금은 각국이 스스로 ‘룰’을 만들고 있다. 기술 표준의 충돌은 사실상 경제 질서의 분화를 의미하며, 협력보다 병렬적 공존이 현실이 되고 있다.

셋째, 산업정책과 금융의 충돌 전선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은 일부 집행 지연 등의 문제가 있지만, 여전히 반도체·청정에너지 산업에 대한 보조금과 세액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중국도 국유기업 중심의 보조금 정책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기술 혁신기업에 대한 금융 완화, 이자 보조, 투자펀드 확대 등 국가자본주의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제 경쟁은 관세율이 아니라 누가 더 오래 자국 산업을 지탱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이동했고, 금융과 보조금이 통상정책의 핵심 수단이 됐다.

결국 이번 미중 통상 갈등은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라 무역의 질서를 만드는 규범(rule) 경쟁 체제의 등장을 보여준다. WTO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주요 영역에서는 법보다 통제와 힘이 앞선다. 무역의 질서를 만드는 것은 협약이 아니라 산업정책과 경제안보를 위한 계산이다. 관세는 더 이상 경제정책의 도구가 아니라 체제의 언어가 된 것 같다.

산업구조가 미중에 깊이 얽혀 있는 한국은 어느 한쪽의 선택으로 문제를 풀기 어려워졌다. 통상정책의 초점은 갈등 중재나 단기 성과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의 정책 변화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협력과 타협이 가능한 영역을 끊임없이 발굴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외교적 균형이 아니라, 세계 통상질서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냉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생존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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