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문병기]트럼프 올라탄 김정은의 ‘제2 건국’ 선언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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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정치부장
문병기 정치부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8일 ‘제2의 건국시대’를 선언했다. 구체적인 구상은 내년 1월 9차 당 대회를 거치며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적대적 두 국가론과 연결해 체제를 재정의하려는 전략적 메시지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2의 건국은 김정은 자신을 새 시대의 창건자로 위치시키려는 시도로 보인다. 김일성이 제1의 창건자, 김정일이 계승자라면, 자신은 북한을 재건국한 새로운 창업자라는 서사를 내건 것이다.

‘핵보유국’ 자신감 커진 北

당 창건 80주년 행사는 제2의 건국시대 서사를 각인시키는 상징적 장면들이 연출됐다. 중국 80주년 전승절 열병식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톈안먼(天安門) 망루에 오른 김 위원장은 중-러 2인자인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베트남 권력 서열 1위 또럼 서기장과 함께 열병식 주석단에 올랐다. 이번 행사에 대표단을 보낸 국가는 11개국.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2011년 이후는 물론 김정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북한이 이만큼 대접받은 행사는 찾기 어렵다.

북한은 이를 3대 세습의 영도력으로 이뤄낸 핵 무력 완성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은 “장장 80성상(80년)에 단 한 번의 노선상 착오나 오류도 없었다”고 했다. 수백만 명을 아사로 몰아간 ‘고난의 행군’과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노딜’ 이후 당혹감과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던 김정은의 표정을 떠올리면 헛웃음이 나는 주장이다.

북한의 처지가 반전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이 결정적이었다. 2017년 취임한 트럼프는 북한을 최우선 외교 과제로 내세웠다. 북핵 문제를 최고의 난제로 꼽았던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코를 납작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과시욕을 채울 만한 진지한 고민은 부족했다. 정권 초 북한 선제공격론을 주장하다 내부 반대에 부딪히자 ‘최대 압박’으로 선회하며 좌충우돌했다.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을 수용한 뒤에도 선(先)비핵화-후(後)보상의 ‘리비아식 해법’과 단계적 보상의 ‘이란식 해법’, ‘빅딜’과 ‘스몰딜’을 오가다 러시아 스캔들로 여론이 악화되자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사이 북한의 몸값은 치솟았다.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제재 동참으로 실존적 위기를 맞았던 북한은 김 위원장이 시 주석과 5차례, 푸틴 대통령과 3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이 제2의 건국을 선언하며 핵보유국으로 국제사회에 복귀하는 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의 상황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있다. ‘취임 24시간 이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던 트럼프의 약속이 허언이 된 사이 북한은 러시아에 추가 병력을 파병하고 핵 용인 메시지를 받아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6년 만의 대좌를 앞두고 미국과 날카롭게 충돌하고 있는 중국은 핵을 가진 북한과 공공연하게 협력 심화를 얘기하고 있다.

韓 안보 환경 악화부터 막아야

김 위원장은 반(反)서방 연대의 ‘굳건한 보루’를 자처했다. 미국과 북-중-러의 대결 구도로 펼쳐질 새로운 한반도 냉전을 반기는 노골적인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북한은 트럼프의 과시욕과 미중 경쟁이 만들어내는 틈새를 더욱 교묘하게 활용하려 할 것이다. 정부는 중단, 축소, 폐기의 ‘3단계 비핵화’ 구상을 내놨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의 안보 환경이 급격히 악화하는 것부터 ‘중단’시키는 게 급선무인 것 같다.

#김정은#노동당 창건 80주년#제2의 건국시대#핵보유국#북-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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