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8월 2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과의 워싱턴DC 백악관 오찬 회담 후 오벌오피스(미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어간 만남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08.31.(백악관 제공)“미국의 수출 허가가 중국 시장에서 한국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backfilling)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2023년 5월 마이크 갤러거 미국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미 상무부에 이 같은 내용을 촉구하며 한국을 콕 집어 거론했다. 당시는 중국 정부가 미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품의 사용을 제한하는 보복 조치를 취한 직후였다. 앞서 미 상무부가 첨단 반도체 기술 및 반도체 제조 장비의 대중 수출을 제한한 데 따른 대응이었다. 2022년 기준 마이크론의 중국 D램 시장 점유율은 14.5%로 삼성전자(43.2%), SK하이닉스(34.6%)에 이어 3위. 마이크론 제재로 생기는 부족분을 한국 기업들이 가져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동맹국의 ‘어부지리’를 용납할 수 없다는 미 행정부와 의회의 전방위 압박에 국내 기업들은 눈치만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고급 인재 확보를 놓고 미국과 동맹들 간 어부지리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2년 전과 다른 게 있다면 미국의 ‘헛발질’을 동맹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H-1B(전문직) 비자 수수료 폭탄 얘기다. 최근 미국은 외국 인력의 불필요한 입국을 제한해 미국인의 고용을 늘리겠다며 H-1B의 발급 수수료를 기존의 100배(약 1억4000만 원)로 올렸다.
그러자 ‘글로벌 인재 태스크포스(TF)’를 꾸린 영국 총리실이 디지털, 과학 분야의 우수 외국 인력의 비자 수수료를 폐지키로 했다. 세계 상위 5대 명문대 출신 등에게 비자 신청비(약 145만 원)와 건강부담금(약 195만 원)을 면제하겠다는 것. 캐나다도 수수료 폭탄으로 미국 취업이 좌절된 외국 인력을 적극 유치하겠다며 총리가 직접 나섰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이전에 H-1B 비자를 받았을 사람들을 유치할 기회”라고 밝혔다.
사실 이런 현상은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처음이 아니다.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 폐기를 요구하며 하버드대 등 주요 대학들에 대해 보조금을 끊자, 이에 반발한 미국 연구진을 대상으로 유럽, 캐나다 대학들이 영입에 나선 것. 예컨대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는 15명의 미국 학자들에게 약 238억 원을 지원했고, 벨기에 브뤼셀 자유대도 미국 학자 유치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인문학 분야의 석학인 예일대의 티머시 스나이더와 제이슨 스탠리 교수 등이 캐나다 토론토대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스탠리 교수는 “트럼프의 압박에 컬럼비아대 등이 항복하는 걸 보고 캐나다로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역사적으로 영국과 캐나다는 제1, 2차 세계대전 등에서 미국과 함께 피를 흘려 싸운 ‘특별한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영국 비밀정보국(MI6) 등 각자의 정보기관이 수집한 첩보를 공유하는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정보 공동체를 운영할 정도로 가깝다. 하지만 핵심 인재 유치 경쟁에서만큼은 동맹도 없다. 북핵 안보 불안 등 국가 매력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한국은 더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해외 인재를 끌어들여야 인공지능(AI) 혁명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십수년 전 출입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부) 관료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한미 동맹은 우리에게 절대적 가치다. 하지만 경제 관료는 외교관이 아니다. 국익을 위해 때론 세게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