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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모 씨(28)는 체중 감량을 위해 3년 전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다. 식사량이 3분의 1로 줄면서 체중은 급격히 빠졌지만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불면증에 시달렸고, 기억력도 나빠져 직장 생활에도 지장이 생겼다. 김 씨는 “약을 끊으면 요요 현상이 왔지만, 한번 쉽게 살을 빼고 나니 운동과 식단으로 감량하는 건강한 다이어트로 돌아가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110만 명 이상이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총처방량은 10억 정이 넘었다. 쉽게 살을 뺄 수 있다는 유혹에 마약류 식욕억제제 오남용이 근절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약류 식욕억제제 5년간 10억 정 처방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처방된 마약류 식욕억제제는 총 10억3365만 정이었다. 처방량은 2021년 약 2억4343만 정에서 지난해 약 2억1714만 정으로 소폭 줄었지만, 매년 2억 정 넘게 처방됐다. 올 상반기 처방량도 약 1억654만 정으로 연간 2억 정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환자는 2021년 약 125만 명에서 지난해 108만 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80만 명 이상이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마약류 식욕억제제 처방 환자 대다수는 여성이었다. 여성 환자는 96만9341명으로 전체 환자의 89.7%를 차지했다. 10대 이하 청소년 5899명도 55만여 정의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가은 고려대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여학생 중에는 비만 관리보다는 더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에 식욕억제제를 처방받는 경우도 있다. 처방 기준에 맞지 않으면 효과보다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부작용 신고 3년 새 42.6% 늘어 전문가들은 부작용 우려가 큰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암페프라몬 등의 오남용 가능성을 우려한다. 지난해 펜터민은 약 70만 명이, 펜디메트라진은 약 50만 명이 처방을 받았다. 이런 성분은 교감 신경을 자극해 혈압 상승, 두근거림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난해 마약류 식욕억제제 이상 사례 보고는 455건으로 2021년 319건보다 42.6% 늘었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식욕 억제 효과가 잠깐 발생했다가 사라지면 많은 환자들은 여러 성분을 섞은 더 센 처방을 받는다. 부작용은 심해지고, 지방보단 근육 손실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마약류 식욕억제제 처방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프랑스는 마약류 식욕억제제 처방을 금지하고 비향정신성 약물만 허용한다. 일본, 미국 등은 체질량지수(BMI) 27∼35 이상 환자에게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처방한다. 대한비만학회 비만치료지침에 따르면 비약물치료에서 실패하면 BMI 25 이상도 약물 치료를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선 환자가 원하면 약물 치료를 우선 처방하는 사례도 흔하다. 이렇다 보니 펜터민의 미국 내 복용자가 총인구의 0.31%(약 107만 명)인데, 한국은 1.35%(약 70만 명)로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남용 관리 감독도 부실하다. 2022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 사용 기준을 벗어난 처방을 한 의사 3636명이 적발됐지만, 행정 처분은 11명에 그쳤다. 김 의원은 “여성과 청소년층의 식욕억제제 처방 실태 조사와 기준 강화가 시급하다”며 “과잉 처방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우울증 치료 과정을 담은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쓴 백세희 작가(사진)가 사망했다. 향년 35세.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16일 경기 고양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백 작가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 폐, 간, 양쪽 신장을 기증해 5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났다고 17일 밝혔다. 뇌사에 이르게 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고인은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후 출판사에서 약 5년 동안 근무한 뒤 2018년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출간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기분부전장애(경미한 우울증이 지속되는 상태)를 겪으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나눈 대화를 담아낸 책으로 방탄소년단(BTS) RM이 추천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2019년 내놓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2’까지 국내외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됐으며 약 25개국에 번역 수출됐다.고인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먼저 다가가 도움을 전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가족은 전했다. 동생 다희 씨는 “아무도 미워하지 못하는 착한 마음을 알기에, 이제는 하늘에서 편히 잘 쉬길 바란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질병관리청은 인플루엔자(독감) 환자 증가에 따라 17일 오전 0시부터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를 발령했다고 밝혔다. 지난해(12월 20일)보다 약 두 달 빠른 수준이다. 질병청의 의원급 의료기관 인플루엔자 의사환자(ILI) 표본 감시 결과에 따르면 올해 40주 차(9월 28일~10월 4일) 인플루엔자 감시 지표 의사환자 분율은 외래 환자 1000명당 12.1명이다. 이는 2025~2026절기 인플루엔자 유행 기준 9.1명을 초과한 수치다. 최근 4주간 의사환자 분율은 38주 8.0명, 39주 9.0명, 40주 12.1명, 41주 14.5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41주 차 연령별 환자는 7~12세 24.3명, 1~6세 19.0명 등 소아 환자에서 발생률이 높았다. 질병청은 “최근 유행 중인 인플루엔자바이러스는 주로 A형(H3N2)으로 이번 절기 백신 생산에 사용된 바이러스와 유사하고, 치료제 내성에 영향을 주는 변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가 발령되면 소아, 임신부, 65세 이상 노인, 만성질환자 등 고위험군은 인플루엔자 의심 증상으로 항바이러스제(2종)를 처방받는 경우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된다.지난달 22일부터 국가예방접종이 시행돼 75세 이상은 이달 15일, 70~74세는 20일, 65~69세는 22일부터 예방접종을 맞을 수 있다. 임승관 질병청장은 “예년에 비해 인플루엔자 유행이 이르게 시작돼 주의가 필요하다”며 “ 고위험군은 본격적인 유행에 앞서 예방접종을 받고, 고열 등 증상이 있는 경우 신속하게 진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국민 10명 중 4명 이상은 말기암 진단을 받았을 때 연명의료 중단을 원한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연명의료를 지속하기 원한다는 응답은 8%에 불과했다. 16일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에 따르면 성누가병원 김수정·신명섭 연구팀과 서울대 허대석 명예교수가 지난해 6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41.3%는 ‘본인이 말기 암 환자라면 어떤 결정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연명의료 중단’을 택했다. ‘안락사’가 35.5%, ‘의사조력 자살’ 15.4%였다. 연명의료를 지속하겠다는 응답은 7.8%에 그쳤다. 안락사와 의사조력 자살은 모두 의사가 환자의 요청에 따라 죽음을 유도하는 약물을 처방해 생을 마감하는 행위다. 안락사는 의사가 직접 약물을 투여하고, 의사조력 자살은 환자 스스로 약물을 복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연구진은 “국민 다수는 상당수는 삶을 인위적으로 단축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인한 고통 연장을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존엄사(death with dignity)’라는 주관적 용어가 연명의료 결정, 안락사, 의사 조력 자살 다양한 의료행위를 구분하지 못해 혼란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이번 설문에서 연명의료 결정을 정확하게 인식한 응답자는 85.9%로 높았지만, 안락사(37.4%)와 의사 조력 자살(53.8%)의 인식률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생애 말기 연명의료 결정을 택한 응답자의 57.2%, 의사 조력 자살 응답자의 34.3%, 안락사 시나리오 응답자의 27.3%가 이를 ‘존엄사’로 인식했다.이명아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이사장은 “존엄사라는 표현은 따뜻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안락사와 연명의료 결정을 뒤섞는 위험한 언어적 착시를 일으킨다”며 “앞으로는 ‘죽음의 방식’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단계를 어떻게 존엄하게 살 것인가’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문은 대한의학회지(JKMS) 최신호에 실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40년간 무대를 지켜온 지켜 온 60대 춤꾼 겸 연극인이 뇌사 장기기증으로 5명의 생명을 살리고 하늘로 떠났다.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올 8월 7일 부산 동아대병원에서 박현덕 씨(60)가 심장, 폐, 간, 양쪽 신장을 기증했다고 15일 밝혔다. 박 씨는 수영 강습을 받던 중 뇌출혈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평소 ‘재산과 몸을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고 떠나고 싶다’던 박 씨의 뜻을 기려 기증에 동의했다.경남 남해군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박 씨는 대학 풍물패로 활동하다 졸업 후 객원 배우와 예술 강사로 활동했다. 최근에는 환경 살리기 활동과 탈춤 등 민속 예술 계승에 힘썼다. 2002년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했고, 10여 년간 40회 이상 헌혈을 할 만큼 이웃에 베푸는 삶을 살았다고 가족은 전했다. 아내 김혜라 씨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고 싶다던 바람대로 떠나게 됐네. 무대에서 환하게 빛나던 모습을 기억하겠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마약 투약 사범이 연간 1만 명에 이르지만 처벌 과정에서 마약 사범을 치료로 이어주는 사례는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선 중독 치료와 재활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이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마약류 관리법 위반으로 1심 집행유예 처분을 받은 1296명 중 치료 명령을 받은 마약 사범은 20명(1.5%)이었다. 대다수는 보호관찰이나 교육 수강 명령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 적발된 마약 사범 총 2만3022명 중 9528명(41.4%)이 투약 사범이다. 검찰은 초범이나 단순 투약자에겐 주로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다. 그러나 올 1∼7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마약 사범 2068명 중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는 3명에 불과했다. 교육 이수 조건부 305건, 보호관찰소 선도 조건부 146건 등 대다수는 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형식적인 재활 과정 이수에 그쳤다.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는 2023년 14건, 지난해 11건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수사기관이 처벌에만 집중할 뿐 치료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독자가 약을 끊고 재활하기 위한 치료 기반도 부족하다. 전국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은 31곳이지만 지난해 이용자는 875명에 불과했다. 이 중 14곳은 진료 기록이 한 건도 없고, 연간 5명 이하를 진료한 기관도 4곳이다. 지난해 마약사범 재범률은 34.5%로 전년도 32.8%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마약 근절이 어렵다고 강조한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20년 넘게 재활 지도를 하고 있는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전문위원은 “마약 중독은 교육이나 상담만으론 고칠 수 없는 질병의 영역이다. 투약 사범에겐 3∼6개월의 의무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체내 독성 제거부터 정신건강 문제 확인, 약물 처방 등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요국은 중독 치료를 적극 지원한다. 영국은 법원이 중독 치료가 필요한지 판단하고, 치료 과정까지 감독한다. 싱가포르는 마약 중독자를 재활센터에 강제로 입소시켜 치료를 받게 한다. 한 의원은 “마약 중독자를 회복으로 이끌 ‘치료 사다리’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며 “예방부터 치료, 사회 복귀까지 전 주기를 통합 지원하는 ‘중독치료회복지원법’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마약 투약 사범이 연간 1만 명에 이르지만, 처벌 과정에서 마약 사범을 치료로 이어주는 사례는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선 중독 치료와 재활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14일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이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마약류 관리법 위반으로 1심 집행유예 처분을 받은 1296명 중 치료 명령을 받은 마약 사범은 20명(1.5%)이었다. 대다수는 보호관찰이나 교육 수강 명령 처분을 받았다.지난해 적발된 마약 사범 총 2만3022명 중 9528명(41.4%)이 투약 사범이다. 검찰은 초범이나 단순 투약자에겐 주로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다. 그러나 올 1~7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마약 사범 2068명 중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는 3명에 불과했다. 교육 이수 조건부 305건, 보호관찰소 선도 조건부 146건 등 대다수는 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형식적인 재활 과정 이수에 그쳤다.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는 2023년 14건, 지난해 11건으로 감소 추세다. 수사기관이 처벌에만 집중할 뿐, 치료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중독자가 약을 끊고 재활하기 위한 치료 기반도 부족하다. 전국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은 31곳이지만, 지난해 이용자는 875명에 불과했다. 이 중 14곳은 진료 기록이 한 건도 없고, 연간 5명 이하를 진료한 기관도 4곳이다. 지난해 마약사범 재범률은 34.5%로 전년도 32.8%보다 오히려 증가했다.전문가들은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마약 근절이 어렵다고 강조한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20년 넘게 재활 지도를 하고 있는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전문위원은 “마약 중독은 교육이나 상담만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의 영역이다. 투약 사범에겐 3~6개월 의무 치료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체내 독성 제거부터 정신건강 문제 확인, 약물 처방 등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주요국은 중독 치료를 적극 지원한다. 영국은 법원이 중독 치료가 필요한지 판단하고, 치료 과정까지 감독한다. 싱가포르는 마약 중독자를 재활센터에 강제 입소시켜 치료받게 한다. 한 의원은 “마약 중독자를 회복으로 이끌 ‘치료 사다리’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며 “예방부터 치료, 사회 복귀까지 전 주기를 통합 지원하는 ‘중독치료회복지원법’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 정부에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전문 심리 상담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시행된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정 결제 사례가 약 300건에 이르고, 무자격자가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상담 기록을 허위로 작성하는 사례도 있었다. 12일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1∼8월 마음투자 사업의 부정 의심 결제는 296건 집계됐다. 상담사나 이용자가 해외 체류 중일 때 결제된 사례가 273건, 심야 시간대(오후 10시∼오전 7시) 결제가 23건이었다. 실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정부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다. 현행 시스템상 정부가 감지할 수 있는 부정 의심 결제는 이 두 가지 유형뿐이라 부실 운영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마음투자 사업은 지난해 7월부터 총사업비 7892억 원을 들여 추진 중인 국민 정신건강 지원 사업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의료기관에서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는 서류를 발급받으면 총 8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비용은 회차당 7만∼8만 원이다. 기준 중위소득 70% 이하는 무료, 초과 시엔 소득 구간에 따라 최대 30%의 본인 부담금을 낸다. 윤석열 정부 임기 내 100만 명 지원이 목표였지만, 올 6월까지 1년간 이용자는 8만8318명에 그쳤다. 정부가 국민 정신건강을 책임진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두고 김건희 여사의 관심 사업이라 대통령실 입김이 작용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기획재정부가 의뢰해 올 1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마음투자 사업은 사업 대상자를 지나치게 넓게 예측해 예산이 최대 4661억 원 과다 추계된 것으로 분석됐다. 심리상담 인력이 부족한 지방에선 성과 부풀리기 사례도 적발됐다. 전북 김제시의 한 상담센터에선 대학교수를 겸임 중인 센터장이 무자격자 후배에게 “챗GPT로 상담 기록을 작성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보자는 의원실에 “잠깐 커피 마시고 나눈 대화 내용을 50분짜리 8회 상담 기록으로 만들라는 요구를 장기간 받았다”고 밝혔다. 김제시는 상담자 119명을 조사해 실제 센터를 방문하지 않고 이뤄진 상담 42건, 상담 시간 및 일대일 상담 원칙을 어긴 2건 등을 적발했지만, 해당 센터가 받은 상담 비용 약 7614만 원 중 108만 원가량만 환수하는 데 그쳤다. 의원실이 서비스 결제 기록 996건과 센터장의 대학 강의 일정 등을 비교한 결과 164건은 강의 시간에 결제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이 진행되는 사이에 중복으로 결제된 건수도 67건이었다. 복지부는 지난해 김제시를 사업 시행 우수 지자체 대상으로 선정해 포상금 2000만 원을 지급했다. 김 의원은 “복지부 관리 감독 지침은 각 지자체가 관내 기관 중 일정 비율 이상을 대상으로 연 1회 현장 조사하는 것이 전부다. 각 기관에 대한 특별 감사를 실시하고, 이상 결제 탐지 시스템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지난해 사망자의 약 6%(9958명)가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안락사 대상도 점차 확대돼 현재 치매와 정신질환까지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죽음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측면에서 네덜란드는 가장 앞선 국가다.그런 네덜란드에서도 안락사를 둘러싼 논란은 크다. 지난해 정신질환을 이유로 안락사를 택한 219명 중 29명(13%)은 20대였다. 16∼19세 청소년도 있었다. 당사자 고통을 감히 짐작할 순 없지만, 청년들이 삶을 쉽게 포기하도록 국가와 사회가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네덜란드에선 2020년 ‘75세 이상 안락사 선택 법안’, 2023년 ‘1∼11세 안락사 허용 법안’ 등이 발의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번 문턱이 낮아지자 안락사 대상을 넓히려는 사회적 압력이 더 커진 것이다.국내에서도 안락사 도입을 원하는 목소리가 있다. 최근 수년간 안락사 관련 설문에선 찬성 응답이 꾸준히 70∼80%대를 기록했다. 외국인의 조력 사망이 허용된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한 한국인은 10여 명, 대기자는 약 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를 살리는 게 본분인 의사들도 과거 안락사 합법화에 부정적이었지만, 최근엔 환자 고통 경감과 편안한 임종을 위해 안락사를 받아들이자는 목소리가 늘었다.하지만 안락사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이들은 “안락사 찬성 80%를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안락사 도입에 대한 찬반을 묻지 않고, 실제 자신과 가족이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을 때의 안락사 의향을 물으면 찬성 비율이 더 낮다는 것이다. 한 웰다잉(well-dying) 전문가는 “좋은 죽음,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사회적 기반이 부재하니 안락사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지는 것 같다”고 했다.더 큰 문제는 경제적 문제나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기 위한 비자발적 안락사 가능성이다. 실제 여러 설문에서 안락사 찬성 응답자 중 상당수는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안락사 도입을 원한다고 답했다.안락사 합법화는 자칫 취약계층에게 삶을 포기하도록 등을 떠미는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의료비가 부담스러운 빈곤한 노인, 오랜 시간 가족이 간병 부담을 떠안아 온 희소 질환자 등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안락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노인 빈곤율 38%, 인구 10만 명당 노인 자살률 40.6명의 한국에선 안락사가 버거운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사회적 타살’ 장치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저소득층, 장애인, 정신질환자 등에게도 해당하는 얘기다.안락사도 언젠가는 국내에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안락사 합법화보다 선행돼야 하는 건 생애 마지막까지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의료·돌봄 서비스 확충이다. 말기 환자라면 누구나 큰 부담 없이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노후 빈곤과 재난적 의료비를 걱정하지 않을 사회 경제적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 죽음의 자기 결정권 확대는 그다음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박성민 정책사회부 기자 min@donga.com}
지난 정부에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전문 심리 상담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시행된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정 결제 사례가 약 300건에 이르고, 무자격자가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상담 기록을 허위로 작성하는 사례도 있었다.12일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1~8월 마음투자 사업의 부정 의심 결제는 296건 집계됐다. 상담사나 이용자가 해외 체류 중일 때 결제된 사례가 273건, 심야 시간대(오후 10시~오전 7시) 결제가 23건이었다. 실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정부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다. 현행 시스템상 정부가 감지할 수 있는 부정 의심 결제는 이 두 가지 유형뿐이라 부실 운영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마음투자 사업은 지난해 7월부터 총사업비 7892억 원을 들여 추진 중인 국민 정신건강 지원 사업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의료기관에서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는 서류를 발급받으면 총 8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비용은 회차당 7만~8만 원이다. 기준 중위소득 70% 이하는 무료, 초과 시엔 소득 구간에 따라 최대 30%의 본인 부담금을 낸다. 윤석열 정부 임기 내 100만 명 지원이 목표였지만, 올 6월까지 1년간 이용자는 8만8318명에 그쳤다.정부가 국민 정신건강을 책임진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두고 김건희 여사의 관심 사업이라 대통령실 입김이 작용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기획재정부가 의뢰해 올 1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마음투자 사업은 사업 대상자를 지나치게 넓게 예측해 예산이 최대 4661억 원 과다 추계된 것으로 분석됐다.심리상담 인력이 부족한 지방에선 성과 부풀리기 사례도 적발됐다. 전북 김제시의 한 상담센터에선 대학교수를 겸임 중인 센터장이 무자격자 후배에게 “챗GPT로 상담 기록을 작성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보자는 의원실에 “잠깐 커피 마시고 나눈 대화 내용을 50분짜리 8회 상담 기록으로 만들라는 요구를 장기간 받았다”고 밝혔다.김제시는 상담자 119명을 조사해 실제 센터를 방문하지 않고 이뤄진 상담 42건, 상담 시간 및 일대일 상담 원칙을 어긴 2건 등을 적발했지만, 해당 센터가 받은 상담 비용 약 7614만 원 중 108만 원가량만 환수하는 데 그쳤다. 의원실이 서비스 결제 기록 996건과 센터장의 대학 강의 일정 등을 비교한 결과 164건은 강의 시간에 결제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이 진행되는 사이에 중복으로 결제된 건수도 67건이었다. 복지부는 지난해 김제시를 사업 시행 우수 지자체 대상으로 선정해 포상금 2000만 원을 지급했다.김 의원은 “복지부 관리 감독 지침은 각 지자체가 관내 기관 중 일정 비율 이상을 대상으로 연 1회 현장 조사하는 것이 전부다. 각 기관에 대한 특별 감사를 실시하고, 이상 결제 탐지 시스템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임종과 돌봄의 질은 100점 기준 60점을 넘기 힘들다.”(김용익 돌봄과 미래 이사장)“생애 말기 돌봄·의료 정책들이 분산돼 환자 체감도가 낮다.”(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구체적인 사전돌봄 계획(ACP) 작성이 활성화돼야 한다.”(김대균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직접 임종기 환자를 돌보거나 웰다잉(well-dying) 제도 정착을 위해 노력해 온 전문가들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부담을 개인과 가족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며 “국가가 책임을 지고 생애 말기 돌봄 전략 수립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임종기 불필요한 의료행위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을 줄여야 ‘품위 있는 죽음’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호스피스와 재택의료 기반을 강화해 ‘살던 곳에서 나답게’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호스피스 병상·인력 확충 시급국민은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정부 정책 강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연구처·산학협력단이 올 5월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90.4%는 웰다잉을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호스피스 병상 및 의료인력 확대’를 꼽았다. ‘말기 환자 간병 지원 확대’ 89.9%, ‘웰다잉 상담 지원’ 86.9% 순이었다. 호스피스는 임종기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줄이는 완화의료가 핵심이다. 그러나 지난해 국내 호스피스 이용 환자는 2만4318명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한국 의료가 환자를 살리는 것에만 집중할 뿐, 임종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소홀하다고 지적한다. 중증 환자 사망이 많은 상급종합병원 중에도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곳은 전체 47곳 중 19곳(40.4%)에 불과하다. 지난해 8월부터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의 임종실 설치가 의무화됐다. 하지만 올 5월 기준 상급종합병원 설치율은 57.4%(27곳)에 그쳤다. 윤 교수는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 등에서 적절한 통증 관리와 심리적 지원을 못 받고 생을 마감하는 환자가 많다”며 “미국 뉴욕 메모리얼 병원 등 해외 대형 병원처럼 호스피스 병동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호스피스는 암, 만성 호흡부전 등 5개 질환 환자만 이용할 수 있다. 이번 설문에서 호스피스 대상에 포함되길 원하는 질환으로 응답자의 83.6%는 치매를 꼽았다. 뇌졸중 83.4%, 난치성 유전 및 신경질환 79.3% 순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선 호스피스 대상 확대보다도 기관과 인력 확충, 호스피스 이용 시기 등에 대한 진료과별 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도 전체 호스피스 환자 중 암 외 4개 질환 환자 비율은 1% 미만이다. 기대 여명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암과 달리 치매 등은 질병 진행 과정이 다양해 호스피스 전환 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완화의료가 쉽지 않다. 김 교수는 “장기적으론 호스피스 질환 확대가 필요하다”면서도 “신부전 환자라면 언제부터 투석을 중단하고 완화의료를 받을지 기준이 있어야 한다. 호스피스 의료진도 치매 환자 등에게 어떤 완화의료를 제공해야 하는지 준비가 안 됐다”고 했다.● 임종기 의료 중심 ‘병원에서 집으로’ 전문가들은 생애 말기 돌봄은 집과 지역사회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가정형 호스피스 신규 이용자는 2245명에 불과했다. 가정형 호스피스 전문기관도 올해 기준 40곳뿐이다. 현재 운영 중인 방문 진료 시범사업, 재택의료 센터 등을 활용해 ‘집에서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가 높다. 국내 재택의료 기반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2022년 12월 재택의료 센터 시범사업을 시작해 전국에 195개 센터가 운영 중이지만, 여전히 시군구 229곳 중 116곳(50.7%)은 센터가 없다.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울산엔 센터가 한 곳도 없고, 경북은 22개 시군 중 4곳만 센터를 운영 중이다. 박건우 대한재택의료학회 이사장(고려대안암병원 신경과 교수)은 “당사자가 재가 임종을 원해도 보호자는 사망 신고부터 장례까지 부담이 커 다시 병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재택의료에 대한 지원이 강화돼야 불필요한 병원 의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호스피스와 방문 진료, 지역사회 통합돌봄 등 개별 사업의 칸막이를 없애야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전돌봄 계획 작성 정착돼야” 2018년 2월 전면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도 허점이 적지 않다.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미리 밝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올해 300만 명을 넘었지만, 정작 임종기엔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족들이 연명의료 중단을 반대하거나, 병원에서 임종기 판단을 미루기도 한다. 이는 의료비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죽기 직전까지 비싼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거나 인공 영양 공급을 받는다. 건강보험연구원의 2023년 사망자 분석 결과 사망 30일 이전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내린 경우 마지막 한 달 의료비(약 460만 원)가 일반 사망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김 이사장은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하려면 병원에 이를 결정할 윤리위원회가 있어야 하는데, 요양병원 대다수는 위원회가 없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요양병원 윤리위원회 설치율은 지난해 기준 10.5%에 그쳤다. 연명의료만 중단했을 뿐 임종 전까지 불필요한 치료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김 교수는 “임종 직전 환자에게 불필요한 심혈관 질환 예방약을 처방하고, 일반 환자처럼 2L짜리 수액을 맞게 해 폐에 물이 차고 팔다리가 부은 채 눈을 감는 환자가 많다. 임종에 가까울수록 의료의 역할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영 서울아산병원 완화의료센터 교수(종양내과)는 “완화의료가 필요한 환자와 보호자들도 ‘왜 포기하느냐’며 임종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호스피스가 활성화되려면 환자와 의료진의 소통도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구체적인 사전 돌봄 계획(ACP)이 필수다. 호주, 미국 등에선 ‘사전 의료 지시서’를 작성해 호흡 보조 장치 사용, 항생제 처방 등 특정 치료 이행 여부까지 미리 정한다. 환자가 원하지 않는 불필요한 의료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약 처방이나 검사 대신 ‘일주일에 한 번 페디큐어를 받겠다’처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소망을 적기도 한다.● “죽음을 국가 정책 과제로 인식해야” 전문가들은 죽음을 개인적 문제로 여기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출산, 청년 정책처럼 ‘품위 있는 죽음’도 정부가 나서야 체계적인 정책 수립, 집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생애 말기 돌봄과 의료에 들어가는 간병비, 호스피스 등 비용을 투자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 이사장은 “초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사망자는 갈수록 증가하고, 이들을 돌볼 자녀 수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돌봄의 강도는 더 세지고, 노동력은 부족해지는 인구 축소기엔 정부가 생애 말기 돌봄을 적극 지원해야 젊은층의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국가가 국민의 죽음의 질까지 살피겠다는 ‘웰다잉 국가책임제’가 필요하다”고 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초등학생 김모 군(8)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고 지난해부터 약을 먹고 있다. 입학 초기부터 수업 종이 울려도 교실로 돌아오지 않거나, 교단에 필통을 던지는 등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김 군 어머니는 “어릴 때 스마트폰을 보다 빼앗으면 돌려줄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아 그냥 두는 날이 많았다”며 “약을 먹고 감정 조절이 나아지긴 했지만, 언제 어떻게 나빠질지 몰라 늘 불안하다”고 했다. 김 군처럼 정신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10세 미만 아동이 지난해 10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ADHD에 대한 인식 확산으로 조기 진단이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지만, 일각에선 ‘공부 잘하는 약’으로 불리는 ADHD 약을 미취학 아동에게까지 과도하게 처방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의료계에선 뇌 발달 시기에 디지털 기기에 너무 일찍 노출되면서 아동 정신건강이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ADHD 진단 증가, 오남용 우려도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 질환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1∼9세 아동은 9만3655명으로 집계됐다. 2020년 6만2399명에서 4년 만에 50.1% 늘었다. ADHD 등 운동 과다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적응장애 등 소아 정신건강 질환 진료 인원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10세 이하 ADHD 급여 의약품 처방 인원은 2021년 2만7865명에서 지난해 5만3053명으로 3년 새 1.9배로 늘었다. 의료계에선 ADHD 증상에 관심을 갖는 부모가 늘면서 과거 ‘산만한 아이’ 정도로 여겼던 ADHD 환자가 조기 발견되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다. 진단 인원이 늘어나는 것보다 약물에만 의존하는 문화가 더 큰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이들의 에너지와 욕구가 잘 조절되도록 방과 후 운동, 놀이 치료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한데, 무조건 약 처방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아이 집중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ADHD 약을 학습 보조 도구로 쓰는 경우도 있다. 수험생 학부모 사이에서 유행하는 ADHD 약 복용 연령대가 ‘4세 고시’ ‘초등 의대반’ 등 사교육 열풍을 타고 미취학 아동에게까지 내려갔다는 것이다. 수도권 한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강남에서 ADHD 약 처방을 받은 아이는 다른 지역에서 주의력 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4세 고시, 숏폼에 무너지는 아동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과도한 선행 학습과 디지털 기기 노출이 아동 정신건강을 해치고 있다고 우려한다. 심평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거주하는 9세 이하 아동이 우울증·불안장애 진단을 받아 건강보험금이 청구된 건수는 3309건으로 4년 만에 3.2배로 급증했다. 천근아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교수)은 “유아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안정과 사회성”이라며 “15분 집중도 어려운 아이를 (선행 학습을 위해) 억지로 앉혀 놓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와 뇌 기초공사를 막는다. 아동 학대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기기 중독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갈수록 신체 활동이나 또래와의 교류보단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이 교수는 “집에 혼자 남아 게임, 숏폼(짧은 동영상) 등에 중독된 아이들이 충동 조절이나 새로운 환경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병원을 많이 찾는다”며 “청소년 자살, 자해 등 더 심각한 문제로 확산하지 않도록 가정과 학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정부가 아이 돌봄 공백 해소와 노인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한 ‘노인 아이돌보미’ 사업이 수요 부족으로 인해 1년 만에 폐지 단계를 밟고 있다. 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활동 중인 노인 아이돌보미는 252명으로 집계됐다. 기존 목표인 5000명의 약 5%에 불과하다. 아이돌보미 활동을 희망한 2040명이 교육을 마쳤지만, 이 중 약 88%(1788명)는 고용을 원하는 가정을 찾지 못했다. 이들은 두 달 치 교육비 약 140만 원만 받았다. 노인 아이돌보미는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저출산 및 노인 일자리 정책의 하나로 추진한 사업이다. 맞벌이 가구 등 육아 부담이 큰 부모와 일자리를 원하는 고령자를 연결해 주는 사업으로, 60세 이상 희망자가 120시간 교육 후 아이돌보미로 활동할 수 있다. 당시 정부는 “경력과 역량이 높은 신노년 세대를 활용하는 저출생 위기 극복 일자리”라고 강조했다. 당초 노인 아이돌보미가 돌봄 인력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성평등가족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아이돌봄 서비스 대기 기간이 평균 33일에 이른다. 육아 경험이 풍부한 고령자를 활용하면 이 같은 대기 기간을 줄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 노인 아이돌보미를 원하는 가구는 많지 않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2025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참여자가 교육 이수 후 중도 포기할 가능성이 높고, 아이돌봄 서비스 이용 가정에서 고령의 아이돌보미에 대한 선호도가 낮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장에서도 노인 일자리 수행 기관이 사업을 맡는 것과 관련해 서비스 질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양성 교육 중 또는 이수 후 중도 포기한 참여자도 104명에 이른다. 정책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적었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올해 이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195억7600만 원이다. 그러나 참여 저조로 인해 실제 집행된 예산은 37억6000만 원(19.2%)에 그쳤다. 서 의원은 “준비되지 않은 정책 추진으로 인해 예산과 인력만 낭비했다”며 “노인 일자리 다양화와 전담 인력 처우 개선 등 시급한 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정부가 아이 돌봄 공백 해소와 노인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한 ‘노인 아이돌보미’ 사업이 수요 부족으로 인해 1년 만에 폐지 단계를 밟고 있다.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활동 중인 노인 아이돌보미는 252명으로 집계됐다. 기존 목표인 5000명의 약 5%에 불과하다. 아이돌보미 활동을 희망한 2040명이 교육을 마쳤지만, 이 중 약 88%(1788명)는 고용을 원하는 가정을 찾지 못했다. 이들은 두 달 치 교육비 약 140만 원만 받았다. 노인 아이돌보미는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저출산 및 노인 일자리 정책의 하나로 추진한 사업이다. 맞벌이 가구 등 육아 부담이 큰 부모와 일자리를 원하는 고령자를 연결해 주는 사업으로, 60세 이상 희망자가 120시간 교육 후 아이돌보미로 활동할 수 있다. 당시 정부는 “경력과 역량이 높은 신 노년 세대를 활용하는 저출생 위기 극복 일자리”라고 강조했다. 당초 노인 아이돌보미가 돌봄 인력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성평등가족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아이돌봄 서비스 대기 기간이 평균 33일에 이른다. 육아 경험이 풍부한 고령자를 활용하면 이같은 대기 기간을 줄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 노인 아이돌보미를 원하는 가구는 많지 않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2025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참여자가 교육 이수 후 중도 포기할 가능성이 높고, 아이돌봄서비스 이용 가정에서 고령의 아이돌보미에 대한 선호도가 낮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장에서도 노인 일자리 수행 기관이 사업을 맡는 것과 관련해 서비스 질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양성 교육 중 또는 이수 후 중도 포기한 참여자도 104명에 이른다. 정책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적었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올해 이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195억7600만 원이다. 그러나 참여 저조로 인해 실제 집행된 예산은 37억6000만 원(19.2%)에 그쳤다. 서 의원은 “준비되지 않은 정책 추진으로 인해 예산과 인력만 낭비했다”며 “노인 일자리 다양화와 전담 인력 처우 개선 등 시급한 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초등학생 김모 군(8)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고 지난해부터 약을 먹고 있다. 입학 초기부터 수업 종이 울려도 교실로 돌아오지 않거나, 교단에 필통을 던지는 등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김 군 어머니는 “어릴 때 스마트폰을 보다 뺏으면 돌려줄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아 그냥 두는 날이 많았다”며 “약을 먹고 감정조절이 나아지긴 했지만, 언제 어떻게 나빠질지 몰라 늘 불안하다”고 했다.김 군처럼 정신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10세 미만 아동이 지난해 10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ADHD에 대한 인식 확산으로 조기 진단이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지만, 일각에선 ‘공부 잘하는 약’으로 불리는 ADHD 약을 미취학 아동에게까지 과도하게 처방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의료계에선 뇌 발달 시기에 디지털 기기에 너무 일찍 노출되면서 아동 정신건강이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ADHD 진단 증가. 오남용 우려도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 질환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1~9세 아동은 9만3655명으로 집계됐다. 2020년 6만2399명에서 4년 만에 50.1% 늘었다. ADHD 등 운동 과다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적응장애 등 소아 정신건강 질환 진료 인원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10세 이하 ADHD 급여 의약품 처방 인원은 2021년 2만7865명에서 지난해 5만3053명으로 3년 새 1.9배로 늘었다. 의료계에선 ADHD 증상에 관심을 갖는 부모가 늘면서 과거 ‘산만한 아이’ 정도로 여겼던 ADHD 환자가 조기 발견되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다.진단 인원이 늘어나는 것보다 약물에만 의존하는 문화가 더 큰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이들의 에너지와 욕구가 잘 조절하도록 방과 후 운동, 놀이 치료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한데, 무조건 약 처방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아이 집중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ADHD 약을 학습 보조 도구로 쓰는 경우도 있다. 수험생 학부모 사이에서 유행하는 ADHD 약 복용 연령대가 ‘4세 고시’ ‘초등 의대반’ 등 사교육 열풍을 타고 미취학 아동까지 내려갔다는 것이다. 수도권 한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강남에서 ADHD 처방 받은 아이는 다른 지역에서 주의력 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4세 고시, 숏폼에 무너지는 아동 정신건강전문가들은 과도한 선행 학습과 디지털 기기 노출이 아동 정신건강을 해치고 있다고 우려한다. 심평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 거주하는 9세 이하 아동이 우울증·불안장애 진단을 받아 건강보험금이 청구된 건수는 3309건으로 4년 만에 3.2배로 급증했다.천근아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교수)은 “유아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안정과 사회성”이라며 “15분 집중도 어려운 아이를 (선행 학습을 위해) 억지로 앉혀 놓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와 뇌 기초공사를 막는다. 아동 학대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디지털 기기 중독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갈수록 신체 활동이나 또래와의 교류보단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이 교수는 “집에 혼자 남아 게임, 숏폼(짧은 동영상) 등에 중독된 아이들이 충동 조절이나 새로운 환경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병원을 많이 찾는다”며 “청소년 자살, 자해 등 더 심각한 문제로 확산하지 않도록 가정과 학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이 의원은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은 통계 작성부터 치료 과정까지 성인과는 다른 분석과 접근이 있어야 한다”며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개선과 자살 위험 감소를 위해 이들에게 특화된 정신건강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암이나 심혈관 질환 등 중증 질환을 치료하는 급성기 병원 순위에서 한국은 세계 최상위권을 다툰다. 그러나 만성질환에 시달리거나, 거동이 불편한 고령 환자를 위한 재택 의료 인프라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2019년부터 1차 의료 방문 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됐지만, 올 6월 기준 등록 기관은 986곳으로 전체 의원 3만7234곳 중 2.6%에 그쳤다. 올 상반기(1~6월) 방문 의사는 435명, 환자는 1만7517명으로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의료계는 방문 진료가 필요한 노인 및 장애 인구가 1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1986년 방문진료 수가를 처음 도입한 일본은 재택 의료가 보편화돼 있다. 전체 병의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1만4000여 곳이 재택의료에 참여 중이다. 24시간 대기하는 재택의료 지원소도 일본 전역에 약 1만개소나 된다. 올 7월 방문 진료 기관인 홈온클리닉 히라노 구니요시 원장, 쓰루오카 고키 일본사회산업대 교수, 히라하라 사토시 일본재택의료학회장에게 일본의 재택의료 정착 배경을 들어봤다. ● ‘다사(多死)사회’ 진입 전 재택의료 인프라 갖춰일본은 고령화에 대비해 일찍부터 재택의료를 활성화했다. 쓰루오카 교수는 일주일에 2번은 방문 진료를 하는 의사다. 그는 “사망과 돌봄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시기가 75세부터다. 1950년 전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75세가 되는 2025년이 되면 출생보다 죽음이 많아지는 ‘다사사회’ 문제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봤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고 했다. 방문 진료가 활성화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병원만으로는 늘어나는 의료 수요를 다 충족시킬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됐다. 2000년대 중반 지역 포괄 케어 시스템이 구축됐다. 23년 전 방문 진료를 시작한 히라노 원장은 “병원의 침상 수를 줄이고, 늘어나는 사회적 입원을 막으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의료 중심을 병원에서 집으로 옮기는 대신 가족의 간병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도 도입됐다. 쓰루오카 교수는 “집에서 부모를 돌보는 가구가 늘었지만, 돌보는 사람도 쉬어야 한다. 소규모 다기능 주택과 같은 낮 시간 돌봄 기관을 보급해 가족의 부담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고령화로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노노케어’ 가구가 늘면서 이같은 지역사회 돌봄 기능 강화 필요성도 커졌다. ● 비용은 낮추고, 수가는 높여2000년대 초 재택의료 도입 초기엔 환자 부담이 월 15000엔(약 1만4000원)에 불과했다. 재택의료 조기 정착을 위해 환자 부담을 크게 낮춘 것이다. 다만 최근엔 사회보장 비용 상승 부담으로 이용 금액을 높이는 추세다. 올해 기준 임종기 환자가 월 2회 방문 진료를 받으면 요양등급과 소득 수준 등에 따라 7260~2만1780엔(약 6만8400~20만5000원)을 낸다. 히라노 원장은 “개인 부담이 너무 적으면 불필요한 호출도 늘어난다. 예전엔 벌레를 잡아달라거나, 난방 연료가 떨어졌다고 의사를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정도 본인 부담을 높이는 건 필요하다”고 했다. 재택의료 수가를 높인 것도 방문 진료가 일찍 정착된 요인 중 하나다. 히라하라 사토시 일본재택의료학회장은 “외래 환자 5명과 방문 진료 1명의 보상이 같다. 이를 통해 재택의료 참여를 늘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왕진만 해선 안 되고 24시간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 보상을 하는 만큼 야간 시간 등 취약 시간이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을 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택의료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히라하라 회장은 “방문 진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1, 2년 동안 별도 프로그램을 이수한다. 암 환자 돌봄, 노년 의학, 치매 돌봄, 소아 재택의료 등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도심-지역 인프라 격차는 일본도 고민 다만 일본 내에서도 재택 의료가 지나치게 사업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쓰루오카 교수는 “도쿄에선 한 재택의료 기관이 1500~2000명을 방문 진료하는 곳도 있다. 불필요한 진료도 늘어나는 추세라, 정부도 제도 개선을 위한 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심과 지방의 재택의료 인프라 격차도 문제다. 인구가 감소하는 의료 취약지에선 재택 의료 기관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히라하라 회장은 “재택의료는 이동 거리가 짧아야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인구 밀집도가 중요하다. 지방에선 같은 시간 볼 수 있는 환자가 적기 때문에 재택 의료 참여를 꺼리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히라노 원장은 “방문 진료를 다니면 환자와 보호자의 갈등도 자주 보게 된다. 특히 임종기 환자를 돌봐야 하는 보호자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환자의 품위 있는 말년뿐 아니라, 간병인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케어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은 지난해 3명 있었던 심장혈관흉부외과 레지던트가 현재 한 명도 남지 않았다. 4년 차는 입대했고, 2년 차는 올 하반기 모집에서 수도권 병원으로 떠났다. 1년 차는 아예 전공을 안과로 바꿨다. 이 병원 김재범 흉부외과 교수는 “위 연차가 없으니 당장 내년에 신규 지원자가 들어올지 걱정”이라며 “현재 주축인 50대 교수들이 대거 은퇴하면 10년 후 대구 경북에선 심장 수술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상급종합병원 45%만 흉부외과 전공의 남아25일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심장 수술을 시행하는 전국 수련병원 89곳 중 68곳(76.4%)은 흉부외과 레지던트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 갈등 전(61곳)보다 7곳이 늘어, 수련병원 4곳 중 3곳은 사실상 수련·교육 명맥이 끊긴 셈이다.심장, 폐 등을 다루는 흉부외과는 생명과 직결되는 장기를 다루는 중요한 과다. 국내 주요 사망 원인인 심혈관 질환과 폐암 등을 치료하고 심장·폐 이식 수술도 담당한다. 하지만 근무 강도가 높고 의료소송 위험이 커 대표적인 기피과로 꼽힌다. 고령화로 인해 수요는 늘고 있지만, 전문의 수는 감소하고 있어 ‘수술 절벽’이 우려되고 있다. 신규 전문의 수급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달 초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대거 돌아왔지만, 흉부외과는 46명 복귀에 그쳐 충원율이 낮았다. 의정 갈등 전인 지난해 2월 107명이 수련을 받았지만, 현재 68명(63.6%)만 남았다. 연차별로는 4년 차 14명, 3년 차 12명, 2년 차 22명, 1년 차 20명이다. 대형병원조차 흉부외과 수련 명맥이 끊길 위기다.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있는 곳은 21곳(44.7%)에 불과하다. 국립대병원 17곳(분원 포함) 중 9곳(52.9%)에만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수련 중이다. 12곳은 레지던트가 단 1명뿐이다.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강북삼성병원 교수)은 “레지던트 1명인 병원은 야간이나 응급 수술 교육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향후 4년간 전문의 30∼40명씩 줄어”지방은 더 심각하다. 대구·경북은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의정 갈등 전 10명에서 3명으로 급감했다. 부산·울산·경남은 8명에서 3명으로, 광주·전남은 3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강원, 충북, 제주는 의정 갈등 전에도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지방에서 수련받아야 현지 정착 가능성이 높은데, 79%가 수도권 수련병원에서 근무 중이다.4년 차 레지던트 1명만 남은 전남대병원 흉부외과 정인석 교수는 “7년간 전공의가 없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에 현 상황이 특별하진 않다”면서도 “수련과 교육이 무너지면 연구나 진료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조원철 강릉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교수 5명 중 1명이 최근 그만뒀고, 1명은 정년이 지났다. 영동 지역 심혈관 질환 거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인력 수급이 안 된다”고 했다. 향후 전문의 수는 더욱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흉부외과는 2022년부터 은퇴 전문의가 신규 전문의보다 많아 전문의 수가 순감하고 있다. 연간 20∼30명 수준이던 은퇴 전문의 수는 2026년 54명, 2027년 56명 등 향후 4년 동안 222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수련 중인 레지던트들이 모두 전문의를 취득한다고 가정해도, 매년 30∼40명씩 전문의가 줄어든다. 현장에선 흉부외과 붕괴를 막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 교수는 “대학병원 상황이 열악하니, 전문의를 취득해도 절반은 개원해서 하지정맥류 진료를 본다. 지방은 수술을 포기하고 외래 환자만 보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정의석 교수는 “수가 인상뿐 아니라 상급종합병원 평가 기준을 바꿔 흉부외과 레지던트를 확보한 병원에 가점을 주는 등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심장 수술을 시행하는 전국 수련병원 4곳 중 3곳은 심장혈관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47개 상급종합 중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수련 중인 곳도 44.7%(21곳)에 불과했다. 의정 갈등 여파로 지방을 중심으로 흉부외과 레지던트 상당수가 복귀하지 않거나 수련을 포기한 것에 따른 여파다. 25일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에 따르면 이달 초 전공의(인턴·레지던트) 복귀 후 수련 중인 흉부외과 레지던트는 68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2월 107명에서 39명(36.4%)이 줄었다. 연차별로는 4년 차 14명, 3년 차 12명, 2년 차 22명, 1년 차 20명으로 집계됐다. 지방 수련병원은 수련 명맥이 끊길 위기다. 대구·경북은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의정 갈등 전 10명에서 현재 3명으로 급감했다. 부산·울산·경남도 8명에서 3명, 광주·전남도 3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강원과 충북, 제주는 의정 갈등 전후 모두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한 명도 없다. 심장 수술을 하는 전국 수련병원 89곳 중 전공의가 있는 곳은 21곳(23.6%)에 그쳤다. 의정 갈등 전 28곳에서 7곳이 줄었다. 국립대병원 17곳(분원 포함) 중 흉부외과 전공의가 수련 중인 곳은 9곳(52.9%)에 불과했다. 거점병원 역할을 해야 할 상급종합병원과 국립대병원마저 흉부외과 수련 기능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련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려면 각 연차가 촘촘히 있어야 한다. 연차별 역할도 다르다. 그러나 레지던트가 2개 년차 이상 수련받는 병원은 의정 갈등 전 14곳에서 전공의 복귀 후로는 9곳으로 줄었다. 수도권 6곳, 부울경 1곳, 대전·충남 2곳이다. 나머지 수련병원은 전공의가 1명밖에 없다는 의미다. 정의석 강북삼성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1인 전공의 병원은 야간이나 응급 수술 교육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향후 전문의 수 감소도 가팔라질 것으로 우려된다. 흉부외과는 지원자 감소로 인해 2022년부터 은퇴 전문의가 신규 전문의보다 많아져 전문의 수가 순감 중이었다. 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20~30명 수준이던 은퇴 전문의 수는 2026년 54명, 2027년 56명 등 향후 4년 동안 222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수련 중인 레지던트들이 모두 전문의를 취득해도 같은 기간 전문의 배출은 68명에 그친다. 매년 30~40명씩 전문의가 급감하는 셈이다. 흉부외과학회는 “이 추세대로라면 지역 거점 심혈관센터와 폐암 수술 등 중증·응급진료가 붕괴돼 환자 사망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북한이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며 70년 넘게 유지해 온 무상치료제를 사실상 폐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려대 한반도보건사회연구소는 2015~2024년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게재된 기사 12만2902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부터 ‘무상 치료’ 언급이 사라졌다고 24일 밝혔다. 무상 치료를 언급한 기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후 급감해, 지난해엔 단 한 건도 보도되지 않았다. 반면 북한 보건의료 제도의 주요 특징인 ‘예방의학’, ‘의사담당구역제’를 언급한 기사는 코로나19 유행 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이런 변화가 북한 보건의료 정책 변화와도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현대적인 종합병원 건설과 함께 ‘보건보험기금에 의한 의료보장제’ 실시를 언급하는 등 무상 치료의 원칙에서 벗어나려는 정황이 지속해서 관찰됐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향후 북한이 보건의료자원을 무상 치료와 같은 보편적 서비스 회복보다는 시설 개선과 의료보험제 확산에 방점을 두면서 보건의료 서비스 접근성의 양극화가 심화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 ‘침묵이 드러내는 것: 북한 무상치료제의 조용한 폐지’는 국제학술지 BMJ Global Health 최신 호에 게재됐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정부가 2030년까지 교통사고, 자살, 추락·낙상 등 손상 사고 사망률을 현재의 70%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질병관리청은 24일 국가손상관리위원회에서 이런 내용의 ‘제1차 손상 관리 종합계획’을 심의해 의결했다고 밝혔다. 올 1월 ‘손상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손상’이란 질병을 제외한 각종 사고, 재해, 중독 등 외부 위험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신체적·정신적 건강 문제를 뜻한다. 2023년 기준 123만 명이 손상으로 입원했고, 이 중 약 3만 명이 사망했다. 전체 사망 원인 중 암, 심장질환, 폐렴에 이어 4위에 해당한다. 44세 이하에선 손상이 사망 원인 중 1위다. 손상으로 인한 진료비는 2023년 기준 약 6조600억 원에 이른다. 계획에 따르면 2023년 인구 10만 명당 54.4명인 손상 사망률을 2030년까지 38명으로 낮추는 것이 목표다. 손상 유형별로는 자살 예방을 위해 자살이 빈번히 발생하는 장소나 지역에 대한 선제적 관리를 강화한다. 숙박업소 일산화탄소 감지기를 확대 설치하고, 자살 수단으로 사용되는 화학물질 등의 불법 유통 감시를 강화한다. 운수사고 사망을 줄이기 위해 보도의 보행자 통행 공간 확보 등 보행자 중심 도로 환경 조성을 추진한다. 특히 고령자 밀집 거주지역의 과속 방지 시설 등 교통 환경을 정비할 방침이다. 배달종사자 대상 사고다발 지역 단속을 강화하고, 개인형 이동장치 사고가 급증하고 있는 10대 대상 맞춤형 교육도 실시한다.고령자 낙상사고를 줄이기 위해 생활 환경에 따른 맞춤형 낙상 예방 프로그램도 개발한다. 골밀도 및 근육량 검사를 통해 골절과 낙상 고위험군을 적극 발굴해 예방에 나서기로 했다. 생활 화학제품 노출 및 식품 질식 사고가 잦은 영유아를 위해선 상황별 예방 수칙과 대응법을 개발해 양육자와 보육교사 등에게 보급할 계획이다. 국내 중증손상 발생 시 병원 도착 전 심정지 발생 비율은 약 13%다. 그러나 일반인 심폐소생술 시행률은 약 31%로 영국(77.3%)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다. 정부는 응급처치 교육을 확대해 시행률을 높여갈 방침이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손상은 우연한 사건이 아닌 예방 가능한 건강 문제”라며 “관계 기관 간 협업을 통해 손상 전부터 회복까지 전 과정을 포괄하는 예방 관리 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