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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도 위고비 살 수 있습니다. 처방전, 신분증 필요 없습니다.” 23일 기자가 비만치료제 위고비를 판매한다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접속해 “미성년자도 구매할 수 있느냐”고 묻자 판매자는 1분도 안 돼 “가능하다”며 절차를 안내했다. “처음 복용하는 17세 학생은 5mg을 추천한다”는 답변까지 돌아왔다. 고도비만 치료제이자 비대면 처방이 금지된 전문의약품을 미성년자에게 아무런 검증 없이 권장한 것이다. 이날 취재팀이 해외 직구 사이트와 텔레그램 채널을 살펴본 결과 위고비를 비롯한 비만 치료제가 처방전 없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이메일과 주소만 입력하면 택배로 받아볼 수 있고, 결제는 코인이나 상품권으로 대신 할 수 있었다. 구매자 신분 확인 절차는 어디에도 없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위고비에 대해 “12세 이상 청소년 환자는 성인에 비해 담석증, 담낭염 등의 발생률이 높았다”고 고시했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청소년이 오남용하면 요요 현상으로 고도비만이나 골다공증까지 겪을 수 있다”며 “불법 판매 단속과 함께 청소년 외모 강박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처방없이 자기 배에 비만주사제 찌르는 아이들… “부작용 위험”‘위고비’ 불법 해외직구“처방전-신분증 필요없다” 유혹… 코인 결제 ‘심부름 대행’ 우후죽순불법 판매 광고, 1년새 5배로 급증… “은밀히 거래돼 약물 오남용 우려”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위고비 직구’ 등을 검색하자 해외 직구 사이트와 구매를 대행해 주겠다는 텔레그램 판매 채널이 줄줄이 검색됐다. 그중 한 명을 접촉하자 “처음이면 5mg부터 시작하라”는 조언과 함께 ‘주사 맞는 법’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사진이 여러 장 도착했다. “아직 성인이 아닌데 괜찮냐”고 묻자 상대는 태연하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저희는 병원이 아니니까요.”● “부모 동의 필요 없다” 직구 거래 유혹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위고비는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이거나, 27 이상이면서 고혈압·고지혈증 등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만 권장되는 비만치료 주사제다. 특히 메스꺼움이나 구토 같은 초기 증상부터 담낭염, 급성 신부전, 급성 췌장염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데, 12세 이상 청소년 환자는 더 위험하다. 미성년자 처방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성인의 비대면 처방도 제한했다.그러나 온라인에서는 이런 규제가 무력했다. 한 판매자는 “미성년자나 병원에 못 가는 사정이 있으신 분들이 많이 찾는다”며 구매자를 안심시켰다. 인도의 한 해외 직구 사이트 관리자는 “한국인이라도 신분증이나 처방전은 필요 없다(not required)”며 구체적인 주사 용량까지 추천했다. 또 다른 해외 직구 사이트 관리자 역시 “부모 동의나 처방전은 필요하지 않다”며 “집으로 바로 택배 발송해 준다”고 거래를 유도했다. “근육량이 줄어들 수 있다”며 부작용까지 설명하는 판매자도 있었다.국내에서도 미성년자에게 위고비를 대신 사준다는 텔레그램 ‘심부름 대행’ 채널이 성행하고 있었다. 대다수가 복잡한 절차 없이 e메일과 주소 등만 적으면 입금 후 약을 받아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복용자의 상태 등 정확한 기준 없이도 약을 처방받아 오남용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지점이다.이들은 거래 명세를 숨길 방법까지 안내했다. 한 채널 운영자는 “아시다시피 이게 불법적인 거래잖아요? 계좌 거래를 하면 서로 위험하니 보통은 (결제를) 코인이나 상품권으로 진행합니다”라고 설명했다.● 온라인 불법 판매 1년 만에 5배 급증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위고비 관련 이상 사례는 총 270건에 달했다. 앞서 정은경 복지부 장관도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고비 오남용을 우려하며 의료기관의 처방 행태를 개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식약처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 병의원에서 미성년자에게 위고비를 처방한 횟수는 2604건이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은밀히 거래되는 물량을 고려하면 실제 오남용 실태는 더 심각할 것으로 우려된다.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비만 치료제 온라인 불법 판매 알선·광고 적발 건수는 2021년 39건, 2022년 106건, 2023년 103건, 지난해 522건으로 1년 새 5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올해 1∼8월에도 이미 218건이 적발됐다.온라인에서 미성년자가 쉽게 위고비에 접근할 수 있는 만큼 전문가들은 규제 강화와 더불어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을 줄일 수 있도록 비만을 외모의 기준이 아닌 건강의 문제로 인식시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김인향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외모 압박을 받는 청소년들이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감으로 약물에 손대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심리적 지원과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미성년자도 ‘위고비’ 많이 찾습니다. 처방전, 신분증 필요 없습니다.” 23일 기자가 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미성년자도 위고비를 구매할 수 있느냐”고 묻자, 판매자는 1분도 안 돼 구매 절차를 안내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위고비 등 비만 치료제를 구매할 수 있는 해외 직구 사이트와 구매를 대행해 주겠다는 텔레그램 채널이 줄줄이 검색됐다. 이들은 “부모님 동의는 필요 없다”며 구체적인 용량과 부작용 등을 마치 의료기관처럼 설명했다.● “17세 학생은 5mg 추천”… 처방전 없이 주사제 직구이처럼 미성년자가 처방전이나 부모 동의 없이 비만 치료제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부터 비대면 진료 시 비만 치료제 처방을 제한했지만, 해외 직구나 심부름 대행 서비스를 통한 편법 거래가 여전히 활발했다.위고비는 주 1회 복부에 직접 주사하는 자가투여형 전문의약품으로, 식욕 억제 및 혈당 조절 호르몬 작용을 모방해 체중 감량 효과를 낸다.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인 고도비만 환자거나, 27이 넘으면서 고혈압 등 동반 질환이 있는 경우에만 처방받을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다.특히 메스꺼움이나 구토 같은 초기 증상부터 담낭염, 급성신부전, 급성 췌장염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부작용에 취약한 미성년자의 경우 더욱 위험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약을 투여받은 12세 이상 청소년 환자는 성인 환자에 비해 담석증, 담낭염, 저혈압, 발진 및 두드러기의 발생률이 높았다”고 고시했다. 하지만 해외 판매자들은 이런 기준을 무시한 채 미성년자에게까지 ‘용량 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인도의 한 해외 직구 사이트 관리자는 “한국인이라도 신분증이나 처방전은 필요 없다(not required)”며, “처음 복용하는 17세 학생은 5mg을 추천한다”고 답했다. 또 다른 판매자는 “부모 동의나 처방전이 필요 없다. 집으로 바로 발송해 준다”며 거래를 유도했다. 대다수가 복잡한 절차 없이 e메일과 주소 등만 적으면 입금 후 약을 받아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국내에서도 미성년자에게 위고비를 대신 사준다는 텔레그램 ‘심부름 대행’ 채널이 성행하고 있었다. 기자가 한 채널에 문의하자 “미성년자들이 특히 많이 찾는다. 불법이라 계좌 거래 대신 코인이나 상품권으로 결제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오전 9시 전 결제 시 대도시는 당일 배송 가능하다” “근육량 감소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부작용 설명까지 덧붙였다.● 비만치료제 불법 판매 적발 1년 새 5배로 급증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위고비 관련 이상 사례는 총 270건에 달했다. 앞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고비 오남용을 우려하며 의료기관의 처방 행태를 개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비만 치료제 온라인 불법 판매 알선·광고 적발 건수는 2021년 39건, 2022년 106건, 2023년 103건, 지난해 522건으로 지난 1년 동안에만 5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올해 1~8월에도 이미 218건이 적발됐다. 여전히 온라인에서는 미성년자가 쉽게 위고비에 접근할 수 있는 만큼 전문가들은 규제 강화와 더불어 청소년들의 외모 압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성인보다 부작용에 취약한 청소년들이 비만 치료제에 의존하게 되면 요요 현상으로 인해 고도비만이 되거나 골다공증까지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의 다이어트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을 줄일 수 있도록 비만을 외모의 기준이 아닌 건강의 문제로 인식시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인향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미성년자의 위고비 편법 구매에 대해 “청소년들이 또래 집단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외모에 대한 압박 심해져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찾아오는 우울증이 발현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주가를 조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59·현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가 21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검찰이 핵심 증인을 별건 수사로 압박해 허위 진술을 이끌어 냈다고 판단하며 “그런 수사 방식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약 석 달간 구속 수감까지 됐던 김 센터장이 무죄를 받으면서 3년여간 카카오그룹의 발목을 잡아 온 사법 리스크가 당분간 해소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法 “검찰의 별건 수사, 진실 왜곡”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양환승)는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범수 센터장과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법인인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김 센터장은 2023년 2월 하이브가 에스엠 공개매수를 추진하던 시기, 2400억 원을 투입해 주가를 높게 끌어올려 인수를 방해한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된 뒤 8월 재판에 넘겨졌다.재판부는 “공개매수 기간 중 카카오가 대규모 장내 매수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주가 조작으로 볼 수 없다”며 “주문 시점과 간격, 물량 등을 보면 인위적으로 주가를 고정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카카오 측의 ‘지분 확보 목적’ 주장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이다. 법원은 특히 검찰이 핵심 증거로 제시한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전 부문장이 별건으로 수차례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등 심리적 압박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검찰의 의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별건을 강도 높게 수사하면서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방식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수사 주체가 어디든 이제 그런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고 했다. 또 “이 전 부문장의 진술이 없었다면 피고인들이 이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일부는 구속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별건’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이 전 부문장의 부인 윤정희 씨가 소유한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고가에 인수했다는 의혹이었다. 검찰은 김성수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이 전 부문장에 대해 수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회사 및 관련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그 과정에서 이 전 부문장은 김 센터장의 ‘주가 조작 공모’를 진술했으나, 법원은 이를 배척한 것이다.● 檢 “항소 검토” 카카오 “AI 전략 속도” 검찰과 금융당국은 이 사건을 강도 높게 수사해 왔다.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금융감독원은 직접 조사에 착수했고, 이복현 금감원장은 “법인 처벌까지 검토 중”이라고 공개 발언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김 센터장을 구속 기소했고, 그는 지난해 10월 보석되기 전까지 약 3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검찰은 2270건의 증거를 제출하며 김 센터장에 대해 징역 15년에 벌금 5억 원을 구형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진술 압박 등 판결에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의 지창배 대표는 펀드 자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법상 횡령)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김 센터장은 선고 후 기자들과 만나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카카오에 드리워진 주가 조작과 시세 조종이라는 그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금고형 이상 판결 시 처하는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 상실과 스테이블코인 사업 차질 우려도 벗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카오 내에선 김 센터장이 추진해 온 인공지능(AI) 신사업과 글로벌 전략 등 미래 성장 어젠다에 힘이 실릴 거란 기대가 높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주가를 조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59·현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가 21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검찰이 핵심 증인을 별건 수사로 압박해 허위 진술을 이끌어냈다고 판단하며 “그런 수사 방식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고 이례적으로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 센터장의 무죄로 3년여간 카카오그룹의 발목을 잡아온 사법 리스크는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法 “검찰의 별건수사, 진실 왜곡”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양환승)는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과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법인인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재판부는 “하이브의 공개매수 기간 중 카카오가 대규모 장내 매수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주가 조작으로 볼 수 없다”며 “주문 시점과 간격, 물량 등을 보면 인위적으로 주가를 고정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시장에서는 하이브 공개매수 종료 후에도 주가 상승 전망이 있었고, 피고인들의 ‘지분 확보 목적’ 주장은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법원은 특히 검찰이 핵심 증거로 제시한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문장은 별건으로 조사받으면서 수차례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등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며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의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고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 혜택을 받은 만큼, 허위 진술의 동기와 이유가 충분하다”고 밝혔다.법원은 선고 직후에도 이례적으로 검찰의 수사 방식을 직접 거론했다. “본건과 별다른 관련이 없는 별건을 강도 높게 수사하면서 다른 사건을 수사하는 방식은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며 “수사 주체가 어디든 이제 그런 방식은 지양돼야 한다”고 했다. 또 “이 전 부문장의 진술이 없었다면 피고인들이 이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일부는 구속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이 ‘별건’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이 전 부문장의 부인 윤정희 씨가 소유한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고가에 인수했다는 의혹이었다. 검찰은 김성수 전 카카오엔터테인먼 대표와 이 전 부문장에 대해 수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회사 및 관련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그 과정에서 이 전 부문장은 김 센터장의 ‘주가 조작 공모’를 진술했으나, 법원은 이 진술이 별건 압박 속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해 배척한 것이다.● 檢 “항소 검토”… 카카오 “AI·글로벌 전략에 속도”이번 사건은 2023년 2월 하이브가 에스엠 공개매수를 추진하던 시기, 카카오가 2400억 원을 투입해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 가격(12만 원)보다 높게 끌어올려 경영권 인수를 방해했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금융감독원이 직접 조사에 착수했고, 이복현 금감원장은 “법인에 대한 처벌까지 검토 중”이라고 공개 발언했다. 이후 사건은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으로 넘어가 김 센터장 등이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2270건의 증거를 제출하며 김 센터장에 대해 징역 15년에 벌금 5억 원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함께 기소된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의 지창배 대표는 펀드 자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 김 센터장은 선고 후 기자들과 만나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카카오에 드리워진 주가조작과 시세조종이라는 그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심경을 밝혔다.김 센터장이 무죄를 선고받으며 금고형 이상 판결로 인한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 상실과 스테이블코인 사업 차질 우려도 사라졌다. 카카오 내부에선 김 센터장이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으로서 추진해온 인공지능(AI) 신사업과 글로벌 전략 등 미래 성장 아젠다에 힘이 실릴 것이란 기대가 높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장은지 기자 jej@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리베이트 수수로 행정처분을 받은 의사 등 의료인이 올 상반기(1~6월)에만 96명으로, 지난해보다 10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유령회사를 세워 허위 배당금을 지급하거나 가족 명의로 법인카드를 사용하는 등 수법이 한층 교묘해지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리베이트 수수자에 대한 행정처분 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사법처리 결과 리베이트 수수가 확정돼 경고·자격정지·면허취소 처분을 받은 의료인은 96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9명)보다 10배 넘게 늘었다. 2020년 68명, 2021년 53명, 2022년 29명, 2023년 9명으로 감소세를 보이다 올해 급증한 것이다.이는 이재명 정부가 의약품 리베이트를 3대 부패 비리로 규정하고 특별 단속에 나선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찰청은 올 7월부터 이달까지 ‘사회적 신뢰 회복 및 국민통합을 위한 부패·비리 특별단속’을 실시 중이다.의약품 리베이트는 제약사가 자사 의약품 처방이나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의료인에게 금전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다. 과거에는 식대, 강의료, 상품권 제공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자금 흐름을 숨기기 위한 복잡한 구조가 등장했다.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범죄조사부는 지난 8월, 유령법인을 통해 의약품을 공급하고 해당 법인 지분을 의료인에게 넘긴 뒤 배당금과 법인카드 명목으로 약 50억 원의 리베이트를 주고받은 혐의로 도매업체 대표와 대학병원 이사장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대표는 이사장의 가족을 유령법인 직원으로 허위 등재해 급여를 지급한 혐의도 받고 있다.서부지검 관계자는 “전통적 현금·상품권 리베이트를 넘어, 대형 경제범죄에서나 볼 법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개원의는 “최근엔 내부 고발 우려로 제약사 본사 대신 개별 영업사원이 개인사업자 형태로 병의원에 무료 세무·노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 늘었다”고 전했다.의약품 불법 리베이트를 없애기 위해 불법 리베이트를 주고받으면 모두 처벌 대상이 되는 ‘쌍벌제’가 시행된 지 9년째이지만, 업계 리베이트는 여전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적발 우려가 커지면서 더 은밀한 방식으로 리베이트가 진화했다”고 전하기도.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제약·유통의 불투명한 마진 구조를 바로잡고 가격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등 범죄에 가담했다가 구금됐던 한국인 피의자 64명이 18일 국내로 송환됐다. 이날 오전 9시 53분경 인천국제공항에는 정부가 준비한 전세기를 타고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피의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의자들은 일반 방문객과 동선을 분리한 통제선을 따라 수갑을 찬 채 고개를 숙이고 이동했다. 양옆엔 2명의 호송관이 팔짱을 끼고 이들을 차량으로 압송했다. 대부분 20, 30대 남성으로, 반바지에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양팔과 다리에 문신이 있는 송환자들도 눈에 띄었다. 한 호송자는 맞이하러 나온 한 남성에게 “엄마한테 연락했어? 미안해”라고 소리쳤다. 송환자들은 호송 차량 23대에 나눠 타고 전국 각 경찰서로 이동했다.이들은 18일 오전 3시경(한국 시간) 전세기에 타자마자 기내에서 체포됐다. 국적법상 국적기 내부는 대한민국 영토라 체포영장을 집행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상 체포 이후 48시간 내 석방하거나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은 “송환자들은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등에 연루됐다. 조사를 통해 보이스피싱 규모, 조직을 밝히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약물, 마약 투약 의혹이 제기돼 송환자 전원 마약 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충남경찰청(45명), 경기북부경찰청(15명), 대전경찰청(1명), 서울 서대문경찰서(1명), 경기 김포경찰서(1명), 강원 원주경찰서(1명) 등으로 분산돼 조사 중이다. 피의자 대다수인 45명을 넘겨받은 충남청은 수사관 150여 명을 투입해 조사하고 있다. 서대문서는 리딩방 사기 사건에 연루된 남성 1명을 사기 및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송환 대상자들 다수가 온몸에 문신을 한 범죄 연루자였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각에선 “범죄자를 구해온 것이냐”는 지적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18일 캄보디아 프놈펜에 감금됐던 한국인 청년 3명을 구출했다고 페이스북에 밝힌 데 대해 현지 사업가 이모 씨는 “정치인의 쇼맨십”이라며 “피해자와 범죄자를 구분해 달라는 교민들의 간절한 목소리는 외면한 채 좋은 그림 하나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영웅 프레임’을 짰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이 구조했다는 인물에 대해 이 교민은 “피해자가 아니라 캄보디아 경찰에 의해 체포된 용의자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덧붙였다.인천=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예산=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17일 오후 2시경(현지 시간)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의 번화가 ‘펍 스트리트’ 인근 도보 20분 거리에 있는 한 건물은 다른 건물과 다른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인근 건물과는 달리 문을 걸어 잠가두고, 내부에도 불을 다 꺼뒀다. 창살 앞으로 다가가 보니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깜빡이는 불빛만 건물이 기능하고 있다고 알렸다. 취재진과 동행한 현지인은 “온라인 범죄가 이뤄지는 ‘웬치’(범죄단지)다. 관광지라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라고 말했다.앙코르와트 인근에 있는 시엠레아프는 유적지는 물론이고 여행자 거리가 있어 세계적인 관광지로 꼽힌다. 한국인들 역시 지난해 한 해에만 약 14만 명이 방문했다. 관광 도시답게 프놈펜이나 시아누크빌 등과 달리 범죄와 무관하다는 인식이 강하다.하지만 현지 주민들의 전언 등에 따르면 캄보디아 전역에 있는 웬치는 이곳 시엠레아프에도 존재한다. 수도 프놈펜에서 차량으로 약 5시간 거리에 있음에도 범죄의 손길이 뻗친 것. 시엠레아프 내 웬치는 관광지라는 지역적 특성에 숨어 은밀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현지인조차 이곳에 웬치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 현지 공무원은 “잘 보이지만 않을 뿐 웬치는 존재한다”며 “도심 속에 숨어들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실제로 현지 매체에 따르면 캄보디아 경찰은 7월 시엠레아프의 한 빌라에서 온라인 사기에 연루된 네팔인 13명을 붙잡았다. 이들의 거점은 대규모 범죄단지가 아닌 평범한 빌라였다. 범죄조직들이 일상으로 숨어들어 찾아내기 쉽지 않은 ‘아파트형 웬치’ 형태로 이미 변모한 셈이다.이곳에서 운영되는 웬치는 주로 온라인 도박 등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감금, 폭행 등의 폭력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한 교민은 “(시엠레아프는) 관광지라 전 세계 사람들이 몰리고 이목도 집중되기 때문에 폭행 등이 발생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민도 “시엠레아프에서 고문 등 범죄가 벌어진 적은 없다”고 했다.하지만 캄보디아 곳곳에서 범죄단지가 발견되고 있어 시엠레아프 역시 사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앙코르와트 유적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관광객도 범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 현지 관계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범죄단지인 건 변함이 없다”며 “더 큰 문제로 비화하기 전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시엠레아프=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서울동부지검이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정부 합동수사팀에 파견된 백해룡 경정에게 개별팀의 팀장으로서 수사 전결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다.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임은정 검사장이 이끄는 동부지검은 합수팀 내 별도로 백 경정을 포함해 5명의 경찰 수사관으로 마련되는 ‘백해룡팀’을 검찰 내 ‘작은 경찰서’처럼 꾸려 운영할 계획이다. 기존 합동수사팀과 별개로 구성하면서 자체 수사가 가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팀장으로서 결재권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백 경정은 ‘셀프 조사’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외압 관련 수사를 제외한 세관 마약 의혹 등에 대해 독자적으로 수사하고 영장 신청, 검찰 송치 등 경찰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백 경정의 사무실은 동부지검 청사 10층에 마련됐다. 백 경정 사무실 컴퓨터는 경찰 내부망이 연결돼 있다고 한다.앞서 백 경정은 전날 파견 후 첫 출근길에 합동수사팀을 “불법단체”라고 비판하며 현재의 구조로는 본인이 뜻한 대로 수사를 할 수 없고 수사 인력이 부족하다며 반발했다. 동부지검은 “모든 수사 과정에서 위법성 시비가 없도록 적법절차를 엄격히 준수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 합동수사팀은 위법하게 구성된 불법단체라고 주장해 왔는데, 제가 그곳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16일 서울동부지검 합동수사팀에 파견된 백해룡 경정은 출근 첫날 기자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핀포인트 인사’로 수사팀에 참여하면서도 수사 체계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이와 맞물려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외압 의혹의) 고발인(백 경정)이 셀프 수사하는 건 안 된다”며 그를 별도 수사팀에 배치하기로 결정해 내부 갈등이 증폭되는 모습이다. 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에 대한 수사가 공회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백 경정 “검찰은 의혹 수사 대상”출근길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백 경정은 합동수사팀에 대한 불신을 거듭 밝혔다. 그는 “공직자로서 신념이 흔들린다”며, “검찰 최고 지휘부가 의혹과 관련돼 있다. 검찰은 수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수사 책임자가 권력자로부터 외압을 받으면 외압을 행사한 사람까지 수사해야 한다. 검찰은 스스로 수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사건의 발단은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던 백 경정은 말레이시아발 필로폰 밀수 사건을 수사하던 중 피의자 진술에서 “인천 세관 직원이 범행을 도왔다”는 말을 들었다. 백 경정은 세관 직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추진했으나, 검찰이 영장을 반려했다. 이후 경찰 상부가 수사 브리핑 축소를 지시했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백 경정은 “윗선 외압”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이 사건은 곧 정치권 이슈로 번졌다. 윤석열 정부 시절 대통령실과 경찰 고위 간부들이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과 함께, 당시 인천지검장이던 심우정 전 검찰총장이 수사를 중단시켰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후 국회 청문회 등에서 마약 사건이 김건희 여사 측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까지 나오며 논란은 가중됐고, 백 경정은 서울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장으로 좌천됐다.● 임 지검장 “백 경정이 수사하면 공정성 논란” 6월 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의혹 수사는 본격화했다. 대검찰청은 검찰과 경찰, 국세청, 금융정보분석원(FIU) 등이 참여하는 20여 명 규모의 합동수사팀을 서울동부지검에 설치했다. 하지만 백 경정은 이때부터 “검찰 지휘부 전반이 의혹의 당사자”라고 비판했다.그러자 이 대통령은 이달 12일 “백 경정을 합동수사팀에 파견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특정 수사관의 투입을 직접 지시하는 건 이례적이다. 대통령실 내부에선 이 대통령 메시지는 임 지검장과 백 경정에게 수사에 필요한 권한을 충분히 주되,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분명히 묻겠다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임 지검장은 기존 합동수사팀과 구분된 별도 소규모 수사팀을 구성해 백 경정에게 맡기기로 했다. 다만 백 경정이 속한 수사팀은 외압 관련 수사는 맡지 않게 했다. 외압 의혹을 제기한 장본인이 직접 수사하는 건 공정성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백 경정은 출근 첫날 “(임 지검장과) 소통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검경 안팎에선 이 대통령이 백 경정을 콕 집어 파견을 지시한 게 갈등의 불씨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12·3 계엄 당시 의혹 규명을 위해 검찰 특수본과 경찰 전담 수사팀, 공수처 등이 동시에 수사를 진행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한 검찰청 내에서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로 각각의 수사팀이 꾸려진 건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합수팀이 이미 조직을 다 갖췄는데 백 경정팀이 새로 투입되며 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비판했다.기존 합동수사팀과 백 경정팀이 ‘중복 수사’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백 경정이 대통령을 등에 업었다는 생각에 지나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서울동부지검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합동수사팀은 모든 수사 과정에서 일절 위법성 시비가 없도록 적법 절차를 엄격히 준수해 수사에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교통사고 과실 비율) 100 대 0 나올 것 같은데 한방병원 갈지 고민 중.” 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교통사고 한방병원’ 등을 검색하면 “한방병원에 입원해야 합의금을 더 받을 수 있다” “(가해자가) 오히려 화내서 어이없다. 한방병원에 입원해야겠다” 같은 글이 줄줄이 나온다. 최근 5년간 교통사고를 여러 차례 당한 환자들이 가장 많이 찾은 병원 10곳 가운데 8곳이 한방병원으로 드러났다. 한방병원을 치료가 아닌 ‘합의금 증액’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통사고 병원’ 10곳 중 8곳이 한방 교통사고 경상자들이 합의금을 이유로 한방병원에서 과장·허위 진료를 받는 사례가 늘면서 자동차보험 재정 누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교통사고 환자에게 한방병원이 ‘당연한 선택지’로 굳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5차례 이상 교통사고를 당해 진료받은 환자는 7만7401명이었다. 눈여겨볼 점은 이처럼 여러 차례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들이 가장 많이 들른 의료기관 10곳 중 8곳이 한방병원이었다는 점이다. 나머지 2곳은 인천의 한 영상의학과 의원과 한의원이었다. 서울의 한 한방병원엔 5년간 4820명의 환자가 찾아 1위를 차지했고, 대전의 다른 한방병원에는 2602명이 방문했다. 교통사고 환자가 한방병원부터 찾는 것이 관행처럼 된 건 염좌나 타박상 등 경상일 땐 X-레이로도 진단이 어려워 환자의 진술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술과 약물치료 등이 중심인 일반 병원과 달리 한방병원은 침술처럼 후유증을 완화하거나 통증을 관리하기 위한 진료법이 다양해 교통사고 경상자가 자주 찾는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비싼 첩약 등 비급여 진료 항목이 일반 병원보다 많아, 가해자와의 합의 과정에서 유리하다는 인식도 확산해 있다.● “외출·외박 쉽다” 브로커까지 활개 문제는 일부 한방병원과 환자가 이를 악용해 불필요한 첩약이나 치료를 반복하며 보험 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에서는 한 40대 한방병원장이 교통사고 환자에게 소화제를 처방하면서 통증 완화용으로 꾸민 뒤 2598회에 걸쳐 보험금 3억8453만 원을 빼돌려, 올해 6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한방병원은 보험사기단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올 7월엔 자해공갈을 벌인 뒤 한방병원에서 치료받는 수법으로 보험금 약 5억9000만 원을 챙긴 일당의 주범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최근에는 “서류 조작이 쉽고 입원 중 외출·외박이 가능하다”며 환자에게 접근하는 보험사기 브로커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 이를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 보험사기대응단 관계자는 “교통사고 허위 입원 등 보험사기는 대부분 제보에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보완책은 공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 6월 교통사고 경상자가 8주 이상 장기 치료 받으려면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자동차손배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으나 ‘보험사에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다’는 지적에 따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병원과 환자 모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병원은 진료비로, 환자는 합의금으로 이익을 얻는 구조가 도덕적 해이를 고착화시킨다”며 “보험 재정 누수를 막으려면 한방 진료의 투명성과 사후 관리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누나가 ‘손가락이 잘렸다’며 사진을 보냈어요. 납치당한 것 같아요.” 올 3월 전북에서 접수된 이 사건은 전국 각지로 번진 ‘캄보디아 실종 신고’의 신호탄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은 청년들이 현지로 향했다가 감금·폭행을 당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 모집책이 이들을 유인해 중국계 조직에 넘기고 범죄 수익을 빼돌리면, 남겨진 피해자들은 ‘하청 구조’의 끝단에서 고문과 협박의 표적이 되는 구조다.● 출국 후 연락 두절… 건물서 뛰어내려 탈출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대다수는 20, 30대다. “수영 강사 채용” “해외 코인센터 알바” 등 미끼를 물고 출국했다가 휴대전화와 여권을 뺏기고, 범죄조직이 운영하는 ‘웬치(범죄단지)’로 옮겨져 협박과 폭행을 당하고 강제노동하는 사례가 반복된다. 제주에서는 한 20대가 한 달 넘게 감금과 구타를 견디다 건물 3층에서 뛰어내려 인근 한인 식당의 도움으로 탈출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몸값 3500만 원을 가상화폐로 송금하고 풀려났다. 경북 상주에서는 30대 남성이 캄보디아로 출국한 후 닷새 뒤 가족에게 텔레그램 영상 통화로 “2000만 원을 보내주면 풀려날 수 있다”는 말을 전한 뒤 연락이 끊겼다. 가족들은 발신 번호가 확인되지 않는 협박성 문자메시지도 받았다. 광주에선 “살려 달라”는 마지막 통화 뒤 낯선 남성이 욕설을 퍼붓고 전화를 끊었다. 충북 음성에서는 “아들이 ‘통장이 세탁에 쓰이고 있는데 정지되면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 잘 간수해 달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최근 들어 확인된 피해 신고는 최소 34건. 경찰은 실종자로 등록하고 외교부와 주캄보디아 대사관, 국제경찰기구(인터폴)와 공조 수사를 벌이는 한편, SNS에 올라오는 ‘해외 고수익 채용’ 글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숨진 대학생, 국내 모집책이 돈 빼돌려 고문당해”캄보디아에서 납치돼 고문당한 끝에 숨진 대학생 박모 씨(22) 사건은 이런 범죄 구조의 잔혹한 단면을 보여준다. 경찰에 따르면 “통장을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캄보디아로 박 씨를 유인한 홍모 씨(27)는 박 씨의 대학 선배였다. 홍 씨의 유인에 따라 중국계 범죄조직이 운영하는 웬치에 감금된 박 씨는 보이스피싱과 자금세탁에 동원됐다. 조직은 박 씨의 계좌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돈을 입금받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돈이 사라졌다. 경찰은 홍 씨 등 국내 모집책 일당이 미리 알아둔 계좌 비밀번호로 돈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부터 박 씨에 대한 중국인 조직의 폭행과 고문이 격해졌다. 박 씨가 가족에게 “사고를 쳤다”며 협박 전화를 걸어온 것도 이 시기였다. 경북경찰청은 홍 씨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 송치하는 한편, 국내 모집책이 현지 중국인 조직에 통장과 인력을 공급하는 구조를 추적 중이다. 경찰은 이런 범죄의 배경으로 중국계 거대 조직과 한국인 모집책의 ‘원·하청 구조’를 지목한다. 중국 조직이 현지 자금과 거점을 제공하고, 한국 내 모집책이 SNS를 통해 인력을 유인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가 자리 잡은 배경에는 2010년대 중후반 중국의 ‘일대일로’ 투자로 조성된 카지노·호텔 단지의 전환이 있다. 대규모 중국 자본이 유입되며 시아누크빌 등 특별경제구역(SEZ)에 카지노, 호텔, 리조트 등이 들어섰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관광업이 위축되자 유휴 시설이 중국계 조직의 보이스피싱·온라인 범죄 거점으로 재활용됐고, 이후 감금·착취형 범죄의 무대로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해외 공관에서 영사 업무를 지원했던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를 유인하는 중간 매개체가 같은 한국인으로 구성된 경우 언어적·문화적 유사성을 악용해 피해자 접촉이 쉽다”며 “대규모 인력 투입을 통해 현지 첩보 수집과 내부고발 등을 종합 분석하고 조직을 일망타진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전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음성=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제주=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
“누나가 ‘손가락이 잘렸다’며 사진을 보냈어요. 납치당한 것 같아요.”올 3월 전북에서 접수된 이 사건은 전국 각지로 번진 ‘캄보디아 실종 신고’의 신호탄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은 청년들이 현지로 향했다가 감금·폭행을 당하거나 실종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 모집책이 이들을 유인해 중국계 조직에 넘기고 범죄 수익을 빼돌리면, 남겨진 피해자들은 ‘하청 구조’의 끝단에서 고문과 협박의 표적이 되는 구조다.● 출국 후 연락 두절… 건물서 뛰어내려 탈출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대다수는 20, 30대다. “수영강사 채용” “해외 코인센터 알바” 등 미끼를 물고 출국했다가 휴대전화와 여권을 뺏기고, 범죄조직이 운영하는 ‘웬치(범죄단지)’로 옮겨져 협박과 폭행을 당하고 강제노동하는 사례가 반복된다.제주에서는 한 20대가 한 달 넘게 감금과 구타를 견디다 건물 3층에서 뛰어내려 인근 한인 식당의 도움으로 탈출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몸값 3500만 원을 가상화폐로 송금하고 풀려났다. 경북 상주에서는 30대 남성이 캄보디아로 출국 후 닷새 뒤 가족에게 텔레그램 영상 통화로 “2000만 원을 보내주면 풀려날 수 있다”는 말을 전한 뒤 연락이 끊겼다. 가족들은 발신 번호가 확인되지 않는 협박성 문자메시지도 받았다. 광주에선 “살려 달라”는 마지막 통화 뒤 낯선 남성이 욕설을 퍼붓고 전화를 끊었다. 충북 음성에서는 “아들이 ‘통장이 세탁에 쓰이고 있는데 정지되면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 잘 간수해달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최근 들어 확인된 피해 신고는 최소 34건. 경찰은 실종자로 등록하고 외교부와 주캄보디아 대사관, 국제경찰기구(인터폴)와 공조 수사를 벌이는 한편, SNS에 올라오는 ‘해외 고수익 채용’ 글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숨진 대학생, 국내 모집책이 돈 빼돌려 고문당해”캄보디아에서 납치돼 고문 끝에 숨진 대학생 박모 씨(22) 사건은 이런 범죄 구조의 잔혹한 단면을 보여준다. 경찰에 따르면 “통장을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캄보디아로 박 씨를 유인한 홍모 씨(27)는 박 씨의 대학 선배였다. 홍 씨의 유인에 따라 중국계 범죄조직이 운영하는 웬치에 감금된 박 씨는 보이스피싱과 자금세탁에 동원됐다.조직은 박 씨의 계좌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돈을 입금받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돈이 사라졌다. 경찰은 홍 씨 등 국내 모집책 일당이 미리 알아둔 계좌 비밀번호로 돈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부터 박 씨에 대한 중국인 조직의 폭행과 고문은 격해졌다. 박 씨가 가족에게 “사고를 쳤다”며 협박 전화를 걸어온 것도 이 시기였다. 경북경찰청은 홍 씨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 송치하는 한편, 국내 모집책이 현지 중국인 조직에 통장과 인력을 공급하는 구조를 추적 중이다.경찰은 이런 범죄의 배경으로 중국계 거대 조직과 한국인 모집책의 ‘원·하청 구조’를 지목한다. 중국 조직이 현지 자금과 거점을 제공하고, 한국 내 모집책이 SNS를 통해 인력을 유인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가 자리 잡은 배경에는 2010년대 중후반 중국의 ‘일대일로’ 투자로 조성된 카지노·호텔 단지의 전환이 있다. 대규모 중국 자본이 유입되며 시아누크빌 등 특별경제구역(SEZ)에 카지노, 호텔, 리조트 등이 들어섰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관광업이 위축되자 유휴 시설이 중국계 조직의 보이스피싱·온라인 범죄 거점으로 재활용됐고, 이후 감금·착취형 범죄의 무대로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해외 공관에서 영사 업무를 지원했던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를 유인하는 중간 매개체가 같은 한국인으로 구성된 경우, 언어적·문화적 유사성을 악용해 피해자 접촉이 쉽다”며 “대규모 인력 투입을 통해 현지 첩보 수집과 내부고발 등을 종합 분석하고 조직을 일망타진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전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음성=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제주=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
아파트 단지 내 시설 개방을 둘러싼 갈등이 잇따르는 가운데,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가 단지를 관통하는 보행로를 가로막기로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인근 5000가구 주민은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되자 반발이 거세다. 당국은 행정제재를 예고했고, 단지는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이웃 간 배려가 사라지고 아파트 간 계층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입주민 안전” vs “인근 주민 불편”12일 강동구 고덕아르테온 단지 보행로 입구에는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기부채납지가 아닙니다’란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이 보행로는 단지를 가로질러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으로 이어진다. 이에 인근 고덕센트럴아이파크(1745가구), 고덕자이(1824가구), 고덕롯데캐슬베네루체(1859가구) 주민도 자주 이용한다. 갈등은 이달 초 고덕아르테온 입주자대표회의가 보행로에 보안시설을 설치하기로 하면서 불거졌다. 외부인 출입을 막자는 안건에 입주민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 것. 대표회의 측은 “올 1월 인근 주민이 단지 내에서 넘어져 우리 측에 보험금을 청구한 사례가 있었고, 7월엔 외부 청소년이 지하 주차장에 침입해 차량에 소화기를 분사하는 등 안전사고가 잇따랐다”고 주장했다. 대표회의는 13일 강동구에 보안시설 설치 허가를 요청할 계획이다. 강동구가 이를 거부하면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인근 주민들은 “입주민 이기주의”라며 반발하고 있다. 보행로가 막히면 지하철역까지 약 500m를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주민 임모 씨(49)는 “모든 문제를 외부 탓으로 돌리는 과도한 대응”이라며 “이웃 단지끼리 얼굴 붉힐 일이 늘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진 이유는 고덕아르테온이 재건축 당시 외부 개방형 보행로 조성을 조건으로 인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강동구에 따르면 조합은 정비계획에 외부 개방형 공공보행로 조성을 포함했고, 서울시는 이를 조건으로 재건축을 승인했다. 강동구 관계자는 “보행로 차단 시 과태료나 이행강제금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현재는 주민 간 갈등이 심화한 만큼 행정 제재보다 중재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곳곳에서 시설 개방 두고 진통 아파트 내 공공시설 개방을 둘러싼 분쟁은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는 아이돌봄센터·독서실 등 공동시설에 외부인 출입을 막으려 해 논란이 됐다. 2017년 특별건축구역 지정 당시 해당 시설을 외부에 개방하는 조건으로 용적률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서초구가 매매와 담보 대출을 막는 초강수를 두자, 원베일리는 공동시설을 다시 개방했다. 2016년 준공한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도 1년이 넘도록 공공시설을 개방하지 않다가 서초구청이 강제 이행금 부과 등에 나서자 2018년에 개방했다. 강남구 디에이치아너힐즈는 준공 후 주민 사생활이 침해된다는 이유로 2020년 1월경 공공보행통로에 출입증을 찍어야 오갈 수 있는 1.5m 높이의 담장을 설치했다. 이후 공동주택관리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 원이 선고됐다. 하지만 담장은 현재까지 철거되지 않았다. 이 같은 사례가 이어지자, 서울시는 공공개방 의무를 지키지 않는 단지에 대해 이행강제금을 적극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공동주택 주민공동시설 개방 운영 기준’을 마련해 특별건축구역 고시문과 분양계약서, 건축물대장 등에 시설개방 의무를 명시하도록 했다. 건축이행강제금이 부과되며 액수는 전체 단지 시가표준액의 3%로 최대 수십억 원에 이를 수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파트 단지 간 갈등은 각자의 안전성과 이익만을 우선시해 발현하는 현상”이라며 “서로 구별 짓는 배타성을 지양하고 공공성과 공존의 감각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매일 보아도 물리지 않는 귀여운 딸들, 올해 추석도 한가위만 같아라.” 579돌 한글날을 일주일 앞둔 2일, 조현만 씨(78)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편지를 써 내려갔다. 경기 성남시 수정노인종합복지관의 한글 학교 ‘말모이 문해학교’에서는 이날 추석을 맞아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수업이 열렸다. 어르신들은 책상에 코가 닿을 만큼 고개를 숙인 채 글쓰기에 집중했다. 어려운 글자가 나오면 공책을 뒤적이거나 옆 사람에게 “매느리(며느리)는 어떻게 써?”라고 물었다. 한 어르신은 수십 번 지우개로 고쳐 쓴 끝에 “사랑하는 우리 아들아”라는 문장을 완성했다. 3년 전 ‘늦깎이 학생’으로 입학한 ‘글모음 3반’ 어르신 11명은 현재 초등학교 5, 6학년 과정을 배우고 있다. 올해까지 이수하면 초등학교 학력을 인정받는다. 평균 나이 75세인 이 반의 어르신들은 수업 전날부터 설레서 자다 깨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조 씨는 “평생 까막눈으로 살았는데, 이젠 은행도 혼자 간다”며 “한글은 배우면 배울수록 참 고맙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이경자 씨(69)는 “한글을 배운 덕분에 처음으로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글로 썼다”며 웃었다. 교사 박순미 씨(66)는 “ㄱ(기역)자 쓰기도 어려워하셨던 분들이 글을 배우며 자신감을 되찾는 모습을 지켜보니 뭉클하다”고 했다. 이처럼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지원으로 문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실은 전국 400여 곳에 이른다. 지난해 새로 한글 공부를 시작한 어르신은 약 2만 명. 올해 8월 문해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제14회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는 1만5528명의 어르신이 출품했다. 키오스크 사용 경험을 시로 표현해 교육부 장관상을 받은 조원호 씨(72)는 “처음엔 어려웠지만, 글을 배워 상도 타니 자식들이 더 좋아한다”며 웃었다. 조 씨는 충남 예산도서관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다. 교육부 ‘성인 문해 능력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중 기본적인 읽기·쓰기를 못 하는 ‘비문해 인구’는 146만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60세 이상이 139만9000명(95.8%)으로 대다수다. 60세 이상 어르신 10명 중 1명은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해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문해 교육이 단순한 배움의 기회를 넘어 고령층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고 강조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글을 읽고 해독하는 능력이 없으면 지역사회에서 고립되기 쉽다”며 “문해교육은 복지 차원을 넘어 어르신들이 고립감을 벗고 일상의 선택권과 주도권을 되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글을 배우는 것은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일”이라며 “간판을 읽고 은행 업무를 스스로 처리하는 경험이 자신감과 효능감을 회복하게 하고, 뇌 자극을 통해 치매 예방 효과도 크다”고 강조했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성남=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주말에 정부24 사이트가 마비돼서 일을 못 봤어요. 어쩔 수 없이 연차를 썼습니다.”29일 서울 동대문구청을 찾은 회사원 김모 씨(27)는 여권 업무를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연차를 내고 구청을 찾았다며 이렇게 말했다.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이후 첫 평일인 29일, 전국 행정기관에는 주말 내 불편을 겪은 시민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이 문을 열자마자 방문한 최모 씨는 “직장에서 제 시간 안에 보내야 하는 우편물이 있었는데 주말 내 문제가 생겨 불안한 마음에 (우체국을) 찾았다”고 말했다. 마포구 공덕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한 이모 씨(32)도 “사업 계약상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주말 내내 발급이 안 돼 (센터를) 찾았다”고 했다.현장에서도 서비스 마비로 인한 불편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9시경 광화문우체국 무인우편접수기 4대는 전산 오류로 이용이 중단됐다. 9시 2분에는 우체국 직원이 우편접수기에 ‘장애 발생’ 안내문을 붙이기도 했다. 9시 반경 우체국을 찾은 윤모 씨(50)도 “평소에 사용하던 무인접수기가 먹통이라 하마터면 등기를 못 보낼 뻔했다”고 말했다.서비스 중단이 이어지며 대체 서비스를 찾는 사람들도 늘었다. 동대문구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최모 씨(42)는 “주말 새 ‘우체국에 맡기지 못해 (편의점을) 찾았다’며 택배를 맡기는 손님이 늘었다”고 말했다. X(구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정부24 대신 접속해 서류를 발급할 수 있는 웹사이트 목록이 정리돼 올라오기도 했다.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온라인에서는 알 수 없는 현실감 있는 회사 정보를 잡페어에서는 인사 담당자에게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만족합니다.” 26일 직장인 김모 씨(34)는 한국콜마 부스를 방문하고 나오면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직을 준비하며 회사를 알아보던 중 관심 있던 한국콜마가 잡페어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날 행사장을 찾았다. 김 씨는 “인사 담당자에게 인센티브 제도, 상호 간 호칭, 내부 분위기 등 공개되지 않은 회사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5, 26일 이틀간 개최된 ‘2025 리스타트 잡페어’에는 4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다녀갔다. 새출발을 꿈꾸는 청년, 경력보유 여성,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5060세대 ‘영올드(Young old·젊은 노인)’ 등 잡페어를 방문한 이들은 “막막했던 상황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행사 이틀 동안 약 1만2000명이 72개 기업 및 기관이 꾸린 94개 기업 부스를 찾아 구직과 창업 상담을 받았다. 이 중 800명가량이 실제 채용 과정을 거쳐 100여 명은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다.● 현장서 바로 채용 기회 얻기도 올해 리스타트 잡페어에서는 스타벅스, hy(옛 한국야쿠르트), 타다 등 다수의 기업이 현장 채용을 진행했다. 일부는 현장에서 합격 통보를 받으며 채용 절차를 이어갔다. 25, 26일 이틀간 스타벅스 부스에서는 바리스타를 꿈꾸는 16명이 면접을 봤고, 이 중 5명이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최모 씨(35)는 26일 최종 면접을 보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는 “경영지원 직무에서 7년간 일하다 퇴직했는데 줄곧 관심 있던 바리스타 일에 도전해 합격까지 하게 돼 뜻깊다”며 “전문성을 쌓아 훗날 본사 직무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취업준비생 이초령 씨(25)도 합격 소식을 듣고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씨는 “대학 졸업 후 취업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좋아하던 브랜드에 지원해 일할 수 있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리스타트 잡페어를 통해 최종 면접 기회를 얻은 구직자도 많았다. 올해 잡페어에서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한국콜마, 삼성생명, 교보생명, 네스프레소코리아 등은 채용 연계 면접을 진행했다.전국 각지 풀필먼트센터에서 근무할 인공지능(AI)·로봇·자동화 등 오토메이션 인재를 찾고 있던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부스에는 이틀 동안 50명이 넘는 구직자가 몰려 활발한 상담이 이루어졌고, 그중 상당수가 채용 연계 면접에 참여했다. 이날 최종 면접 기회를 얻은 김지호 씨(24)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대학에서 경영정보학을 전공한 김 씨는 “부스 상담을 받아 보니 풀필먼트센터 운영 지원 직무와 제 역량이 잘 맞는다고 느껴 바로 지원했다”면서 “최첨단 자동화 설비로 유명한 쿠팡풀필먼트센터에서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경기 김포에서 온 임조혜 씨(63)는 “지금 하는 일과 병행할 수 있으면서 나이 상관없이 오래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잡페어를 찾았다”며 “네스프레소 코리아에서 딱 맞는 일자리를 찾아 지원서를 냈다”고 했다. hy 부스에서 상담을 받은 일부 구직자들도 ‘프레시 매니저’로 활동하기 위한 교육에 참여하기로 했다. ● 중장년층 ‘인생 2막’, 청년 ‘사장님의 꿈’ 올해 처음 선보인 ‘영올드관’에서는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5060세대가 새출발의 희망을 얻었다. 일용직 근로자로 구직 활동을 이어온 김성한 씨(54)는 “내 나이에 맞는 일이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학교 앞 교통관리 업무를 소개받고 지원서를 넣었다”고 했다. 기업 보험 컨설팅 일을 했던 김용한 씨(70)는 “나이가 있어 힘쓰는 일은 어렵지만 대학 숙직이나 고궁 안내 같은 일을 추천받아 도움이 됐다”고 했다. ‘창업관’에는 취업 대신 창업으로 눈을 돌린 10, 20대 청년들의 관심이 쏠렸다. 충남 보령에서 온 유지우 양(18)은 GS25, CU, 세븐일레븐 부스를 찾아 창업 상담을 받았다. 유 양은 “평소 편의점 창업에 관심이 많았는데 학교에서 행사를 알려줘 참여하게 됐다”며 “창업 시 필요한 초기 비용과 순수익 등을 자세히 알게 돼 진로 계획을 구체적으로 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퇴직 후 편의점 창업을 고민 중인 이모 씨(66)는 “담당자들에게 구체적인 상품 마진도 질문하고 상권개발담당자와 지역 관련 내용도 상의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사실상 다크웹 연구가 중단됐습니다.”해킹으로 유출된 개인 정보의 ‘불법 유통지’인 다크웹을 연구하고 있는 KAIST A 교수는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크웹에선 여전히 불법적인 정보가 넘쳐나고 있지만 관련된 국가 연구과제 예산은 줄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올라온 불법 정보가 금방 삭제되는 다크웹 분석을 위해선 수십 TB(테라바이트) 이상의 정보를 보관할 서버 장비가 필요한데, 장비를 구매할 예산조차 없다고 한다. A 교수는 “2018년경 수십억 원 단위였던 국가 연구과제가 현재는 수천만 원대 연구 외에 사실상 사라진 수준이다. 지도 학생들이 하루에 1, 2시간가량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연구하는 실정”이라면서 “실질적인 다크웹 게시자 추적, 콘텐츠 분석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가짜 기지국 방어법 연구 교수도 “예산 줄어”24일 동아일보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올해 과기정통부, 경찰청, 국토교통부 등 범부처 합산 사이버보안 연구개발(R&D) 예산을 분석한 결과 전체 예산은 증가했지만, ‘전통 사이버 보안’에 대한 투자는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전통 사이버 보안이란 서버 내 데이터를 암호화하거나, 여러 서버가 엮여 있는 네트워크, 통신의 취약점을 진단하고 방화벽 등을 통해 막아내는 분야다. 일선 연구자들은 “신기술인 인공지능(AI) 관련 예산이 늘어나며 전체 예산은 증가했지만 여전히 골칫거리인 전통 사이버 보안 예산은 감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KT 소액결제 사건과 롯데카드 의혹 모두 네트워크, 방화벽 등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 취약점을 드러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발생한 해킹 사건 신고 중 85.5%가 서버 해킹, 디도스(DDoS), 악성코드 등 AI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해킹 유형이었다.전통 사이버 보안과 관련한 대표적 사업이 ‘정보보호 핵심 원천기술’ 개발 예산이다. 해당 사업 예산은 국가 및 공공 주요 인프라와 네트워크, 데이터 보호를 위해 2016년부터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이 역시 지난해 1075억 원에서 올해 993억 원으로 감소했다. 중소 보안기업 등 민간 기업 육성을 위한 ‘사이버 보안 펀드’ 예산도 지난해 200억 원에서 올해 100억 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전문가들은 “창(해킹)은 갈수록 날카로워지는데 방패(사이버 보안)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에서 사이버 보안 연구를 진행 중인 B 교수는 “정부에서 내려오는 보안 관련 연구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체감된다”고 했다. KAIST에서 KT 소액결제 사건과 유사한 해킹 공격에 대한 방어책을 연구하는 강민석 전산학부 교수도 “지난해 우리 연구실의 사이버 보안 연구 예산이 20∼30% 줄었다. 이 추세라면 AI와 거리가 있는 연구는 없어질 수 있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국내 기업 97% 보안 인력 부족 호소예산 부족 여파로 일선 연구 현장의 인력마저 부족해지고 있다. 해킹 관련 암호학을 연구하고 있는 국내 유명 대학 C 교수는 지난해 연구과제 예산의 80%가 삭감돼 연구 인력을 절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전문성을 갖춘 인력 양성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보니 기업들도 인력난을 겪고 있다. 최근 글로벌 보안업체 시스코가 발표한 ‘2025 사이버 보안 준비지수’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97%가 보안 인력 부족을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안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 업체를 운영하는 김영랑 대표(41)는 “해킹을 방어하는 분야는 성과가 눈에 띄지 않아 승진 등 기업에서 처우가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어 유입도 적다”고 짚었다.대전=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서울 종로구에서 20년 넘게 백숙집을 운영해 온 박순임 씨(67)는 올 6월 ‘22명이 방문한다’는 단체 예약 전화를 받았다. 예약자는 “OO증권 대리”라며 명함과 사원증 사진까지 보내왔다. 불황으로 어려웠던 와중에 오래간만의 대형 예약이었다. 그런데 곧 “회장님이 오시니 ‘맥켈란 25년 셰리오크’ 3병을 준비해 달라”며 백숙집에서는 팔지 않는 비싼 위스키를 요구했다. 이어 자기가 소개한 업체에 900만 원을 송금하면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상함을 느낀 박 씨가 “평소 거래처를 통해 술을 준비하겠다”고 하자 예약자는 연락을 끊었다.● 외식 불황 노린 ‘노쇼 사기’ 피해 폭증이처럼 단체 예약 후 특정 업체를 소개하며 대리 구매를 요청하는 전형적인 2단계 구조를 보이는 ‘노쇼(No-show)’ 사기가 증가세다. 박 씨는 최근 석 달 동안 이런 전화를 무려 3번이나 받았다고 한다. 노쇼 사기는 외식 불황 속 단체 예약을 놓치고 싶지 않은 소상공인의 기대 심리를 노린다. 여기에 1박 2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범행 기간에 1000만 원가량의 범죄 수익을 거두는 ‘박리다매형’이라는 점도 새롭다.21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7월 노쇼 사기는 총 2892건 발생했고 피해액은 약 414억 원에 달했다. 특히 7월 한 달에만 피해액이 총 163억 원에 달했다. 올 1∼5월 월평균 피해액(29억 원)의 5배가 넘는 폭증세다. 발생 건수도 1∼5월 월평균 234건에서 7월 935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사기범들은 먼저 피해자가 운영하는 점포에 물품을 대량 주문하거나 단체 예약을 문의한다. 안심시키기 위해 유명인이나 공공기관, 병원 및 대기업 관계자를 사칭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피해자가 취급하지 않는 고가 물품의 대리 구매를 요청한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특정 업체를 소개하고 돈을 먼저 내게 한다. 경찰이 파악하는 피해액은 대리구매를 위한 실제 송금액만으로 산정된다. 재료 준비 등으로 인한 손해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는 더 클 수밖에 없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직원을 사칭해 약국에 ‘응급의료세트’를 구매하겠다고 한 이후 함께 구비할 방독면의 대금을 대신 송금해 달라고 한다거나, 군부대를 사칭해 떡집에 떡을 주문한 후 전투식량의 결제금도 결제해 달라는 유형의 사칭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현행법상 피해 복구 사각지대 범행 기간과 건당 피해 금액이 상대적으로 짧고 적은 것도 노쇼 사기의 또 다른 특징이다. 올 들어 발생한 노쇼 사기 건당 평균 피해액은 약 1431만 원인 반면, 같은 기간 보이스피싱 건당 평균 피해액은 5280만 원이다. 즉, 노쇼 사기는 오랜 기간 공을 들여 고액을 노리는 방식이 아니라 짧은 시간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박리다매 형태의 피싱이다. 사기범들은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개된 정보를 활용해 공공기관을 사칭하기 때문에 당하는 입장에선 속아 넘어가기 쉽다. 실제로 공공기관에 물품을 납품해 본 점포에 해당 공공기관을 사칭해 전화하는 방식이다. 경찰청은 나라장터에서 계약 주체와 내용을 누구나 조회할 수 있는 점을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보 일부를 비공개·비실명 처리하고 본인인증 절차를 거치도록 개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행법으로는 노쇼 사기를 당해도 피해금 회수 등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의 경우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노쇼 사기의 2단계에서 물품을 받기 위해 입금한 것이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국회엔 이 같은 단서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올해 3월 발의됐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채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서울 종로구에서 20년 넘게 백숙집을 운영해 온 박순임 씨(67)는 올 6월 ‘22명이 방문한다’는 단체 예약 전화를 받았다. 예약자는 “OO증권 대리”라며 명함과 사원증 사진까지 보내왔다. 불황으로 어려웠던 와중에 간만의 대형 예약이었다. 그런데 곧 “회장님이 오시니 ‘맥켈란 25년 셰리오크’ 3병을 준비해 달라”며 백숙집에서는 팔지 않는 비싼 위스키를 요구했다. 이어 자기가 소개한 업체에 900만 원을 송금하면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상함을 느낀 박 씨가 “평소 거래처를 통해 술을 준비하겠다”고 하자 예약자는 연락을 끊었다.● 외식 불황 노린 ‘노쇼 피싱’ 피해 폭증이처럼 단체 예약 후 특정 업체를 소개하며 대리 구매를 요청하는 전형적인 2단계 구조를 보이는 ‘노쇼(No-show) 피싱’ 사기가 증가세다. 박 씨는 최근 석 달 동안 이런 전화를 무려 3번이나 받았다고 한다. 노쇼 피싱은 외식 불황 속 단체 예약을 놓치고 싶지 않은 소상공인의 기대 심리를 노린다. 여기에 1박 2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범행 기간에 1000만 원가량의 범죄 수익을 거두는 ‘박리다매형’이라는 점도 새롭다.21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7월 노쇼 피싱은 총 2892건 발생했고 피해액은 약 414억 원에 달했다. 특히 7월 한 달에만 피해액이 총 163억 원에 달했다. 올 1~5월 월평균 피해액(29억 원)의 5배가 넘는 폭증세다. 발생 건수도 1~5월 월평균 234건에서 7월 935건으로 크게 증가했다.피싱범들은 먼저 피해자가 운영하는 점포에 물품을 대량 주문하거나 단체 예약을 문의한다. 안심시키기 위해 유명인이나 공공기관, 병원 및 대기업 관계자를 사칭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피해자가 취급하지 않는 고가 물품의 대리 구매를 요청한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특정 업체를 소개하고 돈을 먼저 내게 한다. 경찰 관계자는 “노쇼는 사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파생적인 결과일 뿐, 주목적은 결국 금전 편취”라고 했다. 경찰이 파악하는 피해액은 대리구매를 위한 실제 송금액만으로 산정된다. 재료준비 등으로 인한 손해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는 더 클 수밖에 없다.한국철도공사(코레일) 직원을 사칭해 약국에 ‘응급의료세트’를 구매하겠다고 한 이후 함께 구비할 방독면의 대금을 대신 송금해달라고 한다거나, 군부대를 사칭해 떡집에 떡을 주문 후 전투식량의 결제금도 결제해 달라는 유형의 사칭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현행법상 피해 복구 사각지대범행 기간과 건당 피해 금액이 상대적으로 짧고 적은 것도 노쇼 피싱의 또 다른 특징이다. 올 들어 발생한 노쇼 피싱 건당 평균 피해액은 약 1431만 원인 반면, 같은 기간 보이스피싱 건당 평균 피해액은 5280만 원이다. 즉 노쇼 피싱은 오랜 기간 공을 들여 고액을 노리는 방식이 아니라 짧은 시간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박리다매 형태의 피싱이다. 피싱범들은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개된 정보를 활용해 공공기관을 사칭하기 때문에 당하는 입장에선 속아 넘어가기 쉽다. 실제로 공공기관에 물품을 납품해 본 점포에 해당 공공기관을 사칭해 전화하는 방식이다. 경찰청은 나라장터에서 계약 주체와 내용을 누구나 조회할 수 있는 점을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보 일부를 비공개·비실명 처리하고 본인인증 절차를 거치도록 개선해 달라고 요청했다.현행법으로는 노쇼 피싱을 당해도 피해금 회수 등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현행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의 경우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노쇼 피싱의 2단계에서 물품을 받기 위해 입금한 것이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국회엔 이 같은 단서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올해 3월 발의됐지만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채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모두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 중인 가운데 대통령경호처가 여전히 윤 전 대통령의 사저를 경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윤 전 대통령 사저를 지키는 경호처 인력은 인근 빌딩에 사무실을 두고 최소 4명 이상 근무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저에서 도보 6분 거리에 있는 건물 1층 두 개 호실이 경호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무실 창문에는 불투명 필름이 붙어 있어 내부가 보이지 않았지만, 인근 주민들은 상주 인원이 4명 이상이라고 전했다. 대통령경호처는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과 규정에 따라 최소 수준의 경호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며 빈 사저에 대한 경호를 인정했다. 하지만 구체적 인력 규모는 “보안 사항”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인근 부동산 등에 따르면 해당 사무실은 두 호실을 합쳐 200m²(약 60평) 정도로 임대료는 월 300만 원 수준이다. 매달 300만 원 이상이 임차료로 쓰이는 셈이다. 현행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은 임기 중 퇴임한 대통령과 가족에게 5년간 경호를 제공하고 필요시 5년 연장도 가능하도록 규정한다. 탄핵으로 파면되거나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돼도 연금 등 예우는 제한되지만 경호·경비는 유지된다. 내란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고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경호에도 지난해 2245만 원의 세금이 쓰였다. 10년 이후에는 경찰이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주요 인사 경호를 이어간다. 국격을 위해 최소한의 경호는 필요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돼 경호 대상이 없는 상황에서 빈집을 지키는 것은 행정력과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저 인근 한 주민은 “아무도 없는 집을 왜 지키냐”며 “결국 그 비용도 국민의 세금 아니냐”고 했다. 국회에선 파면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호를 제외하거나, 경호처 권한을 줄이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잇달아 발의됐다. 윤 전 대통령 비상계엄 사태 이후 발의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22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8건으로, 대부분 경호 대상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