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신광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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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광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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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3~2025-10-23
칼럼100%
  • 폴란드 ‘범고래’ 프로젝트에 도전장 낸 K-잠수함[횡설수설/신광영]

    잠수함 2, 3척이 운용되는 해역에는 누구도 쉽게 침범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바닷속 유령’이라고 불릴 만큼 탐지가 어려워 적군으로선 잠수함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무장을 했는지 알 수 없어 도발 억제 효과가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위협을 실감한 폴란드가 최근 심혈을 기울이는 게 바로 이런 잠수함 도입이다. 폴란드는 북쪽으로 발트해가 있는데 러시아 주력 해군 기지인 칼리닌그라드가 코앞이라 발트해를 러시아에 내주면 내륙에 갇히게 돼 위험해진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독일에 침공당한 폴란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준 게 잠수함이었다. 당시 독수리란 뜻의 ‘오제우(Orzeł)’로 불렸던 폴란드 잠수함이 임무 중 독일군에 억류될 뻔했다가 대원들이 극적으로 잠수함을 타고 탈출해 영국 해군에 합류했다. 이후 독일 병력 수송선을 침몰시키는 등 저항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하지만 폴란드는 2차대전 이후 소련 체제를 거치며 잠수함이 노후화돼 지금은 쓸 만한 게 없다고 한다. ▷폴란드가 추진 중인 신형 잠수함 도입 사업인 ‘오르카(Orka) 프로젝트’는 ‘오제우’를 계승한 명칭이다. 오르카는 바다의 지능적 포식자로 유명한 범고래를 뜻한다. 강력하고 은밀한 작전 능력을 갖춘 잠수함 체계를 갖추겠다는 취지다. 3척 수주 규모가 3조4000억 원에 달하고, 유지 보수까지 포함해 8조 원 규모인 대규모 방산 사업이다. HD현대와 한화오션이 단일팀으로 수주에 나섰고,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도 무기 수출 세일즈 특명을 받고 폴란드로 출국할 예정이다. ▷한국은 2011년 인도네시아에 잠수함을 수출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독일에서 전수받은 기술로 만든 것이지만 이번에 폴란드 잠수함을 수주한다면 순수 국산 기술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첫 사례가 된다. 게다가 폴란드와 수출 계약이 체결된 K9 자주포나 K2 전차 등 육군 전력에 이어 첨단 해군 전력까지 유럽에서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현재 폴란드는 쇼트리스트(적격 후보군) 발표를 앞둔 가운데, 60조 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선 우리가 독일과 함께 최종 후보군에 이미 올라 있다. ▷오르카 프로젝트에는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도 뛰어들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에 한국이나 미국산 대신 유럽산 무기를 사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K잠수함의 기술력은 위협적이다. 배터리 강국답게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해 수중 작전 지속 시간을 획기적으로 높였고, 건조 속도는 유럽에 비해 1.5∼2배가량 빠르다. 무엇보다 한미 조선 협력인 ‘마스가’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이 우리의 군함 건조 능력을 세계 최고로 인정한 것도 수주 경쟁에서 플러스 요인이 될 듯하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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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트럼프 “이렇게 조용한 방에 있는 건 처음”

    미국과 전 세계에서 복무하는 미군 장성은 830여 명이다. 이들이 어깨에 단 별을 다 합치면 1500개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미국 버지니아주 해병대 기지에 이 별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전군 장성급 지휘관 회의를 소집했기 때문이다. 4성 장군인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도 참석했다. ▷미 대통령과 국방장관, 전군 지휘부가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건 전례를 찾기 힘들다. 그 자체가 중대한 안보 위협이기 때문이다. 지휘관들이 세계 각지의 군사기지를 비워두는 것도 문제지만 군 수뇌부가 한 건물에 있으면 미국을 노리는 테러 세력에게 그만한 기회가 없다. 그런 위험까지 무릅쓰고 왜 회의가 소집됐는지 며칠 전부터 관심이 쏠렸다. 트럼프 2기 출범 후 고위 장성들이 줄줄이 해임된 걸 고려할 때 히틀러가 1934년 독일군 장군들을 모아놓고 충성 맹세를 요구했던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1500개의 별들 앞에 선 헤그세스 장관은 이발과 면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턱수염과 긴 머리를 해선 안 되고, 뚱뚱한 군인들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중대장이 병사들에게 할 법한 내무생활 훈시였다. 잔뜩 군기를 잡았지만 정작 본인은 예멘 후티 공습 관련 기밀 정보를 개인 메신저로 가족들에게 유출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들은 주 방위군 소령으로 잠시 근무했던 헤그세스 장관의 정신교육을 묵묵히 들었다. 그런 얘기였으면 그냥 이메일로 보내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미 언론은 지적했다. ▷무대에서 바통을 이어받은 트럼프는 불법 이민 단속을 자화자찬하면서 장군들에게 미국 내부로부터의 전쟁에 나서자고 했다. 단속 반대 시위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대도시들을 군대 훈련장으로 사용하라고도 했다. 트럼프는 “내 말이 마음에 안 들면 나가도 된다”면서도 “물론 그러면 당신들의 계급과 미래가 사라지겠지만…”이란 단서를 붙였다. 내 정책에 따르기 싫으면 알아서 옷을 벗으라는 경고로도 들리는 말이었다. ▷이날 회의는 트럼프와 헤그세스의 정치 토크쇼에 가까웠다. 세계 최강 군대의 지휘관들을 앉혀놓고 정신교육 하는 것 자체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 같다. 하지만 트럼프 마음대로 안 된 게 있었다. 2시간이 넘는 연설 내내 830여 명의 장군들은 단 한 번도 박수를 치지 않았고 시종일관 무표정했다. 미 언론에선 사실상의 묵언 저항이란 평가도 나왔다. 트럼프가 “이렇게 조용한 방에 있는 건 처음”이라고 했을 정도다. 군 경험이 일천한 국방장관과 군 미필인 대통령의 모욕적 언사 앞에서 평정심을 지키는 게 장군들이 치른 ‘내부’와의 전쟁이었을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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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신광영]내 수술 동의서는 누가 사인해줄까

    얼마 전 다리 절단 수술을 집도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가 겪은 일이다. 그의 70대 환자는 당뇨 합병증으로 하루가 다르게 다리가 썩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무릎 아래로 잘라 내려면 하루빨리 수술해야 했다. 하지만 환자에게 치매 증상이 있어 수술 동의를 받기 어려웠다. 큰 수술이라 보호자 동의서라도 받아야 하는데 아들은 연락 두절 상태였다. 수소문한 끝에 조카 연락처를 알아냈지만 며칠째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러다간 절단 수술 부위가 허벅지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환자 담당 사회복지사까지 나선 끝에 조카와 겨우 연락이 닿았다. 그는 의료진의 읍소에 마지못해 서명하면서 앞으론 어떤 일로도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피보다 진한 사이여도 가족 아니면 불가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지 않은 환자는 수술방에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병원에선 수술 동의 절차를 중시한다. 환자에게 수술 내용과 합병증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는 건 의료진의 법적 의무인 동시에 의료 사고에 대비한 방어책이기도 하다. 환자가 멀쩡할 땐 직접 서명하면 되지만 응급 상황으로 의식이 없거나, 치매 등으로 판단력이 온전치 않은 때도 있다. 이 경우 보호자가 대신 서명하는데 보호자의 범위가 좁다. 부모 자식이나 배우자, 생계를 같이 하는 친족 등 민법이 규정한 가족으로 제한돼 있다. 아무리 오랜 세월 함께한 ‘피보다 진한’ 관계여도 법적 가족이 아니면 일분일초가 급할 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가족이라면 환자를 책임질 뜻이 있을 거란 전제를 깔고 있는 게 지금의 제도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다. 가족과 연을 끊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서명인 부재 상황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80대 치매 남편을 간병해 온 70대 여성이 얼마 전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 동의서를 받아야 했지만 자식들이 미국에 살고 있어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온 여성의 절친들은 발만 동동 구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고령화로 노부부가 서로를 돌보는 가정이 늘고 있어 이런 일들은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올해 전체 가구의 42%까지 늘어난 1인 가구는 또 어쩔 것인가. 갑자기 아프거나 위급할 때 누가 수술 동의서를 써주고 돌봐줄 것이냐는 이들의 가장 큰 근원적 공포다. 보호자가 민법상 가족에 묶여 있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진다. 책 ‘친구를 입양했습니다’의 저자 은서란 씨는 5년간 함께 산 친구를 딸로 입양했다. 둘 중 하나가 아플 때 도울 수 있으려면 그 방법뿐이었다고 한다. 젊은 세대는 이런 대책이라도 세우지만 1인 가구 중 가장 비중이 큰 세대는 70대 이상 노년층이다. 시대착오적인 수술 동의 제도의 직격탄을 가장 먼저 맞는 건 노인들이다. 미국이나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가족뿐 아니라 친한 친구도 환자 대신 의료적 결정을 할 수 있게 열어놨다. 우리 역시 환자가 친밀한 사람을 사전에 대리인으로 지정하면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있도록 2022년 법 개정을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친분을 어떻게 입증하느냐, 의료 사고 나면 손해배상은 누가 받느냐는 등의 논란 속에 흐지부지됐다.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두 성인이 합의하면 가족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자는 생활동반자법도 발의돼 있지만 동성애를 용인한다는 일각의 반대에 발목 잡혀 있다. 그사이 가족의 범위를 넓혀 서로 지탱해주는 관계를 늘리자는 본질은 흐릿해지고 있다.돌봐줄 관계 못 넓히게 막으면 모두가 피해 의료는 시간이 생명인 경우가 많다. 수술 동의서를 제때 받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환자가 많아지면 당사자는 불행해지고, 의료진은 최적의 치료를 할 수 없다. 정부 역시 짊어져야 할 복지 부담이 커진다. 법률상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을 병원 밖으로 밀어내는 경직된 제도 속에선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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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진짜 같아 더 문제인 AI 가짜 의사

    비만, 노화 같은 인류의 난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고 유혹하는 ‘의사’들 영상이 요즘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적잖이 올라온다. “아이들 살 빼주고 싶으면 식단, 운동 말고 이것부터 하세요.” “하루에 담배 두 갑씩 피워도 폐가 신생아처럼 깨끗해요. 소변으로 싹 배출되니까.” “이거 쓰고도 기미 안 없어지면 100만 원 드릴게요.” 깔끔한 외모에 중후한 말투로 특정 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의 효능을 강조한다. 흰 가운이나 수술복 차림인 이들에겐 ‘S대 출신 소아비만 전문의’ ‘강남 E산부인과 배OO 원장’ 같은 자막이 따라붙는다. 권위 있는 의사인 듯 보이지만 인공지능(AI)으로 만든 가짜 의사들이다. ▷초기엔 표정이 어색하고 로봇 같은 목소리에 가짜인 게 금방 티가 났다. 하지만 AI가 계속 고도화되면서 세상에 없던 인물을 찍어내는 능력도 정교해져 병원에서 흔히 볼 법한 의사처럼 감쪽같아졌다. 요즘엔 챗GPT 등에 명령어 입력 요령을 가르치는 프롬프터 학원까지 생기고 있는데 이런 강의 한두 번이면 누구나 그럴듯한 가짜 의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영상 대본도 AI가 전문의 냄새 풀풀 나게 대신 써준다. ▷가짜 의사들은 10kg 이상 쭉쭉 빠지는 다이어트 약이나 아이들 키가 쑥쑥 자라게 해주는 보조식품 같은 걸 광고하는데 실제 효과는 거의 없다고 한다. 솔깃한 얘기일수록 의학적으론 터무니없는 허위 정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유해성 검증이 안 된 약품도 많아 절박한 처지의 난치병 환자들이 섣불리 썼다간 병이 악화될 위험도 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AI 가짜 의사들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피해 사례 수집에 나섰다. ▷의료인은 이 제품 좋으니 믿고 쓰라고 홍보하는 것 자체가 법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AI로 생성한 의사는 사람도 아니고 의료인도 아니어서 처벌하기 어렵다. 최근 법원에서 AI로 성인 음란물을 만들어 유포한 남성에 대해 영상 속 여성이 실존하는지 알 수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한 게 비슷한 사례다. 가짜 의사를 약품 광고에 활용한 업체라도 찾아서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이런 영상들은 알고리즘을 타고 노출됐다가 금방 사라져 버린다. 치고 빠지기식으로 소비자를 유인해 빠르게 제품을 팔아치운 뒤 구매 페이지를 폐쇄하는 경우도 많아 추적이 쉽지 않다. ▷누구나 AI의 힘을 빌려 전문가 흉내를 낼 수 있게 되면 진짜와 가짜가 모호해지는 불신의 시대가 열린다. AI 덕에 시간을 많이 단축하게 됐지만 뒤탈을 피하려면 의심하고 확인하는 데 손품 발품을 팔아야만 한다. 시간을 아낀 만큼, 안 써도 될 시간을 새로 내야 하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악용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그걸 걸러내야 하는 수고가 뒤따르니 노력의 총량은 결국 불변하는 것 같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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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이우환 그림, 엇갈리는 진품 감정

    “화가는 내 작품을 보면 1분도 안 돼 바로 안다. 전부 내 작품이 맞다.” 이우환 화백이 2016년 프랑스에서 날아와 서울경찰청에 압수된 작품 13점을 확인한 뒤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당시 경찰은 이 화백의 그림 위작을 유통시켜 온 일당을 검거해 수사 중이었다. 위작범들이 “내가 그린 가짜”라고 하는데 이 화백은 “채색, 호흡, 리듬 모두 내 것이다. 그건 지문과 같아서 베낄 수가 없다”며 진품 주장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판정은 법원이 했다. 감정 결과와 위작범들 자백을 근거로 일부 작품에 대해 위작이라고 판결했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사건은 그와 정반대다. 1990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했던 이 작품을 두고 위작 논란이 일자 감정기관들이 진품으로 판정했는데 천 화백이 반발했다. 그는 “내 작품이 아니다. 자기 자식도 못 알아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작가만큼 진품을 잘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해외 거장들이 진품이라고 확인해 준 작품들 중 위작으로 밝혀진 사례가 없지 않다. 진품 감정은 인공지능(AI)도 아직 못하는 초고난도 작업이다. ▷미술품 감정은 전문가의 경험, 직관을 통한 안목 감정과 X-레이 등 과학적 기법으로 하는 객관적 감정이 있다. 감정가의 경륜에만 기대기엔 실력이 제각각이고, 과학적 감정에도 한계가 있다. 국내 미술품 감정은 한국고미술협회, 한국화랑협회,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등 민간에서 한다. 감정가들이 화랑 관계자나 교수, 작가여서 업계와의 이해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긴 어렵다. 감정위원 명단은 로비 우려 탓에 비공개되고, 전문가들 사이에 공통된 감정 기준도 정립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상민 전 검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2024년 총선 공천 대가로 건넨 혐의를 받는 이 화백 그림은 진위 판단이 엇갈렸다. 한쪽은 대만 경매에 처음 나왔을 때 수백만 원에 불과했던 그림이 이후 주인이 바뀌며 가격이 30∼40배나 뛰어 위작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반면 해당 그림에 진품 감정서를 발급했던 기관은 최초 경매에서 작가의 명성이나 작품 가치를 잘 모르고 헐값에 나왔을 가능성이 있고, 실제 싼값에 나왔던 대가의 작품이 추후 재발견되는 사례가 있다고 했다. ▷이 화백은 요즘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 특검에 진위에 대한 의견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정리되긴 어려워 보인다. 중요한 건 김 전 검사가 1억4000만 원 현금을 주고 그림을 샀다는 사실이다. 그는 “김 여사 오빠 돈으로 대신 구매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적어도 이 화백이 그린 진품이라고 믿고 샀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만약 인사 청탁 목적으로 억대의 그림을 사준 것으로 확인된다면 진품이든 위작이든 매관매직의 죄가 가벼워지진 않는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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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尹 영치금, 50일 동안 3억

    영치금이 풍족하면 감방 생활의 질이 달라진다고 교정시설 경험자들은 말한다. 세수할 때 누구는 비누를 쓰는데 누구는 폼클렌징으로 씻고, 겨울에도 누구는 모포 한 장으로 버티는가 하면 두툼한 극세사 이불을 덮는 수형자도 있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게 영치금이다. 그래서 수감자들 세계에선 영치금이 두둑한 이들이 ‘범털’(재력과 권력을 가진 수형자)로 통한다. 반면 영치금 계좌가 비어 있는 재소자들은 ‘법자’(법무부의 자식)라면서 자조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재소자가 영치금을 무한정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 의식주 외에 필요 물품을 최소한으로만 구입할 수 있다. 돈 쓸 자유를 제한하는 것도 처벌의 일환이고, 수용자들 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어 상한선을 두고 있다. 수감 기간 중 보유할 수 있는 영치금은 400만 원을 넘을 수 없다. 음식물 사는 데 쓸 수 있는 돈도 하루 최대 2만 원이다. 옷, 신발, 의료용품 등은 액수 제한이 없다. ▷구치소에선 400만 원 넘는 돈은 쓸 수도 없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받은 영치금은 3억1000만 원에 달한다. 재구속된 7월 10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약 50일간 받은 돈이 그 정도다. 전국 교정시설 수감자 6만여 명 중 압도적 1위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부인 정경심 씨도 2억4000만 원의 영치금을 받은 적이 있지만 2년간 누적액이어서 윤 전 대통령에게는 한참 못 미친다. ▷윤 전 대통령이 처음 구속됐던 올 1∼3월만 해도 영치금은 450만 원이 전부였다. 김건희 여사가 50만 원, 장모 최은순 씨가 100만 원을 보냈다. 재수감 이후 영치금이 크게 불어난 건 김계리 변호사와 전한길 씨가 영치금 계좌를 알리면서부터다. 이들은 등록 재산이 거의 80억 원인 윤 전 대통령을 두고 “창졸지간에 돈 한 푼 없이 들어가셔서 아무것도 못 사고 계신다” “고독한 옥중 투쟁을 하고 있다”며 모금을 호소했다. 그러자 ‘윤 어게인’ ‘계몽시켜줘 감사하다’는 등의 메시지와 함께 3억 원이 넘게 모였다. 사실상 윤 전 대통령을 향한 정치적 후원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보관 한도인 400만 원이 채워질 때마다 개인 계좌로 옮겼다. 구치소에서 생필품이나 간식 등을 사는 데 쓴 돈은 200만 원 정도다. 나머지 대부분은 ‘변호사비 및 치료비’ 명목으로 출금됐다고 하는데 실제 그 용도로 얼마나 쓰였는지는 알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이 영치금을 외부로 이체한 횟수는 50일간 80여 차례에 달한다고 한다. 수사와 재판을 모두 거부하고, 체포영장 집행에도 불응하던 그가 영치금 관리만큼은 하루에도 몇 번씩 꼬박꼬박 하는 것 같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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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만년필, 거북선, 퍼터… 마음을 담은 선물

    미국 대통령 집무실인 백악관 ‘오벌 오피스’는 트럼프 취임 후 외국 정상들에게 부담스러운 무대가 됐다. 그곳에서 트럼프는 상대국 정상을 옆에 앉혀놓고 일장 훈계를 하거나 면박 주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TV로 중계되는 가운데 그런 ‘봉변’을 당했다. 그래서 미국 방문을 앞둔 정상들로선 트럼프 다루는 법을 예습하지 않을 수 없다. ‘압박에 말려들지 말라’ ‘원하는 선물을 안겨라’ ‘칭찬은 기본, 필요하면 아부하라’는 게 핵심 내용이다. ▷백악관을 찾은 해외 정상은 오벌 오피스에 가기 전 바로 옆 ‘캐비닛 룸’에 먼저 들러 방명록을 쓴다. 이재명 대통령도 25일 한미 정상회담 때 이곳에 들렀다. 이 대통령이 방명록 쓰는 동안 트럼프가 뒤에서 유심히 바라본 물건이 있었다. 한국 장인이 두 달간 원목을 깎아 만든 이 대통령의 만년필이었다. “펜이 멋지다. 그거 도로 가져갈 건가”라며 관심을 보이자 이 대통령은 즉석에서 선물하며 “평소 하시는 어려운 서명에 유용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서명은 ‘지진계 그래프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크고 길고 복잡하다. ▷이 대통령이 애초에 챙겨 간 선물은 금빛 거북선이었다. 국내 최대 조선사인 HD현대의 기계조립 명장이 만든 모형이다. 한국의 조선 기술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마스가(미국의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뜻을 담았다. ‘골프광’ 트럼프를 위해 그의 체격과 퍼팅 자세를 연구해 골프 퍼터도 만들어 갔다. 트럼프 이름과 함께 대통령 역임 차수인 45, 47도 새겨 넣었다. ▷회담에선 트럼프 맞춤형 칭찬 공세가 이어졌다. 이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하자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간 트럼프에게 노벨 평화상 수상을 언급하며 환심을 사려 한 정상들은 많았다. 이 대통령은 막연한 립서비스 대신, 노벨 평화상 수상의 관건이 될 수 있는 북핵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행사할 것을 청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 대통령은 정말 훌륭한 지도자다. 미국의 전적인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상대가 원하는 걸 주고 내가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게 외교라면 선물과 칭찬은 아낄 일이 아니다. ‘선물 외교’는 각국이 소프트파워를 과시할 기회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집무실에서 정상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한다는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은 1880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당시 미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이다. 일본이 100여 년 전 선물로 가져온 벚꽃 나무는 지금도 워싱턴의 봄을 수놓는다. 요즘처럼 관세 협상으로 거센 파도가 치는 때라면 트럼프의 마음을 정확히 읽은 선물이야말로 가장 가성비가 높은 외교일 수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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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트럼프 비판한 옛 참모들 하나둘 수사대상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기 행정부 때 참모들에게 얼마나 조롱 대상이었는지는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에 잘 묘사돼 있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은 갓 부임한 볼턴에게 “내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은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고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무대 뒤에선 “트럼프는 허풍쟁이”라고 비하하곤 했다. 볼턴 역시 트럼프에 대해 “제멋대로 구는 무식쟁이”라고 썼다. ▷트럼프가 볼턴을 안보보좌관에 기용할 때만 해도 둘 사이는 돈독했다. 1기 행정부 초기 ‘어른들의 축’으로 불리던 참모들이 트럼프의 충동적 외교 정책에 번번이 제동을 걸자 그 대안으로 불러들인 게 강경 매파인 볼턴이었다. 볼턴은 수시로 트럼프와 독대하고 각국 정상회담 때마다 배석하던 최측근이었다. 그랬던 볼턴이 트럼프와의 불화 끝에 경질된 후 작심하고 쓴 회고록이었기에 파장이 컸다. 게다가 출간 시점이 미 대선을 불과 5개월 앞둔 2020년 6월이었다. 트럼프는 기밀 누설로 감옥에 갈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출간을 막진 못했다. ▷그 경고대로 미 법무부는 볼턴을 제소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이 당선되면서 수사는 종결되고 소송도 취하됐다. 출간을 둘러싼 소동이 그렇게 끝나는 듯했지만 4년 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다시 반전됐다. 연방수사국(FBI)은 최근 볼턴의 자택을 기밀 정보 유출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볼턴은 며칠 전에도 미-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가 푸틴에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이에 트럼프는 “저급하고 비애국적인 인물”이라며 비난했다. ▷이 수사를 지휘하는 캐시 파텔 FBI 국장은 ‘친(親)트럼프’ 인사다. 2023년 ‘정부의 깡패들(Government Gangsters)’이란 책을 내 트럼프의 눈에 들었다. 책에는 ‘행정부의 딥스테이트 회원들’이란 제목의 60명 명단이 실렸다. ‘딥스테이트’는 트럼프가 자신의 국정 운영을 방해하는 엘리트 관료 집단을 지칭해 써온 말이다. 그 60명 중 한 명이 볼턴이다. 함께 언급된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4명도 수사를 받고 있다. 명단에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등 민주당 인사들뿐 아니라 트럼프 밑에서 일하다 갈등을 빚었던 참모들이 대거 포함됐다. ▷명단 속 60명 중 5명이 수사를 받게 되자 트럼프의 정적을 추린 블랙리스트란 평가가 나온다. 더구나 명단 작성자가 FBI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명단에 오른 사람들로선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배신하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전례를 만드는 셈이어서 지금의 트럼프 참모들에겐 충성심이 흔들려선 안 된다는 위협처럼 느껴질 것 같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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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5년 7개월 만에 무죄 확정

    문재인 정부의 임기 반환점이던 2019년 말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여권의 갈등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로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던 윤 총장은 그 와중에 울산지검에서 맡고 있던 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가져와 대대적인 수사를 예고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청와대가 대통령의 30년 지기인 송철호 후보를 울산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경쟁 후보인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에 대해 ‘하명 수사’를 지시하는 등 개입했다는 의혹이었다. ▷이 사건은 윤 당시 총장이 중용했던 검사들에게 맡겨졌다. 그 후 3개월 만에 수사팀은 송 전 후보가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에게 상대 후보인 김 의원에 대한 수사를 청탁했고, 청와대 백원우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비리 첩보를 경찰에 내려보내 수사하도록 했다며 이들을 기소하려 했다. 기소 여부를 놓고 서울중앙지검에서 의견이 엇갈리자 윤 당시 총장이 직접 나서 기소를 진행시켰다. ▷3년 10개월 만에 나온 1심 판결은 유죄였다. 재판부는 송 전 후보와 황 전 청장에게 징역 3년 실형을 선고하며 “경찰과 대통령비서실의 공적 기능을 사적으로 이용해 선거에 개입한 행위는 죄책이 무겁다”고 판시했다. 여타 피고인들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올 2월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서울고법은 유죄가 의심되긴 하지만 하명 수사를 지시했다는 직접 증거가 없고, 1심에서 핵심 증거로 인정했던 증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그 증언은 송 전 후보 선거 캠프에 참여했던 더불어민주당 관계자의 진술이었다. 그는 송 전 후보에게서 김 의원 관련 수사를 자신이 황 전 청장에게 청탁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1심에서 증언했다. 하지만 2심은 이 말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그가 일부 진술을 번복했고, 구체적인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으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 2심 재판부가 3차례 소환했지만 출석을 거부했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14일 최종 무죄를 확정지었다. 핵심 증언이 흔들린 게 결정적이었던 셈인데, 검찰이 그 진술 외엔 유죄를 입증할 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로 기소했다는 뜻이 된다. ▷무분별한 검찰권 행사로 인한 피해를 감안하면 수사와 기소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수사라인은 갈등을 빚던 정치 권력을 향해 칼을 뽑아 들듯 수사를 했고, 한 사람의 진술 증거를 앞세워 기소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한다고 하는데 5년 7개월간의 재판 끝에 대법원은 이번 사건 공소장에 큰 구멍이 있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 결과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느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당시 검찰총장과 수사 검사들은 무리한 기소로 오랜 기간 고통받았을 피고인들에게 이제라도 미안함을 느껴야 할 것이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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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89년 만에 제 이름 찾은 ‘기테이 손’과 ‘쇼류 난’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는 시상식 직후 일본 측이 마련한 격려 만찬에 가지 않았다. 대신 베를린의 한 두부 공장으로 향했다. 교민 10여 명이 조촐한 축하 파티를 열어줬다. 음식이라곤 공장에서 만든 두부와 김치가 전부였다. 공장 벽엔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조금 전 시상식에서 가슴의 일장기를 월계수로 가렸던 손 선수는 그날의 소회를 훗날 자서전에 적었다. “잃었던 조국의 얼굴을 대하는 것 같아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감시의 눈을 피해 태극기가 살아 있듯 우리 민족도 살아있단 확신이 들었다.” 그 두부 공장의 주인은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 안봉근이었다. ▷승전보를 안고 돌아온 24세 청년은 방송에서 일본을 찬양하는 인터뷰를 강요당했다. “저는 손기정입니다. 이 승리는 내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일본 국민의 승리라고 하겠습니다.” 그의 유품인 한 음반에 이런 육성이 담겨 있었는데 “크게 읽어, 크게 읽어”라고 지시하는 목소리가 함께 녹음됐다. 손 선수의 당시 인터뷰는 말한 것이 아닌 읽은 것이었다. ▷그해 베를린 올림픽 주경기장엔 ‘승리자의 벽’이 들어섰다. 메달리스트들의 이름과 국적이 하나하나 새겨졌다. 손 선수는 ‘마라톤 우승자 일본인 손’으로 각인됐다. 그 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에도 국적은 일본, 이름은 기테이 손(Kitei Son)으로 등재됐다. 우리 국회와 체육계의 줄기찬 수정 요구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IOC는 손 선수를 바꿔주면 식민 지배를 겪은 다른 국가들도 줄줄이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40여 년에 걸친 끈질긴 설득에 IOC도 결국 화답했다. 최근 홈페이지 선수 명부에서 손 선수의 일본식 이름 바로 아래 본명과 한국 국적이 병기된 것이다. 출전 당시 강제로 일본 국적과 이름을 써야만 했다는 점도 명시됐다. 소개 글에는 손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한국 이름으로 서명했고, 출신국을 묻는 질문에 한국이라고 답하며 별개의 나라라고 강조했다는 설명이 담겼다. 손 선수와 나란히 출전해 동메달을 땄던 남승룡 선수도 일본식 이름 ‘쇼류 난(Shoryu Nan)’ 아래에 본명과 한국 국적이 병기됐다. ▷2002년 별세한 손 선수는 “나를 기억하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강요된 국적과 이름을 걷어내고 한국인 손기정으로 기록되기를 그만큼 염원했다. 김구 선생은 1946년 8월 손기정 우승 10주년 행사에서 “나는 손 군 때문에 세 번 울었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의 우승 소식에 감격해서 울었고, 헛소문이지만 그가 일본군이 되어 전사했다는 소식에 슬퍼서 울었고, 광복 후 그와 다시 만나 기뻐서 울었다.” 김구 선생이 살아있었다면 손 선수가 89년 만에 제 이름을 되찾은 게 후련해서 또 울었을 것이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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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이종섭 적격’ 미리 써놓고 서명만 받은 공관장 심사위

    채 상병 수사 외압 사건 피의자인 이종섭 전 주호주 대사에 대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국금지를 했던 2023년 12월 8일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바쁘게 움직였다. 이 전 대사에게 주호주 대사 내정 사실이 전달된 것도, 부임 1년도 안 된 김완중 당시 대사에게 교체 방침이 통보된 것도 그날이다. 하루 전엔 이원모 전 대통령실 비서관이 외교부에 새 대사 임명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을 최근 특검이 확보했다고 한다. 통상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출금할 땐 도주 가능성에 대비해 은밀히 진행한다. 이런 밀행성이 이 전 대사 출금에선 지켜지지 않은 정황이 많다. ▷출금 한 달 뒤인 지난해 1월 이 전 대사에 대한 외교부의 공관장 자격심사위원회가 열렸는데 이때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행정안전부 공무원 등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심사위는 대사 후보자의 업무 능력과 도덕성을 검증한다. 부적격 결정이 나오면 내정 취소다. 위원 7명 이상이 출석해야 하는데 이 전 대사에 대해선 대면 회의 없이 서면으로만 진행됐다. 게다가 서류엔 이미 ‘적격’으로 적혀 있고, 부적격 의견을 낼 공란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답정너’ 심사표를 받은 위원들은 빈칸에 서명만 했다. ▷심사 당시 이 전 대사는 공수처가 출국을 막아 놓은 상태였다. 대사가 해외에 나갈 수 없으니 ‘적격’일 수 없는 후보자였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임명을 강행한 뒤 법무부를 통해 출금까지 해제해줬다. 임명 전엔 출금 사실을 몰랐다고 하지만 믿기 힘든 얘기다. 수사기관의 출금 요청을 승인하는 부처가 다름 아닌 법무부다. 또한 대사 임명 전 출입국에 문제가 없는지, 수사 대상인지도 확인하도록 돼 있다. ▷졸속 심사를 거쳐 호주에 부임한 이 전 대사는 11일 만에 귀국했다. 지난해 3월 말 총선을 앞두고 ‘런종섭’ 사태가 최대 악재로 부상하자 그의 귀국을 위한 회의가 급조된 것이다. 방산 협력을 내세워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폴란드 등 6개국 공관장만 급히 불렀는데 이렇게 특정 공관장들만 국내로 소집한 전례가 없다. 이 전 대사는 회의 다음 날 비판 여론에 떠밀려 사임했다. 대사 재임 기간이 3주도 안 된다. 호주에선 “외교적 신뢰 훼손”이란 비판이 일었다. ▷대사 임명을 둘러싼 넉 달간의 소동의 배후는 한 사람을 가리킨다. ‘VIP 격노’가 있었던 회의 도중 이 전 대사에게 ‘02-800-7070’으로 전화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은 윤 전 대통령이 이 통화에서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이 전 대사를 질책했다고 특검에 진술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의 수사 외압 여부를 잘 아는 이 전 대사를 빼돌리기 위해 공관장 심사위원들을 거수기로 만들고 공수처의 출금 조치를 무력화시켰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대통령 한 사람의 격노에 국가 시스템이 이처럼 허망하게 무너져선 안 된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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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남 일 같지 않은 美 ICE 불법체류자 단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만인 올 2월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을 경질했다. 불법 체류자 단속 부진이 이유였다. 연간 100만 명 추방 공약을 달성하려면 하루 3000명씩 내보내야 하는데 크게 못 미친 것이다. 조 바이든 정부 때 하루 추방 인원은 그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반이민 정책 설계자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기존 단속 관행을 버려라. 그냥 나가서 체포하라”고 ICE를 다그쳤다. ▷단속의 불똥은 한인들에게 튀고 있다. 미 한인 성직자의 딸이 최근 ICE 요원들에게 기습 체포됐다. 미 퍼듀대 재학생 고연수 씨(20)가 뉴욕 이민법원에서 나오던 길에 벌어진 일이다. 고 씨는 4년 전 어머니를 따라 종교인 가족 비자로 입국했고 올해 말까지 체류 자격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모친이 교회를 옮기면서 비자 문제가 생겼고, 고 씨까지 비자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러 법원에 갔다가 체포된 것이다. ▷요즘 미 이민법원에선 실적 압박을 받는 ICE의 함정 단속이 성행한다고 한다. 영주권 심사, 비자 갱신 등을 위해 이민자나 유학생이 몰리는 곳에 숨어 있다가 영장도 없이 낚아챈다는 것이다. 법원에 가야 소명을 할 텐데 무서워서 못 갈 판이다. 지난달에는 동생 결혼식을 위해 한국에 방문했다가 귀국하던 한국 국적 40대 과학자가 미 공항에서 체포됐다. 그는 35년 거주한 미 영주권자이자 텍사스A&M대 박사과정생이다. ICE는 구금 사유도 알리지 않고 있다. 가족들은 14년 전 소량의 대마초를 소지했다가 경범죄로 기소됐던 전력을 문제 삼은 것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다. ▷미 불법 이민자 1100만 명 중 한국계는 15만 명(1.4%)으로 추정된다. 유학 또는 관광 비자로 갔다가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얻지 못한 채 계속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합법적으로 입양됐지만 양부모가 국적 신청을 제때 안 한 한인 입양인도 2만 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 체류 자격이 없을 뿐 성실히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다. 이민 당국도 이들까지 문제 삼진 않았지만 이젠 달라졌다. 학교 병원 교회는 ‘민감 구역’으로 지정해 단속을 자제하던 원칙이 사라졌고 로스앤젤레스 등 민주당 소속 단체장이 집권해 불법 체류자에 관대한 ‘피난처 도시’들이 공략 대상이 됐다. ▷트럼프는 ‘살아선 탈옥할 수 없는 감옥’으로 악명 높은 앨커트래즈 교도소를 모델로 불법 체류자 수용소를 만들었다. 악어 떼로 둘러싸인 플로리다의 늪지대에 ‘악어 교도소’를 세웠다. 수감자들은 자진 출국 서류에 서명할 때까지 나갈 수 없다. 그들 중엔 범죄 기록이 없는 이민자들이 적지 않고, 10대 청소년도 있다고 한다. 트럼프의 ‘불법 체류자 사냥’이 계속된다면 머잖아 악어 교도소에 한인이 갇혔다는 소식이 들려올 수도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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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7년 허송… 길 잃은 고교학점제

    고교학점제는 문재인 정부의 1호 교육 공약이었다. 미국 하이틴 영화에서 보듯 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각자 원하는 수업을 들으러 부산히 오가는 장면을 우리 학교에서도 실현해 보자는 것이었다. 취지엔 많이들 공감했다. 학생 스스로 적성과 진로에 맞게 배울 과목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 고질적 입시 위주 교육에서 탈피하자는 데 누가 반대하겠나. ▷하지만 2018년 추진 초기부터 우려가 터져 나왔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다양하게 개설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가르칠 교사가 부족했다. 학교 간 격차도 문제였다. 일부 사립고나 명문고는 강사진과 재정이 풍부해 해볼 만했지만 공립고나 지방에선 쉽지 않았다. 학생들도 불안해했다.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꾼다고 하는데 그 경우 대입 학생부 전형에서 어떻게 변별력을 갖출 것이며, 수능 공부는 결국 학원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혼란스러워했다. ▷고교학점제와 정교히 맞물리도록 입시 정책을 손봤어야 할 정부는 오히려 역주행했다. 학생별 교과 선택과 성취 내용이 중시되는 고교학점제는 수시 전형과 부합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조국 사태 이후 대입 공정성을 높인다며 수능 위주인 정시 비중을 40%로 끌어올렸다.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꾸고 외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당초 계획도 윤석열 정부로 바뀌며 무산됐다. 윤 정부는 게다가 대학 무전공 선발을 확대해 고교생들이 진로 탐색보단 성적 올리는 데 더 매달리도록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제도 안착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어야 할 7년이 그렇게 어영부영 흘렀다. ▷올해부터 전면 시행된 고교학점제는 불과 한 학기 만에 폐지 여론이 커지고 있다. 학생들 수요에 맞게 수업이 개설되지도 않은 데다 수능 공부를 위해 사교육에 더 의존해야 한다고 한다. 일부 학교에선 ‘심화 수학’이나 ‘EBS 수능 특강 문제 풀이’ 등 제도 취지와 안 맞는 과목들이 개설됐다. 또 1학년 때 공통으로 배우는 국영수가 내신 변별력에 큰 영향을 미치다 보니 중학생 때부터 선행학습에 내몰리는 부작용도 있다. 입시 제도는 그대로 둔 채 교육 과정만 바꾸니 삐걱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사들은 정부가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사 수를 줄여 놓고 과목은 대폭 늘렸다면서 “인프라 없이 껍데기만 도입한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교육 정책이 자리 잡으려면 최소 10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눈길 끄는 정책을 내놓고 반발에 부딪혀 지지부진하다 다음 정부에서 또 새 정책을 내놓는 패턴이 반복돼왔다. 윤석열 정부가 졸속으로 추진했던 AI 교과서가 이번 정부 들어 폐기될 처지에 놓인 것도 그런 사례다. 거창한 ‘1호 교육 공약’보단 기존 정책이라도 완성도 있게 매듭지어 학교의 혼란을 줄여주는 게 국민을 더 생각하는 정부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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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노태우 비자금 환수 의지 밝힌 법무장관-국세청장 후보자

    “재계 저승사자라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실력 발휘 한번 해야 하지 않겠어요?” 임광현 국세청장 후보자가 국회의원이던 지난해 7월 강민수 당시 국세청장 후보자 청문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세무조사를 촉구하며 했던 말이다. 서울청 조사4국장 출신인 임 후보자는 그 후 1년 만인 16일, 강 청장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노태우 비자금 추적 의지를 밝혔다. 같은 날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인사청문회에서 여당 의원의 비자금 환수 주문에 “명심하겠다”고 했다. ▷노태우 비자금은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 2심에서 꺼내든 카드였다. 노 전 대통령이 1991년경 사돈인 고 최종현 선대 회장 측에 300억 원을 줬고, 그게 그룹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는 주장이었다. 노 관장 측은 어머니 김옥숙 여사가 ‘선경 300억 원’이라고 쓴 메모와 함께 SK 명의 약속어음 관련 사진 자료를 증거로 냈다. 이게 인정되면서 1심에서 660억 원이던 노 관장의 재산 분할액이 1조3800억 원으로 크게 불었다. ▷최 회장 측은 재판에서 “비자금을 받은 사실이 없다. 약속어음은 노 전 대통령 측 요구로 품위 유지비를 제공하려 했던 것”이라고 했다. 최 선대 회장을 보좌했던 손길승 전 SK 회장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경제비서관이 퇴임 후에도 생활비를 지속 제공한다는 증표로 300억 원을 요구해와 어음으로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 측은 또 사실이 아니지만 설령 300억 원이 전달됐다고 하더라도 불법 비자금일 수 있는 돈을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한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후 전 재산이 5억여 원이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불과 3년 만에 60배나 되는 돈을 사돈에게 줬다는 건 합법적 방식으론 거의 불가능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2심 판결로 노 관장의 재산분할금이 20배 넘게 오르자 역풍이 만만치 않았다. 노태우 비자금이 모두 추징된 줄 알았는데 노 관장의 주장대로 만약 300억 원이 실제 존재한다면 불법 비자금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고, 이런 점에서 국민적 분노가 촉발되기도 했다. 대통령 비자금이란 게 기업들에서 상납받은 불법 자금인데 그 돈이 증여세도 안 낸 딸의 재산 기여분으로 귀결되는 게 정당하냐는 지적도 나왔다. ▷노태우 비자금은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은닉 재산을 찾기 위해 전방위적 계좌 추적을 벌여온 데다 국세청까지 증여세 상속세 문제를 파헤칠 기세다. 대법원도 비자금을 재산 분할 대상으로 본 2심 판결이 타당한지 심리에 착수했다. ‘비자금’ 300억 원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게 됐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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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민생지원금 ‘피싱’ 주의보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범행 시나리오 개발에 무척 공을 들인다고 수사 경험자들은 말한다. 피해 사례들이 전파되면서 경각심이 높아져 ‘김미영 팀장’이나 ‘김민수 검사’가 나오는 식상한 스토리로는 어림없고, 정교한 디테일에 맥락이 살아있는 대본이어야 통한다는 것이다. 성공률이 높은 시나리오는 조직원용 교재로 쓰이거나 암시장에서 비싼 값에 거래된다. 대본 개발자들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거짓말을 꾸며내기 위해 정부 정책이나 국내외 이슈에도 정통하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보이스피싱 조직들에 절호의 기회였다. 상대의 절박감과 불안감을 먹고사는 그들에겐 생계난에 처한 이들이 많아져 ‘범죄 타깃’을 찾기가 손쉬웠던 것이다. 특히 정부가 국민들에게 손 내미는 타이밍을 노렸다. 재난지원금, 손실보상금, 소상공인 특별 대출 등을 받게 해준다며 연락하면 속는 사람들이 많았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보이스피싱 건수는 3만 건이 넘었고 피해액도 8000억 원에 달해 직전 5년 사이 최대였다. ▷당시 ‘재난지원금 조회’ ‘수령 기한 안내’ 같은 문자메시지가 미끼로 뿌려졌다. 그럴듯한 관공서 이름 옆 인터넷 주소(URL)를 무심코 눌렀을 때 휴대전화에 원격조종 앱이 설치됐다. 피싱범들은 피해자들의 SNS로 가족에게 접근해 돈을 송금받거나, 은행 앱에 접속해 돈을 빼가기도 했다. 피눈물을 흘린 자영업자들도 많았다. 정부 정책 발표에 맞춰 날아든 ‘선착순 지급’ ‘한도 소진’ 등의 문자에 깜박 속아 넘어갔다. 피싱범들은 싼 금리로 대출받으려면 기존 대출을 갚아야 한다고 꼬드겨 돈을 뜯어냈다. ▷21일부터 지급되는 민생 회복 소비 쿠폰도 보이스피싱범들은 ‘덫’으로 쓸 수 있다. 어떻게 받는지 다들 궁금해하는 데다 지원금도 15만∼50만 원까지 차등 지급돼 얼마나 받는지 확인해 보라며 접근해 올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 때도 지원금이 선별 지급되다 보니 수급 대상 여부를 확인하라는 메시지가 범죄에 활용됐다. 벌써부터 민생 지원금 신청 사이트로 위장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정부는 카드사나 공공기관을 사칭한 소비 쿠폰 문자가 뿌려질 것에 대비해 “URL 링크가 있다면 100% 사기”라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요즘 같은 때 낚이지 않으려면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일단 지원금을 받아 가라는 연락을 관공서가 먼저 하진 않는다. 받는 사람이 카드사 홈페이지에서 신청하거나 주민센터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 또 주민번호 같은 개인정보를 전화로 캐묻는 공공기관도 없다. 정체불명의 앱을 깔라거나 인터넷 주소 링크를 보내줬을 때도 누르면 안 된다. 방심하다간 지원금의 수십 배, 수백 배 되는 돈을 털릴 수 있다. 가뜩이나 힘든 사람들이 많아 지원금이 풀리는데, 사기당하지 않으려 정신까지 바짝 차려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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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국무위원들 덜미 잡은 대통령실 5층 CCTV

    국무회의는 용산 대통령실 2층 국무회의실에서 열리지만 12·3 비상계엄 당일 장관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모인 곳은 5층 대접견실이었다. 보통 외부 손님들이 대통령을 만나는 곳인데 그날 밤엔 장관들이 집합했다. 윤 전 대통령이 어떤 논의 끝에 계엄을 선포했는지는 그동안 이들의 입만 바라보며 퍼즐을 맞춰 왔다. 하지만 그날 대통령실 5층엔 ‘무언의 목격자’가 있었다.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대접견실 내부와 주변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특검의 출국 금지 대상인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진술에는 공통점이 있다. 계엄에 반대했고, 계엄 관련 문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계엄 선포문이 양복 뒷주머니에 있는 걸 뒤늦게 알았다.”(한 전 총리) “받은 쪽지를 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은 뒤 다음 날 열어 봤다.”(최 전 부총리) “단전 단수 내용이 적힌 쪽지를 멀리서 슬쩍 봤다.”(이 전 장관) 당시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계획에 크게 놀라며 만류했다면서도 관련 문서는 보는 둥 마는 둥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접견실 CCTV가 남긴 기록은 달랐다. 계엄 당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던 한 전 총리의 진술과 달리 CCTV에는 두 사람이 국무회의 전 대화하는 모습이 찍혔다고 한다. 한 전 총리가 대접견실과 연결된 윤 전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간 뒤 손에 문건을 든 채 나오는 장면이 포착됐다는 보도도 있다. 그는 계엄 관련 문건에 서명한 적이 없다고도 했는데 그가 계엄 이틀 뒤 작성된 계엄 선포문에 서명했다가 며칠 뒤 폐기하도록 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날 밤 대접견실 회의 참석자들은 계엄 이후 입장이 둘로 갈렸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국무회의에 절차적 하자가 없고 일부가 계엄에 동의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 전 총리 등은 회의가 요식 행위였고 계엄에 가담하거나 동조하지 않았다며 거리를 두려 한다. 계엄을 주도한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지만 다른 국무위원들의 진술 역시 객관적 증거와 배치된다면 의심할 수밖에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 선거사무소를 도청한 사실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증거는 대통령 전화기 속 자동 녹음 장치였다. 녹음 기록이 공개되자 스스로 물러났다. 이번에 확보된 대통령실 CCTV 영상은 일부 국무위원들에겐 빠져나갈 수 없는 ‘스모킹 건’이 될 수도 있다. 영상이 3개월마다 덮어쓰기 방식으로 지워지는데 경찰이 대통령경호처에 자료 보전을 요청하고 집요하게 압박해 손에 쥐었다고 한다. 앞으로 뭐가 더 나올지 모른다. 국무위원들은 그날 밤 대통령실 5층에서 벌어진 일을 이제라도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한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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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임신부 미끄러진 휘발유에 태연히 불 댕긴 지하철 방화범

    임신부는 지하철 열차 바닥에 넘어지면서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샌들 두 짝도 모두 벗겨졌다. 몇 초 전만 해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던 그였다. 주변의 비명 소리에 황급히 발걸음을 떼다 바닥에 흥건하던 휘발유에 미끄러졌다. 쓰러진 임신부 뒤로 4, 5m의 ‘휘발유 길’이 나 있었다. 그 끝에 한 60대 남성이 있었다. 그는 뿌려놓은 휘발유 위로 불붙인 옷을 던졌다. 시뻘건 불길이 순식간에 뻗어 나가 샌들과 휴대폰을 집어삼켰다. 임신부가 맨발로 일어나 피한 지 2, 3초 만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달 31일 방화 사건이 난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 폐쇄회로(CC)TV에 담긴 당시 상황이다. 토요일 아침이던 그 시각 승객들은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보거나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방화범 원모 씨가 가방에서 노란 휘발유가 담긴 유리병을 꺼냈을 때 이를 알아본 승객은 없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익숙한 일상 공간에서 난데없이 휘발유가 흩뿌려졌고 이내 불길이 치솟았다. ▷“이혼 소송 결과에 화가 나 공론화시키고 싶었다”는 게 원 씨가 밝힌 방화 이유다. 사회적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람이 많은 폐쇄 공간인 지하철을 고른 것이다. 자신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신변 정리도 미리 해놨다. 범행 후 열차에 쓰러져 있던 원 씨는 승객들 도움으로 구조됐는데 손에 그을음이 많은 걸 유심히 본 경찰관에게 붙잡혔다. “당신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항의하는 승객에게 그는 “안 죽었잖아”라고 태연히 답했다고 한다. ▷그는 8량인 지하철 열차 가운데인 4번 칸에 불을 질렀다. 불과 연기는 양쪽으로 번져 나갔다. CCTV에는 승객들이 혼비백산하며 4번 칸에서부터 옆 칸으로 옮겨가 1번 칸에 가득 모인 상태에서 시커먼 연기가 덮쳐 오는 장면도 있다. 불을 낸 시점도 열차가 깊은 지하터널 구간을 지날 때였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열차 내장재가 불에 안 타는 소재로 바뀌었고, 승객들이 침착하게 비상 개폐장치로 문을 연 뒤 어두운 선로를 따라 줄을 서서 대피하는 등 현명하게 대처했기에 망정이지 자칫 대형 참사로 번질 뻔했다. ▷검찰은 원 씨를 기소하며 방화와 함께 승객 160명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192명이 희생된 대구 지하철 사건에선 살인죄가 아닌 방화치사죄로 범인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그땐 불을 붙이려던 범인에게 승객들이 달려들어 격투를 벌이다 ‘펑’ 소리와 함께 불바다가 돼 살인의 고의까지 인정되진 않았다. 이번 사건은 다르다. 원 씨는 승객들을 향해 휘발유를 뿌리고 임신부가 넘어져 있는데도 불을 질렀다. 승객들이 사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법원 판결이 확실한 교훈을 남겨야 한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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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구독앱에 성매수男 400만 정보… 단속 피했다고 끝 아냐

    성매매가 음지로 숨어들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가 업주들의 손님 가려 받기라고 한다. 성 매수자로 가장한 경찰이 함정 단속을 해올 수 있어 이를 어떻게 피할지가 업주들의 관심사라는 것이다. 또 오피스텔 같은 일상 공간에서 성매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소란을 피울 ‘진상 고객’이라면 미리 걸러내려고 한다. 그래서 성 매수자들의 신상 정보는 업주들이 돈 주고 살 만큼 값진 정보라고 한다. ▷성 매수자 개인정보를 수집해 업주들과 공유하는 유료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이 앱을 열면 고객의 연락처는 물론이고 이용 횟수, 평판, 성적 취향까지 한눈에 보인다고 한다. 최근 경찰이 검거한 일당은 전국의 성매매 업주 2500명을 이 앱에 가입시키고 매월 10만 원가량 ‘구독료’를 받았다. 업주들은 영업용 휴대전화로 예약을 받으면서 손님들 정보를 저장해 놓는데 이 앱을 설치하면 그런 정보들이 자동으로 앱 서버에 전송돼 업주들끼리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활용해 ‘경찰’ ‘진상’ 등의 닉네임이 달린 전화번호로 예약 문의가 오면 받지 않는다고 한다. ▷성매매가 집창촌 등 오프라인으로 이뤄지던 시절엔 업주들이 고객 정보를 알 길이 없었다. 요즘엔 성매매 사이트 등을 통한 예약제로 운영되면서 성 매수 남성들의 휴대전화 번호나 SNS 아이디 등 정보 수집이 수월해졌다. 일부 업주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오가던 정보들을 디지털 형태로 대량 수집해 손쉽게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문제의 앱을 운영한 일당이 2년간 수집한 성 매수자 연락처는 400만 개에 이르고 범죄 수익도 46억 원에 달한다. ▷성 매수자 정보는 업주들끼리만 돌려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범죄 목적으로 재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특히 눈독을 들인다고 한다. 이들의 전화번호나 아이디 등을 활용해 직장이나 지인들을 파악한 뒤 성매매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거액을 받아내기 위해서다. 성매매 장소에 몰카를 설치해 찍은 영상을 보여주며 수백 명에게 돈을 뜯은 사례도 있다. 요즘은 남자 친구나 남편의 성매매 여부를 확인해 주고 돈을 받는 ‘유흥 탐정’ 업체들도 난립하고 있다. 그런 일을 당해도 떳떳하게 신고하지 못할 것을 노려 저지르는 범죄들이다. ▷성매매를 하려면 자신의 정보가 암시장에 유통되며 언제든 노출될 수 있다는 걸 각오해야 하는 시대다. 불법 수집된 개인정보가 범죄에 활용돼 피해를 봤다면 일종의 디지털 성범죄를 당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성매매 자체가 불법인 이상 두둔해 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성 매수자들은 단속에 안 걸렸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새어나간 개인정보가 두고두고 약점으로 남아 언제든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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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英 첩보기관 MI6 116년 역사상 첫 여성 국장

    영국 정보기관인 비밀정보국(MI6) 국장은 ‘C’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1909년 임명된 초대 국장의 이름인 맨스필드 스미스커밍(Mansfield Smith-Cumming)에서 따온 말이다. 그는 서명할 때 자신의 성 뒷글자 커밍의 ‘C’ 한 글자만 썼고, 그게 국장을 뜻하는 약어로 굳어졌다. 영화 ‘007’에서도 이를 본떠 MI6 국장의 코드명을 ‘M’으로 지었다. MI6 국장은 영국 관가에서 유일하게 공문서에 녹색 펜을 쓰는 공직자이기도 하다. 이 역시 맨스필드가 녹색 잉크로 서명하던 습관에서 시작됐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의 보수적 기풍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런 MI6에서 116년 역사상 첫 여성 국장이 임명됐다. 올해 47세인 블레이즈 메트러웰리다. 여성이 국장에 오를 것이란 전망은 지난달부터 나왔다. 차기 국장 후보 3명이 모두 여성이었다. 그중 바버라 우드워드 유엔 주재 영국대사가 유력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중국 대사를 지낸 경력 탓에 영국에선 “중국에 우호적”이란 지적이, 중국에선 “영국이 심은 스파이”란 비판이 나왔다. 결국 MI6 내부 인사인 메트러웰리가 기회를 잡았다. ▷그의 직전 보직은 요원들이 쓸 최첨단 장비를 만드는 기술 개발 부서장(코드명 Q)이다. 여기서 ‘Q’는 군대에서 무기 보급을 담당하는 병참감(Quartermaster)의 약자다. ‘007’에서도 ‘Q’는 제임스 본드에게 기관총이 숨겨진 고급 세단, 폭발하는 펜 등 기상천외한 장비를 건네면서 사용법을 시연하는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여배우 주디 덴치가 ‘007’에서 MI6 국장을 연기했지만 실제로 여성이 첩보기관 수장이 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스라엘 모사드, 러시아 FSB(옛 KGB)에는 없고, 미국 CIA에선 트럼프 1기 때 임명된 지나 해스펠이 유일하다. 이런 남성 중심적인 문화는 오히려 여성 스파이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한다. 덜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돼 상대를 속이고 설득하는 데 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공감 능력이 좋고, 편안하게 정보 제공자를 무장 해제시키는 데다 냉철함까지 겸비했다는 평가가 많다. 영국 의회는 “정보기관들이 역량을 키우려면 중년 여성과 엄마들을 많이 채용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현대 정보전은 과거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N개의 얼굴’이 요구된다. 동맹국이 과거의 동맹이 아니고, 안보는 대치해도 경제는 손잡으며 교묘히 경계를 넘나들어야 한다. 모사드가 이란군 수뇌부를 한곳으로 유인해 암살하고, 삐삐 동시 폭발로 헤즈볼라를 붕괴시켰듯 상대의 허를 찌르는 섬세한 작전도 필요하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로는 잘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을 걷어내는 건 유능한 정보기관이 되기 위해서라도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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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기대수명 84.5세인데, ‘헌혈 정년’은 69세

    기술이 아무리 첨단화돼도 인공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게 사람의 피다. 우리 몸에 4000∼5000mL 정도(성인 기준) 흐르는 혈액은 회당 320∼400mL인 헌혈을 통해서만 보충할 수 있다. 피는 모자란다고 외국에서 수입할 수도 없다. 보존 기간이 며칠에 불과해 국가 간 운송이 어려울뿐더러 감염병 전파 우려 탓에 허용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혈액의 상업적 거래를 금하고 있어 어떻게든 국내에서 자급자족해야 한다. ▷근로 정년, 계급 정년처럼 헌혈에도 정년이 있다. 현재는 만 69세다. 70세부터는 헌혈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헌혈 정년’이 1971년 처음 생길 당시엔 64세였는데 그땐 기대수명이 62.7세였다. 건강해도 나이 탓에 헌혈을 못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09년에 헌혈 정년이 69세로 연장되기는 했지만 기대수명(84.5세)이 크게 늘어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요즘 70대 중에는 “아직 팔팔한데 왜 헌혈을 못 하게 하느냐”는 이들이 많다. ▷지금의 혈액 수급은 헌혈자를 나이 기준으로 딱 잘라 돌려보낼 만큼 한가하지 않다. 저출산으로 헌혈할 사람은 줄고, 노인이 많아져 수혈받을 사람은 늘고 있다. 헌혈 건수는 10년 전 정점(308만 건)을 찍은 뒤 차차 줄어 지난해 285만 건에 그쳤다. 2050년이 되면 헌혈은 지금보다 46% 줄고, 수혈은 39%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헌혈 역군’이던 2030세대의 감소분을 5060세대가 겨우 메우는 형국인데 정년 헌혈이 이대로 유지되면 혈액 재고가 위험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정년은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장치다. 근로 정년이 있어야 청년층이 취업할 수 있고, 계급 정년이 있어야 인사 적체를 해소하고 조직 내 긴장을 유지할 수 있다. 그에 비해 헌혈 정년은 둬야 할 이유가 모호하다. 고령자가 헌혈하면 어지럼증이나 혈압 문제가 생길 수 있다지만 이는 나이보단 개인 건강에 달린 문제다. 오히려 헌혈이 가능한 몸을 만들기 위해 건강을 더 챙기게 되고, 헌혈할 때마다 혈액검사도 해줘 도움이 된다는 노인들이 많다. 연령과 혈액 건강의 상관관계 역시 의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 고령자의 피를 수혈받는다고 문제 될 건 없단 얘기다.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 헌혈 정년을 두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헌혈 정년 완화를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헌혈 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20∼30년 꾸준히 헌혈을 하다 나이 제한에 걸린 고령자들은 “혈액이 부족하다면서 왜 막느냐. 건강이 괜찮다는 것만 확인되면 계속 헌혈하고 싶다”며 아쉬워한다고 한다. 남의 생명을 위해 내 것을 내어주겠다는 선의에는 정년이 없는데 칼로 무 자르듯 헌혈자를 은퇴시키는 제도라면 바꿀 필요가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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