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도를 통해 아프리카를 '작은' 대륙으로 무의식중에 인식한다.
이 지도가 주는 착시 효과는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편견과 고정관념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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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고 2025년09월23일 07시00분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도를 통해 아프리카를 '작은' 대륙으로 무의식중에 인식한다.
이 지도가 주는 착시 효과는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편견과 고정관념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 지리에 덧씌워진 편견의 그림자: 과거와 현재
일제강점기, 한반도는 단순히 무력으로만 지배당하지 않았다. 일본 제국주의는 교묘하게 '반도론'이라는 지리적 왜곡을 주입했다. 조선인의 정신을 옥죄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은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의 지배를 반복적으로 받아왔다"라는 말과 "조선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주체적으로 나라를 경영할 수 없다"는 말이 대표적 왜곡이었다. 또한 일제는 "조선의 반도적 특성 때문에 역사에는 발전과 진보가 없다"는 왜곡된 주장까지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를 운명적인 열등함의 근거로 삼았다.
'너희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으니 우리의 지배는 너희를 보호하는 숙명이다'라는 논리로 한민족에게 깊은 정신적 굴복을 강요했다. 지도는 단순한 땅의 경계를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짓밟는 무기가 됐다. 이러한 왜곡된 지리 인식이 만들어낸 '반도적 숙명론'은 우리나라에 대한 청년들의 꿈과 상상력을 무너뜨리고 청년들의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사고까지 마비시켰다. 일제는 이 논리를 각종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주입했다. 이를 통해 한반도 역사에 대한 해석을 왜곡하고 조선인 스스로가 자신들의 역량과 가능성을 의심하게 했다.
◇ 지도를 뒤집어 희망을 그리다: 김교신 선생의 통찰
그러나 절망의 시대에도 한 교사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이 교사는 절망의 시대에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빛을 비췄다. 지리 교사였던 김교신 선생(1901∼1945)은 일제가 심어놓은 지리적 편견을 깨기 위해 온몸으로 싸웠다. 그는 학생들에게 "세계 지도를 뒤집어 보라"고 외쳤다.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면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의 변방이 아니라 오대양 육대주로 뻗어나가는 '항구'이자 동북아시아의 '심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물러나 숨으면 더욱 불안하지만, 세계에 진출하기에는 세계 최고의 위치"라고 강조했다.
'성서조선'을 창간하고 주필로 활동하면서 일제 식민통치를 비판하다 옥고를 치른 김교신 선생. << 국가보훈처 제공 >> photo@yna.co.kr
그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열등함의 근거가 아닌 위대한 가능성의 원천으로 재해석했다. 그는 고대 로마와 그리스 문명을 일으킨 이탈리아와 그리스 역시 우리와 같은 반도 국가임을 강조했다. "로마 문명과 그리스 문명을 통해 세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이탈리아와 그리스처럼 한국도 세계 문명사에 위대한 기여를 할 것"이라는 그의 목소리는 절망에 빠진 청년들에게 지리적 결함이란 것은 없고 세계로 나아갈 담력과 꿈이 부족할 뿐이라고 일깨웠다.
김교신 선생은 "동양의 온갖 고난도 이 땅에 집중되었거니와, 동양에서 산출해야 할 바 모든 고귀한 사상, 동반구 반만년의 총량을 대용광로에 달여 낸 엑기스는 필연코 이 반도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도를 뒤집는 행동은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언젠가 아시아의 새로운 문명을 창조할 위대한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꿈을 심어줬다. 한 장의 지도가 한 민족의 정신을 짓누르던 굴레를 끊어내고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희망의 돛을 올린 것이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중에 베를린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가 있다.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은 식민지 시대 나라를 빼앗겨 울분에 가득한 한국인들에게 희망이 됐다. 김 선생은 이렇듯 단순한 지리 교육을 넘어 민족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위대한 역할을 했다.
◇ 오늘날의 '메르카토르 편견':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
100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또 다른 지리적 편견과 마주하고 있다. 전 세계 학교와 사무실에 걸려 있는 대부분의 세계 지도는 1569년 제작된 메르카토르 도법을 따르고 있다. 이 지도는 항해의 편의를 위해 각도를 정확히 유지하는 대신, 면적을 왜곡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특히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실제 면적보다 훨씬 크게 그려지는 '북반구 중심'의 착시 현상을 유발한다.
이러한 착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와 그린란드다. 메르카토르 지도에서 그린란드는 아프리카와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 커 보이지만, 실제로 아프리카는 그린란드보다 14배나 크다.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인 러시아보다 약 1. 8배 크다. 또 미국과 중국, 인도, 유럽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대륙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도를 통해 아프리카를 '작은' 대륙으로 무의식중에 인식한다. 이 지도가 주는 착시 효과는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편견과 고정관념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수많은 분쟁, 기아, 질병의 이미지 속에 아프리카의 현실은 가려진다. 사실 그곳은 거대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 21세기 김교신의 과제와 지도의 착시를 바로잡는 일
'아프리카 노 필터'와 '스피크 업 아프리카' 등 여러 단체가 '세계 지도를 고쳐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55개 아프리카 국가가 결성한 아프리카연합(AU)도 이를 지지한다. "지도는 단순한 지리 정보가 아니라 사고방식을 규정한다"는 AU 관계자의 말은 100년 전 김교신 선생의 외침과 맞닿아 있다.
왜곡된 지도가 낳은 편견이 아프리카의 위상과 잠재력을 평가절하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린란드와 아프리카의 실제 면적을 정확히 보여주는 '이퀄 어스'(평등 지구) 지도를 채택하자고 주장한다. 이러한 지리적 편견을 바로잡는 일은 단순한 지리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타자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는 행동이다.
21세기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편견과 싸우는 시대다. 이제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에 대한 오해를 넘어 인종·문화·빈부 격차에 대한 수많은 편견이 우리의 시야를 흐리고 있다. 100년 전 김교신 선생이 일본 제국주의의 왜곡된 역사관과 지리적 편견에 맞섰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오늘날의 편견을 바로잡을 새로운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21세기의 김교신은 바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착시와 편견을 바로잡는 일은 단순히 지리적 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는 행동이다. 불의와 왜곡을 바로잡는 용기. 그것이 바로 김교신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 우분투, '나눔과 공존'의 정신
지도는 단지 길을 찾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창(窓)이다. 그 창이 왜곡됐다면 우리는 결코 세상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지도를 한번 돌아보자. 당신의 눈에 아프리카는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가. 그리고 우리가 21세기의 김교신이 되어 세상의 왜곡된 지도를 바로잡는 일에 동참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아프리카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우분투'(Ubuntu)다.
'우분투'는 줄루어와 코사어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공동체와 상호 존중을 중시하는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사상이자 철학이다. 한 사람의 존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김교신 선생이 한민족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꿈을 심어주었듯, 우리 역시 아프리카 대륙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아프리카가 처한 현실을 그들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풀어야 할 인류 공동의 과제로 인식하는 '우분투 정신'이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의 '우분투'는 단순히 지리적 편견을 바로잡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불의에 맞서는 용기, 타인을 향한 공감,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100년 전 한반도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김교신 선생의 정신은 오늘날 아프리카를 향한 우리의 시선을 바로잡는 '우분투'의 가치와 다르지 않다. 왜곡된 지도를 바로잡는 것. 그것은 곧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가 바로 그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다. 전 세계 국제기구, 지도 출판사, 웹사이트에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지도를 바꾸는 일에 한국인들이 앞장서자. 이를 위해 한국의 초·중·고교의 교실, 대학 강의실과 강당, 정부 기관에서 배포하는 세계지도부터 바꾸자. 21세기 김교신은 우분투 정신을 실천해 아프리카를 향한 왜곡된 지도를 바로 잡아 세상을 바꾸는 우리 모두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박기태 단장
현 반크 단장, 재외동포청 정책자문위원, 재외동포정책실무위원, 직지 홍보대사 활동 중, 외교부·대검찰청 정책자문위원, 청와대 청년위원회 위원, 국가브랜드위원회 자문위원, KOICA 홍보전문위원, 국제교류재단 공공외교홍보대사, 서울시 홍보대사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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