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최고치 경신 랠리를 이어가는 사이 지수 하락에 베팅하는 ‘곱버스(지수를 역추종하는 2배 인버스 상품)’ 상장지수펀드(ETF) 가격이 동전주로 급락했다. 국내 증시에 대한 불신이 여전한 개미들 사이 곱버스 상품의 거래가 활발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낮은 단가로 인해 거래 효율성과 투자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대표 곱버스 상품인 삼성자산운용의 ‘KODEX 200선물인버스2X’는 826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해당 ETF는 코스피200선물지수의 하루 수익률을 역으로 2배 추종하는 ETF다. 해당 상품은 이달 2일 980원을 기록하며 상장 이후 처음으로 1000원 밑으로 내려왔고 최근 800원대 초반까지 밀렸다. 이는 1년 전(2210원)보다 약 63% 하락한 수준이며 팬데믹 초기 고점이던 2020년 3월 19일(1만 2365원)과 비교했을 때 낙폭은 93%에 달했다.
코스피지수가 최근 일주일 새 가파르게 올라 이날 장중 3902.21을 기록, 연일 신기록을 쓰며 4000 선에 다가갔지만 개미들은 가격이 동전주 수준으로 추락한 곱버스 상품을 지속적으로 매집하는 모습이다. 코스콤 ETF CHECK에 따르면 같은 기간 개인투자자는 KODEX 200선물인버스2X를 1198억 원 사들였고 전체 ETF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은 순매수 규모를 기록했다.
ETF 단가 하락은 단순한 가격 문제를 넘어 거래 비용 증가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주당 거래 가격이 급격히 낮아질수록 매수·매도 호가 간격인 스프레드가 상대적으로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시장가 주문을 넣을 때 기대했던 가격이 아니라 더욱 불리한 가격에서 체결되는 ‘슬리피지’ 위험도 커진다. 사실상 동일한 거래를 하더라도 체결 비용이 올라가 실제 투자 비용이 증가하는 셈이다. 실제로 곱버스 상품의 가격이 처음으로 2000원 아래로 떨어졌던 2021년 당시 호가당 비율이 급격히 커지면서 기초지수의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최근 당국도 곱버스가 동전주로 추락한 데 대한 우려를 운용사에 전달했으나 뾰족한 해법은 없는 상태다.
해외에서는 ETF 단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주식처럼 병합을 통해 단가를 재조정하는 반면 국내는 상법과 자본시장법 하위 규정상 근거가 없어 ETF의 분할·병합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2020년 원유 상장지수증권(ETN) 가격 폭락 사태 당시 금융위원회가 ‘ETF·ETN 시장 건전화 방안’을 통해 병합 제도를 처음 언급했고 2022년에는 금융감독원이 ETF 액면분할 제도 도입 검토 계획을 내놓았으나 번번이 상법상 근거 부재를 이유로 제도화가 무산됐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개선 논의가 있었지만 아직 구체적인 진전은 없는 상태다. 올 2월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장지수상품(ETP)의 분할과 병합을 허용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ETP의 단가 조정 절차를 거래소 규정으로 위임하는 조항을 담고 있으며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시장에서는 병합을 통한 단가 조정이 허용될 경우 저가화에 따른 거래 비효율과 가격 왜곡을 줄이고 개인투자자의 트레이딩 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ETF 운용은 틱 사이즈(호가가격단위)나 주가 수준과 무관해 지수 괴리 등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며 “곱버스 상품 역시 운용상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