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석 국회의원은 특정 직역의 이익을 우선하고, 직역간 갈등을 조장하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외면한 입법을 추진한 데 대해 공개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 "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을 비롯한 의료계 인사 20여 명이 23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소재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역구 사무소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이들의 손에 들린 피켓에는 '법원 판결 왜곡하는 입법 시도 중단하라', '한의사의 엑스레이 국민 건강 위협한다' 등의 문구가 적혔다.
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단이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기관 개설자 등이 방사선 장치를 설치할 경우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안전관리책임자를 선임해야 한다. 복지부령은 해당 자격을 의사, 치과의사, 방사선사 등으로 제한하고 있어, 한의사들의 불만이 많았다. 개정안은 의료기관 개설자나 관리자는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설치한 경우에는 안전관리책임자가 되어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한의사도 의료기관을 직접 개설한 경우 안전관리책임자가 돼 엑스레이 같은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앞서 김 회장은 19일 정례브리핑에서 "서영석 의원이 발의한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을 제도적으로 합법화하려는 위험천만하고 비상식적인 발상"이라며 "의학적 교육을 받지 않은 한의사에게 엑스레이 사용을 허용한다는 건 국민을 상대로 한 위험한 실험과 다를 바 없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지난 16일에는 한방대책특별위원회(한특위)를 비롯해 영상의학과,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등 유관학회 및 의사회와 함께 긴급 대책 간담회를 열고 공동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집회는 그날 논의된 대응방안의 일환인 셈이다.
김 회장은 “방사선 발생장치와 같이 특수한 의료장비는 철저히 숙련된 의료전문가가 사용하는 것”이라며 “단지 보편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의사에게 엑스레이 사용을 허용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하고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또 "한의대에서도 영상의학을 배우기 때문에 한의사도 엑스레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은 궤변이다. 그 논리라면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에 대한 구분과 면허 자체가 무의미하다”며 “특정 직역 단체의 일방적인 주장만 듣고 법안을 발의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승은 대한영상의학회장(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영상의학과 교수)은 “방사선은 치료 도구이기 전에 위험한 물리적 에너지이며, 사용에 대한 정당성은 과학, 법 그리고 윤리에 의해 엄격히 통제돼야 한다”며 “굳이 한의사까지 포함시키겠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도, 국민적 합의도 없는 특정 직역의 특혜에 불과하다”고 거들었다.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직역갈등은 의료계 해묵은 논쟁거리다. 2022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은 합법'이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데 이어 올해 초 수원지방법원이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측정기를 진료에 사용했다는 이유로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하면서 불을 지폈다. 법원은 “의료법 제37조 제2항의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 자격기준’은 장치를 사용할 수 있는 자를 한정하는 규정으로 보기 어렵다”며 “규정에 한의원이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 밖의 기관’에서 제외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무죄가 확정되자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엑스레이 사용권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법적으로 한의사가 엑스레이를 사용하고 한의원에 설치하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안전관리책임자 자격에서 ‘한의사’가 빠져 있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게 한의협의 주장이다.
두 단체는 장외 여론전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입법예고 기간 마지막 날이었던 전일(22일)까지 국회 입법예고 홈페이지에는 4만 건 넘는 의견이 올라왔다. 의협과 한의협이 각각 회원들을 동원해 찬반 의견을 제출한 데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게시판에선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싶다면 의대에 다시 입학해 의사가 되라"거나 "환자가 양방의원에서 촬영 후 다시 한의원으로 돌아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식의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의정갈등이 사그라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 성분명처방 의무화 등 의료계를 위협하는 법안들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의협 내부의 위기감도 커지는 분위기다. 의협은 25일 긴급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