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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다시보기] 몽마르트르의 낭만

신상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파리 오르세미술관




프랑스 파리 북쪽에 위치한 몽마르트르는 해발 130m의 작은 언덕에 불과하지만 그 지명에는 특별한 뜻이 담겨 있다. 첫음절 몽은 불어로 산을 뜻하는 몽타뉴의 줄임말이고, 마르트르의 의미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우선 로마제국 시대에 파리를 점령한 로마인들이 전쟁의 신 마르스를 기념하는 신전을 이곳 언덕 위에 세웠기에 이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어원은 순교의 산이라는 뜻인데 최초의 파리 주교로 알려진 생드니 성인이 이곳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전설에 의하면 로마 병사들이 경사면 중간에서 그의 목을 자르자 생드니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들고 산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 이곳은 기독교인들의 중요한 성지로 인식돼 그를 기리는 종교 시설들이 자리 잡게 됐다.

19세기에 들어서서 몽마르트르의 위상은 변화했다. 대혁명기 수도원이 폐쇄되고 점차 이곳에 산업 시설들이 들어섰다.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높은 지형을 활용해 설치된 풍차들이었다. 풍차를 활용한 제분소 주변에는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한 거주지가 형성됐다. 1870년 발생한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고 파리 코뮌이라 불리는 새로운 혁명이 발발했을 때 몽마르트르는 급진 세력의 근거지가 됐다. 이후 집권한 보수 정부는 이들의 흔적을 지우고자 몽마르트르를 유흥가로 개발했으며 이 시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물랭루주와 같은 카바레들이 들어섰다.



‘벨 에포크’로 불리던 시기 이곳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거주했다. 그들 중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풍차를 개조한 야외 카바레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그의 1876년 작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에는 춤추고 있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과 그들의 밝은 표정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떨어지는 빛의 풍성함과 함께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그림은 우리 가슴 깊은 곳에 간직돼 있는 옛 시절의 추억들을 환기시켜준다.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가 인상파 특유의 화사한 화풍으로 묘사된 이 작품은 꿈꾸듯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주는 따스한 힘과 온기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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