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3500억 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투자 패키지를 최종 조율 중인 가운데,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협상의 핵심은 통화스와프가 아니라 투자 구조 설계”라고 밝혔다. 최근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떠오른 한·미 통화스와프 가능성에 대해 지나친 의미 부여를 경계한 것이다.
구 부총리는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TV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가 필요한지 여부와 규모는 투자 협정의 구조에 따라 달라질 문제”라며 “전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소규모로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도 한국 외환시장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대응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미 간에 통화스와프 체결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음을 구 부총리가 처음으로 시사한 발언이라 주목된다.
정부는 현재 미국 측과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패키지 협상을 진행 중이며 직접 투자와 대출, 보증 등의 조합을 조율하고 있다. 구 부총리는 “균형 잡힌 투자 구조가 우선”이라며 “금융 안전장치 필요 여부는 구조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구 부총리의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 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을 앞둔 가운데 나왔다. 한미와 한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관세 협상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관세 협상이 지연되는 사이에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25% 고율 관세 부담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은 앞서 미국과 5500억 달러 관세 협정을 체결하면서 자동차 관세가 15%로 낮아졌지만 한국은 여전히 기존 관세가 유지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구 부총리는 “한국 정부는 자동차 관세 불균형 문제를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당국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며 “미국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계속해서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기존 자동차 무관세 혜택을 누려왔지만 이번 조정으로 무역 환경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원화 약세 흐름과 관련해 구 부총리는 “최근 환율 변동성은 협상 불확실성 때문”이라며 “자동차 관세 문제가 해결되면 외환시장 불확실성도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미국이 환율로 수출 경쟁력을 조정하려 한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며 “미 재무부는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며 우려를 표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외환시장 제도 개편도 병행하기로 했다. 구 부총리는 “원화 24시간 거래 시장 도입을 최대한 앞당길 것”이라며 “이는 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완화하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구 부총리는“이는 MSCI(모건스탠리) 선진지수 편입의 핵심 요건으로 기술적 준비는 이미 마무리 단계”라고 설명했다.
특히 구 부총리는 이번 협상이 단기 통상 현안에 그치지 않고 한국 경제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AI와 디지털 전환, 딥테크 분야에 전략적으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며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 58% 전망은 혁신 투자가 실패했을 때의 최악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그는 “혁신 프로젝트의 10%만 성공해도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성과가 나올 수 있다”며 “예산을 단순히 늘리는 것이 아니라 경제 구조를 전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다음 주 APEC 정상회의 기간 중 이번 투자 패키지 협상을 사실상 타결 짓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22일 이틀 만에 다시 워싱턴으로 향하는 등 총력전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