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강경 보수’ 정치인인 다카이치 사나에 집권 자민당 총재가 21일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이달 초 자민당 당권을 잡고도 공명당의 연립 정부 이탈로 총리 지명 여부가 불투명했던 다카이치 총재는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와 새롭게 손을 잡으며 국회 총리 지명 선거에서 과반 득표에 성공해 제104대 일본 총리로 선출됐다. 다카이치 총재는 전날 일본유신회와 연정 수립에 합의한 뒤 “오늘을 기점으로 일본 경제를 강하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우익 성향이 강한 일본 총리의 등장은 기시다 후미오,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 시절을 거치며 우호적 협력을 다진 한일 양국 관계에는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왜곡된 역사관과 ‘강한 일본’ 정책 노선을 계승해 ‘여자 아베’로 불리는 인물이다. 자민당 의원 시절에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했고 “한국이 기어오른다” “(독도 문제에 대해) 눈치 볼 것 없다” 등 강경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한 일본유신회는 중도 보수 성향이던 공명당과 달리 강경 보수 색채가 매우 짙다. 자민·유신 연정 출범을 계기로 일본이 평화헌법 9조 개정, 방위 장비 수출 규제 철폐, 외국인 규제 등 주변국과 갈등 소지가 큰 보수적 정책들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통상·안보 질서 속에서 유사한 입장을 지닌 한일 간 우호 관계는 한미일 공조와 서로의 국익을 위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전 총리는 앞서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내놓은 공동 발표문에서 ‘미래지향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공동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일본을 ‘동반자’로 표현하기도 했다. 일본의 리더십 변화가 어렵사리 자리를 잡아가는 ‘셔틀외교’와 한일 파트너십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국 모두 과거를 직시하되 소모적 갈등은 자제하는 전향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동반자 관계의 새 장을 여는 실용외교를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