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분권은 중앙정부의 예산과 권한을 지방에 넘겨 지역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국가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취지로 2018년 이후 본격화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문체부에 제출한 ‘문화체육관광분야 재정분권 지방이양 사업 지자체 추진실태 분석 및 정책방향 연구’에 따르면 지역 이양 이후 세부사업 수 기준으로 약 70%가 사업 규모를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역자치단체의 정책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재원 확보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된 결과여서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16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K컬처 시대, 다시 기본부터 생각하자’ 포럼이 열린 이유다. 이번 포럼은 민형배·임오경·김용민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더불어민주당 서초갑 지역위원회,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지역문화정책연구소, 한국민예총이 공동으로 주관했다. 최근 경기도가 재정 부족을 이유로 경기문화재단에 창립 당시 조성한 ‘문예진흥기금’을 운영 예산으로 전용해 쓰라고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부정적 여론이 일었고, 이번 포럼 기획의 촉발지점이 됐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개회사에서 “수도권에 80% 이상 집중된 문화예술 공급이 지역으로 확산돼야 한다”면서 “K컬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전체 국가 재정 중 문화예술 예산이 조속히 2%를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기본부터 탄탄하기 위해 광역문화재단 문화재정 투입이 이뤄져야 한다”며 “광역별 문화재단이 활발히 협력해 지역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며 이번 포럼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한나 더불어민주당 서초갑 위원장은 환영사에서 “K컬처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금, 지역문화가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어렵다“며 “광역문화재단의 기본재산은 예술인의 창작 기반이자 공공성을 지탱하는 핵심 자산이며,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문화재정의 기준과 근본 원칙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제1세션에서는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정책실장이 기조연설을 맡아 “자율계정의 문화예산 확보를 위한 조례 제정이 필요하다”면서 “문화예술계의 긴급한 위기상황에 한하여 대응하는 명확한 기준을 가진 재단 문화재정 운용 조례 제정 또한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강욱천 한국민예총 사무총장은 “문화예술의 재정은 지원이 아니라 투자이며, 예술인은 공공가치를 창출하는 주체”라며 “예산의 중심은 효율이 아니라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함께한 윤영석 변호사는 “지역문화재단은 재단법인이므로, 기본재산은 문화재단 법인의 실체로서, 지방정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이를 처분하게 하는 것은 재단의 설립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지방의회 조례 등 문화재단의 기본재산 처분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2세션에서는 박소윤 부산문화재단 정책기획센터장이 기조연설을 통해 “5극3특과 같은 지역 재구조화에 있어 각 지역이 가진 정체성과 고유성들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문화다양성 영향평가 조치들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진정한 지역 문화분권과 자치를 위해서는 재정분권과 함께 수직적 전달 방식 구조를 중앙·광역·기초 간 수평적인 협의 구조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후 토론에서 허난영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사무처장은 “실질적 문화분권과 문화자치 실현을 위한 광역문화재단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며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추진전략의 지역정책이 설계되고 있는 현재 지역문화의 주체로서 광역문화재단의 문화예술 분야 현안에 대한 적극적 대응과 결합체계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박경동 광주문화재단 기획협력팀장은 “문화재정 2% 확대는 환영할 일이나 예술인 직접 지원이 많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고, 청년 작곡가 이슬기 씨는 “현장 예술인을 위해 서류 중심이 아닌 창작 중심의 행정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마무리 발언에서 사회를 본 홍창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운영자문위원과 패널들은 “문화예술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된 공공재”라며 “향후 문화재단 정책 설계와 예산 편성 과정에서 문화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을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했다”고 의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