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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750만 명, 그리고 한 여성의 이름이 울려퍼졌다 [박선태의 중남미 이슈와 문화]

박선태 중남미 전문가(중남미에서 외교관으로 27년 근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마두로 정권으로 이어진 권위주의적 통치와 구조적 인권 유린, 민주주의의 붕괴, 극심한 빈곤과 배고픔을 피해 지난 수년간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750만 명의 국민들이 콜롬비아·페루·칠레 등 인근 국가로 탈출해 국경을 넘는 피난 행렬을 이루었다. 불안정한 정착, 삶의 기반을 잃은 채 방황하는 수많은 베네수엘라인들의 현실은 단순한 국가 위기를 넘어선 21세기 라틴아메리카의 집단적 비극이었다.

과거 이러한 장면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중남미 국가들의 식당에서, 택시 운전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만난 이들의 얼굴에는 꺼지지 않은 희망과 깊은 절망감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오스카 무리요 정치 전문가는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노벨평화상은 베네수엘라 국민이 오랫동안 이어온 민주주의 투쟁에 다시금 국제적 조명을 비추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경험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의 상징이자 권위주의에 맞서 비폭력으로 싸워온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202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깊은 감동과 역사적 의미로 다가왔다. 그녀의 수상은 단지 한 개인의 영예가 아니라, 억압과 침묵 속에서도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던 베네수엘라 국민 전체의 투쟁과 희망에 대한 국제사회의 응답이라고 느껴졌다. 마차도는 수상 직후 “이 상은 나 개인의 것이 아니라 자유를 위해 싸워온 모든 베네수엘라 국민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차도는 1967년 카라카스 출신으로 2002년 시민 감시단체 ‘수마테(Sumate)’를 창립하며 정치에 뛰어든 이후 20년 넘게 비폭력적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활동을 이어왔다. 권위주의 정권의 무력에 맞서 무장투쟁이 아닌 시민 조직, 선거 감시, 정치 참여를 통해 변화를 모색해온 점이 그녀의 가장 큰 특징이다. 2024년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출마가 금지된 이후에도 야권을 단일화해 에드문도 곤살레스를 지지하며 정권 교체를 시도했고, 선거 후 탄압 속에서 지하로 숨어들었다. 노벨위원회는 그녀를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전환을 위해 싸워온 인물이며, 어둠 속에서 민주주의의 불씨를 지켜온 사람”으로 평가했다.

마차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일곱 번째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그러나 이전 수상자들이 주로 국가 간 분쟁 중재나 내전 종식, 군사독재 하의 인권운동에 집중했다면, 마차도는 현직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투쟁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수상의 성격이 다르다. 이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수상 당시와 유사한 맥락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전례 없는 사례다.



수상 발표 직후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반응도 뚜렷이 갈렸다. 콜롬비아의 페트로 대통령은 “대화를 통한 평화를” 언급하며 축하 메시지를 보냈고, 에콰도르·파라과이·아르헨티나 등은 공개적으로 그녀의 용기와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 멕시코는 자국 헌법에 명시된 ‘비간섭 원칙’을 이유로 거리를 두었고, 쿠바·니카라과 등 권위주의 정권과 가까운 정부들은 침묵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지역 내 이념적 균열이 여전히 강하게 존재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제인권단체와 서방 주요국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이번 수상이 베네수엘라의 민주적 전환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새로운 동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고, 유럽연합과 여러 유엔 특별보고관들도 그녀의 용기와 비폭력 저항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정치가 평화를 앞질렀다”고 반발했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노벨상이 정치화됐다”고 비판했다. 수상 자체가 국제 외교 무대에서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진영 간의 대립 구도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 된 것이다.

국경을 넘어 흩어진 수백만 명의 베네수엘라인들, 그리고 오슬로의 무대에서 울려 퍼진 마차도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은 한 국가의 정치적 사건을 넘어, 라틴아메리카 민주주의의 향방을 가늠하는 분수령이 되고 있다. 그의 이번 수상이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회복의 전환점이 되고, 수많은 난민과 디아스포라가 다시 조국의 자유와 존엄을 되찾는 날이 앞당겨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서경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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