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협상서 ‘대두’ 수입 확대 거론…생산자 “추가 개방 검토 중단하라”
위성락 실장 17일 “협상 관련해 새로운 것은 대두” 미국, 대두 대중국 수출 막히며 활로 모색 한국 올해 미국산 대두 42만t 수입 올해 국산 콩 생산량 증가 전망에 생산자 반발
한국과 미국이 타결한 관세협상의 세부 실행방안을 막판 조율 중인 가운데 미국산 대두 수입 확대 가능성이 거론됐다. 당초 정부는 “농산물 시장 개방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지만 최근 미국과의 협의가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대두 수입이 새로운 협상 카드로 부상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17일 한·미 무역협상과 관련해 “농산물과 관련해 새롭게 협상된 것은 듣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들은 것은 대두 정도”라고 밝혔다.
이는 “한·미 간 세부 논의 과정에서 대두 수입문제가 거론되는 가운데 농산물 개방에 대한 원칙이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위 실장은 “여러분이 아는 것과 제가 아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7월30일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된 이후 양국 정부는 한국의 대미 투자금액 3500억달러(약 490조원) 중 직접 투자금 비중 등 조성방법에 이견을 보이면서 최종 합의문 작성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경제·통상 수장 등이 모두 미국을 찾아 담판에 나선 가운데 미국산 대두 수입 확대 논의가 협상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파악된다.
대두 수입 확대 논의가 떠오른 것은 9월부터 미국의 대두 수확이 시작된 가운데 중국과의 무역분쟁으로 대두 수출길이 막혔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퍼듀대학교 상업농업센터가 올 9월 분석한 바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중국에 대두 약 9억8500만부셸을 수출했는데, 이는 전체 수출량의 51%를 차지했다. 1부셸은 약 27.216㎏이다.
하지만 올해 1~8월 미국의 대중국 대두 수출량은 2억1800만부셸로, 전체의 29%에 불과했다. 특히 6~8월에는 대중국 수출이 사실상 전무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부과한 20%의 보복 관세와 부가가치세(VAT), 최혜국대우(MFN) 관세가 합쳐져 미국산 대두에 대한 관세가 34%로 치솟은 탓이다. 이에 따른 수혜는 남미산에 돌아갔다. 올해 1~8월 브라질의 대중국 대두 수출량은 24억7500만부셸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미국대두협회는(ASA)는 올 8월 백악관에 보낸 성명에서 중국의 관세 부과로 인해 올가을 미국산 대두가격이 남미산 대두보다 높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해 농가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케일럽 래글랜드 ASA 회장은 이달 10일 내놓은 성명에서 “중국의 희토류 광물 제한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이 취소된 데 우려를 표명한다”며 “무역전쟁은 모두에게 해로우며, 대두농가들이 점점 더 심각한 재정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러한 최근 상황은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협상 대상국을 압박해 수출 활로를 찾으려는 전략을 꾸려왔는데 이번에 한국도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보다 앞서 미국과 협상을 마무리지은 일본 또한 대두·옥수수 등 미국산 농산물을 연간 80억달러어치 수입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현재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국제무역기구(WTO)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으로 대두를 수입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9월 채유용·식용·콩나물용 등 미국산 대두 수입량(대두유 제외)은 42만7950t으로 전체 수입량(87만1466t)의 49.1%를 차지했다.
다만 올해 국산 대두(콩) 생산량이 정부의 전략작물직불제 확대 영향 등으로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이같은 미국의 요구가 관철될 경우 농가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콩 재배면적은 8만3133㏊로 지난해보다 12.3% 늘어날 것으로 관측됐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20일 발표한 성명에서 “2019~2023년 한국의 콩 자급률은 29%에 불과하며 사료를 포함하면 7.4%까지 추락한다”며 “정부는 콩을 전략작물로 지정하고 자급률을 2027년까지 43.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급률은 별반 오르지도 않은 상황에서 미국산 콩 수입을 늘리는 것은 정부 계획과 반대로 가는 일이며 취약한 콩 생산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며 “벼 대신 콩을 심으라는 정부의 말만 빋고 빚을 져가며 기계를 사고 작목을 전환한 농민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며 추가 개방 검토 중단을 요구했다.
한편 농식품부 관계자는 “콩 수입 확대 논의는 검토한 바 없다”며 “비축 콩 할인 공급 등 국산 콩 소비촉진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이민우 기자 minwoo@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