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 기업 인력을 사형수·중대 범죄자 다루듯
美 상황 너무 모른 정부, 미국은 ‘국가적 비상사태’
‘서류는 있으나 체류 자격 없는 이민자’라는 신조어
미국인들에게 이민자는 두려움의 대상
우리 헌법상 국가의 ‘국민에 대한 책임’, 외교에도 반영돼야
경협 주체는 국민, 정부는 영사적 보호 장치 마련 주력해야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은 홈페이지를 통해 9월 4일(현지 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ICE 홈페이지 영상 캡쳐
무엇보다 이들의 연행 장면에 세계가 경악했다. 손과 허리에는 쇠사슬이, 양발에는 족쇄가 채워졌다. 사형수, 중대범죄자나 과거 노예를 결박했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미 당국은 43억 달러(약 6조 원)를 투자한 동맹국 기업 인력을 마치 사형수나 노예를 다루듯 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정책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제보자인 미 공화당 정치인 토리 브래넘은 이튿날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법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없다”며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정당화했다.
구금됐던 우리 국민 316명(1명 제외)은 8일 만에 귀국했다. 우리 국민의 생고생은 정부가 미국의 현 상황을 몰랐던 데서 비롯됐다. 미국은 ‘국가적 비상사태’를 선언한 나라다. 미국 법에 저촉되는 행위에 미국은 과민하다 못해 무관용으로 처리하는 상황이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의 실패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미국 상황 너무 모르는 우리 정부
한미동맹이 70년 넘는 역사 때문에 국내에 이른바 ‘미국 전문가’는 차고 넘친다. 다들 미국을 너무나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미국이 준전시 상태라고 인지하고 있지 않다. 중국 전문가들이 중국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로 공산주의 나라라는 점을 망각하듯 말이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1기부터 미국은 국가적 위협과 공공의 안전을 명분으로 국가적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런 인식은 ‘미국우선주의’의 근간이자 트럼프 2기 정부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의 정치적 명분이 됐다.오늘날 미국이 제조업 부흥을 내세워 미국 자강론(MAGA)을 실현하기 위해 취하는 각종 정책 조치는, 그 명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취임 직후 백악관 공보실을 통해 MAGA의 핵심 목적을 알렸다. 경제적으로 더 번영하고(prosperous), 국방과 안보 면에서는 더 강한(stronger), 그리고 사회적으로 더 안전한(safer) 미국을 만드는 것이다. 국가 비상사태 속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정책에 내세우는 모든 명분은 외부 위협에 대응하고 공공의 안전을 수호하는 것이다.
미국이 제조업의 부흥을 원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값싼 수입품이 미국 산업에 국가적 위협이고, 미국인의 일자리를 잠식하고, 무역적자로 인한 재정적자를 유발하는 근본적 위협의 원인으로 본다. 이런 논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MAGA를 국가 비상사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으로 생각한다. 여기에 가장 큰 걸림돌이 이민자 문제다. 이민자를 미국 사회와 국민에 가장 위협적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비자 발급은 물론 국경 단속과 입국 절차가 까다로워지는 이유다. 이제는 비자에 부합하지 않는 활동을 미국 영내에서 하는 외국인과 이민자를 통틀어 일컫는, 즉 ‘서류는 있으나 체류 자격이 없는 이민자(일명 미등록 이민자·unauthorized documented immigrant)’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이 신조어가 이번 조지아주 사태에 적용된 첫 사례다.
미국에 대한 위협 개념은 불리한 모든 요소, 상황, 인사를 망라한다. 동맹도, 우방도 미국의 위협 요소로 규정될 수 있다. 캐나다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지난 7월 캐나다 정부는 펜타닐의 미국 유출량이 0.2%에 불과하다고 자부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차단을 원했다. 캐나다의 노력이 성에 차지 않은 그는 캐나다를 위협 국가로 지정하고 캐나다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국가 비상사태에서 미국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방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은 조지아주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ICE가 급습한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사태 발생 후 다음 날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들은 불법체류자들이었고, ICE는 그저 본연의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며 사상 최대의 체포 사건을 정당화했다. 또한 “내가 알기로는 많은 불법체류자가 있었고 그중에는 최선이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리화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는 다른 나라들과 잘 지내길 원하고 훌륭하고 안정적인 노동력을 원한다”며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다.
9월 10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에서 버스가 이동하고 있다. 포크스턴=AP/뉴시스
공화당 백인 지지자들이 열광하는 강력한 반이민정책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 기업이 43억 달러를 투자한 사업에 벌어진 참사에 의연했다. 이런 분위기는 백악관 대변인의 입을 통해서도 전해졌다. 9월 6일 애비게일 잭슨 백악관 대변인은 “특정 프로젝트를 위해 외국인 근로자가 투입될 경우 반드시 합법적으로 입국하고 정식 근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국가로 만드는 동시에 이민법을 철저히 집행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서는 부동산 개발로 성공한 그의 ‘트럼프 왕국’ 치적과 모순된다. 그의 왕국은 수입 원자재와 외국인노동자로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망각한 듯, 그는 2015년 6월 16일 공화당 대선후보 출정식에서 그의 왕국을 빗대어 “내가 만들었다. 내가 만들었다(I built it. I built it)”라고 부르짖으며 미 정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미국의 국가 재건, 제조업 부흥의 약속을 지켜낼 수 있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그의 등장에 미 여론과 유권자는 냉담했다. 그날 발표된 퓨 리서치 설문조사에서 공화당 대선후보자 16명 중 지지율 1%로 최하위에 있었다. 그러나 한 달 뒤 그는 반전을 일으키며 판세를 뒤집었다. 공화당 후보 출정식에서 외부의 위협적인 나라로 중국, 일본, 멕시코 등을 운운하면서 제조업의 부활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민자 문제를 강하게 내세웠다. 이들을 “마약 유통업자, 강간범, 동물(animal)”이라고 칭하며 속내를 처음 밝혔다. 이에 미 국민은 열광했다. 한 달 만에 그는 공화당 대선후보자 1위(17%)에 등극했고, 이듬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민 문제가 정치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에선 이미 1798년 외국인 치안법 제정 때부터 초당적 차원에서 시작됐다. 위반자의 강제수용을 허용하는 법안이 아직 유효하다. 공화당의 전유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의 일이다. 1908년 소개된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 즉 ‘용광로(melting pot)’의 나라라는 개념이 다시 소개되면서부터다. 이때 민주당의 입장이 공화당과 대조를 이루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 이민 문제를 선거에 이용한 이들 대부분이 공화당 소속이었다. 가장 성공적 결과를 거둔 사람은 공화당 출신 캘리포니아주 주지사 피터 윌슨이었다. 그는 1994년 재선의 패색이 짙어지자 불법 이민 문제로 판세를 뒤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반이민정책에 절반 이상의 미국 유권자와 대다수의 공화당 백인 지지자들이 열광하고 있다. 지난 200년 동안 보여준 모습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미국인의 전통적 대외공포증(xenophobia)과 이민자의 미국 복지 수혜에 무임승차 반대라는 인식이 사그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강력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정책 결과는 실제로 어떠할까. 2024년에 116만 명이 강제 추방됐지만 현재 미국 인구 중 이민자의 비중은 15.8%(실거주자 14%)로 신기록을 작성하고 있다.
미국 이민 당국에 의해 조지아주에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들이 9월 12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는 ‘용광로(이민자의 나라)’ 아닌 폭발 직전 활화산
그러면 공공의 안전 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정책은 성공하고 있는가. 2024년에 발표된 2022년 기준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인구 3억3329만 명 가운데 백인이 1억9623만 명으로 아직 백인 지배 사회의 명맥을 유지한다. 흑인(4307만 명)보다 히스패닉(약 6400만 명)이 더 많은 상황이다. 이에 비례라도 하듯, 미 연방수사국(FBI)이 발표한 인종별 범죄 검거자 수에서 백인의 비중(69.4%)은 압도적이다. 흑인은 26.6%, 기타 인종은 4.0%에 불과하다. 2023년 자료에 따르면 중범죄 건수도 흑인과 백인이 각각 1먼3470건과 8646건을 기록하며 1, 2위를 차지했다. 히스패닉과 아시아계는 각각 5636건과 258건뿐이었다. 공공의 안전에 위협 원인이 백인이라는 뜻이다.그럼에도 이민자의 유입 억제와 추방을 미국인 절반 이상이 지지한다. 주지하듯 미국인에게 이민자들은 두려움과 동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인이 꺼리는 일이나 외국인 전문 인력만이 할 수 있는 업무에 동원하든, 이민자들이 미국 질서를 위협하는 범죄 활동으로 공권력을 낭비하든, 미국인에게 이들은 늘 낯선 경계의 대상 이방인이다. 미국은 이민 문제에서 더는 ‘용광로(이민자의 나라)’가 아닌 사회적 갈등 폭발 직전의 활화산이 됐다.
사회적 갈등의 극단화는 불법 이민자의 색출과 강제수용을 위한 군대 투입의 지지로 이어졌다. 올해 1월에 발표된 미국의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가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런 방식에 찬성하는 미국인은 39%에 불과하다. 그런데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선 지지율이 71%로 나왔다. 올해 6월 퓨 리서치는 미국인 54%가 그래도 ‘ICE와 같은 공권력을 동원해 추방하는 방식에 반대한다’는 결과를 알렸다. 그렇지만 백인의 경우 59%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82%는 또한 색출에 더 많은 군대가 동원되는 것을 지지했다. 이유는 75%가 범죄가 감소하는 결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외교는 자국민 보호가 최우선
2024년 ABC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 가운데 미등록 이민자들에 대한 추방 지지율은 2016년의 51%에서 76%로 급등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올해 들어 이민에 대한 인식 전환이 벌써 나타나는 점이다. 지난 7월 갤럽은 이민 감축을 원하는 미국인이 2024년 55%로 정점을 찍고, 올해 30%로 내려왔다. 2024년 이민 증가에 대한 지지율이 2016년 이후 최저점인 16%를 기록했으나 올해 다시 26%로 올라섰다. 같은 시기 공화당 지지자의 48%가 이민 감소에 찬성했다. 전년의 88%에서 반토막이 난 것이다. 현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도 36%를 기록했다. 이민자들이 미국에 유익하다는 시각도 전년(64%)에서 79%로 15%포인트 증가했다. 올 7월 CBS 뉴스는 58%의 미국인은 강제수용소의 이용을 반대한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91%의 공화당 지지자는 강제 추방에 찬성, 민주당 지지자 86%는 반대했다. 해당 설문조사에 의하면 이민정책은 트럼프의 지지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61%)로 나타났다. 취임 이후 그의 지지율 하락을 대변하는 대목이다.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단속으로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의 석방 절차를 마무리 짓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던 조현 외교부 장관이 9월 1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언젠가부터 우리 외교의 목표는 국익이 됐다. 이는 헌법을 무시한 처사다. 헌법 전문은 국민의 안전, 자유와 행복의 확보에 대한 국가의 결의를 요구한다. 제1장 제2조 2항에서 국가가 법률이 정한 범위 내에서 재외국민의 보호 의무를 부여했다. 제10조에서 국민이 안위와 행복추구권이 보장된다. 제30조는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 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국가의 구조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렇게 헌법에 따라 국가에 주어진 국민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외교에도 반영돼야 한다. 우리 외교의 최고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의 정부조직법이나 외교부가 나열한 부처의 직무에서 보면 우리 국민에 대한 보호는 아래 순위에 위치한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외교를 부러워한다. 미국 국무부는 “미국 외교정책의 선결 조건은 자국민의 이익, 안전, 경제적 번영의 증진에 있다”고 정의한다. 일본 역시 “일본과 일본 국민의 이익 증진 도모”를 우선시하는 목표로 설정했다. 두 나라 모두 국민을 우선시하는 목표를 가지고 외교를 한다는 뜻이다. 경제협력 분야에서 우리 역대 정부의 최대 과오는 국민의 권리와 권익을 무시한 데 있다. 남북경협에서부터 이번 조지아주 사태까지 국가와 기업의 이익에 눈먼 외교 참사와 희생은 늘 국민의 몫이었다. 경협의 주체는 국민이다. 따라서 정부는 미국의 국가적 비상사태에서 이들의 영사적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 협상할 때 최우선 의제로 상정하고 관철해야 하겠다.
● 美 웨슬리언대 정치학 학사
● 中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 前 한국세계지역학회장, 한중사회과학회장,
美 브루킹스연구원 방문학자 등 역임
● 現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