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취임 직후 日 거쳐 美 방문, 한미일 공조 강조한 행보
미중 경쟁 격화돼 ‘등거리 외교’는 어려워
미중 모두 과열 경쟁으로 경제 적신호
美 국가부채 33조 달러 돌파, 관세수입으로 해결 안 돼
중국도 재정 악화…IMF “中 숨긴 부채만 60조 위안 넘어”
美 가장 큰 약점은 제조업 역량 약화
韓, 미국의 새로운 생산기지 될 수 있어
조현 외교부 장관이 8월 1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내신 기자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중국은 대부분의 국가와 우호 관계를 유지한다”며 반박 논평을 즉각 냈다. 중국의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미중 간의 ‘줄타기 외교’를 이미 시작했다”며 “미국의 외교 수사(修辭)에 함몰된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중국이 놓친 더 이례적 현상이 있다. 조현 장관이 미국 방문길에 일본을 경유한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정부의 외교 기조의 서사를 알리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한미동맹에 기반해 대중 정책을 일궈내겠다는 정부의 ‘실용외교’ 의지가 녹아 있는 행보였다. 역으로 이를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정부의 도전 과제가 될 것이다.
‘이례적인 일’ 투성이였던 조현 행보
조현 외교부 장관이 7월 29일 일본 도쿄 외무성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 전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외교부
미국에 도착한 후 조 장관은 마코 루비오 국가안보보좌관 겸 국무장관과 회담을 했다.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는 이 모든 공식 업무 일정을 마친 후의 일이다. 조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중국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발언했다.
인터뷰 내용을 통해 조 장관과 한미 양국 외교 수장의 회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한미일 외교 수장은 중국이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으며 태평양 일대에 불안을 조장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 외교 전략은 알 수 없지만, 한국의 대중국 외교 전략은 알 수 있다. 조 장관의 발언처럼 한국은 중국을 배척하기보다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중 관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정부의 포부를 엿볼 수 있다.
조 장관의 중국 행태 비판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국내에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조가 외교에서도 유지될 것이라 장담하긴 어렵다. 역대 정부는 중국의 항의가 있으면 바로 꼬리를 내려왔기 때문이다.
급변한 한국의 태도 때문일까. 조 장관의 발언에 중국 측은 즉각 반응했다. 8월 5일 랴오닝사회과학원의 한반도 전문가 뤼차오 연구원은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G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위협에 대한 미국의 레토릭(발언)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한중 관계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한국의 반중(反中) 시위도 문제 삼았다. 1월경부터 보수성향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중국대사관 앞에서 반중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7월 10일 반중 시위에 대한 주한 중국대사관 공관과 직원에 대한 안전보장 조치 강화를 요청하는 공한(公翰)을 외교부에 전했다.
7월 29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25차 한중고위지도자포럼의 정치외교 세션에서 싱하이밍 전 주한 중국대사관 대사는 “한국의 반중 여론은 극우 세력이 조성하고 있다”고 규정하며 “이들을 정부가 단속해야 한다”라고 엄중 경고했다. 전직 대사가 내정간섭에 가까운 발언을 한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중국 전직 대사의 발언대로 정부가 반중 시위를 단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8월 12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이 대통령은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중국 외교 공관 앞에서 표현의 자유라고 부르기 어려운,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는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혐오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라고 지적하고, 관계 당국에 “이런 것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철저히 취해 달라”고 말했다. 한 달 전 중국의 우려를 그대로 반영한 주문이었다. 국민의 표현의 자유보다 중국의 유감 표명을 더 중요하게 여긴 셈이다. 국내 반중 감정은 물론 우방인 ‘한국 정부는 친중’이라는 미국 등 우방의 우려도 키우는 처사였다.
다시 조 장관의 인터뷰 발언으로 돌아가 보자. 조 장관이 중국에 거리를 두는 발언을 한 만큼 당분간은 한국은 중국과 거리를 둘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9월 3일로 예정된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을 망설이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전승절 행사에 참여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서해 인근에 설치한 해양 구조물인 해양감측부표. 엄태영 의원실
관세수입으로도 해결 어려운 미국 채무
조 장관의 인터뷰는 한국의 외교 방향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그가 지적한 “중국이 주변 지역에 일으키는 문제”는 중국의 서해 침탈 시도를 짚은 것으로 보인다. 이를 국제사회에 알린 점은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한국의 외교 방침은 조 장관의 취임사에도 드러난다. 조 장관은 취임사에서 “한미 간 긴밀한 공조하에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주요 주변국과의 관계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외교 다변화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며 “심화하는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전략적 지평 확대는 더는 선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맹은 물론 중국, 북한, 러시아와도 대화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조 장관은 또 “이를 통해 당면한 경제안보, 통상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짚었다. 여느 정부와 비슷한 전략 구상이다. 이재명 정부만의 의제나 전략이라 할 수 있는 점이 보이지 않는다. 현 정부의 외교 방향은 외교부와 대통령의 태도로 드러난다. 조 장관은 중국의 문제적 행동을 짚고 한미일 공조를 강조한 반면, 이 대통령은 국내 반중 시위를 두고 ‘혐오 시위’로 규정했다. 결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모호한 태도를 취하게 됐다.
세계를 호령하는 양대 강국 중 누구와도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미중 양국의 상황을 보면 둘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미중 양국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미중 경쟁이 심화할수록 양국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들이 약점을 허장성세로 숨긴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 경쟁은 심화하니 미중 양국 모두 주변국에 고압적 태도로 일관한다.
미국은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5월 기준 미국의 국가부채는 약 36조2200억 달러(약 5경744조원)에 달한다. 미 재무부는 2025년 4월 기준으로 빚을 늘리지 않는 데만 연간 6840억 달러(948조 원)가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연평균 3.32% 금리로 빌린 자금의 이자 부담이다. 올해 재정적자만 1조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높은 관세로 국가부채를 해소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1~7월 일부 무역관세와 소비세를 포함한 미국의 관세수입이 1520억 달러(약 211조 원)라며 전년 동기 780억 달러보다 2배 증가했다. 뉴욕타임스는 8월 3일(현지 시간) “관세정책이 현재처럼 유지될 경우 향후 10년간 추가 세수는 총 2조 달러(약 278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워싱턴에서는 이미 관세수입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7월 25일 기자회견에서 “(관세 덕분에) 이렇게 많은 돈이 들어오고 있으니 부채를 갚는 데 쓰는 것은 물론 국민에게 배당 형태로 돌려주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주장했다.
문제는 미국이 관세수입만으로는 국가부채를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자를 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비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 의회예산국(CBO)이 8월 8일 발표한 ‘월간 예산 업데이트’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2025회계연도(2024년 10월~2025년 9월) 재정적자는 올해 7월까지 1조6000억 달러(2223조 원)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적자가 1090억 달러(151조4000억 원) 늘어난 것이다.
높은 관세는 오히려 미국 소비자에게 큰 타격을 줄 가능성만 높아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데이비드 메리클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엘시 팽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미국 소비자는 관세 비용의 22%를 부담하고 있지만 가을까지 그 비중이 67%까지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멍 난 재정에 관세 압박까지…이중고 시달리는 중국
중국의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2024년 11월에 중국 재정부는 2023년 말 기준 중앙정부의 채무가 30조8699억 위안(약 5849조 원)이라고 공표했다. 지방정부와 이른바 ‘숨은 부채(부동산 호황기에 인프라 조성 등 대형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빚)’ 등을 포함하면 총 부채액은 85조 위안(1경6445조 8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중국이 지방정부의 부채 한도를 29조5200억 위안(약 5715조1000억 원)에서 3년 내에 35조5200억 위안(약 6878조7000억 원)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한 사실만 봐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국회 격인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재정경제위원회는 ‘숨은 부채’를 2023년 말 기준 14조3000억 위안(약 2768조5000억 원)으로 집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보다 훨씬 많은 60조 위안(약 1경1613조6000억 원)이라는 추산치를 내놨다.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126조 위안)의 47.6%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재정 악화를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제조업 기반이 무너졌고, 중국은 제조업 기반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제조업 기반을 재건하기 위해 우방까지 관세로 협박하고 있다. 미국 내 제조업 투자를 하는 나라는 관세를 내려주며 미국 내 글로벌기업의 투자를 촉진한다. 이를 두고 ‘강압적 리쇼어링(coercive reshoring)’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중국 내 제조업 전망도 마냥 밝지는 않다. 임금은 빠르게 상승해 과거 중국의 강점이던 저렴한 인건비를 내세우기 어려워졌다. 중국에 제조업 기지를 만들었던 글로벌기업도 미국 관세를 우회하기 위해 중국을 떠나고 있다.
양국의 출혈경쟁은 꽤 긴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2월 J D 밴스 부통령은 제61차 뮌헨안보회의에서 “미중 경쟁이 최소한 앞으로 40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은 세계 1위 패권국가의 지위를 유지하는 전략을 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 미군사령관이 8월 8일 경기 평택 험프리스 미군기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부
국익 챙기려면 美에 끌려다니지 않아야
주한미군 철수 혹은 전략적 유연성 확대도 이 과정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은 8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전력을) 한 곳에 고정 배치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실효성이 낮다”라며 “(주한미군 조정)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 말했다. 브런슨 사령관의 말대로 주한미군 병력이 감축된다면 한반도의 안보 질서가 위험해진다.그렇다고 중국의 손을 잡을 수도 없다. 중국은 지금도 한국의 서해 침탈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국제법 위반의 소지가 있지만 여전히 서해 일대에 불법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까지 일부 철수한다면 중국은 서해 침탈을 더욱 노골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
한국이 양국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들의 약점을 공략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언급했던 ‘실용외교’를 하려면 이 과정에서 국익도 챙겨야 한다. 미국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저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약점은 제조업 생산력이다. 생산력 회복을 위해 미국은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원한다. 하지만 대미 투자로 일관하면 한국의 국익은 후퇴한다. 국내 생산시설이 미국으로 옮겨지면 한국 경제에도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국의 기업을 한국에 유치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이 조선, 자동차, 철강 등 전통적 제조업은 물론 반도체, 2차전지, 원자력발전 등 첨단 제조업에 강하다는 측면을 강조해 한국 내 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
이는 미국에도 이득이 될 수 있다. 현재 미국에는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 미국은 강경 이민정책의 일환으로 외국인의 입국, 체류, 이민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열광하지만 이민정책은 미국 내 인력 부족 현상의 주원인이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월 이후 외국 출신 노동인구는 100만 명 이상 줄어들었다. 이는 지난해 이민자 유입이 급증하며 외국 출신 노동자의 비중이 사상 최고치(19%)를 기록했던 것과는 상반된다. 미국 기업의 제조 시설을 한국에 짓는다면 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외교부도 한국의 국익을 챙길 방향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 장관은 8월 14일 기자회견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원자력 활용이 국방·경제 안보와 함께) 한미 간 기술 분야 협력의 3번째 기둥”이라며 “미래형 포괄적 한미동맹을 만들어나가는 방향으로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4차 산업 발전의 핵심 자원 중 하나는 전력이다.
국익 극대화를 위해서는 미국의 요청대로 한미 방위비분담금 인상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를 이용해 주한미군 감축을 막아야 한다. 분담금을 아끼려다 주한미군을 잃는다면 얻을 국익(경제)보다 잃을 국익(안보)이 더 커지게 된다. 미국 기업의 국내 진출과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에 성공한다면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대한 반대 여론도 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