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SiC 밴드갭 특성, 실리콘보다 뛰어나
다른 소재보다 균형 잡힌 해법으로 꼽혀
엔비디아 선택으로 차세대 표준 될 전망
여기서 밴드갭이란 원자 또는 분자 내 전자가 속박돼 있는, 가전자대의 가장 높은 에너지 준위와 전도대의 가장 낮은 에너지 준위 사이의 간격을 말한다. 밴드갭은 전자가 가전자대에서 전도대로 이동해 전류를 흐르게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로, 물질의 전기적 특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다.
밴드갭이 좁을수록 전자가 이동하기 쉬워 전도성이 높아지며, 넓을수록 전자가 이동하기 어렵고 전도성이 낮아져 절연체에 가까워진다. 넓은 밴드갭과 소재별 특성을 최적화하는 기술력이 바로 고성능 화합물반도체 개발의 핵심이다.
두 가지 이상의 원소가 결합해 만들어진 화합물반도체 가운데 대표적으로 쓰이는 질화갈륨(GaN)과 탄화규소(SiC). AI 이미지 생성
GaN과 SiC, 어떤 특성 갖고 있나
GaN과 SiC는 각각 독보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GaN은 갈륨과 질소 원소로 구성된 화합물로 높은 전자 이동도와 넓은 밴드갭(3.4eV), 뛰어난 열전도성과 화학적 안정성이 특징이다. 밴드갭이 1.12eV인 실리콘에 비해 장점이 두드러진다. GaN은 넓은 밴드갭으로 실리콘 대비 전력 효율이 약 40% 이상 높고, 고온·고전압 환경에서도 안정적이다. 그 덕에 신호 전환 속도가 빠르고 에너지 손실이 낮아 고주파·고속 스위칭(변환) 소자에 활용된다.이외에 활용되는 분야도 다양하다. 청색 LED와 같은 고효율 발광소자를 비롯해 5G 통신 장비, 전기차 전력변환장치, 재생에너지 인버터, 우주·방위산업 장비까지 폭넓게 사용된다. 특히 GaN 기반 고속 충전기와 RF(Radio Frequency·특정 주파수 대역의 전자파) 소자는 이미 상용화된 대표적 제품군이다.
SiC 역시 대표적인 화합물반도체 소재다. SiC는 실리콘과 탄소의 화합물로, 마찬가지로 3.3eV의 넓은 밴드갭 특성을 지닌다. 최대 2000℃ 이상의 고온에서도 견디는 내열성과 실리콘 대비 3배 이상의 열전도율을 자랑한다. 낮은 열팽창 계수를 가진 데다 화학적 안정성도 뛰어나 고온·고전압이 필요한 전력 전자 소자에 적합하다. 실제로 전기차 파워모듈, 태양광·풍력 발전 시스템, 항공우주 장비, 심지어 절삭 공구나 연마재에도 사용된다.
GaN과 SiC, 어떻게 발전했을까
1969년 미국 벨 연구소에서 고품질 GaN 결정 성장이 처음으로 성공했다. 당시 AT&T 벨 연구소에 소속돼 있던 연구원 마르스카(H. P. Maruska)와 티엣텐(J. J. Tietjen)은 갈륨과 질소 원료를 특정 기판 위에서 고온으로 반응시켜 GaN 결정층을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는 기판 표면에 GaN을 균일하게 증착하는 기술로, 현재까지도 GaN 반도체 제조의 핵심 공정으로 활용되고 있다.GaN 반도체의 본격적인 도약은 1990년대 초,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이 GaN 기반 고전자이동트랜지스터(HEMT)를 개발하면서 이뤄졌다. HEMT란 서로 다른 밴드갭을 가진 두 종류의 반도체 물질을 접합해 전자의 이동도를 크게 높인 고속 스위칭 트랜지스터를 말한다. 이후 2000년대 이르러 LED·레이저 다이오드에서 청색 발광이 가능해지면서 상용화가 본격화됐다. 현재는 5G 통신·자율주행차 센서·전력 트랜지스터 분야로 확장되고 있으며, 국내외 정부와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GaN 파운드리와 응용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SiC는 더 오랜 역사를 갖는다. 1891년 미국의 화학자 애치슨(E. G. Acheson)이 합성에 성공했으나 초기에는 연마재 성격이 강했다. 1950~60년대 화학기상증착(CVD) 기술의 도입으로 반도체 소재로 진입했다. CVD란 기체 상태의 화학물질을 기판 표면으로 이동시켜 화학반응을 통해 얇은 막(박막)을 형성하는, 반도체 핵심 증착 기술을 말한다. 이후 1970년대부터 SiC 소자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1980~90년대 SiC 연구는 단결정 SiC 웨이퍼(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큰 SiC 결정체를 성장시켜 절단한 원판) 기술과 전력용 소자 개발에 집중됐다.
1990년대 후반 상용화가 시작되고, 2000년대 들어 대구경화와 결함 저감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다. 이는 전력반도체 소자의 상업적 개발 활성화로 이어졌다. 또한 당시 SiC 기반의 MOSFET(전압으로 반도체 내부의 전류 흐름을 조절해 전자신호를 증폭하거나 스위칭하는 반도체 소자)과 트랜지스터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SiC 소자가 실리콘 소자의 한계를 극복하는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진전은 2000년대 초반 미국과 독일의 화합물반도체 기업인 크리(현 울프스피드), 인피니언 등이 전력반도체 상용화를 성공시키는 중요한 기반이 됐다.
화합물반도체를 사용해 전압을 낮춰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방법을 그려낸 모식도. Navitas
왜 다른 소재보다 GaN과 SiC를 선택할까
이 두 소재가 ‘차세대 반도체’로 꼽히는 이유는 단연 넓은 밴드갭 특성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밴드갭이 실리콘(1.12eV)에 비해 GaN은 3.4eV, SiC는 3.2eV로 훨씬 넓다. 이는 고온·고전압·고주파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동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GaN은 뛰어난 전자 이동도와 포화 속도(높은 전기장에서 전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 속도)로 고속 스위칭, RF 소자에 강점을 갖는다. SiC는 압도적 열전도율과 고전압 내성을 지녀 전력 전자와 인버터에 최적화됐다. 이 같은 성질로 두 소재는 고효율 반도체 시장의 중심에 서게 됐다.물론 다른 화합물반도체도 존재한다. 갈륨비소(GaAs)와 인듐인화물(InP)은 고속·광통신 소자에서 활용되지만, 전력반도체로서는 한계가 있다. 그래핀(Graphene·탄소 원자가 육각형 모양으로 엮여 있는 2차원 평면 구조의 고분자 탄소 동소체) 같은 신소재는 잠재력이 크지만 생산·비용·공정의 난제가 있어 산업화가 더디다. 결국 실질적인 성능과 상용화 가능성 측면에서 GaN과 SiC가 가장 균형 잡힌 해법으로 업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또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행보로 GaN과 SiC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데이터센터 구축은 필수요소로 부각했고,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데이터센터 운용을 해결하려면 화합물반도체가 더욱 필요한 실정이다. 엔비디아가 GaN과 SiC에 주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GaN은 수십~수백 볼트 구간에서 전력 손실을 줄이고 전력 밀도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이는 데이터센터 전원공급장치를 소형화하면서도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SiC는 수백~수천 볼트급 고전압에서도 안정적 성능을 발휘한다. 특히 800V 직류를 기반으로 하는 데이터센터에서는 발열과 손실을 줄여 전체 전력 효율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SiC가 필수적이다.
AI 인프라 미래 대비하는 혁신적 전력 공급 방식
엔비디아는 이미 이 장점을 살려 800V HVDC(고전압 직류송전) 기반의 전원 시스템 ‘카이버(Kyber)’를 구축해 GPU와 메모리에 효율적인 전력을 공급했고, 2027년 본격 도입할 계획이다. 이 변화는 엔비디아에 국한되지 않고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대규모 AI 인프라 기업이라면 엔비디아가 설정한 동일한 조건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엔비디아가 선택한 GaN과 SiC는 차세대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엔비디아가 올해 5월 차세대 AI 공장 구축과 관련한 소식을 자사 홈페이지에 전하며 공개한 800V HVDC 아키텍처 이미지. NVIDIA
영국의 온라인 매체 ‘세미컨덕터 투데이(Semiconductor Today)’는 5월 20일 보도에서 엔비디아와 인피니언의 협력 소식을 전했다. 이에 따르면 가브리엘레 고를라 엔비디아 시스템 엔지니어링 부사장은 “엔비디아의 800V HVDC 아키텍처는 AI 인프라의 미래를 대비하는 혁신적인 전력 공급 방식이며, 이를 지원하는 협력 기업들과 함께 새로운 데이터센터의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혜연 차장
grape06@donga.com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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