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치 웨이퍼 고집이 화합물반도체 도전 쉽게 해
여러 소재 함께 써야 효율적 반도체 만들 수 있어
글로벌 기업은 앞다투어 화합물반도체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 시장은 아직 불모지에 가깝다. 화합물 전력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유럽(54%), 미국(28%), 일본(13%) 순이며 이들의 합산 점유율은 95%인 반면, 한국은 1~2%로 미비하다.
물론 한국에서도 화합물반도체 생태계 구축의 가능성은 있다. 불모지에서도 각자의 실력과 열의로 살아남은 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반도체 공정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을 특화한 업체도 있고, 화합물반도체 시장에 꿈을 품고 버티는 업체도 있다. 일부는 회사의 사활을 걸고 화합물반도체 산업에 대대적 투자를 감행하기도 한다.
국내 수많은 화합물반도체 업체 중 신동아는 최근 3곳을 찾았다. 화합물반도체 제작 공정의 필수 소재인 에피택시 웨이퍼 국산화에 성공한 ‘웨이브로드’, 화합물반도체 팹리스 기업 ‘칩스케이’,마지막으로 국내 최대 규모 화합물반도체 설비를 갖춘 ‘DB하이텍’이 그 주인공이다.
대기업 중에는 화합물반도체에 도전하는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실리콘반도체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중에도 공격적 투자를 감행하며 화합물반도체 생태계 양성에 힘쓰는 회사도 있다. DB하이텍이 그 주인공이다. 2025년 9월 기준 국내에서 직접 화합물반도체 양산 설비를 갖춘 대기업집단 계열사는 DB하이텍이 유일하다.
경기 부천에 위치한 DB하이텍 부천캠퍼스. DB하이텍
반도체 업계에 12인치 웨이퍼 설비 투자가 진행되던 2010년 중후반, DB하이텍은 12인치 웨이퍼 설비 투자를 일부 포기했다. 대신 8인치 웨이퍼에서 더 고성능의 반도체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후 전력 및 디스플레이 시스템반도체를 만들며 시장의 숨은 강자로 자리 잡았다.
화합물반도체도 8인치 웨이퍼를 사용하는 만큼 DB하이텍은 다른 기업보다는 쉽게 화합물반도체 시장에 도전장을 낼 수 있었다. DB하이텍은 지난해 12월 ‘DB하이텍 경영혁신 계획’을 발표하면서 4000억 원을 투자해, 2026년까지 GaN 전력반도체 월 생산능력을 1만 장까지 갖추겠다고 발표했다. 이외에도 SiC 전력반도체 시장 진출을 위해 같은 기간 7000억 원을 투자하고, 2030년까지 월 2만 장의 반도체 생산능력을 갖추겠다는 목표도 공유했다. 올해부터는 GaN 전력반도체 시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SiC 전력반도체는 내년 말 양산을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적재적소에 화합물반도체 투입해야
유럽의 인피니온, 미국의 온세미컨덕터 등 글로벌 시장에서 화합물반도체 시장점유율 1위를 다투는 기업들은 대부분 GaN과 SiC 화합물반도체를 함께 개발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두 소재를 함께 다루는 업체가 드물다. 두 화합물반도체의 생산장비가 일부 다르기 때문이다. 화합물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다른 생산장비를 모두 사들여야 하니 SiC와 GaN에 전부 투자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밝혔다.어려운 투자임에도 이를 감행한 이유를 듣기 위해 8월 26일 경기 부천시의 DB하이텍 본사를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심천만 DB하이텍 상무(전략마케팅팀장)는 “가장 효율적인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 실리콘반도체는 물론 SiC, GaN 등 화합물반도체 생산시설을 함께 갖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 상무는 인피니온에서 만든 자료를 하나 꺼냈다. 화합물 전력반도체의 효율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SiC 전력반도체와 GaN 전력반도체, 그리고 실리콘반도체를 적재적소에 사용해야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다.
심천만 DB하이텍 상무가 화합물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심 상무는 “전력반도체를 효율화하려면 결국 SiC, GaN은 물론이고 실리콘반도체도 다룰 줄 아는 업체가 필요하다”며 “DB하이텍은 화합물반도체와 실리콘반도체를 함께 사용해 가장 효율적 답안을 제시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 화합물반도체 투자 규모도 효율화했다고 설명했다. 투자 규모가 크긴 하지만 새로운 팹을 짓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심 상무는 “실리콘, SiC, GaN 공정에 모두 쓰이는 장비도 있어 공정을 최대한 효율화하는 방식으로 설비투자를 진행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화합물반도체 공급망 국산화 시급
직접 공장을 짓는 대신 화합물반도체를 잘하는 기업을 인수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DB하이텍은 직접 생산시설을 구축했다. 심 상무는 “화합물반도체는 세계 각국이 기술 유출을 철저히 통제하는 품목”이라며 “잘하는 해외 업체를 인수해도 그 기술을 국내로 들여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그는 “그만큼 한국에 화합물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설계부터 웨이퍼, 파운드리 등 화합물반도체 제작 전반을 순수 국내 기술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심 상무는 “해외에서 화합물반도체 핵심 소재 공급을 끊어버린다면 한국에서 화합물반도체 제조가 불가능하다”며 “지금이라도 정부 차원에서 육성에 나서 화합물반도체 자체 공급망을 갖춰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는 화합물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차호영 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화합물반도체 국산 부품 우선 구매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차 교수는 “화합물반도체 부품 국산화에 성공해도 이를 쓰는 국내 기업이 많지 않다”며 “정부 지원을 통해서라도 국산 부품 사용을 늘려 초기 화합물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지원하고 이를 발판으로 자생적 산업구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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