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반도체는 실리콘 아닌 화합물반도체
발광다이오드(LED)로 시작해 디스플레이 혁신
전기 대신 빛으로 작동하는 광반도체로 발전
화합물반도체, 실리콘에 비해 고전압·고열 견뎌
테슬라, 현대차 전기차에 들어가는 SiC
전력반도체는 물론 6G 통신망의 주인공 GaN
실리콘반도체에 비해 시장규모 작으나
기술 안보 측면에서라도 화합물반도체 투자 필요
화합물반도체의 발달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70년대부터 화합물반도체는 주로 발광다이오드(LED) 제작에 활용됐는데, 이 작은 빛을 내는 반도체 소재는 지금도 반도체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화합물반도체는 실리콘 기반 반도체에 비해 더 높은 전압과 열을 견딜 수 있는 뛰어난 특성을 지니고 있어,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 작동이 요구되는 우주, 국방, 항공 등 첨단 분야에서 주로 사용된다. 이런 특성 덕분에 화합물반도체는 고온·고전압 등의 열악한 조건에서도 신뢰성을 유지하며, 다양한 첨단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24년 11월 1일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을 찾은 시민들이 외벽에 설치된 LED 사이니지 ‘세계스퀘어’에서 펼쳐진 미디어 파사드를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뉴스1
화합물반도체는 통신 분야에서도 활약이 두드러진다. 통신으로 오가는 정보의 양이 늘어난 만큼 전기신호의 크기도 늘어나 전력 증폭기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화합물반도체는 실리콘반도체에 비해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빛만 내던 반도체가 AI, 통신 등 미래 산업에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LED로 시작한 화합물반도체
반도체는 소재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단일 원소를 사용한 단일원소 반도체와 두 가지 이상의 원소를 조합한 화합물반도체다. 현재 시장의 주류는 실리콘(Si)으로 만든 단일원소 반도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조사 기업 욜(Yole)은 2030년 반도체의 재료인 소자 시장이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9500억 달러 이상이 실리콘반도체 관련 시장이다. 화합물반도체 시장은 250억 달러에 불과하다.오늘날 주류를 이루는 반도체는 단일원소 반도체이지만, 인류가 처음 발견한 반도체 물질은 화합물반도체였다. 1874년 독일의 물리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은 황화납(PbS) 반도체에 금속 핀을 결합해 최초의 다이오드를 개발했다. 다이오드는 전류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도록 하는 반도체 소자다. 그의 이름을 딴 브라운관은 열전자 방출 원리를 활용한 장치로, 방출된 전자를 가속해 화면에 코팅된 형광체에 충돌시키면 빛을 내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기술을 통해 최초의 전자식 디스플레이가 구현됐다.
화합물반도체는 LED의 상용화를 계기로 전자소자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그 대표적 예가 발광다이오드(LED)다. LED는 1962년 미국의 과학자 닉 홀로니악에 의해 발명됐다. 실리콘반도체는 전자가 에너지를 방출할 때 열을 발생시키지만, 일부 화합물반도체는 에너지를 빛으로 직접 방출한다. 이를 이용해 작은 전구 역할을 하는 소자가 만들어졌으며, 전기 에너지를 바로 빛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일반 전구보다 전력 소모가 적고 더 밝은 빛을 낸다. 또한 사용된 소재에 따라 방출하는 빛의 색도 다르다. 예를 들어, 갈륨비소(GaAs)는 붉은색과 적외선, 갈륨인(GaP)은 녹색, 갈륨질소(GaN)는 청색 계열의 빛을 발산한다.
LED는 디스플레이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처음에는 브라운관의 뒤를 이어 LCD의 광원으로 쓰였다. 초기 LCD는 전구를 광원으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LED를 사용한다. 대형 화면에는 LED를 화소(화면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이용하기도 한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외벽의 ‘미디어파사드’도 LED로 구성된 화면이다. 최근에는 초소형화한 LED 칩인 마이크로 LED까지 개발됐다. 마이크로 LED는 5~10um(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의 LED를 사용한다. LED 칩 자체를 화소로 사용하기 때문에 LED 화면의 크기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작은 만큼 전력효율도 좋다. 적은 전력으로 세밀한 화면을 구현해 낼 수 있어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에 주로 쓰인다.
마이크로 LED는 단순히 빛을 내는 소자를 뛰어넘을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 아비세나는 화합물반도체 발광 소자를 활용한 광 I/O(광학 입출력)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는 ‘실리콘 포토닉스’와 유사한 맥락에서 차세대 데이터 전송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리콘 포토닉스’라 불리는 기술로 기존 반도체가 구리 선으로 전자를 전달해 작동했다면, 실리콘 포토닉스는 실리콘 기반 광도파로를 이용해 빛을 전달하는 반도체 기술이다. 빛은 전류와 달리 저항·발열 문제가 없고 속도도 빠르다.
세계 1위 파운드리 반도체 기업 TSMC는 4월 아비세나와 기술협력 파트너십을 체결해 빛을 통한 데이터 전송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업체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도 아비세나에 투자했을 정도로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화합물반도체가 반도체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시장의 주류는 여전히 실리콘반도체다. 화합물반도체가 반도체 시장의 주류가 되지 못했던 것은 단일원소 반도체에 비해 만들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반도체의 구성 요건을 알아야 한다. 반도체가 되려면 원소 가장 바깥쪽에 있는 전자의 개수가 중요하다. 이를 최외각 전자라고 하는데, 원자가 서로 결합해 최외각 전자가 8개가 되면 안정된 구조를 이루며, 이때 반도체 특성을 나타낼 수 있다.
만들기 쉬워 주류가 된 실리콘반도체
반도체에 주로 사용되는 원소는 최외각 전자가 4개인 단일 원소(예: 실리콘, 게르마늄)다. 최외각 전자의 총합이 8개가 되면 반도체를 형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외각 전자가 5개인 원소와 3개인 원소를 결합해도 반도체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여러 원소를 혼합하는 것보다, 한 가지 원소로 반도체를 만드는 편이 더 쉽기 때문에 반도체 시장에서는 단일원소 반도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실리콘반도체로, 재료인 실리콘(Si)은 최외각 전자가 4개인 원소다.그러나 실리콘이 최초의 소재였던 것은 아니다. 반도체 개발 초창기에는 게르마늄을 이용해 반도체를 만들었다. 실리콘(1318℃)에 비해 녹는 점(938.3℃)이 낮아 가공이 쉬웠기 때문이다. 이후 점차 높은 전력과 전압을 사용하는 기기가 늘면서 게르마늄 반도체에 비해 고열을 견딜 수 있는 실리콘반도체가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기술발전이 심화하면서 실리콘반도체도 한계에 봉착했다. 전기차, AI 데이터센터 등 더 높은 전압이 필요한 사용처가 늘었기 때문이다. 실리콘반도체는 고온과 고전압에서는 안정성과 내구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높은 전압을 가하면 반도체 내에서 열이 발생하는데, 실리콘 반도체는 150℃ 이상에서는 누설 전류가 급증하고 특성이 불안정해져 반도체 기능이 약화된다. 화합물반도체 중 질화갈륨(GaN·갈륨나이트라이드)과 탄화규소(SiC·실리콘카바이드)로 만든 반도체는 실리콘반도체에 비해 더 높은 전압과 온도를 버틸 수 있고 전력 손실도 적다.
전기차·AI 데이터센터의 핵심 소재 화합물반도체
전도대는 자유전자가 원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상태, 즉 최외각 전자가 원자에서 벗어난 상태를 뜻한다. 반면 가전자대는 전자가 원자에 묶여 최외각 궤도에 머무르는 상태를 의미한다. 전자는 이 밴드갭을 넘어 이동하면서 전기를 전달하는데, 외부로부터 에너지(전기, 열 등)가 가해지면 가전자대에 있던 전자가 전도대로 올라와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고, 이때 전류가 흐른다.모든 물질은 고유한 밴드갭을 갖는데, 이 단위를 eV(1eV=1.60217646 × 10⁻¹⁹J)라 한다. 전자 하나가 가전자대에서 전도대로 올라가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나타내는 단위다. 실리콘의 밴드갭은 약 1.12eV인데 비해, SiC는 3.3eV, GaN은 3.4eV로 크다. 밴드갭이 넓으면 고온·고전압 환경에서 누설 전류와 발열이 줄어 전력 손실을 낮출 수 있어, 고효율 반도체로 활용되기에 유리하다. 그런데 밴드가 너무 넓으면(4eV 이상) 전자가 전도대까지 도달하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0.1~4 eV 범위를 반도체로 보고, 이보다 훨씬 큰 경우는 절연체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밴드갭이 좁으면 전자가 전도대에 닿기 쉽고, 그만큼 낮은 전압에서도 작동이 가능하다.
다만 전압이 높아지면 효율이 떨어지는 현상이 생긴다. 전도대까지 올라간 전자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이다. 전도대에 올라간 전자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자유전자’가 된다. 자유전자가 과도하게 늘어나면 산란이 잦아져 에너지 손실이 발생하고, 이 손실은 열로 전환된다. 충돌할 때 손실된 에너지는 열에너지가 된다. 게다가 과도한 열은 전자이동도를 감소시켜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하게 된다.
반면 밴드갭이 넓으면 전자가 전도대로 전이하기 위해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전자 대부분이 가전자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자유전자가 줄어 전력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 밴드갭이 넓으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니 낮은 전압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에서는 에너지 효율이 떨어진다. 그래서 화합물반도체는 고전압, 고주파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전력반도체에 주로 쓰인다. 또한 고온 환경에서는 밴드갭이 좁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처음부터 밴드갭이 넓은 화합물반도체는 고온에서도 넓은 밴드갭을 유지하기 때문에 자유전자의 이동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SiC와 GaN은 와이드 밴드갭(Wide Bandgap) 반도체로 분류되며 높은 주파수와 전압, 고온 환경에 적합한 핵심 소재로 각광받는 것이다.
둘 중에서도 고전압에 더 강한 것으로 알려진 SiC 전력반도체는 이미 전기차에 적용될 정도로 보급이 빠른 편이다. 600V 이상의 전압에서 가장 좋은 성능을 발휘한다. 현재 SiC 전력반도체의 주요 수요처는 전기차로, 전체 수요의 대다수(약 60~70%)를 차지한다. 테슬라는 물론 현대자동차도 SiC 전력반도체를 사용한 전기차를 내놓고 있다. 주로 전력 모듈장치인 인버터, 컨버터, BMS(배터리 관리 시스템)에 많이 활용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2024년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내연기관차(사용 반도체 수 200~300개)가 전기차·자율주행차(사용 반도체 수 2000개 이상)로 전환될 경우 SiC 전력반도체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걸로 보인다. 또한 고속철도에 쓰이는 전력반도체에도 SiC 전력반도체가 활용되고 있어 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테슬라의 모델3부터 SiC 전력 반도체가 쓰이기 시작했다. 테슬라 홈페이지
중국 저가 공세로 세계 선두 업체도 구조조정 돌입
고주파에도 잘 견디는 GaN 반도체는 6세대 통신, 양자 컴퓨터에 사용될 RF(무선 주파수) 장비에도 쓰인다. RF는 전자파를 이용해 무선통신 체계를 만드는 기술이다. 안테나에서 전파를 전달하기 위한 각종 회로, 구조물, 주변장치 전반을 RF라 부른다. RF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력을 증폭하는 PA(Power Amplifier)다. 무선은 공중에서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이기에 유선보다 감쇠나 잡음이 심하다. 따라서 신호를 멀리 전달할 수 있도록 증폭기가 필요하다.PA는 송신 시 신호를 멀리 보낼 수 있도록 증폭하고, 수신 시 약해진 신호를 보강한다.
물론 실리콘반도체로도 PA를 만들 수 있다. 단 성능이 GaN 반도체로 만든 PA에 미치지 못한다. GaN 기반 전력증폭기는 실리콘 기반 수평형 전력 소자(LDMOS)보다 소형화·저전력·고효율 측면에서 우수하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현재 GaN 반도체로 만든 RF 장비는 5G 기지국에 많이 쓰인다. 5G보다 50배 빠른 차세대 통신망인 6G에도 GaN RF 장비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 5G에 비해 더 높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만큼 고주파에 잘 견디는 GaN 반도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KF-21에 탑재된 AESA 레이더에는 갈륨질소(GaN) 반도체가 쓰인다. 뉴스1
SiC 전력반도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SiC 전력반도체 분야 주요 선두 업체인 미국 울프스피드는 실적 부진 여파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역시 중국의 저가 공세가 원인이다. 반도체 시장조사 기관 트랜드포스는 “울프스피드의 6인치 SiC 웨이퍼는 개당 1500달러에 팔렸지만 지금은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로 500달러 이하에 팔 수밖에 없다”며 울프스피드의 구조조정 이유를 밝혔다.
화합물반도체를 한국의 ‘반도체 방패’로 만들어야
그러나 경제적 유인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화합물반도체 투자를 포기할 수는 없다. 반도체 기술과 시장은 이미 국가의 전략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5월 20일 화합물반도체기술협의회 발족식에서 “경제적 관점에서는 화합물반도체 기술개발과 시장 형성에 정부 투자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 방위와 전략 산업 차원에서는 반드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월 20일 화합물반도체 기술협의회 발족식에서 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발표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특히 한국은 화합물반도체에 관한 투자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편이다. 글로벌 반도체기업협회 SEMI가 지난해 발표한 ‘2027년까지 화합물반도체 생산시설(Fab) 건설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16~2025년 사이 총 3개의 화합물반도체 생산시설을 신축했다. 2027년까지도 추가 건설 계획은 없다. 하지만 중국은 같은 기간 126개의 화합물반도체 생산시설을 갖췄다. 2027년이 되면 추가로 7개의 생산시설이 더 운영된다. 미국은 지금까지 29개의 시설을 운영 중이고, 2027년까지 추가로 7개 생산시설을 더 짓는다.
반도체 선진국과 차이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17개 화합물반도체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고, 내년까지 3개의 시설을 더 운영할 계획이다.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도 총 10개의 화합물반도체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화합물반도체기술협의회 관계자는 “화합물반도체는 미래 먹거리인 AI, 6G 통신, AR·VR 등 다양한 분야에 꼭 필요한 부품”이라며 “이를 전량 해외에서 사들인다면 무역분쟁 발생 시 한국의 핵심 산업이 멈춰버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지금이라도 정부 차원에서 국내 화합물반도체 발전을 위한 전략적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추적] ‘미스터리 우먼’ 김현지, 이재명과의 27년
“화합물반도체 생태계 조성, 나노기술원이 나선다”
[현장탐방] 국가 전략 반도체 키워내는 요람, 한국나노기술원
[현장취재] 화합물반도체 생태계 양성 힘쓰는 DB하이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