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위기감에 뭉친 산·학·연, CSTA로 화합물반도체 새판 짠다

[Spotlight] R&D·정책 묶는 ‘한국형 컨트롤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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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5-10-12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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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산업 ‘게임체인저’로 부상…각국 대규모 투자 이어가

    • “최대 효율 위해 협력 절실…산업생태계 구축 위한 첫 단추”

    • 기술·정책·지원분과…소재부터 시스템까지 전주기 전략 마련

    • 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연구와 사업 연결하는 플랫폼

    대한민국 반도체 지형이 새 국면을 맞았다. 국내 화합물반도체 분야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 등 178곳이 힘을 모아 화합물반도체기술협의회(CSTA)를 발족시킨 것이다. 이로써 소재·부품·장비 기업부터 소자 연구기관, 학계까지 화합물반도체 분야 핵심 주체가 한자리에 모여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협력 구조가 마련됐다.

    미래산업 ‘게임체인저’로 부상…각국 대규모 투자 이어가

    정부는 2024년 1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화합물반도체를 차세대 전략 분야로 명시했다. 사진은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조감도. 한국수자원공사

    정부는 2024년 1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화합물반도체를 차세대 전략 분야로 명시했다. 사진은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조감도. 한국수자원공사

    “화합물반도체는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반드시 육성해야 하는 전략적 자산이다.”

    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원장이 5월 20일 서울 강남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열린 CSTA 발족식에서 힘주어 말했다. 발족식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를 비롯해 학계와 산업계 전문가 60여 명이 참석해 새로운 출발을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협의회를 산·학·연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로 키워 국내 화합물반도체 산업의 기반을 끌어올리겠다는 뜻을 모았다. 전기차·우주항공·국방·차세대 통신 등 국가전략산업을 지탱할 새로운 엔진으로 화합물반도체가 주목받는 가운데, 산·학·연이 총출동해 산업생태계 구축에 나선 것이다.

    화합물반도체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차세대 기술’이라는 수식어 때문만은 아니다. 실리콘반도체가 고온·고전압·고주파 환경에서 성능의 한계에 부딪힌 반면, 실리콘카바이드(SiC·탄화규소)와 갈륨나이트라이드(GaN·질화갈륨)로 대표되는 화합물반도체는 전력 효율, 내구성, 신뢰성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진다. 화합물반도체가 전기차·위성·레이더·통신장비·국방·우주 등 첨단산업의 성패를 가를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이유다. 국가전략산업과 직결된 만큼, 한국이 한발 뒤처질 경우 산업 경쟁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절박함이 산·학·연을 CSTA로 결집시킨 동력이다.

    세계 각국은 이미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국은 고부가가치 산업을 겨냥해 화합물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전주기를 아우르는 통합적 지원 체계를 마련해 산업화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차세대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단발성 R&D 지원에 머물러 연구 성과가 산업현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 기업 역시 화합물반도체를 미래성장동력으로 점찍고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온세미컨덕터는 올해까지 1조4000억 원을 들여 경기 부천에 SiC 전력반도체 연구·제조 시설을 세우며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고, 독일 인피니언은 2014년 GaN 기술을 가진 미국 인터내셔널렉티파이어를 30억 달러에 인수해 전력반도체 분야의 입지를 강화했다. 일본 로옴 역시 2018년 캐나다의 GaN시스템스와 손잡고 트랜지스터와 전자부품 설계 기술을 공유하며 주도권 다툼에 뛰어들었다. 해외 기업이 속속 투자에 나서는 가운데, 한국이 격차를 좁히지 못한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최대 효율 위해 협력 절실…산업생태계 구축 위한 첫 단추”

    국내 화합물반도체 분야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 등 178곳이 힘을 모아 CSTA를 발족했다. 5월 20일 서울 강남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열린 발족식에는 학계와 산업계 전문가 60여 명이 참석해 새로운 출발을 함께했다. 홍중식 기자

    국내 화합물반도체 분야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 등 178곳이 힘을 모아 CSTA를 발족했다. 5월 20일 서울 강남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열린 발족식에는 학계와 산업계 전문가 60여 명이 참석해 새로운 출발을 함께했다. 홍중식 기자

    CSTA는 이러한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형 생태계를 구축하는 ‘구심점’이 되고자 한다. 정부가 지난해 1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방안을 발표하면서 화합물반도체를 차세대 전략 분야로 명시했고, 이를 계기로 한국나노기술원이 그해 5월부터 생태계 조성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 연장선에서 R&D와 정책 수립을 총괄할 컨트롤타워 조직으로 결성된 곳이 바로 CSTA다. 고유민 한국나노기술원 실장은 발족식에서 “다른 나라처럼 화합물반도체 산업에 수조 원을 투자할 수 없는 실정이기에, 한정된 자원에서 최대의 효율을 끌어내려면 (산업계, 학계, 연구계의) 협력이 절실하다”며 “CSTA는 화합물반도체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한 ‘첫 단추’”라고 평가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는 화합물반도체 산업이 갖는 전략적 의미와 현실적 과제를 잇달아 강조했다. 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가의 방위전략과 경영전략 차원에서 정부는 반드시 화합물반도체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규식 인피니온 테크놀로지스 코리아 상무는 “우주·국방용 화합물반도체는 고가이고 소량 생산되는 만큼 시장이 형성되기는 어렵다”며 “화합물반도체 생태계를 만들려면 먼저 이 기술을 쓰는 시장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준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무는 “우주 분야 화합물반도체 시장이 성장하겠으나 진입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가 발사체나 위성을 개발할 때 국내업체의 부품을 써준다면 국내 화합물반도체 기업도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범 자체로 의미가 크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만만치 않다. 7월 9일 열린 CSTA 운영위원회 회의에서는 국내 화합물반도체 산업의 취약한 고리가 여실히 드러났다. 가장 큰 문제는 밸류체인의 단절이었다. 소재 개발에서 소자 제작, 패키징과 시스템 적용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이 따로 놀아 연구실의 성과가 제품 양산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연구·개발 과제의 중복, 단기 성과 위주의 지원 관행 등도 도마에 올랐다. 성과지표에 매달린 연구개발로 기술이 축적되지 않고, 보여주기식 실적에 치우쳐 산업 생태계를 왜곡시킨다는 비판이었다. 기존 반도체 협의체가 범산업적 이슈에 치중해 화합물반도체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이 같은 문제를 두고 전문가들은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구체적으로 공공 R&D 인프라를 기반으로 연구·개발 성과를 공유·재활용하고, 중장기 연구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인력 양성과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를 동시에 강화해야 산업생태계가 선순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CSTA가 이런 다양한 요구를 수렴·조율하는 ‘중간 지대’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기술·정책·지원분과…소재부터 시스템까지 전주기 전략 마련

    고유민 한국나노기술원 실장은 5월 20일 CSTA 발족식에서 “다른 나라처럼 화합물반도체 산업에 수조 원을 투자할 수 없는 실정이기에, 한정된 자원에서 최대의 효율을 끌어내려면 (산업계, 학계, 연구계의) 협력이 절실하다”며 “CSTA는 화합물반도체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한 ‘첫 단추’”라고 말했다. 홍중식 기자

    고유민 한국나노기술원 실장은 5월 20일 CSTA 발족식에서 “다른 나라처럼 화합물반도체 산업에 수조 원을 투자할 수 없는 실정이기에, 한정된 자원에서 최대의 효율을 끌어내려면 (산업계, 학계, 연구계의) 협력이 절실하다”며 “CSTA는 화합물반도체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한 ‘첫 단추’”라고 말했다. 홍중식 기자

    앞선 문제의식은 협의회의 운영 방식으로 구체화됐다. CSTA는 활동 영역을 크게 세 갈래 분과로 나눠 운영되고 있다. 우선 기술분과는 재료·공정, 소자·설계, 응용 등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세분화돼 화합물반도체의 기술 축을 맡는다. SiC·GaN·인화인듐(InP) 같은 차세대 소재와 전력·무선통신(RF)·광소자 기술, 패키징 기술까지 폭넓게 다루며 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이다. 정책분과는 국제협력과 정부 지원사업 발굴, 정책 제언, 시장 동향 분석을 담당한다. 국내외 기술 흐름과 산업 트렌드를 반영해 제도적 뒷받침을 강화하고, 회원사와 정부를 잇는 가교로 기능한다. 마지막으로 지원분과는 R&D 과제 발굴, 인력 양성, 기업 지원을 맡는다. 연구 현장의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지원과 전문 인재 육성을 통해 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CSTA는 운영위원 선출과 회장단 구성을 마치고, 사무국을 중심으로 회원사 지원과 의견 수렴을 체계화하고 있다. 협의회는 연내 규정 정비를 마무리하고 내년 1월 첫 정책발표회를 열어 산업계·학계·정부에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할 예정이다. 발전 방향은 △R&D 투자 효율화 △인력 양성 △산업 경쟁력 강화 △정책 연계 등 네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국내 화합물반도체 산업과 연구 현황을 면밀히 조사·분석하고, 소재→소자→패키징→시스템으로 이어지는 전주기 균형 발전 전략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단계별 로드맵도 마련했다. 1단계는 생태계 진단으로, 국내 화합물반도체 산업과 연구 현황 전반을 면밀히 조사해 중복 투자를 줄이고, 선택과 집중으로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2단계는 전략 평가 단계로, 그간의 연구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기술 로드맵을 도출하고,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추진할 정책을 제언한다. 이 과정에서 유망 기술을 발굴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마지막 3단계는 실행 단계로, 신규 과제를 발굴하고 범부처 협력을 강화해 산업화와 시장 확대를 이끈다는 구상이다. 궁극적으로는 산업생태계를 공고히 하고, 회원사가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목표다.

    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연구와 사업 연결하는 플랫폼

    무엇보다 산업생태계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데 힘을 쏟을 방침이다. CSTA는 화합물반도체 분야의 장비·소재 관련 정보를 모아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연구 성과와 산업 정보를 집약해, 기업과 연구기관이 필요한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회원사 간 정보 교류와 공동 대응체계 마련이 가능해지고, 나아가 글로벌 기술 변화에도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실제 협력이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 역시 마련하고 있다. 정책·시장 동향 분석 자료를 정기적으로 배포해 회원사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한편, 기술 세미나와 포럼을 정례화해 산업계·학계·연구계의 교류를 촉진할 계획이다. 특히 정부 R&D 사업과 연계해 공동 제안 과제를 기획하고, 산업계의 기술 수요와 공공 연구 역량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도 강화할 방침이다.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수준을 넘어, 연구와 사업이 실제로 연결되는 실효성 있는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관련 업계의 반응도 뜨겁다. 

    정부가 2028년까지 추진하는 ‘우주·국방용 화합물반도체 인프라 고도화 사업’에도 CSTA가 보조를 맞추며 구체적 실행에 나서고 있다. 유관 기관인 한국나노기술원은 올해까지 △플라즈마화학기상증착(PECVD) △8인치 화합물반도체 식각장치 △8인치 실리콘 그라인더 등 화합물반도체 산업의 핵심 장비를 갖추고, △고주파 능·수동소자 △8인치 GaN 전력반도체 전·후면 공정기술 △공용 파운드리 등을 개발 및 구축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단기 실적 위주의 작은 규모 연구는 지양하고, 여러 기관이 협력하는 대형 R&D 과제를 통해 소재부터 시스템까지 전체 산업 흐름을 하나로 묶는 시도를 이어갈 방침이다.

    CSTA는 첨단 장비 활용과 기술 컨설팅은 물론 인력 양성과 일선 현장의 애로 해소까지 포괄하는 다층적 지원 체계를 꾸리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기술 로드맵 수립과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확장까지 주도해 한국 화합물반도체 산업의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화합물반도체업계에서는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구심점이 생겨 다행”이라는 반응과 함께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CSTA가 향후 어떤 성과를 거둘지가 한국 반도체산업의 다음 10년을 좌우하는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최진렬 기자

    최진렬 기자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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