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상가 분양, 5년간 4.5% 수익 보장” 광고 믿었는데…

[Issue] 대형 건설사 내세운 ‘마스터리스’의 속살

  • 이성우 K산업연구원장·공군 예비역 준장

    입력2025-10-0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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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녀 부담 주지 않으려 했는데” 노후 대비하는 70대의 눈물

    • 건물주에 임대수익 보장하는 마스터리스 계약의 함정

    • 시공사 계좌로 분양 대금 입금받아 운용…책임은 시행사가

    • 사후관리 부재로 피해 키워…지자체는 “민사 문제” 일관

    • 검증·감독 장치 없어…최소한 ‘가이드라인’ 마련할 때

    경기 평택시 고덕국제화계획지구 내 상업시설인 ‘어반그로브 고덕’ 상가 분양 사례는 마스터리스 구조의 전형이다.

    경기 평택시 고덕국제화계획지구 내 상업시설인 ‘어반그로브 고덕’ 상가 분양 사례는 마스터리스 구조의 전형이다.

    일흔을 넘긴 배모 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노후를 대비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몇 년 전 경기 평택시 고덕국제화계획지구 내 상업시설인 ‘어반그로브 고덕’ 분양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이 화근이었다. 손에 쥔 돈이 넉넉지 않아 무리해서 4억 원의 대출까지 받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잘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무엇보다 광고 전면에 큼지막하게 적힌 “5년간 4.5% 수익 보장”이라는 문구와 설명이 마음을 안심시켰다. 잔금과 중도금, 취득세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은 물론 배우자의 카드까지 총 여섯 장을 돌려 썼다. 모두 분양 안내자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준 방법이었다. 부담은 컸지만 매달 꼬박꼬박 임대료가 지급된다는 약속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잔금까지 모든 분양 대금을 내고 나니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잔금을 내기 전까지 잘 진행된다던 마스터리스 임차 사업이 중단되고, 마스터리스를 책임지는 시행사가 파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받는 월급으로는 매달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기 벅찼고, 이미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1억 원의 대출금이 남아 있어 이중의 부담이 됐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매월 임대료가 들어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버텼다. 배 씨는 “모아둔 돈도 없고, 이제 몸과 마음도 예전 같지 않아 하루 한 끼로 때우는 날도 많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건물주에 임대수익 보장하는 마스터리스 계약의 함정

    배 씨가 체결한 부동산계약은 이른바 ‘마스터리스’다. 마스터리스란 분양사 등 특정 임차인이 건물이나 시설 전체를 장기 임차한 후 다시 여러 세입자에게 나눠 임대·관리하며, 건물주에게 일정 기간 동안 임대수익을 보장하는 방식의 부동산계약을 말한다. 사업자가 “O년간 연 O% 수익보장”이라는 조건을 내걸며 상가를 분양하고, 약속된 임대료를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식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투자자가 초기 임차인을 구하는 불확실성을 덜고,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듯 보인다. 배 씨 등 다수 투자자가 모인 배경이다. 

    문제는 이 계약의 실질적 책임 주체다. 수익을 약속하는 당사자는 재무 건전성과 이행 능력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신생 시행사인 경우가 많다. 반면 분양 광고와 사업 설명회에는 대형 건설사나 금융기관이 전면에 등장해 투자자에게 마치 이들이 책임을 지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세세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투자자는 브랜드가 주는 신뢰감에 기대 계약을 체결하고, 막상 사업이 어그러져 시행사가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된다.

    어반그로브 고덕 마스터리스 분양 대금 일부는 시공사인 현대건설 명의 계좌로 입금됐다. 이성우

    어반그로브 고덕 마스터리스 분양 대금 일부는 시공사인 현대건설 명의 계좌로 입금됐다. 이성우

    앞선 상가 분양 사례는 마스터리스 구조의 전형이다. 이 사업은 유리치(시행사), 하나자산신탁(신탁사), 현대건설(시공사)이 각기 다른 역할을 맡으며 진행됐다. 외곽 상가 421실은 일반 분양으로 공급됐지만, 내곽 상가 164실은 마스터리스 조건을 붙여 2차 분양으로 공급됐다. 집객력이 떨어지는 내곽 상가에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5년간 연 4.5% 임대수익 보장”이라는 조건을 내세운 것이다. 법적으로는 시행사인 유리치가 수익보장 의무를 갖지만, 투자자는 “현대건설, 평택 고덕신도시 최초 마스터리스 도입!”이라는 분양 팸플릿 전면의 광고 문구를 보고 대형 건설사가 수익을 보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상당수 투자자가 대형 건설사를 믿고 분양에 뛰어들었다.



    은퇴 후 본격적으로 노후를 준비하던 70대 민모 씨 역시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국내 1군 건설사가 시공하고 5년간 임대수익을 보장한다”는 설명을 믿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수중에 돈은 1억5000만 원뿐인 탓에 8억 원에 달하는 분양가를 감당하기 위해 은행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5년간 임대수익이 보장된다면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시공사 계좌로 분양 대금 입금받아 운용…책임은 시행사가

    하지만 이내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다. 이자 부담을 위해 가사도우미와 식당 설거지 같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그는, 시행사의 회생 기각이라는 공고문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갑자기 큰일이라며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마스터리스는 유리치라는 곳에서 책임을 지는데 이 회사가 파산한 거나 마찬가지며, 마스터리스 사업이 중단됐다”는 설명을 듣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민 씨가 의지했던 ‘5년간 수익보장’은 휴지 조각이 된 것이다. 이자 납부 걱정에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늘었고, 억울함과 절망감에 ‘차라리 유서를 쓰고 삶을 끝낼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떠올렸다. 민씨는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노후 생활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완전히 잃었다”고 토로했다.

    이 사태를 개인투자자의 부주의로만 돌리기도 어렵다. 이 분양에 참여한 투자자는 연로한 사람이 많고, 대부분이 건축이나 분양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수탁자·위탁자·시행사 등 용어도 이해하지 못한 이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투자자가 계약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장치 또한 많았다. 계약 당일 시공사·신탁사·시행사가 함께 날인한 ‘분양 계약서’와 시행사가 단독 주체로 체결한 ‘마스터리스 계약서’를 함께 작성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 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두 계약이 하나의 패키지 계약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설명회와 홍보물에서는 거대 건설 브랜드 “현대건설 힐스테이트”가 “평택 고덕에 최초로 마스터리스를 도입했다”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노출됐다. 정작 법적 책임 당사자인 유리치는 뒷전으로 밀려나 적게 표현되거나 그냥 ‘시행사’로만 표시돼 그 존재를 알 수 없었고, 그 중요성을 모르니 투자자들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계약 현장에서 투자자가 차분히 내용을 검토할 시간 역시 주어지지 않았다. 계약 당일 투자자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공급계약서 3부와 임대차계약서 등 30여 곳에 서명과 날인을 반복해야 했다. 처음 보는 계약서는 작은 글씨와 난해한 용어로 빽빽했으며, 짧은 시간에 조항의 법적 의미를 해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혼잡한 현장에서 투자자들은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현대건설”과 “수익이 보장된다”는 문구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특히 공급계약서(제24조 5항)에는 시공사와 신탁사의 책임을 면제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지만, 계약 과정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사실상 없었다. 반대로 “현대건설의 힐스테이트 상업시설” “마스터리스 5년간 임대수익 보장”의 분양 조건은 설명회와 계약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투자자는 자연스럽게 현대건설과 수익보장 약정만 뚜렷하게 기억했을 뿐, 이면에 숨어 있던 면책 조항이 훗날 시공사와 신탁사의 책임 회피 논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불균형한 정보 제공이 투자자로 하여금 계약 구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계약서에 서명하게 만든 것이다.

    계약 이후의 절차 역시 투자자의 오해를 유발했다. 청약금과 분양 대금 일부가 시공사인 현대건설 명의 계좌로 입금됐을 뿐만 아니라, 관련 안내도 현대건설에서 했다. 그 외 소유권 이전 시 현대건설의 확인 도장까지 받도록 하는 등 관련 사무를 현대건설 분양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애당초 공급계약서(제22조 7항)에는 “분양 대금은 반드시 시행수탁자 명의 계좌에 입금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그럼에도 대형 건설사가 돈을 받는다는 사실은 오히려 신뢰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투자자가 현대건설을 단순 협력사가 아닌, 실질적 공급자이자 최종 책임자로 인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광고·계약·납부·분양 모든 과정에서 현대건설이 부각되면서, 투자자는 자연스럽게 현대건설을 사업의 실질적 주체이자 수익보장의 최종 보증인으로 인식하게 됐다.

    분양 대금을 수납한 현대건설과 이를 함께 관리한 신탁사는 자금 운용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공급계약서에는 “분양 대금은 반드시 시행수탁자 명의 계좌에 입금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이는 명백한 계약 위반으로, 단순 착오로 치부할 수 없는 사안이다. 게다가 공급계약서(제24조 6항)와 임대차계약서 모두 “연간 임대료 수익을 보장한다”는 동일한 조항을 근거로 체결됐다. 임대차계약서의 “시행위탁자인 유리치”라는 표현은 이 계약이 위탁·수탁 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본건은 공급계약 특약사항 제24조에 6항에 기하여”라는 문구는 두 계약(임대차계약·공급계약)이 독립된 건이 아니며 사실상 하나의 통합 계약 구조임을 의미한다. 현대건설과 신탁사가 “수익보장은 시행사의 몫”이라며 발을 빼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마스터리스 계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분양 대금이 마스터리스 계약을 이행하는 데 사용되지 않은 탓이다. 애당초 투자자는 마스터리스 조건의 상가 분양 계약을 하고 분양 대금을 냈다. 그러나 사업자는 회계 처리 과정에서 이 자금을 목적이 다른 주거시설 및 일반상가 분양 대금과 통합해 관리했다. 그 결과 투자자에게 지급돼야 할 재원이 추가 공사비, 금융비용 등 다른 용도로 우선 소진됐다. 공급계약서에 삽입된 사업자 간 내부 책임 관련 조항이 이를 뒷받침하는 데 사용됐다. 해당 내용의 실질적 의미를 알지 못한 피해자는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시공사와 신탁사는 처음부터 마스터리스 이행을 위한 별도의 재원 분리나 관리 계획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시행사 유리치는 자금이 고갈돼 수익보장 약정을 집행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고, 2025년 4월 11일 회생절차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될 만큼 재무 상황이 악화되면서 마스터리스 이행은 사실상 중단됐다.

    투자자가 체결한 계약은 단순한 상가 매매가 아니었다. 계약 구조상 분양 대금은 곧바로 임대수익 보장의 원천으로 기능할 것으로 이해했고, 이는 투자자로 하여금 안정적 현금흐름이 보장되는 일종의 금융상품에 가입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러나 실제 운용 단계에서 신탁사는 자금을 임의로 배정하며 수익보장이라는 핵심 목적을 사실상 무력화했다. 분양 대금이 추가 공사비 정산 등에 먼저 쓰이는 것은 투자자의 합리적 기대와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자본시장법상 수익자 보호 의무에 위배될 수 있다.

    사후관리 부재로 피해 키워…지자체는 “민사 문제” 일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민간사업자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도시계획 수립과 사업 승인 권한을 가진 평택시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덕국제화계획지구의 도시계획은 평택시가 수립했으며, 어반그로브 고덕 사업 역시 평택시의 행정 심의를 거쳐 승인됐다. 특히 마스터리스 분양은 평택 고덕 신도시에서 처음 도입된 방식이었고, 앞선 사태가 보여주듯 구조적 위험이 내재된 모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택시는 사업자 측의 제안과 형식적 요건을 주된 근거로 삼아 인허가를 내줬을 뿐, 새로운 방식에 수반되는 리스크를 면밀히 검토하거나 투자자 보호 장치를 요구하지 않았다. 광고 문구와 계약 구조가 실제 법적 책임과 어떻게 다른지, 투자자가 어떤 오해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전 점검 절차조차 부족했다.

    사후관리 체계의 부재는 피해를 더 키웠다. 평택시는 사업 진행 과정에서 계약 구조나 자금 운용 방식에 대한 실질적 감독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고, 분양 피해가 현실화하자 “민사 문제”라는 입장을 내세우며 책임에서 한발 비켜섰다. 도시계획 수립 단계에서부터 행정 심의와 승인 권한을 행사한 주체가, 분양 광고와 계약 체결 과정에 내재된 구조적 위험을 방치한 것은 소극 행정을 넘어선 문제다. 이는 공공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최소한의 보호 기능을 외면한 것으로, 투자자에게는 이중의 배신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어반그로브 고덕 투자자의 피해를 넘어 제도적 공백을 드러냈다. 현재 부동산 분양시장에서는 마스터리스 수익보장형 구조가 등장해도 이를 체계적으로 검증하거나 감독할 장치가 미비하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사업자는 화려한 광고와 복잡한 계약 구조로 투자자를 현혹하기 쉽다. 제도개선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제2·제3의 피해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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