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내가 안내견 학교 시작한 이유”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 

불모지에서 시작한 또 다른 도전

  • 용인=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5-10-0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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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톨이 소년의 친구였던 개

    • 88 서울올림픽 앞두고 ‘개 먹는 야만국’

    • ‘신경영 선언’ 석 달 뒤 문 연 안내견학교

    • “개 마음도 읽지 못하면서 소비자 마음 읽겠나”

    • “10년 후 ‘옳았다’ 인정받을 것”

    • ‘평범한 이웃들의 힘’ 믿는다

    8월 26일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32주년 기념식에서 은퇴식을 한 안내견 모습. 수고했다는 의미의 화환을 두르고 있다. 삼성화재

    8월 26일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32주년 기념식에서 은퇴식을 한 안내견 모습. 수고했다는 의미의 화환을 두르고 있다. 삼성화재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단일 기업의 경영혁신을 넘어 대한민국의 여러 가지 후진적 문화 시스템을 바꾸고 시민의식을 업그레이드시킨 드문 경영인이다. 

    망자(亡者)를 두고 뒷돈이 횡행하던 장례문화의 개혁도 대표적 사례지만, 무엇보다 반려견 문화를 정착시키고 개를 통해 장애인들의 자활 의지를 북돋운 안내견 사업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8월 26일은 삼성화재가 운영하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양성하고 교육하는 안내견학교가 개교 32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선진 각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안내견학교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지만 모두 민간단체가 나서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곳들이다. 우리처럼 단일 기업이 만들어 32년간이나 성공적으로 운영해 온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사람과 동물, 심적 대화 가능”

    안내견 사업은 어떻게 시작됐고, 32년동안이나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이번 편에서는 ‘개’를 매개로 사회적 약자를 돕고 반려견 문화를 확산시키고 싶어 했던 고인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생전에 이건희 회장이 개를 좋아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 고인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생생하게 담은 저서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도 특별히 별도 제목을 달아 ‘개’에 대한 자전적 체험을 전하고 있다. 



    글에는 그가 어떻게 개와 인연을 맺었고, 단순히 취미를 넘어서 한국 땅에 제대로 된 반려견 문화를 심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가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담겨 있다. 

    초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돌아왔지만 당시 팽배했던 반일 감정 때문에 외톨이가 됐다는 고백이나, 그 과정에서 개와 정을 나누며 동물과도 심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다는 것,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타인을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생전에 남들 앞에 나서서 자랑하거나 공치사를 하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 이 회장이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만큼은 다르다. 진돗개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며, 88 서울올림픽 때 ‘보신탕을 먹는 야만국’이라는 한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신 자신이 스스로 느끼기에도 뿌듯한 일이었다는 회고다. 전문을 읽어보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1취(趣) 1예(藝)’는 있어야 삶이 윤택해진다고 얘기하면서 애견을 길러보라고 권한다. 사실 젊은 시절 정력적으로 일하던 사람이 은퇴한 다음에 정신적 허탈감에 빠지는 것은 은퇴 후에 즐길 수 있는 자기만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6·25전쟁이 막 끝났을 무렵 부친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혼자 있다 보니 개가 좋은 친구가 됐고 사람과 동물 간에도 심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 후 귀국해 중학교에 진학하게 됐는데 당시에는 반일(反日) 분위기가 팽배해 일본에서 갓 돌아온 나로서는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개를 더욱 가까이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항상 애견을 길러왔다.

    20여 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진돗개가 천연기념물 53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세계견종협회에서는 진돗개의 원산지가 한국임을 증명해 주지 않았다. 요구 조건이 까다롭기도 했지만 확실한 순종(純種)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저서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6·25전쟁이 막 끝났을 무렵 부친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혼자 있다 보니 개가 좋은 친구가 됐고 사람과 동물 간에도 심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밝혔다. 동아DB

    이건희 삼성 회장은 저서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6·25전쟁이 막 끝났을 무렵 부친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가 거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혼자 있다 보니 개가 좋은 친구가 됐고 사람과 동물 간에도 심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밝혔다. 동아DB

    그 사실을 알고는 곧바로 진도에 가서 사흘을 머물며 장터에도 가고 또 순종이 있다는 이집 저집을 찾아 30마리를 사왔다. 그리고 사육사와 함께 연구하고, 외국의 전문가를 수소문해 와 조언을 받아가면서 순종을 만들어내려고 애썼다. 처음 들여온 30마리가 150마리가 됐을 무렵 순종 한 쌍이 태어났고, 마침내 1979년에 세계견종협회에 진돗개를 데리고 가서 한국이 원산지라는 사실을 등록할 수 있었다.

    나는 아무리 취미 생활이라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깊이 연구해서 자기의 특기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취미를 통해서 남을 도와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일 것이다.

    지금 아이들을 보면 보호받는 데만 익숙해 있지 남을 보호하거나 남에게 베풀 줄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들이 애견을 돌보며 동물과 교류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동물을 키우다 보면 본능적으로 동물의 심리를 읽어야 하기 때문에 남을 생각하는 습관이 저절로 몸에 밴다. 

    또 어미로부터 새끼를 받아 키우는 과정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어린이날에 몇 만 원씩 한다는 외제 장난감을 사주느니 강아지 한 마리, 새 한 쌍을 선물하면 어떨까.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유럽 언론들이 ‘한국은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 보도가 나간 후 영국 동물보호협회가 대규모 항의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한국 상품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그 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을 서울로 초청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개를 기르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애견연구센터, 맹도견(盲導犬) 학교 등에 데리고 가 우리나라의 애견 문화 수준이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시위 계획이 취소되었고 더 이상의 항의도 없었다.

    이 책에 실린 또 다른 제목의 글인 ‘풍산개와 셰퍼드’ 편에서는 개의 생태를 빗대 기업 조직혁신을 하자는 내용도 있다. 글의 일부를 옮겨본다.

    언젠가 ‘동물들의 싸움’이라는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내용 중에 풍산개와 셰퍼드가 싸우는 장면이 있었다. 풍산개는 북한의 토종개이며 셰퍼드는 외국산 개인데 덩치로 따지면 풍산개는 셰퍼드의 절반밖에 안될 만큼 왜소하다. 

    격투가 벌어지기 전 서로 기선을 제압하려는 눈싸움이 시작되는데 작은 체구이면서도 당당하게 상대를 노려보는 풍산개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이윽고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자 힘이 달리는 풍산개는 덩치 큰 세퍼드의 배와 다리 사이를 재빠르게 다니면서 꾸준히 허점을 공격했다. 마침내 셰퍼드가 지친 기색을 보이자 풍산개가 단숨에 목덜미를 물어 쓰러뜨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장면을 보면 나는 덩치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 “군살이 많으면 격투에서 불리하듯 기업 간의 경쟁도 몸집이 크다고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승패는 몸집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주변 환경의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단련돼 있는가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말한다. 

    조직의 규모가 권위를 상징하던 때가 있었다. 많은 경영자들이 ‘몸 불리기’ 경쟁에 나섰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무리 큰 호수라도 고여 있기만 하면 썩게 마련이고 하찮은 물줄기라도 흐르는 시냇물은 썩지 않는다.

    물이 흐르는 것은 수많은 작은 물방울을 만들고 그 물방울이 대기 중의 산소와 접촉함으로써 늘 살아 있기 때문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필요 이상으로 큰 조직은 마치 고여 있는 호수처럼 신선한 산소와 접촉하지 못해 마침내 썩게 된다. 조직을 가능한 한 작게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계층과 부서가 필요 이상으로 많고 규정과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한 조직은 유연성과 활력이 부족해 상하좌우로 만성적인 의사소통 장애를 겪게 된다.

    이러한 조직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는 속도도 느려 결국은 경쟁에서 처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작은, 적정 규모의 조직에서는 각자가 일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게 되고 종업원 간에도 기동성을 높일 수 있다.

    항공기를 만드는 록히드(현 록히드 마틴)의 경영진은 회사 내에서 대여섯 명으로 구성된 일명 ‘스컹크 팀’이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를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록히드가 존슨이라는 신형 항공기를 개발할 때 개발 기간을 무려 90%까지 단축시킨 주인공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거대한 대기업도 내부에 뛰어난 기동성을 가진 소규모 조직을 공존시킴으로써 기업 전체의 기동에 스피드를 얻는 것, 이것이 바로 초일류 기업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신경영 선언’ 석 달 뒤 문 연 안내견학교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경기 용인 에버랜드 주차장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숲속 한가운데 자리한 나지막한 건물들이 마치 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젖도 못 뗀 강아지들은 어엿하고 듬직한 안내견이 되기까지 이곳에서 훈련사, 수의사들과 동고동락하며 교감을 나눈다. 강아지 훈련학교이지만 어디서도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신기했다. 

    박태진 교장이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안내견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종(種)인 리트리버의 천진난만한 표정을 닮은(?) 푸근하고 넉넉한 인상이었다.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에 들어서니 모두 옆에 강아지들이 있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있다면 함께 출근이 가능하다고 한다. 낯선 사람이 들어와도 꼬리만 흔들 뿐 짖는 강아지는 없었다.

    박 교장은 이곳에서 32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으니 학교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함께한 원년 멤버다. 어떻게 인연이 됐는지 궁금했다. 

    “대학 전공이 수의학과였는데, 어느 날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시각장애인과 함께 앉아 있는 안내견을 봤습니다. 1997년으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안내견이 10마리가 채 안 된 시절이었어요.

    수의학 전공 학생이긴 했지만 그렇게 덩치 큰 개가 지하철을 탈 수 있다는 것도 처음 봤고, 견종이 리트리버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개가 입은 노란 조끼에 ‘맹인 안내견(지금은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란 글자가 써 있어 정체(?)를 알게 됐지요. 함께 있던 분은 맹인용 선글라스를 쓰고 멋진 정장을 입은 신사였습니다.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수줍어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저보다 한 정거장 앞서 내리는 그분을 따라 내렸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을 따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계단을 올라가고 인도로 걸어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졸업 후 다른 직장에 다니다가 안내견학교 채용 공고가 나서 지원했습니다. 2000년 입사인데 훈련사로 본격적으로 일한 건 2002년부터입니다.”

    학교가 만들어진 배경이 궁금합니다.  

    “88 서울올림픽 때 보신탕 먹는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것을 반대하는 영국 동물보호단체들이 데모도 하고 유럽 언론에 이슈화했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시잖아요. 회장님이 이 사람들을 초대해 한국에도 애견 문화가 있다는 걸 보여줘 논란은 잦아들었습니다. 하지만 보신탕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다 보니 유럽 내 동물보호단체들의 반한(反韓)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파워포인트(PPT) 화면에서 만평 하나를 띄워 보여줬다. 1989년 11월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 매체가 실은 것으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남편 필립 공과 함께 태극기를 매단 자동차를 배웅하는 모습이었다.  여왕은 왕실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고 있었다.

    무슨 상황인가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남편인 필립 공과 함께 태극기를 매단 자동차를 배웅하면서 왕실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을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고 있는 모습을 그린 만평. 삼성화재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남편인 필립 공과 함께 태극기를 매단 자동차를 배웅하면서 왕실에서 키우는 강아지들을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고 있는 모습을 그린 만평. 삼성화재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는데 보신탕 먹는 나라의 대통령이 다녀가니 혹시 왕실 강아지들이 잡아먹힌 게 아니냐는 거죠. 매우 무례한 비난이 담긴 거죠. 그뿐만 아니라 ‘국제동물복지기금(IWEA)’이라고 동물보호단체로는 세계적 단체인데 당시 “야만 국가 대통령의 방영(訪英)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문광고까지 합니다. 일각에서는 한국산 불매운동도 벌어졌습니다. 

    회장님은 런던의 삼성 지사로부터 이런 내용을 보고 받으시고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셨다고 해요. 단순히 문화적 차이로 넘어갈 일이 아니었던 것이 국가 이미지가 훼손돼 한국산 불매운동까지 벌어지면 기업 활동에 타격을 주리라는 걱정이 있었던 거였겠죠. 게다가 영국은 삼성 브랜드를 좋아하고 공장 유치에도 적극적이어서 일찍이 삼성의 글로벌 무대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된 나라였습니다.”

    그의 말대로 영국과 삼성의 인연은 깊다. 1995년 10월 영국 윈야드에 세워진 삼성전자 공장은 이후 10여 년간 삼성전자의 유럽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였고,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선진국이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를 해서 공장부터 연구소까지 산업복합단지를 세운 최초의 사례였다. 

    “개 마음도 읽지 못하면서 소비자 마음을 읽겠나”

    “회장님이 평소에도 동물을 사랑하셨지만 보신탕 문화 때문에 한국산 불매운동이 벌어진다는 건 매우 심각한 일로 받아들이셨을 것 같아요. 그때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하신 것 같아요. 뭐 하나에 빠지시면 정말 깊게 가시잖아요. 

    영국의 사육사와 훈련사들도 직접 만나시고 개도 많이 키우셨습니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는 직원들한테 분양도 하십니다. ‘개 마음도 읽지 못하면서 소비자 마음을 읽겠느냐’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우리나라에서 반려견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가 아마 그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희가 갖고 있는 자료에 1991년에 처음으로 90마리를 임원들에게 분양했다는 짧은 기록이 있어요.”

    그의 말이 이어졌다.

    “1992년에 한남동 견사가 모두 이곳으로 옮겨집니다. 이듬해 6월에 신경영 선언을 하시고 석 달 뒤에 안내견학교를 세우시지요. 그리고 다시 2년 뒤인 1995년에 본격적으로 개를 통한 다양한 사회공헌사업을 할 전담 조직을 만들기에 이릅니다. 이 조직 이름이 ‘국제화기획실’이었어요.”

    개 관련 일을 하는 조직인데 ‘국제화기획실’이라니 재미있습니다. 

    “직접 작명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고 봅니다. 반려견 문화가 지금처럼 일반화되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개를 다루는 조직이라고 해서 ‘개’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갖다 붙일 수는 없었을 것이고요(웃음). 개를 키우고 사랑하는 문화를 만들고 이를 통해 사회 공헌을 하는 것이야말로 삼성,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국제화 및 세계화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신 거 같아요. 소속은 에버랜드였지만 이건희 회장께서 직접 지시를 내리는 조직이었습니다. 초대 실장으로는 영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분이 임원으로 오셨고요.”

    안내견학교가 소속한 계열사가 삼성화재라는 것도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국제화기획실’이 처음 출범했을 때에는 지금 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안내견뿐 아니라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을 비롯해 구조견, 탐지견, 치료견까지 정말 다양한 사업을 했어요. 

    각각의 사업마다 재원이 필요한데 사업 내용에 맞는 계열사가 후원하는 형식으로 출발했습니다. 구조견은 생명을 다루는 것이니 삼성생명이 후원하고, 안내견은 불의의 사고나 장애로 힘들어하는 분들을 도와주는 것이니 보상을 다루는 삼성화재가 맡게 된 거죠. 그러다 회장께서 2010년에 “전반적인 사업 점검을 해보자” 해서 안내견 사업만 남게 됩니다.”

    사업이 축소된 건가요.

    “결과적으로 그렇지만 변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였습니다. 사업 아이템들을 정부나 다른 기관들도 하게 되면서 굳이 저희까지 나서지 않아도 된 거죠. 

    대표적으로 인명 구조견 사업의 경우 현재 소방방재청이 전담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가 직접 독일에서 개(셰퍼드)를 사와서 교육해 양성하고 소방관 교육까지 했는데, 이후 소방방재청이 맡게 됩니다. 저희가 방재청에 모든 개를 기증하고 이곳에서 일하던 직원까지 일부 이직하는 식으로 정리가 됐습니다. 치료견도 나중에 병원이나 다른 민간 기관들이 뛰어들면서 굳이 저희까지 나설 필요가 없게 돼 시각장애인 안내견 사업에만 집중하게 된 겁니다.”

    구조견 사업이 삼성에서 시작됐다는 것도 처음 듣네요.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사업은 왜 없어졌나요. 

    “기술발전과 관계가 있습니다.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의 경우 소리를 대신 들어주고 스킨십 등을 통해 알려주는 건데 휴대폰 진동 기능이 생기면서 많은 부분을 기계가 대체하게 됐어요. 시각장애인의 경우 눈을 대신하는 기술은 아직까지 별로 없습니다.”

    우리처럼 변화가 많은 사회에서 특정 사회공헌사업이 32년간 지속됐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비결이 뭘까요. 

    “우선은 진정으로 수혜자에게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이겠지요. 파트너(그는 안내견의 도움을 받는 시각장애인을 파트너라고 불렀다)들이 하나같이 ‘안내견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고 말씀하시니까요. 

    이 사업은 돈도 돈이지만 안내견의 탄생에서부터 은퇴까지 케어해 주는 두터운 자원봉사자층도 필요하고, 각종 안내견 훈련과 파트너 교육 등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요즘은 기업마다 ESG 경영이 화두여서 각종 사회공헌사업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것도 ‘경쟁’인 시대인데 안내견 사업은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해서 한마디로 진입장벽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회장이 ‘안내견 사업’을 시작한 이유

    박 교장이 이렇게 현장에서 경험하고 느낀 안내견 사업에 대해 이 회장이 직접 밝힌 글이 있다. 박 교장의 말대로 이 회장은 영국에서 일었던 ‘보신탕’ 논란을 강 건너 불구경으로 보지 않았다. 직접 런던 지사에 연락해 “동물보호단체를 찾아가 한국의 애견 문화를 알리라”고까지 지시한다. 그리고 당시 경험을 통해 개를 아끼고 사랑하는 서구인들의 마음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면서 이걸 애견 사업으로까지 확대시킨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3류 사업가였다면 이 일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의 육성이다.

    미국 경제지 ‘포천’ 인터뷰 사진. 동아DB

    미국 경제지 ‘포천’ 인터뷰 사진. 동아DB

    1993년 5월 미국의 ‘포천(Fortune)’ 지에 내 인터뷰 기사가 실리면서 내가 개를 안고 있는 사진이 함께 실렸다. 그게 세간의 호사가들에게는 대단한 가십거리가 된 모양이었다. 그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는 얘기를 여러 군데서 들을 수 있었다. 남자가 개를 안고 있는 것이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애견 문화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정도의 수준이었다. 

    내가 개를 대규모로 키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부터였다. 처음에는 진돗개 순종을 보호 육성하자는 차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애완견 쪽으로 확장된 것은 88 서울올림픽 무렵이었다.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올림픽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보신탕 문제로 연일 시끄러웠다. 보신탕이라는 말을 아예 쓰지 못하게 해서 영양탕이니 하는 말들이 생겨난 것도 그 당시였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개고기 논란은 멈추지 않았다. 1989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방영(訪英) 직전 IFAW(International Fund for Animal Welfare) 주관으로 대규모 반한(反韓)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이 개와 고양이 고기를 먹고 동물을 학대하는 야만국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영국 최대 일간지이자 세계적인 명성과 권위를 자랑하는 더 타임스(The Times) 지에 노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비판하는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저희들은 말고기니 달팽이까지 먹으면서 우리가 개고기쯤 먹기로서니 무슨 문제냐고 코웃음치고 넘어가거나 잘사는 나라의 문화적 행패라고 흥분할 문제가 아니었다. 

    1989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의 영국 방문을 앞두고 세계적인 동물보호단체인 IFWA가 영국 더 타임스에 낸 신문광고. ‘왕실의 진수성찬, 비용은 아랑곳하지 말라(A right Royal feast and hang the expense)’라는 헤드라인을 달고 “국빈 만찬 메뉴는 한국에서 수입한 ‘특별한 개고기’가 포함된다. 이 개들은 한국에서 목에 줄이 걸려 질식사하도록 매달린다. 그렇게 해야 고기가 더 맛있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라며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맹비난하고 있다. 삼성전자

    1989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의 영국 방문을 앞두고 세계적인 동물보호단체인 IFWA가 영국 더 타임스에 낸 신문광고. ‘왕실의 진수성찬, 비용은 아랑곳하지 말라(A right Royal feast and hang the expense)’라는 헤드라인을 달고 “국빈 만찬 메뉴는 한국에서 수입한 ‘특별한 개고기’가 포함된다. 이 개들은 한국에서 목에 줄이 걸려 질식사하도록 매달린다. 그렇게 해야 고기가 더 맛있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라며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맹비난하고 있다. 삼성전자

    더 타임스 지에 실린 기사를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국가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이다. 유럽인들은 무슨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단순히 시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곧잘 상품 불매운동으로 이어가는데,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그런 경우 해당 제품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도 있었다. 

    그 무렵 삼성은 영국 시장에 진출한 상태였다. 반한 시위가 한국 제품 불매 운동으로 연결되면 유럽 시장 진출에 심각한 장애물이 될 게 분명했다. 사실 이건 당시 유럽 시장 진출을 꿈꾸고 있던 한국 기업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였다. 단순히 정부의 일이거니 하고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당장 런던 지점으로 연락해서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는 IFAW를 찾아가라고 지시했다. 한국에도 개고기를 먹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고 동물보호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삼성만 해도 동물보호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로서는 에버랜드에서 많은 동물을 보호 육성하고 있고, 애완견 육성에도 이미 손을 대고 있었기 때문에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노 대통령의 방영(訪英)과 더불어 계획되었던 시위는 한 번으로 그쳤고, 상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당장 발등의 불은 끈 셈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내게 하나의 깨달음을 주었다. 개를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생각하는 서구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며, 그런 문화적 접근이 장기적으로는 삼성의 유럽 진출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이었다. 이런 깨달음은 기왕 시작했던 애견 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그는 그러면서 진정한 사업가론을 펼친다.

    (나에게) 거 보라고, 결국은 경제적인 동기에서 개를 키우게 된 것 아니냐고 날카롭게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맞는 말이다. 우리가 개를 키워 그 자체로 이익을 본 것은 아니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이득을 얻은 것은 사실이다. 

    운동선수는 늘 운동만 생각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은 세상 만물을 그림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작가는 일상의 모든 경험을 앞으로 쓰게 될 작품과 연관 지어 생각한다. 그것이 전문성이다. 사업가도 마찬가지다. 사업가의 머릿 속은 쉽게 말하자면 세상의 무엇이 어떻게 해야 돈이 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사업가에도 1류가 있고 2류가 있고 3류가 있다. 3류 사업가는 당장 눈앞의 이익만 생각한다.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고, 내일이 어찌 될지는 염려하지 않는다. 2류 사업가는 당장은 돈이 되지 않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할 줄 안다. 그러나 그 이익이 자신만을 위한 것일 때 그는 결코 1류 사업가가 되지 못한다. 1류 사업가는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되, 그로 인한 결과가 자신만의 이익 창출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적 이익, 사회적 부의 창출을 동시에 도모할 줄 안다. 

    내가 애견 사업을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 개를 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그것을 사업으로까지 확대시킨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한국 기업의 서구 진출은 물론 한국의 국가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고, 개 키우는 문화를 파급함으로써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메말라 가는 현대인의 정서 순화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생명 있는 것과의 교류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도 배울 수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관련 산업을 창출함으로써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물론 우리 노력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최근 애견 문화가 널리 확산되면서 애견 미용실, 애견용품 등의 관련 산업들도 활성화되고 있지 않은가. 삼성이 개를 키워 돈으로 득을 본 것은 없다. 그러나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커다란 이득을 얻었다. 유럽에서 삼성은 개를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기업으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고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도 조화롭게 받아들일 줄 아는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것만 해도 수십억의 광고비를 쏟아부었어도 얻기 어려운 커다란 득이 아니겠는가?

    “10년 후 ‘옳았다’ 인정받을 것”

    한편 앞서 박 교장은 1995년 개를 통한 사회공헌사업을 총괄하는 ‘국제화기획실’을 소개한 바 있는데, 이 회장이 이 조직을 만든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철학과 사명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일찍이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은 시민들의 의식 변화를 이끄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이 회장의 생전 육성이다.

    “사회복지를 완성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며 문화적 마인드다. 장애인 복지 재단이 많이 설립돼 편의를 도모한다고 해도 정작 장애인이 거리에 나섰을 때 그들을 대하는 일반인의 눈이 차갑다면 그런 사회를 두고 복지사회라고 부를 수 없다.”

    이 회장은 “사람들의 (인식과 관습을 바꾸는) 문화적 업그레이드야말로 사회복지의 핵심이고, 그것이 기업이 사회에 되돌려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재투자”라고 했다. 우리나라에 사회복지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기도 전인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사회공헌사업이야말로 기업이 진정으로 사회에 되돌려줄 수 있는 재투자라고 했으며, 약자와 장애인을 보는 눈이 그 사회의 시민의식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니 이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선언을 실천할 매개체가 ‘개’였다. 

    “삼성이 개를 길러 장애인들의 복지를 개선하거나 사람들의 심성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이런 노력이 사회 전체로 퍼져나감으로써 우리 국민 전체의 의식이 한 수준 높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불모지에서 새로 시작하는 사업이니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토로한다.

    “1993년 안내견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불모지에 꽃을 피워야 하는 일이었으므로 준비해야 할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안내견 우점종(안내견으로 가장 많이 길러지는 견종)’인 리트리버는 삼성이 한 마리도 갖고 있지 않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업을 본격화하는 데 약 1년여의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

    “삼성이 개를 기른다고 처음 알려졌을 때 일부에서는 사람도 못 먹고 사는 판에 개가 다 무어야 하는 공공연한 비난의 소리를 내기도 했다. 차라리 직접 가난한 사람을 돕거나, 복지 단체에 기부를 하라는 것이었다.”

    “비록 지금은 현실도 모르는 이상주의자라거나 바보라는 비난을 듣고 있지만, 10년이나 20년이 지난 다음에 우리가 옳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게 될 것이다. 안내견 사업이 우리 사회의 복지 마인드를 한 수준 높이는 데 기여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잔잔한 연못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지는 심정으로, 우리는 안내견을 세상에 내보내고 있다. 세상의 두텁고 완강한 고집과 편견 때문에 안내견 ‘슬기’나 ‘대부’나 ‘태양’이가 더 이상 풀이 죽지 않아도 되는 그날까지, 계속 내보낼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 주위의 오해와 편견들에 대항해 나갈 것이다. 무관심과 몰이해의 장벽 너머, 환하게 열린 우리 사회의 미래가 모두에게 현재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질 때까지.”

    장애인이 세상 밖으로 나가게 도와야

    한편 그가 직접 밝힌 안내견 사업의 목적은 이랬다. 

    안내견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우리는 대개 세 가지 정도의 목표를 구상했다. 우선은 안내견의 직접 사용자인 시각장애인의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는 차원이었다.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거나, 흰 지팡이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을 제공함으로써, 비록 완전하진 않지만 독립된 삶의 의지와 자립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그 밑바탕이었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의 시각장애인이라도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어디 있겠는가.

    안내견 사업이 단순 취미에서 출발한 우발적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 사회 공헌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명시한 것이다. 

    이와 함께 필자에게 인상 깊게 다가온 지점은 장애인을 ‘약자이니 무조건 베풀고 도와야 할 사람들’로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가 자립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지라고 하는 대목이다. 

    사회 변화는 대단한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변화에서부터 비롯되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역시 개인 삶의 구체적 변화를 통해서 이뤄진다는 말도 하고 있다.

    (안내견 사업의) 두 번째 목표는 기업의 사회봉사, 즉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측면에서 모범적인 모델이 되도록 하자는 데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도 일개 기업이 안내견학교를 운영하는 전례가 없었으므로, 우리가 만약 성공한다면 훌륭한 전범(典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올해 개교 32주년을 맞이했다. 허문명 기자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올해 개교 32주년을 맞이했다. 허문명 기자

    이런 생각의 밑바탕에는 다른 기업이 흔히 하는 것처럼 그저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일회용 환원 방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역량이 리사이클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는 제대로 된 사회봉사 철학이 들어 있기도 했다. 물질이 아니라 정신, 곧 문화로 되돌려주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간절한 요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도 이런 생각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그는 또 안내견 문화를 확산시키는 매개체가 자원봉사자들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평범한 이웃들 덕분에 성공하리라 믿는다”

    (안내견 사업을 시작한) 세 번째는 ‘퍼피 워킹(Puppy walking·생후 7주 된 안내견 후보 강아지를 가정에서 1년간 돌보는 봉사)’이라는 자원봉사 위탁 사육 프로그램을 확신시켜, 일반 시민이 안내견 사업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하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사회적 약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더 나아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전파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잘만 한다면,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 갖고 있는 무지와 편견들을 깨뜨려 그들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한 신념과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심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개교 32주년 기념식 모습. 삼성화재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개교 32주년 기념식 모습. 삼성화재

    이 회장은 복지사업에도 경영학적 관점에서 효율과 성과를 챙겼다.

    나는 모든 분야의 활동을 주먹구구식 진행을 지양하고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 실행의 전후를 비교해 보도록 권유했다. 그래야만 그간의 활동이 제대로 이뤄진 것인지, 혹은 이로 인해 비록 사회적 실익이 남게 된 것이 아닌지 판단하고 교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사별로 진행된 사회 공헌 활동을 모아 해마다 백서를 발간케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기록을 시작한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의 총계를 보니, 그동안 우리가 사회 공헌 활동에 대략 6600억 원의 돈을 들였다고 한다. 매년 평균 1320억 원 정도를 연속적으로 쓴 셈이다. 특히, IMF 외환위기로 상황이 극히 좋지 않았던 작년에도 445억 원의 돈을 이 분야에 지출했다는 것이 의미 있게 여겨졌다.

    더구나 공헌 활동의 내용을 ‘활동 주제 중심에서 사후 위주’로 전환한다는 인식을 확고히 한 해가 1998년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일일 것이다. 세부 항목을 가운데 사회복지 분야 비중을 42%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그런 인식 전환의 결과가 아닐까.

    IMF 외환위기(1997~1998) 직후 하루하루 살아남기에도 급급했던 기업들로서는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복지사업을 생각한다고 해봐야 기부나 후원 같은 일회성 행사에 머물렀을 것이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편견과 배제도 지금으로서는 상상 못할 정도로 심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은 안내견 사업이라는 독창적 프로젝트를 시작해 경영이 어려울 때에도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야 할 모델로 생각했고, 여기에 경영적 관점까지 집어넣었다. 

    안내견 사업은 그의 바람과 예측대로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 널리 확산되는 문화적 업그레이드에 기여해 해외에서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 회장은 여기에 뿌듯해하면서도 성과에 도취돼서는 안 된다는 다짐도 잊지 않는다. 

    (안내견 사업이) 인간 존중과 상생상화(相生相和)의 정신이라는 이념이 구체적 실천과 만난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많이 가벼워지기도 했다. 1998년 9월 미국의 ‘촛불재단’이 ‘최우수 자원봉사 기업상’을 전 세계 기업 가운데 유독 우리에게 수여한 것은, 우리의 그런 노력에 대한 격려일 것이다. 

    이 상은 또, ‘모두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웃 기업’이 되어달라는 ‘매운 주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해 활동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또 다른 안내견 사업’이 이제 본격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시각장애인 개안(開眼) 수술 지원, 장애인 봉사 사업, 장애인 상대의 컴퓨터 사랑방 만들기, 시민 대상 환경운동, 약물 청소년 사회 복귀 사업, 비행 청소년 직업교육, 소년 소녀 가장 돕기 등, 사회에서 잊혀지고 소외된 사람을 직접 찾아가려는 이런 노력들이야말로 제 2, 제 3의 안내견 사업인 것이다

    도움은 주고 사랑을 나누며 보람만 갖는다는 점에서 사회 공헌 활동이 본시 시혜적(施惠的)일 수 없는 법이다. 자기를 낮추고 왼손도 모르게 하려던 겸허한 태도가 기본이다.

    문제는 지속성 여부일 것인데, 나는 그 점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강하고 큰 기업’보다 ‘좋은 기업’이 돼야만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직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도 ‘삼성 사회 공헌 활동 백서’를 덮으며, 나는 문득 안내견 사업의 세 가지 목표가 실현될 날이 그리 요원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에 앞장서는 우리 직원이 뭐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옆에서 흔히 보는 가장들과 이웃과 친구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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