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정주영 도전 정신의 산물 ‘조선업’
승계 갈등 이후 현대중공업으로 재탄생
정몽준 체제하에서 소유·경영 분리
도전 대신 안정적 사업 진행하기 시작
‘고배당 정책’ 고수해 도전 기회도 줄어
MASGA로 미국 등 새 시장 열렸으나…
후발 주자 한화오션에 미치지 못하는 국제적 영향력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오른쪽)과 디노 슈에스트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 대표가 7월 22일 경기 성남시 판교 글로벌R&D센터에서 미국 내 컨테이너선 공동 건조를 위한 세부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HD현대
반면 HD현대의 경쟁사는 노사갈등 없이 순항하고 있다. HD현대와 함께 ‘조선업계 빅3’로 꼽히는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은 모두 분쟁 없이 임금 교섭을 마무리 지었다.
한화오션에 내준 MASGA 프로젝트 주도권
MASGA 프로젝트 시작부터 HD현대와 경쟁사 한화오션의 다른 면모가 주목받기도 했다. 한미 관세 협상 과정 막판에 한국조선업을 이끄는 오너 일가 3세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1982년생)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1983년생)의 행보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7월 21일 이재명 대통령은 한화그룹 김 부회장과 간담회까지 했다. 일주일 뒤인 28일, 한화오션 등 한화그룹 해양 부문을 이끄는 김 부회장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상호 관세 부과를 앞두고 미국과 막판 협상 중이던 한국 정부 협상팀에 합류해 미국과 조선업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반면 정 수석부회장은 당시 미국행 계획이 없다고 했다.이번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핵심으로 떠오른 ‘MASGA’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한화오션이었다. 1972년 설립돼 국내 1위 조선사 자리를 지켜온 HD현대는 불과 3년 전인 2022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인수하면서 조선 부문에 첫발을 들인 한화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미국은 조선업 생태계가 무너지면서 건조 역량도 후퇴했고, 해군력까지 약해진 상태다. 특히 해양 안보에서 중국과 격차가 심해져 미국 내 해군력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미국 해군은 향후 30년간 군함 364척을 건조하는 데 1조750억 달러(1600조 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 계획에 동참할 만한 가장 유력한 동맹국이 조선업 강국인 한국이다.
미국의 MASGA 협력에 HD현대의 대미 투자는 한화오션과 차이가 있다. 한화그룹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미국 조선업에 직접 진출하는 등 대미 투자에 적극적이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12월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필리 조선소를 1억 달러(약 1400억 원)에 인수한 뒤 미국 법인 한화필리십야드를 출범시키면서 미국에 진출했다.
반면 HD현대의 전략은 ‘협력’에 있다. HD현대는 올해 들어서 미국 유력 조선사인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ECO)와 손잡고 LNG 이중연료 컨테이너선 공동 건조에 나섰다. 이번 협력은 오는 2028년까지 미국 현지 조선소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것을 목표한다. ECO는 자체 5개 조선소 인프라를 공여하고, HD현대는 설계·기술 지원과 기자재 구매, 일부 블록 제작을 담당한다. HD현대는 이를 통해 앞으로 상선 외에도 항만 크레인 등 안보 연관 분야까지 협력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신시장 잡으려 질주하는 한화 vs 기술협력 주력하는 HD현대
한화그룹은 필리 조선소 인수에 이어 호주 조선·방위산업체 오스탈 지분 매입에도 적극 나섰다. 오스탈은 미국 앨라배마·캘리포니아에 조선소를 보유한 업체로 앨라배마 조선소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등 주요 사업은 미국에서 벌이고 있다. 한화의 현지 함정 시장 진출에 중요한 교두보로 평가되는 기업이다. 전략적 인수합병을 통해 한화그룹은 최근 한미 관세 협상을 통해 출범한 MASGA 프로젝트를 주도할 핵심 기업으로 꼽힌다.한편 HD현대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 함정 건조 기술협력 업무협약(MOU)을 맺으며, 기술협력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헌팅턴 잉걸스가 보유한 잉걸스 조선소는 미국 대형 상륙함과 대형 경비함 전량을 건조하고 있다. HD현대는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된 이후 8월 초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따냈다. 이번 수주는 한미 양국이 조선 협력을 중심축으로 관세 협상을 타결한 뒤 처음으로 나온 국내 조선사의 MRO 실적이다. HD현대는 미 해군 7함대 소속의 4만1000t급 화물 보급함 ‘USNS 앨런 셰퍼드’ 함의 정기 정비사업을 수주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8월 국내 조선소 최초로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시라호의 MRO 사업을 수주했고, 같은 해 11월 미 해군 제7함대 소속 함대급유함 유콘호의 MRO 사업도 따냈다. 이 2척은 성공적으로 작업을 마친 후 미 해군 측에 인도됐다. HD현대는 올해 8월 25일(현지 시간)에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계 사모펀드 서버러스 캐피털, 한국산업은행과 함께 ‘한미 조선산업 공동 투자 프로그램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HD현대는 이번 프로그램을 주도(앵커 투자자)하면서 기술자문사로 참여한다. HD현대 측은 해당 투자를 통해 미국 조선소 인수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의 한 선사가 발주한 8만7000㎥급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을 5월 21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야드 내 3독에서 건조하고 있다. HD현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울산 앞바다에서 한국 조선산업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1940년대 현대건설의 전신인 자동차 정비회사 ‘아도서비스’를 운영했던 정 명예회장은 사업 영역을 현대자동차공업사, 현대토건사 등으로 확장했다.
HD현대의 전신이 되는 조선사업추진팀 역시 현대건설 기획실 직원 12명을 차출해 만들었다. 이들은 당시 조선 관련 기술력뿐만이 아니라 재정 등 기반 자체가 부실해 외국 기업과 기술제휴 방안을 모색했다. 당시 국가 신뢰도도 낮고 재정 여력도 없는 현대그룹에 기술을 제휴해 주겠다고 나서는 기업은 찾기 어려웠다.
500원 지폐 한 장으로 일궈낸 기적
1970년 조선사업추진팀은 조선사업부로 정식 발족하면서 ‘대형조선소사업 계획’이 추진됐다. 현대 조선사업부는 창업자금을 6300만 달러로 설정했지만, 이 가운데 4300만 달러를 외국 자본으로 조달해야 했다. 정 명예회장은 조선소를 짓기 위해 해외 투자자들을 직접 찾았지만 한 번도 배를 만들어보지 않은 한국 기업에 누구도 선뜻 투자하지 않았다.그는 프랑스와 스위스 은행에 4300만 달러의 대출을 요청했다. 이 액수는 당시 현대그룹의 총자산보다도 많은 거액이었다. 두 나라의 은행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작은 배도 만든 경험이 없는 회사에 조선업 관련 자금을 투자하는 것은 모험과 다를 바 없었다.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자 정 명예회장은 생각을 바꿨다. 투자 대신 배 건조를 수주받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가 처음 만난 고객은 세계적 선박왕인 조지 리바노스 선엔터프라이즈 회장. 이 자리에서 정 명예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한국 지폐와 울산 미포만의 갯벌 사진을 꺼내놓고 리바노스 회장과 담판을 벌였다.
정 명예회장은 “선박이라는 게 뭐겠습니까? 안에 엔진이 있고 바깥은 철판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16세기에 ‘거북선’이라고 하는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라며 리바노스 회장을 설득했다.
그 자리에서 리바노스 회장은 아직 지어지지 않은 현대그룹의 조선소에 초대형 유조선 2척을 주문했다. 1971년 정 명예회장은 차관 도입을 위해 런던으로 향했다. 정 명예회장은 영국의 선박회사 A&P애플도어의 롱바텀 애플도어 회장을 찾았다. 당시 롱바텀 회장은 영국 하원의원을 지내며 영국 은행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1971년 영국 버클레이즈 은행과 조선소 건설 차관 도입 계약을 마치고 악수를 나누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아산정주영닷컴
그 후 롱바텀 회장은 한국을 방문해 울산 현장을 실사했다. 이후 추천서를 영국 버클레이즈 은행에 보냈다. 롱바텀 회장의 보증은 차관 도입뿐 아니라 외국 회사와의 기술제휴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A&P애플도어와의 기술제휴는 기술 용역료를 일시불로 납부하는 조건이 아니라 배 12척을 건조해 판매할 때까지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당시 국제 관례상 파격적이었다고 평가받는다.
무산된 한일 합작 덕분에 처음부터 대형 조선소로 시작
정 명예회장은 1973년 HD현대의 전신인 현대조선중공업㈜을 설립한 후 직접 대표를 맡아 조선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현대조선중공업의 첫 조선소는 건설 과정부터 혁신적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조선소나 배를 짓는 것은 다 같은 건설인데, 하나가 먼저 돼야 다음을 건설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다”며 “꼭 조선소를 지어야 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라고 말했다.이 말은 현실이 됐다. 세계 최초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가 동시에 진행됐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빨리 건조해야 했기에 조선소와 선박 동시 건조라는 파격적 결정이 나올 수 있었다. 이 당시 정 명예회장은 울산에 머물며 직접 공사를 총괄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 조선소 건설 현장을 시찰했다. 첫 조선소였지만 대형 조선소 건설을 목표로 했다. 1970년 조선소 건립을 추진하던 조선사업부는 정부와 15만t급 규모의 조선소를 세우기로 협의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초대형 조선소를 선호하는 흐름을 반영해 수정을 거듭하며, 1973년 100만t급 규모로 최종 결정됐다. 향후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초대형 조선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선사업부는 조선소 기공식을 연 지 1년 만에 그리스 리바노스로부터 수주한 26만t급 유조선 건조에 착수했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독(dock)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3개월 뒤 바로 2호선 건조도 시작되며, 조선소 건설 현장에는 2척의 유조선이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HD현대는 원유선을 제조하기 위해서 영국의 A&P애플도어로부터 새로운 조선소를 건설할 인원과 기술을 전수받았다. 동시에 덴마크의 선박 전문 기술자들과 일본의 설계기술자들을 영입해 부족한 국내 기술을 보강했다. 1974년 2월 15일 마침내 현대 고유의 기술로 26만t의 원유운반선을 제조하는데 성공했다.
배를 띄우는 일도 어려웠다. 당시 해운항만청(현 해양수산부) 관계자들은 “엔진 시동 없이 배를 띄우는 것은 항해 규칙 위반”이라는 웃지 못할 이유로 허가에 뜸을 들였다. 선장은 방파제 입구가 좁아서 배가 못 빠져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 명예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배가 망가지면 내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라며 선장 대신 배 위로 올라가 지휘봉을 잡았다. 그의 지휘로 거대한 유조선은 하얀 파도를 일으키며 독에서 벗어나 바다로 나갔다.
현장에 모인 임직원들은 일시에 함성을 지르며 서로 얼싸안고 울며, 웃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 명예회장은 1991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나의 기업 나의 인생’ 에세이에서 현대중공업의 첫 진수식에 대해 “울산의 미포만 일대가 세계 1위 조선 강국의 대표 제조 중심지로 떠오르는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정 명예회장은 1991년 5월 소련의 칼미크 자치국(현 칼미키야 공화국)을 방문해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연설했다. 이때 정 명예회장은 현대중공업이 왜 처음부터 초대형 26만t급 유조선 건조로 시작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당초 현대중공업은 일본과 합작회사가 될 뻔했다. 기술도, 자본도 없는 상황에서 일본과 합작하는 게 조선업 진입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마침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이 현대의 조선 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협상을 시작하니 미쓰비시 중공업 측은 처음부터 현대를 견제하기 위해서 한국 경제 규모에 적합한 사업이나 하라는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했다.
승계 갈등으로 쪼개진 현대家
그러던 와중 1970년 중국이 미국에 우호적인 한국 및 대만 정부와 거래하는 기업들과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주 4원칙(중국 총리 저우언라이가 중국과 통상을 원하는 비적성 자본주의 국가에 요구한 4개의 원칙)’을 발표했다. 그러자 미쓰비시는 중국 눈치를 보며 현대중공업과 합작을 못 하겠다고 선언했다.현대중공업은 1993년 발간한 ‘현대중공업 20주년’ 사사에서 이 사건을 ‘새옹지마’라고 표현했다. 1975년에는 현대미포조선을 설립해 배를 수리하는 일도 시작했다. 유조선은 물론이고 다목적 화물선, 벌크선, 목재운반선 등으로 선종을 확대하고 수주를 늘렸다. 1972년 조선소 기공식 이후 11년 만인 1983년에는 건조량 기준 조선사업 부문 세계 1위의 기업이 됐다. 그리고 창업 40년 만인 2012년에는 세계 조선업계에서 최초로 선박 인도 누적 톤수가 1억GT(총톤수)를 넘기는 성과를 올렸다. 1994년 국내 최초로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을 인도하는 등 신기술 개발로 만든 LNG 선박은 그 후 30년 이상 한국 조선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동아DB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동아DB
이 사건은 2000년 9월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서비스 등 9개 계열사를 분리하면서 마무리됐다. 정몽헌 전 회장은 현대건설, 현대상선, 현대전자, 현대아산, 현대엘리베이터, 현대기술정보, 현대종합상사, 현대증권, 현대물류 등 수적으로는 훨씬 많은 계열사를 확보했다. 2002년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6남인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이하 아산재단) 이사장에게 돌아가며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됐다.
HD현대는 같은 해 위탁 경영 중이던 한라중공업을 인수해 현대삼호중공업을 설립했다. 이로써 그룹의 핵심인 조선 부문에서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이라는 삼각편대가 구축됐고, 조선 세계 1위라는 위상도 더욱 공고해졌다.
정 명예회장은 생전, 6남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을 총애했다고 한다. 아들 중 유일하게 서울대를 나왔고 아버지인 본인에게 자신의 술집 외상값을 씌울 정도로 배포가 두둑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정 이사장은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이후 4년 만인 1982년 현대중공업 사장에 올랐다. 형제들 가운데 가장 빠른 승진이었다. 이 사례만 봐도 정 이사장에 대한 정 명예회장의 애정과 믿음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정 이사장은 자서전인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부친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아버지는 커다란 열정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 열정은 타인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타오르면서 자신을 밀고 가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든 담담하게 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열정이었다.”
오너 없는 기간 안정적 경영에 익숙해진 현대중공업
정 이사장은 아버지를 따라 정치에 입문했고, 아버지의 못다 한 꿈 ‘대권’에도 도전했다. 그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이후 1991년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무려 7선의 국회의원,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을 역임하며 ‘88 서울올림픽’을 유치했던 아버지처럼 그 역시 ‘2002 한일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유치했다.정 이사장은 현대중공업에 입사하고 물러나기까지 13년을 있었으며 그 이후 정치에 입문했으니 그가 이야기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지킨 셈이다. 현대 그룹에서 분리된 2002년에도 그는 그룹의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HD현대는 2010년대에 들어 3세 경영에 시동을 걸며 재벌그룹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2009년 1월에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했지만 같은 해 8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MBA)과정을 마치고 2010년에는 크레디트 스위스 인턴, 2011년에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 한국지사 컨설턴트로 경력을 쌓았다.
2013년에는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전격 복귀했다. 그는 2014년 말 현대중공업 그룹 인사에서 상무보를 건너뛰고 33세에 그룹 기획실 상무로 승진, 재계 최연소 임원이 됐다. 2015년 연말 인사에선 전무로 승진했다. 이후 정 수석부회장의 그룹 장악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2017년 11월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현대중공업 경영지원실장 겸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로 일했다. 2018년에는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까지 맡았다.
정기선 수석부회장이 현대중공업 그룹 계열사 중 첫 대표이사를 맡은 곳이 현대글로벌서비스인 것도 지금의 HD현대의 경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2016년 11월 현대중공업 자회사로 설립됐다가 지배구조 개편 이후 지주사 밑으로 편입됐다. 이 회사는 선박 부품 판매 및 기술 서비스, 선박 연료유 공급을 주된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다. 그룹의 신조선 선박이 많은 만큼 수리 작업 및 수주 활동으로 단기간 실적 확대에 유리했다.
2022년 3월 현대중공업 그룹이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며 사명을 HD현대로 변경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초대 HD현대 대표이사와 HD한국조선해양(조선 부문 중간지주) 대표이사까지 올랐다. 2013년 현대중공업 부장으로 입사 후 9년 만에 그룹을 장악한 셈이다. 2023년 11월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해 입지를 완전히 굳혔다. 1년 후인 2024년 11월부터는 수석부회장으로 그룹 전반을 경영하고 있다.
순환출자 구조 깨며 총수 친정 체제 강화
정 이사장은 회사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아들인 정 수석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지배구조 개편을 진행했다. 과거 현대중공업은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이 서로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순환출자 구조였다. 2017년 4월 이를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현대중공업은 2017년 4월부터 현대로보틱스(현 HD현대)를 지주사로 삼고 아래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에너지시스템, 현대오일뱅크 등 4개 계열사를 두는 구조로 바꾸는 과정에 착수했다. 지주회사 전환은 2018년 말에 완료됐다.
지배구조 개편으로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 이사장은 HD현대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게 됐다. 지주사 전환 이전까지 정 이사장의 현대중공업 지분은 10.15%였으나 지주회사 전환 후 25.80%로 늘었다. 최상위 지배기업인 HD현대는 주요 자회사 지분을 30% 이상 확보하며 안정적 지주사 체제를 구축했다.
현재 HD현대의 당면과제는 지분이 6.12%에 불과한 정 수석부회장이 대표이사 직위에 걸맞은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2018년 4월 정몽준 전 회장으로부터 약 3000억 원을 증여받아 지분율 5.3%를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HD현대는 공교롭게 지배구조 개편과 함께 시가배당 기준 5% 이상 고배당 정책을 발표했다.
당시 시장은 주주 우대 정책을 반겼으나, 역설적으로 총수 친정 체제를 강화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HD현대는 회계연도 기준 2018~2022년까지 4년간 최저 5.1% 이상 최고 9.6%의 배당률을 기록했으며, 그 결과 해당 기간 누계로 정 이사장은 4000억 원, 정 수석부회장은 860억 원의 배당을 챙겼다. 배당금을 이용해 정 수석부회장은 증여세를 충당한 것으로 보인다.
HD현대는 최근 들어 배당 여력을 더 높이고 있다. 2024년 HD현대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2021년까지만 해도 순손실 2966억 원, 지배주주 순손실 3366억 원을 기록하며 실적 회복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3년 만인 2024년 지배주주 순이익은 5090억 원으로 늘었고, 영업이익도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배주주 순이익이란 자회사 실적 중 HD현대 몫으로 돌아오는 수익이다. 개선된 재무구조가 배당 확대 전략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회사 배당수익도 눈에 띄게 늘었다. 2022년까지만 해도 400억 원이 채 되지 않았지만, 2024년에는 800억 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확대됐다. 2021년 227%에 달했던 부채비율도 2024년엔 180%로 낮아졌다.
배당금으로 경영권 승계 실탄 챙기나
HD현대는 2024년 한 해 동안 외환 손익 회복, 이자비용 절감, 영업외 손익 개선 등을 기반으로 전 부문에서 흑자를 냈다. 영업이익은 2조9832억 원으로 전년보다 46.8% 증가했고, 이익잉여금도 60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3·4분기에는 자회사 배당 수익으로 총 703억 원을 회수해 연간 배당 재원을 확보했다. 지난해 HD현대 자산은 79조6254억 원까지 증가했지만, 별도 기준 순이익은 773억 원에서 291억 원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당 총액은 2544억 원으로 전년(2614억 원)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다. 배당 성향은 87%를 넘겼다.HD현대 측은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배당은 주주환원의 핵심인 만큼 현행 배당 정책을 지속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지배구조 개편 이후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실탄 마련 목적이 아니냐는 의심이 불거진다. HD현대의 이러한 기조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HD현대의 EBITDA(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및 무형자산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은 2020년 9312억 원에서 2024년 4조9096억 원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올해 EBITDA는 조선해양, 정유, 전기전자, 건설기계, 선박서비스 모든 분야에서 실적이 개선되면서 5조 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이러한 호실적이 혁신적 투자로 이뤄지지 않고 재무 안정화에만 치우치고 있다는 것이다.
HD현대는 조선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지난해인 2024년 기준 자산은 84조7920억 원, 매출 70조7640억 원, 순이익 2조3930억 원으로 재계 순위가 9위에서 8위로 올랐다. HD현대그룹의 2024년 소속 계열사는 상장 10개, 비상장 21개 등 총 31개다.
정 수석부회장이 2021년 10월 대표이사(사장)이 된 후 조선업 호황 덕에 수주 잔고도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부가가치 선박 선별 수주와 HD현대마린솔루션을 통한 AM(After Market·선박 유지보수)을 통한 안정 위주의 경영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한미 관세 협상을 통해 새롭게 형성된 시장에서 HD현대에 정주영 명예회장의 도전과 혁신의 경영을 엿볼 수 없는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