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호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으로 이름 바꾼 이유 세 가지

[브랜드가 된 신화] 온라인쇼핑몰 ‘아마존’, 원래 다른 이름이었다?

  • 김원익 홍익대 독어독문과 교수·㈔세계신화연구소 소장

    입력2025-08-0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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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우스 방패에서 따온 이름 ‘이지스’

    • 고대부터 무(武)의 상징으로 쓰여

    • 안전·방범 기업들도 자주 사용

    • 고대 그리스의 여전사 부족 ‘아마존’ 族

    • 세계에서 가장 넓은 강에도 아마존 이름 붙어

    한국 해군의 이지스함인 정조대왕함이 기동함대사령부 모항인 해군제주기지에 처음 입항하고 있다. 해군

    한국 해군의 이지스함인 정조대왕함이 기동함대사령부 모항인 해군제주기지에 처음 입항하고 있다. 해군

    한국 프로농구팀 가운데 그리스 신화를 활용한 이름을 가진 곳이 세 군데 있다.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는 날개 달린 천마(天馬) ‘페가수스(Pegasus)’의 이름을 땄다. 그리스식으로는 페가소스(Pegasos)라 읽는다. 영웅 벨레로폰이 괴물 키마이라를 처치할 때 이 말을 탔다.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는 태양신이자 궁술의 신 아폴론의 별명 ‘피버스(Phoebus)’에서 착안했다. 그리스식으로는 ‘포이보스(Phoibos)’다. 아마 화살을 날리면 과녁에서 한 치도 빗나가지 않는 것처럼 득점을 놓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부산 KCC 이지스’에서 ‘이지스(Egis)’는 그리스 신들의 왕 제우스의 방패인 아이기스(Aigis)의 영어식 이름이다. 아이기스는 라틴어로 ‘아이기스(Aegis)’라고 했는데, 이 단어가 영어로 편입되면서 철자는 같고 발음만 ‘이지스’로 바뀌었다. ‘Egis’는 ‘Aegis’의 축약형이다. 아마 부산 KCC 프로 농구단은 ‘이지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팀의 핵심 전략이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됐을지도 모른다. 

    군사용어 중에 ‘이지스 전투 시스템(Aegis Combat System)’이라는 게 있다. ‘국방과학 기술용어 사전’에 따르면 이지스 전투 시스템은 “군 함정에서 사용하는 전투 체계로서, 목표 탐색부터 이를 파괴하기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시스템에 포함한 미 해군의 최신 종합 무기 시스템”이다. 바로 이지스 전투 시스템을 갖춘 구축함 등을 ‘이지스함’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국산 최초 이지스함인 ‘세종대왕급 구축함’(3척)과 이를 발전시킨 ‘정조대왕급 구축함’(1척) 등 2종, 4척의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다. 

    제우스를 기른 염소의 가죽으로 만든 방패 아이기스

    ‘아이기스’는 ‘염소 가죽’이라는 뜻인데 어원은 ‘염소’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아익스(Aix)’다. 제우스는 젖먹이일 때부터 아버지 크로노스(Kronos)의 눈을 피해 크레타의 딕테(Dikte)산 동굴에서 아말테이아(Amaltheia)라는 염소의 젖을 먹고 자랐다. 녀석이 죽자 나중에 방패로 쓸 요량으로 가죽을 벗겨 무두질해서 가장자리에 술을 달아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아이기스다.

    그 후 티탄 신족과 올림포스 신족의 전쟁이 발발하자 제우스는 아이기스를 들고서 티탄 신족이 진지를 구축한 오트리스산에서 올림포스산으로 던진 바윗덩이들을 쳐냈다. 제우스는 전쟁이 끝나자 이 아이기스를 태양의 신 아폴론 등에게 빌려주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가장 총애했던 전쟁의 여신 아테나에게 맡겼다. 



    그래서 아이기스는 아테나의 상징물이다. 그녀는 늘 아이기스를 지닌 모습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원형 방패처럼 손에 든 게 아니라 마치 망토처럼 양어깨에 걸쳤다. 아테나는 그 후 아이기스 한가운데에 살아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그 얼굴을 보면 돌로 변하는 괴물 메두사의 머리를 박아 넣었다. 

    부산 KCC 이지스의 마스코트. 가슴께에 아이기스 방패가 보인다. KCC이지스 홈페이지

    부산 KCC 이지스의 마스코트. 가슴께에 아이기스 방패가 보인다. KCC이지스 홈페이지

    로마 황제나 장군의 조각상 중에도 한가운데에 괴물 메두사가 박혀 있는 갑옷을 입고 있는 작품이 종종 있다. 특히 1세기경에 발굴된 폼페이 프레스코 벽화의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비슷한 갑옷을 입고 있다. 그것은 아마 그들이 전쟁의 여신 아테나와 메두사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뜻이리라.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따르면 아이기스는 제우스의 번개도 꿰뚫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했다. 또한 그것을 흔들면 병사들은 뿌리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인 채 전의를 상실했다. 

    아이기스는 방어뿐 아니라 공격에도 아주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이지스 구축함도 공수 양면에서 빼어난 능력을 자랑한다. 가령 우리나라의 세종대왕함은 반경 1000㎞ 이내에 있는 1000여 개의 표적을 동시에 찾아내 그중 20개를 동시에 요격할 수 있다. 현대의 해군력은 이지스함의 보유 수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지스 구축함은 바로 현대에 부활한 아테나의 아이기스 방패인 셈이다. 이지스 구축함이 ‘신의 방패’라는 별명을 지닌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아이기스’나 ‘이지스’를 상호나 브랜드로 쓰는 분야는 다양하다. 특히 도장업체, 보안업체, 성인용 기저귀 회사, 화장품 회사, 주짓수 도장 등에 주로 쓰인다. 이는 탁월한 선택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이기스의 원래 기능인 방패의 의미를 아주 잘 살렸기 때문이다. 장갑, 방범 안전망에 ‘이지스’라는 브랜드를 붙인 것도 마찬가지다.

    신화 속 여전사 부족과 전투만큼 힘든 아마존 횡단

    ‌남아메리카의 ‘아마존(Amazon)강’은 원래 ‘민물의 바다’라는 뜻의 ‘마르둘쎄(Mar Dulce)’ 혹은 ‘거대한 강’이라는 뜻의 ‘리오 그란데(Rio Grande)’로 불렸다. 하지만 1541~1542년 스페인 탐험가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Francisco de Orellana)가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이 강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횡단하다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마존(Amazon)족 전사처럼 용감무쌍한 여전사들과 전투를 치른 후부터는 강 이름을 ‘아마조나스(Amazonas)’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스페인어나 포르투칼어로 ‘아마조나스’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마존족은 전쟁의 신 아레스(Ares)와 물의 요정 하르모니아(Harmonia)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남자들을 멀리하고 그들만의 세계를 이루며 살았다. 아마존족은 전쟁의 신 아레스의 후손답게 전사로서 이름을 날렸다. 주변국 모두가 두려워할 정도로 강하고 용감했다. 아마존 왕국은 흑해 연안 테르모돈(Thermodon) 강변에 위치한 테미스키라(Themiskyra)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번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현재 튀르키예 영토로 보스포루스해협으로부터 흑해 해안의 동쪽 끝자락 사이의 3분의 2 지점에 놓여 있었다. 

    ‘아마존’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그리스어 ‘아마조스(a-maz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조스’는 ‘가슴이 없는 여자’라는 뜻이다. 아마존 전사들은 어릴 때 활쏘기에 거추장스러운 왼쪽 가슴을 불로 지져 없앴다고 한다. 왼쪽 가슴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는 주장도 있다. 활을 편하게 쏘기 위해 왼쪽 가슴 위에 무거운 가죽 보호대를 걸쳐서 가슴이 그 무게에 눌려 평평해졌다는 것이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아마존족 전사를 묘사한 고대의 조각 작품이나 부조를 보면 그들은 두 개의 가슴을 모두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아마존’의 어원을 ‘아마자스(a-mazas)’로 보는 설도 있다. 이는 ‘빵을 먹지 않는 자’라는 뜻이다. 아마존족 전사들은 빵을 먹으면 신체가 약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실제로 단백질이나 비타민이 많은 생선, 과일, 고기 등을 선호했다. 빵은 주로 남자 노예들만 먹었다.

    콜롬비아 아마소나스주의 주도 레시티아 상공에서 내려다본 아마존 강. 동아DB

    콜롬비아 아마소나스주의 주도 레시티아 상공에서 내려다본 아마존 강. 동아DB

    ‘아마존’의 어원을 ‘벨트’라는 뜻을 지닌 ‘조네(zone)’로 보는 설도 있다. 그래서 ‘아마조네(ama-zone)’는 ‘벨트를 아주 잘한 여자’, 즉 ‘무장을 아주 잘한 여자’라는 의미다. 이 설은 헤라클레스가 12가지 모험 중 에우리스테우스의 딸이 원했던 아마존족의 여왕 히폴리테의 벨트를 가지러 갔던 아홉 번째 모험을 근거로 만들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마존’의 어원을 ‘전사’라는 뜻의 이란 토속어 ‘하마잔(ha-mazan)’으로 보는 설도 있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아마존족을 두 번 언급했다. 하나는 영웅 벨레로폰이 리키아의 이오바테스 왕의 궁전에 머물면서 왕의 부탁으로 아마존과 전투를 벌였다는 대목이고, 다른 하나는 트로이의 프리아모스 왕이 젊었을 때 프리기아의 편에서 상가리오스강 근처에서 아마존족에 대항해 싸웠다는 대목이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미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의 본사 ‘아마존 스피어스’. 아마존 홈페이지

    미국 시애틀에 있는 미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의 본사 ‘아마존 스피어스’. 아마존 홈페이지

    신화 속 영웅이 여러 번 침략한 아마존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들은 거의 모두 힘자랑이라도 하듯 아마존족을 괴롭힌다. 벨레로폰뿐 아니라 불세출의 영웅 헤라클레스도 아마존족을 정벌했다. 그는 원래 히폴리테(Hypolytte) 여왕의 벨트만 가져올 생각이었다. 여왕도 헤라클레스에게 순순히 벨트를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질투의 화신인 헤라 여신의 개입으로 본의 아니게 여왕과 아마존 전사들을 죽이고 벨트를 빼앗아 왔다.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도 아마존족을 정벌했다. 그는 헤라클레스의 손에 죽은 히폴리테의 뒤를 이어 여왕이 된 안티오페(Antiope)를 납치했다. 그 후 테세우스는 안티오페 여왕을 아내로 삼아 히폴리토스(Hypolyttos)라는 아들을 두었다. 

    트로이 전쟁 말기에는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Penthesileia)가 트로이를 돕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왔다. 그리스군은 아마존의 참전으로 곤경에 빠지지만 결국 아킬레우스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여왕은 아킬레우스와 벌인 일대일 결투에서 패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족을 역사에 존재하는 민족과 일치시키려는 시도가 숱하게 있었다. 하지만 아직 고고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아마존족이 살았던 지역이 제대로 발국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 헤로도토스는 저서 ‘역사’에서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살고 있던 사우로마타이(Sauromatai)족이 스키타이족과 아마존족의 혼혈이라고 주장했다. 

    헤로도토스는 같은 책에서 소아시아 남서부에 살았던 ‘리키아(Lykia)’족의 모권적 관습에 대해 언급했다. 그 책에 따르면 리키아족은 어머니 성을 따라 이름을 지었다. 아이의 신분도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정해졌다. 헤로도토스는 이 민족도 아마존족의 후손일 것으로 추측했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더 높은 지위를 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마존족은 어떻게 순수한 여자들만의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학자들에 따르면 그들은 순전히 종족 보존을 위해서만 남자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번식을 위해 전투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들은 비교적 강한 남자를 만나면 포로로 잡아와 사랑을 나눈 뒤 추방하거나 죽였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 여자아이면 키우고 남자아이면 버리거나 죽였다. 아버지에게 보내거나 거세해 노예로 쓰기도 했다. 

    미국 인터넷기업 ‘아마존’이라는 이름의 어원은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이다. 그래서 그 어원은 결국 그리스 신화의 아마존족이다. ‘아마존’은 제프 베이조스가 1994년 5월 창업 당시에는 이름이 ‘카다브라(Cadabra)’였다. 그런데 회사 전속 변호사가 그것을 ‘시체’라는 의미의 ‘카데바(Cadaver)’로 착각하고 등록하는 바람에 그해 11월 ‘아마존’으로 바꾸었다. 베이조스가 기업 이름을 ‘아마존’으로 정한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그는 우선 사전 속 ‘아마존강’ 항목에 대한 설명에서 “이국적이고 다채롭다”는 말이 자신이 설립하려고 하는 인터넷기업의 이념과 딱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둘째, ‘아마존’이라는 단어가 ‘A’로 시작되기에 장차 알파벳 순서의 기업 리스트에서 첫 부분에서 언급될 것에 강한 호감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아마존강처럼 세계 최고의 인터넷기업을 일궈내고 싶었다. 이름이 지닌 상서로운 기운 덕분이었을까. ‘아마존’은 2025년 7월 현재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다음으로 전 세계 시가총액 4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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