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호

DB그룹 갑작스러운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

[In-Depth Story] 아들 대신 측근에게 그룹 맡긴 DB그룹 창업주

  •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

    입력2025-08-1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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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간, 외국인 건축주 통해 성장한 동부건설

    • 중동에서 번 오일머니 통해 대규모 확장

    • 신규 사업 실패로 2013년부터 자회사 매각 나서

    • 2015년 53개 계열사 10년 만에 25개로 줄어

    • ‘동부’라는 이름 잃고, 창업회장 성폭력으로 명성도↓

    • 2020년 장남에게 회장 자리 내줬지만

    • 주요 임원은 여전히 창업회장 측근 일색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DB금융센터. DB그룹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DB금융센터. DB그룹

    국내 대기업 집단에서 처음으로 50세 명예회장이 탄생했다. DB그룹이 6월 27일 갑자기 그룹 회장에 이수광(81) 전 DB손해보험 사장을 앉히며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을 선포했다. 그룹 총수인 김준기(81) 창업회장의 장남이자 오너 2세 경영인인 김남호(50)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명예회장’이 됐다. 

    6월 27일 DB그룹 회장이 된 이수광(81) 전 DB손해보험 사장. 동아DB

    6월 27일 DB그룹 회장이 된 이수광(81) 전 DB손해보험 사장. 동아DB

    DB그룹의 인사는 글로벌 무역 전쟁이 격화되고, AI 혁명이 일어나는 지금 시점에 전문경영인 체제로 생존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과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전문경영인을 다시 부를 정도로 다급하냐는 문제는 논란거리다. DB그룹 측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해서도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이 번갈아 경영을 맡는 일본 도요타 사례처럼 전문경영인에 의한 자율·책임경영 체제가 확고히 뿌리내릴 것”이라고 밝혔지만 통상적으로 오너 2세가 경영권을 물려받는 기업 승계와는 모양새가 다르다. 

    DB그룹의 설명처럼 전문경영인 체제가 우리 기업문화에 뿌리내린다면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의 양상은 그렇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5년 만에 끝난 2세 경영

    DB그룹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첫 번째 전문경영인 선임과 이번 선임은 그 성격이 다르다. DB그룹은 2017년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이근영 동부화재 고문을 전문경영인 회장으로 내세워 3년간 경영을 맡겼다. 앞서 김 창업회장은 2017년 9월 11일 여성 비서 성추행 및 가사도우미 성폭행 혐의로 피소되자, 같은 달 21일 입장문을 발표하며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DB그룹은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이 고문을 회장으로 선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이후 3년 만인 2020년 그 자리를 김남호 회장이 이어받으며 2세 경영이 본격화했다. 그러나 5년 만에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DB그룹의 후계 구도가 복잡해졌다. 



    재계에서는 이번 인사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2020년 7월 시작된 DB그룹의 2세 경영이 불과 5년여 만에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김 창업회장과 1944년생 동갑으로, 그룹 내 최고령 임원이다. 1975년생인 김 명예회장에게는 아버지뻘이나 다름없다. 이 회장은 DB손해보험 등 주요 계열사의 최고경영자를 맡아온 인물로 1979년 DB그룹에 합류해 김 창업회장 밑에서 40년 가까이 일해 왔다. 또한 김 창업회장과 1944년생으로 나이가 같으며 고려대 경제학과 동문이다. 

    김 창업회장의 사임 및 김 명예회장의 경영권 승계도 사실상 오너리스크 해소를 위해 진행된 것으로, 이번 회장 교체로 여전히 김 창업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확고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재계에서 부친인 김 창업회장의 ‘아들 길들이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어쩌면 김 명예회장은 2020년 취임 때부터 실질적 회장이 아니라 명예회장이었을지도 모른다. 45세에 그룹 회장이 된 김 명예회장은 2002년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AT커니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09년 귀국해 DB그룹에서만 16년을 보냈다. 그는 2009년 동부제철 차장으로 입사해서 2013년 동부팜한농 부장으로 재직한 이후 2015년 이후부터는 DB금융연구소에서 일했다. 

    DB그룹 회장이 된 때 재계에서는 주요 계열사의 CEO 교체를 예상했지만 김 명예회장의 의중이 담긴 인사는 없었다. DB그룹은 그룹 전체 매출과 자산의 90%가량이 금융 부문에서 나온다. 금융계열사 수장 인사권이 그룹의 실권과 이어진다. 당시 김정남 DB손해보험 사장(1952년생), 이태운 DB생명 사장(1958년생), 고원종 DB금융투자 사장(1958년생) 등은 금융업계에서 손꼽히는 장수 CEO였다. 

    이들 중 이태운 DB생명 사장만이 2020년 가을 김영만 현 DB생명 사장으로 교체됐다. 김영만 DB생명 사장도 김정남 DB손해보험 대표이사 부회장과 함께 DB손해보험 경영기획 및 경영지원실장으로 오랫동안 함께해 온 경영인이다. 김 창업회장의 뜻이 담긴 인사라고 짐작할 수 있다. 2022년 7월에는 김 창업회장의 딸인 김주원 DB하이텍 미주법인장이 DB그룹 부회장직에 오르며 미묘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김준기 창업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DB그룹 명예회장. DB그룹

    김준기 창업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DB그룹 명예회장. DB그룹

    올해 1분기 기준 김 명예회장은 DB그룹 핵심 계열사인 DB Inc의 지분을 16.83% 확보하고 있으며, 이어 김 창업회장 15.91%, 김 부회장이 9.87%를 보유하고 있다. 김 명예회장의 개인 지분이 부친보다 많지만 오너 일가 외에 DB김준기문화재단과 계열사 보유 지분 등을 합친 전체 특수관계인의 지분 구조 측면에서 살펴보면 김 창업회장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현재 김 창업회장은 경영자문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주요 경영진의 인사권을 포함해 그룹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과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반영하듯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공시하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 김 창업회장은 올해도 기업 총수를 의미하는 동일인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김 명예회장이 회장으로 재임한 지난 5년간 일견 DB그룹은 재계 순위가 48위에서 40위로 오르고, 실적 개선도 두드러졌다. 지난해 기준 DB손해보험을 중심으로 그룹 전체 매출액은 22조9307억 원, 순이익 1조8461억 원으로 전년보다 순이익이 7.95% 늘었다. 그러나 김 창업회장이 임명한 전문경영인들이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김 명예회장의 온전한 성과로 보기는 어렵다.

    정계 파워엘리트 집안 반대 무릅쓰고 창업

     동부그룹을 창업한 김 창업회장의 부친은 고(故)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이다. 김 창업회장은 1944년 강원도 삼척군 북평읍에서 김 부의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북평에서 초등학교까지 나왔고, 서울로 올라와 경기중, 경기고를 거쳐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김준기 창업회장의 아버지인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 동아DB

    김준기 창업회장의 아버지인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 동아DB

    김 전 부의장은 1954년 제3대 민의원을 시작으로 내리 7선 국회의원을 지낸 거물 정치인이다. 제헌의원과 초대 참의원을 지낸 김진구(1906~1987) 선생과 광복 직후 대한독립국민촉성회 비서장을 지낸 김진팔 선생이 김 창업회장의 백부다. 

    김 부의장은 2006년 별세할 때까지 정계 원로를 대표해 국회 상공위원장, 공화당 원내총무, 국회부의장을 두루 지내는 등 활발한 의정 활동으로 이름을 알려왔다. 1960년대 후반 여당의 당4역으로 활동할 정도로 높은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1972년 10·2 항명 파동에 휘말려 권력에서 밀려났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오치성 내무부 장관 임명에 여당 의원이 반발해 일어난 사건이다. 김 부의장은 오 전 장관 해임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정치적 타격은 컸다. 

    김 전 부의장은 아들인 김 창업회장이 정치인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김 창업회장의 꿈은 사업에 있었다. 부친의 뜻을 거스르고 기업 경영에 나선 김 회장은 자수성가형 창업주다. 그래서인지 김 창업주는 ‘거물 정치인의 장남’이라는 후광을 그다지 탐탁해하지 않았다. 고려대 동창인 천신일 전 세종나모 회장은 2008년 1월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김 창업회장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대학 다닐 때 벽지 초등학교에서 서울 구경을 오면, 김 창업회장이 밥 사주고, 방값 내주고 그랬습니다. ‘나도 시골 출신이니까, 저 친구들한테 잘해야 한다’면서요. 정치인의 아들인데 참 소탈하구나 싶데요. 그때부터 ‘큰 사업 하겠다’는 얘기는 하고 다녔지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창업한 만큼 동부그룹에는 오너 일가가 경영에 참여하는 일이 드물었다. 창업 초창기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한 셈이다. 유일한 오너 일가로는 김 창업회장의 동서인 윤대근 전 동부건설 부회장과 외삼촌인 김형배 전 동부문화재단 이사장이 있었다. 김 창업회장의 부인인 故 김정희 여사의 여동생인 김정림 씨는 윤천주 전 문교부 장관의 아들인 윤 전 부회장과 결혼했다. 그는 김 창업회장과 함께 오늘날의 동부그룹의 성장에 기여했다.

    김 창업회장은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자본금 2400만 원을 들여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창업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미륭건설은 도급 순위가 낮아 정부 공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는 연세대 이공대 건물 등 민간 발주 공사와 영국대사관, 독일문화원, 용산미군기지 등 외국인 발주 공사를 집중 공략하며 착실히 사업을 키워나갔다. 미륭건설이 지금의 동부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외국인 발주로 쌓은 노하우가 주효했다. 

    김 창업회장은 1973년 사우디아라비아에 미륭건설 지사를 설립했다. 1976년 사우디에 진출한 현대건설보다 3년 먼저였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바일 해군기지 공사를 4800만 달러에 수주했다. 1970년대 초까지 국내 건설업체가 해외에서 수주한 공사 중 최대였다. 주바일 해군기지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미륭건설은 사우디의 서쪽인 제다로 이동했다. 미륭의 제다 해군기지 공사 현장 기능공 수는 최다 5000명에 이를 정도였다. 

    미륭건설은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 있는 외무성(MOFA) 공사, 국방성(MODA) 공사, 로열공항 공사 등 굵직한 공사도 잇따라 수주했다. 한 건당 2억~3억 달러에 달하는 대형 공사였다. 이후 1980년까지 5년 동안 총 20억 달러의 공사를 수주해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기간사업 위주로 그룹 덩치 키웠으나

     미륭건설은 중동에서 벌어온 자금을 기반으로 국내 기간산업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김 창업회장은 고향인 강원도 삼척에서 제철회사와 비료 공장을 보고 자라면서 국가 기간산업을 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먼저 1976년 부실기업이었던 삼척산업(현 DB메탈)을 인수해 철강산업을 시작했다. 이후 일신제강을 인수해 철강 소재를 다변화했다. 이러한 기초가 이후 동부제강이 전기로 제철사업에 진출하는 기초가 됐다. 김 창업회장은 1983년에는 미국 몬산토와 합작으로 국내 최초의 반도체 관련 신소재인 실리콘웨이퍼 생산업체 ‘코실(현 SK실트론)’도 설립했다. 이는 1990년대 후반 동부가 반도체산업에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김 창업회장의 인수전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영남화학·울산석유화학·한농 등을 인수해 비료·농약·석유화학 사업으로 확장해 동부한농의 기초를 만들었으며, 부산운수·한미면업·대영실업 등을 인수해 종합운송사업 체계를 만들었다. 김 창업회장은 같은 시기 금융업에도 진출했다. 1980년 국내 유일의 자동차보험회사였던 한국자동차보험(현 DB손해보험)의 지분을 인수했고, 1982년 국민투자금융(이후 동부증권)을 설립하며 금융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동부(東部)’라는 이름은 1971년 동부고속을 설립하면서 처음 썼다. ‘도전과 개척’(東) ‘안정과 풍요로움’(部)을 상징하는 뜻의 ‘동부’는 계열사 사명으로 하나둘씩 쓰이기 시작하다 1989년 미륭건설을 동부건설로 개명하면서 그룹명이 됐다. 

    동부그룹은 1990년대에 재계 20대 그룹에 진입했다. 1969년 창업 첫해에 9200만 원이었던 회사의 매출은 1997년 5조 원을 넘어섰다. 창업 30년 만인 2000년에는 재계 10대 그룹 타이틀을 달았다. 2002년 서울 노른자 땅 강남 테헤란로에 들어선 동부그룹 본사(DB금융센터)는 10대 그룹으로서 화려했던 순간을 보여준다. 

    동부그룹이 정점에 있던 1997년 김 창업회장은 동부전자를 설립해 메모리D램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나빴다. 곧이어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외환위기 이후 동부전자는 메모리D램 사업을 접고 국내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던 비메모리 파운드리 분야로 방향을 틀었다. 

    김 창업회장은 2002년 동부전자와 비슷한 시기에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한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며 사명을 동부하이텍으로 바꿨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김 창업회장의 승부수였지만 반도체 사업은 계속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공교롭게 IT업계 버블이 꺼지면서 반도체 불황까지 겹쳤다. 동부하이텍은 1997년부터 단 한 해도 연속 흑자를 내지 못했다. 2조4000억 원의 차입금이 쌓였고, 매년 1000억 원이 넘는 이자에 시달렸다. 

    수렁에 빠진 동부하이텍을 구하기 위해 김 창업회장은 2007년 동부화재 주식의 70%를 담보로 돈을 빌렸다. 그 뒤에도 계속 부채 상환과 차입을 되풀이하며 동부하이텍을 지원했다. 급기야 동부그룹은 2009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한 대규모 대주단에 9000억 원의 대출금을 상환해야 할 상황을 맞이했다. 대출금을 갚기에 자금이 부족했다. 결국 산업은행과 동부하이텍의 자회사인 동부메탈을 매각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시 동부그룹은 동부메탈의 가치를 7000억 원 정도로 봤지만 산업은행 측은 3000억 원 수준을 제시했다. 그러자 김 창업회장은 사재 3500억 원을 털어 동부하이텍이 보유하고 있던 동부메탈 주식의 50%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동부하이텍에 자금을 지원했다.

    악재에도 버리지 못한 종합전자회사 꿈

     동부하이텍은 위기를 넘겼지만 당시는 2008년부터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붕괴로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던 시기였다. 2010년부터는 국내 부동산 경기가 크게 악화하고 건설업계가 장기 불황에 빠졌다. 동부건설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부건설은 2013년 11월 사옥을 3600억 원에 매도했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그룹 핵심이었던 동부건설도 상황은 나빴다. 김포 풍무·인천 계양 등지의 미분양 할인 분양 등으로 2013년 동부건설의 실적은 매출 1조9977억 원에 1038억 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당기 순손실만 1781억 원으로 그전 해인 2012년 매출 2조4846억 원에 영업이익 726억 원에 비해 악화했다. 

    동부그룹의 또 다른 핵심 계열사인 동부제철의 사정도 악화일로였다. 갓 시작한 전기로 제철 사업이 문제였다. 2009년 충남 당진에 전기로 제철 공장을 준공했으나 전 세계에 몰아친 불황의 여파로 철강 대란이 발생했다. 고로 제철의 원료인 철광석 가격이 폭락한 반면, 전기로 제철의 원료인 고철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김 창업회장이 종합전자회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우전자를 인수한 시점도 나빴다. 가뜩이나 불경기에 기존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 없이 대우전자를 인수해 동부대우전자로 바꾸었다. 김 창업회장은 2013년 2월 동부대우전자를 2700억 원 정도에 인수했다. 인수 과정에서 사재 250억 원을 투입했다. 김 창업회장은 스스로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김 창업회장은 “대우전자가 매물로 나왔을 때 한국의 전자산업을 주도하는 종합전자회사가 더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인수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창업회장은 동부대우전자를 통해 2017년 매출 5조 원, 영업이익 3000억 원 달성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동부대우전자는 반도체에 이은 그의 꿈이었다. 동부그룹은 동부대우전자를 통해 ‘글로벌 종합전자회사’를 만들고자 했다. 냉장고, 세탁기로 한정됐던 제품 포트폴리오를 TV, 청소기 등으로 다각화해서 동부대우전자를 중심으로 반도체, 가전, 로봇, LED 등의 사업 경쟁력도 끌어올리려고 했다.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동부대우전자는 주력 시장인 중남미, 중동 가전 시장이 침체되면서 사업 부진이 계속됐다.

    결국 ‘동부’라는 이름까지 잃어

    2013년 11월 동부그룹은 결국 자회사 매각에 나섰다. 주요 계열사인 동부하이텍, 동부메탈, 동부제철 인천공장, 동부발전당진 등을 매각해 총 2조7000억 원을 마련하겠다는 자구 계획을 발표했다. 동부그룹이 강력한 자구안을 내놓은 것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대기업 사전적 구조조정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동부그룹 외에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이 사전적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됐다. 반도체 부문의 향후 투자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동부하이텍이 매각 대상이 됐다. 또한 동부제철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인천공장도 매각하고, 동부건설의 자회사 동부발전당진과 동부익스프레스의 지분도 처분한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시장은 환호했다. 특히 김 창업회장이 그룹 성장 동력으로 여겼던 동부하이텍을 매각한다고 나선 점에서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러나 산업은행 주도로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묶어 포스코에 매각하기로 한 ‘패키지딜’이 무산되면서 동부그룹 사전적 구조조정은 실패했다. 

    패키지딜 실패 영향으로 동부그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이 일제히 투기 등급으로 강등되면서 채권 금융기관의 자금회수가 진행되고 회사채 차환이 막혔다. 동부그룹은 2014년 6월 동부제철 자율협약을 시작으로 40여 개 계열사가 그룹에서 떨어져 나가며 제조서비스 분야가 무너졌다. 동부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계열 분리가 진행됐고, 동부제철(현 KG스틸)이 산업은행을 거쳐 2019년 KG그룹에 매각됐다. 

    2015년 53개에 이르던 계열사는 10년 후인 2024년 25개로 줄었다. ‘동부’ 상표권을 갖고 있던 동부건설이 사모펀드에 매각되면서 상표권 사용료 때문에 2017년 11월 그룹명을 동부그룹에서 DB그룹으로 변경했다.

    회사 경영이 악화일로를 걷던 2017년 9월 김 창업회장은 회사를 떠났다. 여비서 상습 성추행 혐의로 피소되며 회장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김 창업회장은 “개인의 문제로 인해 회사에 짐이 돼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동부그룹의 회장직과 계열회사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

    2020년 4월 17일 1심 재판부는 김 창업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취업제한 등을 명령했다. 2021년 2월 18일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유지됐다. 

    김 창업회장이 회장직과 계열회사 대표이사직에 물러나면서 DB그룹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시작됐다. 하지만 업계의 시선은 김 창업회장의 장남에게 쏠렸다. 김 명예회장은 2009년 동부제철에 입사해 동부제철 부장, 동부팜한농 부장 등을 거쳤으며 일찌감치 김 창업회장에게 증여받은 동부 지분 18.59%와 동부화재 지분 9.01% 등을 보유하고 있어 경영권 승계가 유력했다. 

    제대로 실권 쥐지 못한 2세 

    2020년 김 명예회장은 2020년 3년간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정리하고 DB그룹 회장에 취임한다. 취임하자마자 DB Inc.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계열사를 방문해 임직원을 격려했다. 회장 취임 이듬해인 2021년에는 실질적 지주사인 DB Inc. 이사회 의장과 사내이사에 선임되는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DB그룹은 행동주의 펀드로 불리는 KCGI와 분쟁을 겪었다. KCGI는 2023년 DB하이텍의 지분을 매입하고 2대주주로 올라선 이후 주주가치 제고 압박에 나섰다. DB하이텍을 상대로 가처분 소송도 제기해 반년 이상 다툼을 이어갔다. 하지만 KCGI가 2023년 말 소송을 취하하고 지분을 DB Inc.로 넘기면서 일단락됐다. 

    김 명예회장의 그룹 장악력도 미비했다. 2022년 말 DB그룹이 조직개편을 통해 보험과 금융, 제조서비스 등 3개 사업 그룹 체제를 확립하고 이 과정에서 각 사업의 그룹장과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도 새롭게 선임했지만 사업 그룹장과 CEO들은 대부분 김 창업회장의 측근이었다. 

    이는 김 명예회장이 온전한 경영권을 승계하지 못한 상황에서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부친 김 창업회장이 여전히 지분을 보유하며 경영권을 행사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DB그룹은 제조서비스 부문의 DB Inc.와 금융 계열사를 거느리는 DB손해보험을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DB그룹의 2세 경영이 5년 만에 막을 내린 이유로 김 창업회장이 아들 김 명예회장을 아직 못미더워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김 명예회장이 부친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DB하이텍 매각을 추진해 김 창업회장이 진노했다는 소문도 있다. 실제로 2021년 8월 DB그룹이 LX, 현대차 등 국내 주요 대기업에 DB하이텍 매각을 추진한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르기도 했다. 

    DB그룹은 금융 부문에 편중된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를 통한 신성장동력 확보와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DB그룹은 제조업 부문의 축소로 그룹의 수익 구조가 DB손해보험, DB생명 등 금융 계열사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DB하이텍의 지속 성장과 더불어, 그룹 전체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이 시급하다. 

    DB그룹이 이번 이 회장 선임 발표 과정에서 보험 부문의 해외시장 확대와 사업다각화, 금융 부문의 대형화 및 자산운용 선진화, 제조서비스 부문의 차세대 반도체 및 AI 신사업 발굴 등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현재 DB그룹은 소유 구조 문제도 갖고 있다. DB Inc.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요건에서 일시적으로 해제됐다. 법상 자산총액 5000억 원 이상이며 전체 자산 대비 자회사 지분가치가 50%를 넘어서면 지주회사가 된다. 지주회사가 되면 자회사 보유 지분을 30%로 올려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자회사를 매각해야 한다. 이 같은 부담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은 지주회사 전환을 꺼린다. 2024년 기준 DB Inc.는 자산 총액은 8909억 원. 전체 자산 대비 자회사 지분 가치는 52%였다. 실적 호조로 자회사 DB하이텍의 주가가 뛰어오르자 DB Inc.는 지주회사가 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DB하이텍 주가가 낮아지며 지주회사 지정을 피했다. 이에 소액주주연대는 “DB Inc. 측이 지주회사 지정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열사인 DB하이텍의 주가를 낮춘 것 아니냐”며 비판하고 있다. 이는 경영의 투명성을 저해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 변화 앞에 전문경영인 체제 변화가 적절한지 주주들은 물을 것이고 DB그룹은 적절한 답을 시장에 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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