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호

‘제임스 쿡 선장’처럼 투자의 바다를 항해하라

[윤지호의 투자공방] 투자자의 숙명 ‘리스크’,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 윤지호 경제평론가

    입력2025-07-1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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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자자는 확실성 멀리해야…확실한 안전 없어

    • 높은 불확실성, 가격 하락 초래해 리스크 낮출 수도

    • 리스크, 무엇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정의 바뀌어

    • 투자의 핵심은 ‘어떻게 리스크를 다루는가’

    18세기 항해사 제임스 쿡은 남태평양과 호주, 뉴질랜드를 탐험하며 유럽에 미지의 세계를 알린 인물이다. 위키피디아

    18세기 항해사 제임스 쿡은 남태평양과 호주, 뉴질랜드를 탐험하며 유럽에 미지의 세계를 알린 인물이다. 위키피디아

    대항해시대를 연 것은 향신료 무역이었다. 아랍 상인이 실크로드와 인도양, 홍해 항로를 장악하면서 유럽 국가는 향신료를 비싸게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나라는 향신료를 얻기 위해 새 항로를 찾아 나섰다. 스페인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가마를 대서양으로 보냈다. 다가마는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마침내 향신료의 원산지 인도에 도착했고, 이후 포르투갈은 후추·정향·육두구 무역으로 큰 부를 이뤘다.

    현대적 의미의 금융은 대항해 시기를 거치며 탄생했다. 금융시장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 위험, 즉 리스크(risk)는 그리스어 리자(rizha·암석)와 레시쿰(resicum·절벽)과 합쳐진 단어로 ‘바다의 위험한 장애물’을 의미했다. 대륙을 오가며 항해하는 선박이 수많은 위험에 내몰리면서 위험에 관해 관심이 커진 영향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때부터 사람들이 리스크를 순응해야 할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통제할 수 있는 요소’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리스크를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확실성과 리스크는 다르다

    흔히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다. 우리의 인생 역시 수많은 위험의 연속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위험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거절의 위험을 감수한 사람만이 멋진 연인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막상 위험을 감수하려 하면 쉽지 않다. 위험을 회피해 생존 확률을 높이려는 본능이 먼저 발동하기 때문이다. 위험 회피 성향은 불확실성 회피 성향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혹여 모를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본능적으로 피하려 하고, 더 나아가 확실한 상황에 안정감을 느낀다. 

    현대사회에서도 확실성을 갈구하는 모습은 흔히 나타난다. 미래를 보장하거나 경고하는 극단의 정치집단 혹은 광신자 집단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확실성을 향한 갈망 때문이다. 확실성은 미신과 유사하다. 주술과 미신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명백한 답을 내려주며 사람들을 현혹한다. 투자의 세계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거짓 예언자’를 향한 찬미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다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확실성은 투자자를 최악의 상황으로 안내할 수 있다. 

    투자자는 확실성을 멀리해야 한다. ‘확실한 안전’이 ‘막대한 위험’으로 이어지는 역설적 상황이 투자 세계에서는 빈번하다.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태를 떠올려 보자. LTCM은 존 메리웨더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머튼과 마이런 숄즈와 만든 헤지펀드로, 채권 간 차익거래라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를 했다. 여기에 최고 수준 전문가의 엄밀한 계산과 기술적 조치까지 더해지며 LTCM은 리스크 없이 돈을 버는 듯했다. 이들은 확신 속에서 레버리지를 25배까지 일으켰고, 1995~1996년 40%의 수익률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과 아시아 외환위기라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지며 파국을 맞았다.



    존 메리웨더가 이끈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는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과 아시아 외환위기로 파국을 맞이했다. Gettyimage

    존 메리웨더가 이끈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는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과 아시아 외환위기로 파국을 맞이했다. Gettyimage

    많은 사람의 우려와 달리 불확실한 상황이 곧 위험한 상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불확실성과 위험은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퀴즈를 풀어보자. 다음 세 가지 상황 가운데 어떤 상황이 가장 불확실성이 높을까. ①2층에서 추락 ②4층에서 추락 ③10층에서 추락. 정답은 ②다. 4층에서 떨어진다면 죽을 수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죽음이 확실한 10층에서 추락하는 것이지만, 불확실성이 가장 높은 상황은 4층에서 추락하는 경우다.

    투자의 세계에서 불확실성이 팽창하는 구간은 ‘위험 순간’이라기보다 ‘기회의 순간’일 가능성이 높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대다수 투자자가 일단 도망치려 하는 만큼 가격이 필요 이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높은 불확실성은 과장된 할인을 초래해 낮은 리스크로 이어지기도 한다. 리스크는 불확실성 자체와는 무관하다. ‘불확실성이 묻은 상품을 어떤 가격으로 얻어오느냐’가 리스크의 핵심이다.

    성공한 소수의 투자자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활용한 이들이다. 워런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1934년 책 ‘증권분석’에서 내재가치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불확실성과 리스크의 차이를 짚었다. 그레이엄이 제시한 내재가치는 추상적 개념이었고, 이후 많은 가치투자 선구자도 이를 명확히 정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많은 투자자가 불확실성과 리스크의 차이를 오해하면서 시장가격이 과장되게 하락할 수 있고, 이때 안전마진이 확보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회피하든지, 뛰어들든지, 통제하든지

    투자의 세계에 뛰어들면 리스크는 일상이 된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오늘날 리스크와 수익에 대한 이론이 체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 재무 이론은 ‘보상’을 통해 수익과 리스크 사이의 관계를 풀어낸다. 해리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이론은 “분산투자를 통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M)은 “리스크가 클수록 기대수익률도 높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높은 수익을 원한다면 그만큼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하이일드 채권(high-yield bond)이 정크본드(junk bond·쓰레기 채권)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이 발전하면서 리스크의 정의가 세분화됐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리스크는 절대적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리스크는 개개인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따라 그 정의가 바뀌는 상대적 개념이다. 어떤 이는 표준편차를 벗어나는 상황을, 어떤 이는 손실 가능성이 높은 상황을, 어떤 이는 벤치마크와의 일탈 정도를 두고 리스크를 평가한다.

    예를 들어 리스크를 통제하는 일을 주된 업무로 하는 리스크 매니저는 VaR(Value at Risk)을 활용해 위험에 대응한다. VaR는 “얼마나 잃을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리스크를 정량화한 지표다. “하루 기준 99% 신뢰수준에서 5억 원의 VaR”은 “1% 확률로 5억 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안정적 수익을 중시하는 펀드매니저는 자기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이 벤치마크 수익률과 얼마나 차이 나는지 나타내는 트래킹 에러(tracking error)라는 지표를 사용한다. 수익률이 높아도 벤치마크에서 크게 벗어나면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하는 식이다. 이외에도 신용위험, 유동성위험, 운영위험 등 수많은 하위 개념이 있다. 

    이쯤 되면 막연히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표현을 떠올릴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다만 이 표현을 “리스크를 감수하면 반드시 높은 수익이 따라온다”는 의미로 오해하면 안 된다. 현실은 훨씬 냉정하다. 리스크는 그저 막대한 보상을 꿈꾸며 가벼운 마음으로 긁어보는 복권보다, 잘못 다루면 투자 인생 전체를 침몰시킬 수 있는 파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투자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리스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이다. 아마도 방법은 세 가지로 나뉠 것이다. 누군가는 리스크를 회피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리스크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다. 반면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투자라는 항해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역사 속 세 명의 항해사에게서 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위대한 항해에 나섰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다의 위험에 대처했으며 결과 역시 제각각이었다.

    첫째, 보수적 항로를 택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이다. 1519년 마젤란은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아 인류 최초로 세계 일주를 시작했다. 그는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검증된 항로 위주로 계획을 세웠고,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서 움직였다. 물론 항해 중 예상치 못한 사건도 발생했고 그 역시 세부섬에서 전사했지만, 그의 선원 가운데 일부는 세계 일주를 완수했다. 이 항해는 결국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공으로 기억된다. 

    마젤란의 항해는 마치 우량 국채와 인덱스펀드처럼 리스크가 낮은 자산에 꾸준히 투자하며 복리의 힘을 기대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크진 않지만, 안정적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느리지만 안전한 항해’다.

    둘째, 통제되지 않는 위험을 감수한 존 프랭클린 경이다. 19세기 중반 프랭클린은 북서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야심만만한 항해를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항로는 지도조차 없는 ‘얼음 바다’로 인간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혹독한 환경이었다. 그는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었지만, 항로에 대한 정보와 기후에 대한 대비는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그의 배는 빙하 속에 갇혔고, 탐험대 전원은 실종됐다. 몇 년 후 발견된 것은 선체 잔해 등 비극의 흔적뿐이었다. 

    프랭클린의 항해는 검증되지 않은 테마주나 고위험 파생상품에 모든 재산을 베팅하거나,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켜 한탕을 노리는 투자자와 비슷하다. 겉보기엔 큰돈을 버는 지름길 같지만, 그 안엔 준비되지 않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 대다수의 끝은 시장에서의 완전한 침몰이다. 

    셋째, 위험을 기술적으로 다룬 제임스 쿡 선장이다. 18세기 항해사 제임스 쿡은 남태평양과 호주, 뉴질랜드를 탐험하며 유럽에 미지의 세계를 알린 인물이다. 그는 철저한 준비 아래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고, 천문 관측과 정밀 지도 제작, 의학적 지식에 근거한 여러 위생 조치 등으로 위험을 관리했다. 쿡은 여러 차례의 탐험을 성공적으로 완수했고, 그의 항해는 인류 지리학의 지평을 넓혔다. 

    쿡의 방식은 마치 철저한 분석, 분산투자, 손절매 전략, 그리고 포트폴리오 조정을 병행하는 리스크 관리형 투자자의 모습과 같다. 위험을 무작정 회피하지 않되, 체계적으로 다루며 시장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다. 투자자에게 필요한 자세는 바로 ‘쿡의 항해’다.

    ‘얼마나 리스크를 허용할 수 있는가’에 초점 맞춰야

    결국 중요한 것은 ‘리스크의 감수 여부’가 아닌 ‘어떻게 리스크를 다루는가’이다. 많은 투자자가 이익 혹은 손실이라는 양자택일의 관점에서 리스크를 바라본다. 하지만 리스크의 감수나 회피에 집중하지 말고, ‘리스크를 얼마나 허용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마젤란처럼 안정적 항로만을 택할 수 있으며, 프랭클린처럼 무모하게 질주하다 좌초할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자로서 우리가 닮아야 할 인물은 쿡이다. 그는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었지만 무모하게 덤비지 않았다. 정보를 모으고 시뮬레이션했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수단을 갖춘 다음 전략적으로 항해했다. 

    정크본드가 높은 수익률을 ‘제안’하는 이유는 그것이 위험한 데 있지, 수익을 보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정크본드에 접근할 수는 있지만, 리스크를 제대로 분석하고 다룰 수 있는 투자자만이 그 수익을 현실화할 수 있다. 오늘도 시장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항해를 재촉한다. 매일 오르는 차트와 수많은 뉴스, 그리고 기회 혹은 위기라는 이름의 파도가 매일같이 몰려온다. 마음이 급해질 법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다. 바람을 읽는 능력이고 배를 다루는 기술이다. 당신은 어떤 항해사인가. 

    윤지호
    ● 1967년생
    ● 前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 저서: ‘한국형 탑다운 투자 전략’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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