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하던 선원 홀린 신화 속 ‘세이렌’
스타벅스 로고로 현신해 행인 홀린다
세이렌 어머니 ‘칼리오페’ 이름 딴 카페도 있어
오디세이아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토르’
친구 아들의 스승이자 보호자로 ‘멘토’의 모티프
멘토르(맨 왼쪽)가 텔레마코스(왼쪽에서 두 번째)에게 칼립소의 섬을 떠나라고 충고하는 모습을 담은 찰스 메니에르의 그림. Gettyimage
세이렌이 사는 섬 근처는 인간에게 위험하다. 세이렌은 서식지를 지나는 배를 애잔한 연주와 노랫소리로 가까이 오도록 유혹한다. 세이렌에 홀린 선원들은 섬 주변으로 배를 가까이 대다가 바닷속에 숨겨진 암초에 부딪힌다. 배는 가라앉고 선원들은 익사한다. 다른 설에 따르면 선원들은 세이렌의 음악 소리를 들으면 그들을 만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서 섬으로 다가가다가 기진해 익사한다.
세이렌은 강의 신 아켈로오스와 서사시의 여신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스 신화에서 세이렌은 주로 인어가 아닌 괴조로 등장한다. 가장 처음 등장하는 곳은 헬레니즘 시대 시인인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의 저작 ‘아르고호의 모험’이다.
모비딕의 1등 항해사 이름 딴 스타벅스
‘아르고호의 모험’의 주인공 이아손을 비롯한 아르고호의 영웅 55명은 흑해 연안의 콜키스 왕국(지금의 조지아 서부 일대)에서 황금 양피를 탈취한 뒤 귀향길에 세이렌이 사는 섬을 지나가야 했다. 멀리서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선원 중 리라와 노래의 달인 오르페우스가 맞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이레네스의 마력이 선원들에게 미치지 못했다.그 후 세이렌이 등장하는 곳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이 끝난 뒤 귀향길에 세이렌이 사는 섬을 지나야 했다. 호기심이 강했던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꼭 듣고 싶었다.
오디세우스는 1년 동안 함께 살았던 마녀 키르케가 당부한 대로 밀랍을 녹여 부하들의 귀에 부어 막았다. 믿을 만한 부하 두 명을 따로 불러 자신을 돛대를 고정하는 기둥에 묶게 하고는 후에 아무리 자신이 몸부림쳐도 풀어주지 말고 더 단단히 묶으라고 당부했다.
세이렌은 과연 오디세우스의 배가 사람의 고함이 들릴 만큼 가까이 다가오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세이렌의 노래를 듣자 오디세우스는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듣고 싶은 뿌리칠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몸부림치며 부하들에게 자신을 풀어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부하들 대부분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터라 노를 젓기만 했다. 두 명의 부하는 미리 명령을 받은 대로 더 많은 밧줄로 오디세우스를 더욱더 세게 묶었다. 얼마 후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게 되자 비로소 오디세우스도 밧줄에서 풀어줬다.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 로고는 세이렌이 인어라는 설에 따라 만들었다. 1971~1992년까지 20여 년 동안 사용된 스타벅스 초기 로고에는 세이렌의 하반신 물고기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후 새로 만든 로고에서는 세이렌의 허리와 사타구니는 사라지고 양쪽 끝자락에 지느러미만 보인다. 스타벅스가 우리나라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는 로고의 세이렌 덕분일지도 모른다. 스타벅스 매장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려 어쩔 수 없이 매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달콤한 커피 향까지 뿌려대며 유혹하는 세이렌을 당할 재간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스타벅스는 샌프란시스코대 동창이던 제리 볼드윈, 고든 보커, 제브 시글 등 세 친구가 시작한 커피 프랜차이즈다. 세 사람은 커피 로스팅 업자 알프레드 피트의 권유로 1971년 미국 시애틀에 첫 매장을 열었다. 처음 10여 년 동안은 고급 원두와 커피 제조 용품만 판매했다. 이후 커피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스포츠용품 회사 뉴발란스의 로고 제작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테리 헤클러의 충고 덕분이었다.
헤클러는 회사 이름으로 고민하는 세 친구에게 ‘스트롱(Strong)’처럼 ‘st’로 시작하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니 그 단어들 리스트를 작성해서 그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권유했다. 처음 회사 이름 후보군에 올랐던 것은 캐스케이드산맥에 있는 광산 도시 ‘스타보(Starbo)’였다. 하지만 세 사람의 머릿속에 불현듯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이 떠올랐다. 결국 회사의 이름은 ‘스타벅’의 복수형 ‘스타벅스’가 됐다.
뮤즈 최고의 여신 ‘칼리오페’ 카페
영국의 화가 프레데릭 레이턴의 작품 ‘어부와 세이렌’ (1858). 영국 브리스틀 시립 미술관
칼리오페는 그리스 신들의 왕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홉 딸 중 하나다. 그들을 총칭하는 이름으로 단수는 ‘무사’이고 복수는 ‘무사이’인데 영어로는 ‘뮤즈’라고 한다. 이들은 모두 예술을 담당했으며 칼리오페는 그중 최고의 여신으로 서사시를 맡았다. 그녀는 또한 태양신 아폴론 사이에서 노래의 달인 오르페우스를 낳은 것으로 유명하다.
용인의 카페 이름은 원래의 ‘Kalliope’가 아닌 영어식 이름 ‘Calliope’를 따랐다. 칼리오페 카페는 이름만 그리스 신을 따른 게 아니다. 총 네 개의 층 각각에도 그리스 신을 하나씩 넣은 이름이 붙어 있다. 그 신이 관장한 분야와 층의 용도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고증을 철저히 했다는 뜻이다.
‘가이아의 정원’이라는 이름의 지하층은 삼면에 계단식 좌석이 있어 연극 공연이나 행사도 할 수 있다. 이곳은 계단식 좌석 때문에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실내인데도 가이아의 정원이라고 한 이유는 통유리를 통해 야외 정원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의 여신이다.
‘데메테르의 만찬’이라는 이름의 1층은 빵을 먹으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데메테르는 그리스 신화에서 곡물과 씨앗의 여신이었으니 절묘한 이름이다. 빵도 곡물로 만들고 커피도 원두로 만드니 하는 말이다.
1971년 스타벅스의 로고 세이렌이 다리 모양의 꼬리 지느러미를 들고 있다. 위키피디아
마지막으로 ‘올림푸스 제우스 신전’이라는 이름의 2층은 소파 좌석의 벽지가 마치 그리스의 신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전상우 칼리오페 카페 대표는 2020년 11월 데일리한국 인터뷰에서 “그리스 신인 칼리오페라는 이름으로 상호를 사용한 만큼 매장 내부에 그리스로마 신화를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앞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창조하면서 상호명과 콘셉트를 통일화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차별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했다.
오디세우스 아들 지킨 멘토르
‘멘토’는 어떤 분야에서 경험과 식견이 뛰어나서 다른 사람에게 충고와 조언을 하며 도움을 주는 사람을 뜻한다. 멘토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람을 뜻하는 ‘멘티’, 혹은 ‘멘토링’이라는 단어까지 있어 멘토를 영어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멘토’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멘토르’라는 등장인물 이름에서 유래했다.멘토르는 오디세우스의 소꿉친구였다. 트로이전쟁이 발발하자 이타케 섬의 왕 오디세우스는 12척의 함선을 이끌고 트로이로 떠나면서 멘토르에게 자신이 없는 동안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트로이전쟁이 끝나고 7년째로 접어들었는데도 오디세우스는 귀향하지 않았다. 이타케와 그 주변 섬에서 귀족의 아들이 총 108명이나 매일 궁전을 찾아와 페넬로페에게 결혼하자며 치근대며 행패를 부렸다. 오디세우스가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텔레마코스는 이를 막기 위해 이타케 백성 전체 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어머니에게 구혼하는 귀족들에게 항의했다. 텔레마코스는 구혼자들에게 “제발 우리 아버지가 여러분에게 베푼 선정을 생각하시고 이 모든 짓을 그만두고 떠나가시오”라고 경고했다.
텔레마코스는 이타케섬의 백성은 구혼자들을 쫓아내는 일에 동조할 것이라 봤다. 하지만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백성들은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선뜻 나서서 그를 옹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혼자들이 텔레마코스를 협박했다. 바로 이때 멘토르가 일어서서 백성들의 비겁한 태도를 호되게 질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타케 백성들이여, 정말 안타까운 일이오. 오디세우스는 여러분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건만 여러분 중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오. 지금 나를 화나게 하는 건 오디세우스의 가산을 축내는 구혼자들이 아니오. 오히려 수적으로도 훨씬 우세한데도 얼마 안 되는 구혼자들이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당신들이 더 원망스럽소.”
이타케섬의 백성들은 멘토르의 꾸지람을 듣고도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멘토르는 구혼자들의 야유와 협박을 받고 즉각 연설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멘토르는 ‘오디세이아’에서 더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아테나 여신이 위기 때마다 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텔레마코스를 독려했다.
아테나는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필로스와 스파르타로 갈 때도 멘토르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동행했다. 오디세우스가 귀향해 구혼자들을 처단하는 와중에도 멘토르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텔레마코스를 도왔다. 마지막으로 구혼자들이 몰살당한 사실을 알고 분노한 그들의 가족들이 무장하고 몰려오자 양측이 평화조약을 맺게 주선한 것도 바로 멘토르의 모습을 한 아테나였다.
17세기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페늘롱은 오디세이아에서는 아주 짤막하게만 언급되는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 나선 텔레마코스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소설을 썼다. 이 책에서 텔레마코스는 오디세우스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모험했는데, 멘토르는 그와 끝까지 동행하며 위기 때마다 그를 구해준다.
텔레마코스가 모험 중 난파당해 요정 칼립소의 섬에 상륙한 적이 있다. 멘토르는 이때 텔레마코스가 그곳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칼립소의 시녀이자 요정인 에우카리스와 헤어지는 게 아쉬워 차마 섬을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자신의 약점과 애욕의 폭력성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아직 현명하다고 볼 수 없다.” 텔레마코스는 결국 멘토르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 섬을 떠났다.
‘멘토르’ 혹은 ‘멘토’는 ‘스승’이라는 뜻이기에 어떤 분야에서든 상호로 써도 무난하다. 그 분야의 스승이 되겠다는 다짐 혹은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교육원, 경영 컨설팅, 중개업, 사주 카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