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호

트럼프發 ‘보호무역 마라톤’ 완주 위한 3가지 방책

[Special Report | WTO 종말! ‘트럼프 라운드’ 시작됐다] ①대미 사업 불확실성 제거 ②국내 제조업 고도화 ③경제 안보 지원

  •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 부연구위원

    입력2025-08-2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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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경제 체질 바꾸기 위한 거대한 실험 감행

    • 15% 관세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끝 아닌 시작일 수도

    • 美 조선·해운 산업 대중국 탈동조화에서 ‘윈윈’ 기회 찾아야

    • 범정부적 외교 채널 운영과 유기적 정보 공유 필수

    • 글로벌 경쟁력 갖춘 소재·부품·장비 기업 전략적 육성해야

    7월 30일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 캐비닛 룸에서 한국 측 협상단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백악관 페이스북 캡처

    7월 30일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 캐비닛 룸에서 한국 측 협상단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백악관 페이스북 캡처

    한미 관세 협상이 일단락되면서 짙게 드리웠던 안개가 걷히고 있다. 관세정책 시행 초부터 오락가락했던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협상 마무리 단계에서도 갈지자 행보를 이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협상할 때 일본 측 설명 자료에 기재된 수치를 즉석에서 지우고, 미국의 이익 배분율을 50%에서 90%로, 투자 금액을 4000억 달러에서 5000억 달러로 수정했다. 이후 이 금액은 다시 5500억 달러로 또 조정됐다. 우리나라와 협상할 때는 다행히 이러한 즉흥적 개입은 없었다. 하지만 향후 백악관이 입장을 수시로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 협상의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적 신뢰를 훼손하면서까지 미국은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한 거대한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다소 강압적인 해외투자 유치 전략을 보면, 마치 미국이 개발도상국의 초기 발전 단계로 되돌아간 듯한 인상을 준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에 미국으로부터 차관과 경제원조를 받아들이고, 수입대체산업 육성 전략의 일환으로 수입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며 경제발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관계가 역전된 양상을 띠고 있다. 더구나 원조받는 국가가 기축통화를 보유한 패권국가라는 점에서 현재 벌어지는 상황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러한 패권국가의 ‘떼쓰기’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미국을 개발도상국처럼 대하며 적선하듯 도울 여력이 없다. 한미 관세 합의에 따라 한국은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별도로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LNG와 에너지 제품을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이 두 항목을 합한 4500억 달러는 2024년 기준 미국의 대(對)한국 수입액(1315억 달러)의 세 배를 훌쩍 넘는다. 만약 이 4500억 달러가 실제로 아무 대가 없이 미국에 쏟아붓는 돈이라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다행히 정부 설명에 따르면 대미 투자 약정 금액 3500억 달러는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집행되며, 정부 출자 비중은 5% 미만이고 대부분 보증이나 대출 형태로 이뤄진다. 아무 대가 없이 미국에 제공하는 자금은 아니지만, 2024년 기준 수출입은행의 대출 잔액(601억 달러)과 보증 잔액(333억 달러)을 감안하면 3500억 달러가 여전히 막대한 규모임은 분명하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거대한 실험을 맞이한 현시점에서, 한미 관세 협상이 우리 산업과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미 관세 협상 결과를 세부적으로 보면, 양국이 합의한 3500억 달러 투자 중 1500억 달러는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조선업에 활용되며, 나머지 2000억 달러는 금융투자 패키지 형태로 △반도체 △원자력 △에너지 △2차전지 △바이오산업에 배정될 예정이다. 이들 협력 분야는 모두 미국에서 무역장벽 확대나 새로운 사업 기회가 예상되는 영역으로, 관세 협상이 아니었더라도 미국 내 공급망 구축이 일정 부분 필요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른 국가에 “당신네 나라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에 대해 우리 정부가 정책금융으로 지원해도 눈감아 달라”고 요구한다면, 상대국이 이를 두고 정신 나간 소리라며 일축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중국 배터리 기업이 우리나라에 진출해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등에 업고 시장을 잠식한 뒤 토종 배터리 3사를 몰아낸다고 상상해 보자. 이를 용인한 정부는 훗날 한국 경제사에서 ‘역적’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시장 왜곡을 막기 위해 유럽연합(EU)도 2023년 7월부터 역외보조금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미 관세 협상은 미국에서 사업할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정책금융을 제공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한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선택 아닌 필수가 된 대미 투자

    미국에서는 트럼프 1기 행정부부터 본격화한 대중국 탈동조화가 한층 심화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와 친환경산업을 대중 견제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조선·해운 산업에서 탈동조화 현상이 본격적으로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5년 10월 14일부터 중국산 선박이나 중국 국적 선박의 소유자 및 운영자에게 수수료를 부과할 예정이며, 2029년부터는 일정 규모 이상의 LNG 수출을 미국산 선박을 통해서만 운송하도록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계획이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탱커·컨테이너선·가스 운반선의 경우, 2025년 3월 기준 운항 중인 선박 점유율은 중국이 각각 24%, 36%, 13%에 그치지만, 수주 기준 점유율은 68%, 69%, 36%로 급등한다.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새로운 조선 사업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미국 현지 투자를 전략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 진출 필요성의 확대는 조선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의회는 기존에 친환경차 보조금에만 적용되던 대중국 조달 제한을 2차전지와 에너지산업 전반으로 확대했다. 원자력 분야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2050년까지 원자력발전 용량을 현재 100GW에서 400GW로, 4배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관련 행정명령 4건에 연달아 서명했다.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해서는 150~250%의 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최대한의 미국 내 생산을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과 유사하게 연방 조달 시장 참여 조건으로 제약 제품의 국내 생산을 의무화하는 정책도 언제든 재도입할 수 있다. 

    이처럼 해외투자를 포함한 전방위적 대중국 견제 강화는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 성장의 발판이자 보호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사업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서도, 중국과 경쟁하는 가운데 보호막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한미 통상 합의에서 거론된 산업 전반의 대미 투자 확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한미 관세 협상의 결과로 촉발될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관세로 인한 부담을 우회하며, 해외 사업을 통해 경상수지를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를 낳는다. 그러나 우리 경제 앞에 장밋빛 미래만이 펼쳐질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기대 이면에는 국내 생산 여력 감소로 인한 수출 및 고용 축소에 대한 우려가 공존한다.

    15% 관세, 국내 생산 여력 美 유출 가능성↑

    한미 관세 협상 결과, 우리나라에 대한 제232조 자동차 관세율이 당초 발표된 25%에서 15%로 낮아지며 상황이 다소 개선됐다. 그러나 15%의 관세도 기업들이 온전히 부담하기에는 여전히 버거운 수준이다. 현대자동차의 2024년 매출 대비 당기순이익 비중이 약 7.7%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동차 가격인상이나 공급망 내 비용 분담 없이 장기간 이 부담을 전적으로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대차그룹은 2025년 3월, 2025~2028년 동안 21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추가 투자를 발표했다. 하지만 관세 부담을 감안하면 향후 투자 확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협상을 통해 다른 국가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확보한 점은 긍정적이나, 15%의 관세가 국내 생산 여력의 미국 유출을 막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국내 자동차 관련 일자리는 대미 투자로 얼마나 줄어들까. 미국 통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366억6000만 달러, 자동차 부품 수출액은 89억2000만 달러로, 전체 대미 수출액의 약 35%를 자동차 및 부품이 차지한다. 만약 이 모든 수출이 미국 현지 생산으로 전환된다고 가정하고, 2022년 기준 고용계수(자동차 0.6명/10억 원, 자동차 부품 1.7명/10억 원)를 적용하면, 자동차 분야에서만 약 3만 명, 부품 분야에서 약 2만1000명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전라남도 영광군 인구(약 5만3000명)에 해당하는 규모다. 물론 이러한 가정은 극단적이지만, 자동차를 비롯한 주요 산업에서 미국으로 투자 이전이 수출 감소와 제조업 공동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다만 해외투자로 인한 국내 일자리 감소를 한미 관세 협상과 지나치게 직결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협력 강화 분야 중 조선업(200만 달러), 배터리(29억 달러), 제약(40억 달러)의 2024년 미국 통관 자료 기준 수출액은 전체 대미 수출의 약 5%에 불과하다. 특히 배터리 분야는 한국 공장이 ‘마더팩토리’ 역할을 수행하고, 본격적인 생산은 해외 공장에서 이뤄지고 있어 해외 투자가 국내 생산을 단기적으로 크게 위축시킬 가능성은 낮다. 반도체의 경우 2024년 수출액이 165억 달러로 적지 않지만, 한국은 주로 D램 모듈과 같은 완제품을 미국에 직접 수출한다. 상당량은 대만, 베트남 등 제3국을 거쳐 간접 수출한다. 더욱이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는 주력 대미 수출 품목인 메모리반도체 제조가 아니라 파운드리나 첨단 패키징에 집중돼 있어, 국내 생산과 직접적 상충관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한미 관세 협상 여파로 거대한 생산 지형 변화가 눈앞에 다가온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한화그룹이 인수한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 조선소. 한화

    한화그룹이 인수한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 조선소. 한화

    美 입장 번복 가능성에 대비해야

    첫째, 대미 사업 환경에 남아 있는 불안정성을 제거해야 한다. 한미 간 합의가 성사됐지만, 협상 세부 내용에 대한 양국 입장에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 설령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는 합의문에 서명하더라도, 미국이 입장을 번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제232조 관세는 25%에서 출발해 각국과 협의를 거쳐 쿼터 등으로 조정됐으나, 2기 행정부는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관세율을 50%로 인상했다. 지금의 한미 간 합의 역시 미국의 의도에 따라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우리 기업에 민감하게 작용할 수 있는 미국의 해외투자 규제, 수출 통제 개편 등 각종 경제 안보 조치는 아직 방향만 설정됐을 뿐, 구체적 정책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비록 G7과 합의해 미국 상원 논의 과정에서 제외됐지만, 하원은 ‘통합예산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 일명 ‘해외보복세’를 추진해 미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의 모국 조세제도에 따라 최대 20%의 추가 세금을 부과하려 한 전례도 있다.

    대미 사업 확대는 우리 기업들이 미국 정책에 따른 위험에 한층 더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산발적으로 운영해 온 미국과의 경제 안보 논의 채널을 하나로 결집해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주기적으로 투자 상황을 점검할 때, 우리는 대미 투자 과정에서 발생한 애로 사항 중 합의되지 않은 관세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필요하다면 우리 기업에 대한 별도의 관세 면제를 요구해야 한다.

    또한 미국의 경제 안보 및 산업정책이 이제 구체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우리 기업의 사업 환경 개선에 유리한 정책 방향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작업은 개별 부처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므로, 범정부적 외교 채널 운영과 유기적 정보 공유가 필수적이다.

    둘째, 대미 사업 확대와 연계해 국내 제조업의 고도화를 병행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오랫동안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의 제조 역량에 상당 부분 의존해 왔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한때 시안에서 낸드 생산량의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D램 생산량의 50%를 소화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가 본격화한 2023~2024년, 우리의 대중국 반도체 부문 해외 순투자 금액은 약 -13억 달러로 이미 자본 회수가 시작됐고, 같은 기간 대미 반도체 해외 순투자 금액은 23억 달러에 달했다.

    치열해지는 대중 경쟁과 미국 우선주의가 주도하는 새로운 통상 질서 속에서, 우리 기업들의 생산 네트워크도 이에 맞춰 재편될 수밖에 없다. 한미 관세 합의는 이미 달리고 있던 이 변화의 열차에 가속 페달을 더욱 세게 밟게 한 셈이다.

    국내 협업 네트워크 조성 후 미국에 이식해야

    우리의 생산 역량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전환된다고 해서, 과거 중국을 활용하던 전략을 미국 시장에 그대로 이식할 수는 없다. 공장 건설 및 운영 비용, 소재와 장비 수급, 인력 활용 등 여러 측면에서 중국이 미국은 물론 한국보다 유리한 여건을 갖춘 측면이 있다. 반면 미국에서 생산 역량을 확대하려면 높은 인건비와 제조 생태계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새롭게 출발한다는 도전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 결국 생산방식과 생산 제품 모두 변화가 필요하다.

    생산방식의 변화 측면에서는 미국 내 생산성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도록 국내 ‘마더팩토리’에서 디지털트윈과 지능형 공장 기술을 적극 활용해 선단 공정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이를 미국 양산 기지로 신속히 전파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또한 산업 전반에서 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기술 성숙도가 낮아 상용화까지 시간이 걸리거나, △개별 기업이 단독으로 도전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거나, △여러 기업이 중복 투자 시 비효율이 큰 기술은 국가 주도로 시제품 개발까지 앞당길 수 있는 테스트베드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내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크므로, 선단 공정이나 핵심 기술을 보유한 해외 주요 기업을 전략적으로 유치해 국내 협업 네트워크를 조성하고, 이를 그대로 미국에도 이식할 수 있어야 한다.

    생산 제품의 변화 측면에서는 범용 제품보다 독점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물론 모든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원하는 만큼 이는 한미 통상 합의와 무관한, 당연한 목표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제구조 변화를 감안하면 단순히 국내에서 최종재를 제조·판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해외 생산기지에 소재와 장비를 공급하거나 로열티를 수취하는 형태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일본, 미국, 독일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공급망 상류의 소재, 부품, 장비 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할 시점이다.

    셋째, 더욱 공세적인 경제 안보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공급망안정화법’을 비롯한 ‘공급망 3법’을 제정하고, 신성장·원천기술과 국가 전략기술에 대한 추가 지원을 마련하며 필수 품목의 수급 관리 체계를 고도화해 왔다. 필요한 경우 세제 혜택과 금융지원도 강화해 왔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다. 더 나아가 공세적 정책 전환이 요구된다.

    바이든 행정부 전후로 미국은 보조금과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결합한 공급망 정책을 통해 세계적인 ‘보조금 전쟁’을 촉발했다. 중국은 제3차 반도체 대기금을 출범시켰고, 유럽도 과거 연구개발 지원에 머물던 수준에서 벗어나 반도체, 배터리, 수소, 클라우드 인프라,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대표 사례인 ‘유럽 공통 관심사에 대한 중요 프로젝트(IPCEI·Important Projects of Common European Interest)’는 예상 민간 투자액 668억 유로에 대해 376억 유로 규모의 정부 지원금을 매칭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와 과학법’ 폐기를 주장했지만, 상원에서 세액공제율을 25%에서 35%로 상향하자 결국 서명했다. 이미 세계무역기구 기반의 전통적인 통상 질서는 무너졌고, 규칙이 없는 환경에서 각국의 대응 방향은 명확하다. 제조업 기반을 지키고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산업정책 확대 경쟁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으로 흡수되는 제조 여력뿐 아니라 제3국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제조 여력까지 우려해야 할 시점이다. 주력 산업이 마더팩토리를 중심으로 한국에 기반을 두고 있더라도, 공급망 회복탄력성 관점에서 일정 수준의 제조 역량을 국내에 유지하는 것은 안보적으로 필수적이다. 생산 여력의 불균형이 심화하면 공급망 생태계가 해외로 이전되고, 국내 생산기지는 도태될 위험이 있다. 최소한 현재의 제조 역량을 수성하기 위해서라도 단순한 수급 관리를 넘어선 경제 안보 전략과 그에 걸맞은 지원이 절실하다.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한미 관세 협상의 어려운 순간마다 기회 요인을 최대한 부각하며 위기를 돌파해 왔다. 그러나 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장기적으로 이어질 보호무역주의라는 험난한 마라톤을 우리 경제가 무사히 완주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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