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 직후 매수세 주춤…‘숨은 수요’는 여전
규제 피한 현금 부자만 거래…주요지 상승세 유지
추가 수요 억제, 공급 대책 방향·강도 따라 시장 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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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규제로 수도권과 규제지역 내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최대한도가 일제히 6억 원으로 제한됐다. 연봉이나 주택 가격 등 기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LTV(주택담보인정비율) 등 규제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본래 연봉 1억 원인 사람이 수도권 내 비규제지역에서 집값 10억 원인 주택을 살 때 LTV는 70%가 적용됐다. 집값의 70%인 7억 원까지 대출이 됐다는 얘기다. 여기에 DSR(금리 4%, 만기 30년 분할상환 가정) 적용 시 대출 한도는 6억9800만 원으로 200만 원 줄어든다. 그러나 6월 28일부터는 9800만 원 더 줄어든 6억 원만 대출이 가능하다.
그동안 대출 한도가 높았던 고소득자일수록 감소 폭은 더 크다. 연소득 2억 원인 사람이 20억 원짜리 주택을 구매할 경우 기존 LTV 한도는 14억 원, DSR 적용 시 13억96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20억 원 집을 살 때도 주담대는 6억 원까지만 가능하다. 기존 대비 대출 한도가 7억9600만 원 줄어드는 것이다.
당장 급한 불은 껐다…매매 줄고 취소 늘어
정부의 의도는 분명했다. 고가 주택 매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대출 활용을 막겠다는 뜻이다. 고액의 주담대가 가능한 점이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집값 상승이 다시 고액 대출로 이어져 가계대출을 늘리는 악순환을 불러왔다고 봐서다.수도권과 규제지역에서 주담대를 받았다면 6개월 이내 전입 의무도 부과된다. 실거주 목적일 경우에만 대출을 허용하겠다는 얘기다. 하반기 대출 총량도 본래 예정액의 절반으로 낮췄다. 투자 목적으로 과도하게 대출을 끌어다 쓰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넣는) 수요’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집이 있는 경우에는 대출 길이 아예 막혔다. 수도권과 규제지역 내 주택을 보유한 유주택자가 추가로 주택을 사려고 할 경우 주담대를 받지 못하도록 막는 규정이 생겼다. 단 기존 주택을 6개월 내 처분할 시에만 주담대를 받을 수 있다.
생애 최초 주담대도 LTV를 기존 80%에서 70%로 낮추고, 주택기금을 활용한 디딤돌·버팀목대출 등 정책대출 최대한도도 축소했다. 여기에 제도 발표 후 유예기간을 두지 않고 다음 날 바로 적용토록 하면서 준비 없이 맞은, 그야말로 ‘역대급 규제’란 평가가 나왔다.
정부가 절절 끓던 시장에 찬물을 붓자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 등에 따르면 규제 발표 후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규제 전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규제 발표 직전 일주일 동안 거래량이 1890건에서 발표 후 일주일간은 750건으로 줄어든 것이다. 60% 넘는 감소량이다.
6억 원 넘는 대출을 받아야 하는 이들은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데다가, 주담대를 이용한다고 해도 6개월 내 전입신고를 해야 해 관망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분석된다. 더욱이 소유권 이전 조건부 대출을 금지해 전세 세입자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는 이른바 ‘갭투자’가 어렵게 된 것도 거래가 줄어든 이유로 꼽힌다.
6월 20일부터 7월 3일까지, 규제 발표 전후 14일간 서울에서 이뤄진 매매계약 가운데 계약을 취소한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계약해제 사유 발생일이 제도 발표일인 27일 이후인 사례는 125건으로 집계됐다. 자금조달 여력이 부족한 사람뿐 아니라 현금이 많아 대출에서 자유로운 이들도 더 싼값에 구매가 가능한 기회를 기다리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거래가 줄면서 서울 전역의 집값 상승세도 한풀 꺾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마지막 주(30일 기준)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4% 올랐다. 직전 주 대비 0.03%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여전히 상승세는 높지만 5~6월 들어 급격히 오르던 상승 폭만큼은 줄어든 것이다. 이는 5월 5일 이후 8주 만이다. 한국부동산원은 “재건축 추진 단지와 주요 단지 중심으로 매매가격이 상승하고 있지만, 선호 지역 내 매수 문의가 감소하며 서울 전체 상승 폭은 소폭 축소됐다”고 분석했다.
강남구는 매매가격 변동률이 0.73%로 전주(0.84%) 대비 0.11%포인트 낮아졌고, 서초구와 송파구도 각각 0.65%, 0.75%로 전주 대비 각각 0.12%포인트, 0.13%포인트씩 줄었다.
7월 4일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에 급매 매물 광고가 게시돼 있다. 6월 27일 정부가 대출 규제를 발표한 이후 KB부동산의 주간 아파트 시장 동향에 따르면 11주 연속 상승했던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76.4로 전주(99.3)보다 하락했다. 뉴시스
단기간 수요 억제…그 이후는?
정부가 집을 사기 위한 주요 자금조달 수단을 옥죈 만큼 당분간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현금 보유량이 충분하거나 대출 외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않는 이상 높아진 집값에 매수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한강변 일대 아파트가 가구당 평균 가격이 약 15억 원에 육박하는 만큼 자체 자본 9억 ~10억 원 정도를 준비하지 않고선 대출을 통한 주택 구입이 어렵게 됐다”면서 “5~6월 과열 양상을 보이던 한강 벨트 아파트 거래량도 숨을 고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를 하지 않고도 주담대 최대한도 제한과 실거주 조치 병행으로 사실상 갭투자를 막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저가 아파트와 서울 외곽 지역으로 풍선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함 랩장은 “6억~8억 원대 매입이 가능한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과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 등 서울 외곽 지역으로 수요가 몰려 풍선효과가 발현될 수 있다”고 봤다. 중·저가 주택 가격이 올라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수도권과 규제지역 내 전세대출 보증 비율이 90%에서 80%로 강화되고, 기준금리 인하 추세가 맞물리면서 전세 매물 부족, 전셋값 상승, 전세의 월세화 등도 가속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거래량이 줄고, 가격 상승 폭이 줄었다고 해서 수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외려 ‘똘똘한 한 채’ 선호를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이번 규제로 단기간 수요를 억제할 수는 있겠지만 LTV 등 기존 규제를 초월한 강력한 규제를 계속 가져갈 수는 없을 것”이라며 “더욱이 이번 규제로 서울 집값 상승을 이끈 강남 3구, 용산구 등 고가 시장 아파트값이 하향 안정화하리라 보기도 어렵다”고 진단했다.
즉 이번 규제로 집값 상승세를 누그러뜨릴 수는 있어도 하락으로 추세가 전환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김규정 위원은 “선호 지역 거주자들은 대출 외에도 자금 여력이 충분한 경우가 많아 결국 똘똘한 한 채, 상향 이동 투자 등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부동산업계 전문가는 “대출 규제에 따른 효과는 단기에 그칠 수 있는 만큼 시장 안정화를 위해서는 확실한 공급책이 나와야 한다”면서 “대출 규제로 발이 묶인 상황에서 충분한 공급책이 나올 경우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관망세가 자리 잡을 수 있다”라고 봤다.
이재명 대통령은 7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6월 27일 대출 규제에 대해 ‘맛보기’라고 언급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하반기 시장 ‘안갯속’…추가 대책 따라 갈린다
올해 하반기 부동산시장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이 7월 3일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출 규제를 ‘맛보기’라고 언급하며 더 큰 규제가 나올 수 있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수요 억제책은 아직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다”면서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안을 담은 새 부동산정책이 곧 나올 수 있음을 예고했다.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추가 규제에 따라 하반기 시장 방향이 달라질 것”이라며 “대출 규제로 수요는 일부 억제할 수 있지만 주요 지역 집값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공급과 세제 등 추가 정책의 강도가 하반기 시장 상황을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수요 억제책으로는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 등 규제지역 확대가 거론된다. 대출을 조이면서도 세법 개정 없이 세금을 중과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규제지역 내 LTV 강화와 DSR을 전세대출 및 정책대출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전세대출 규제의 경우 가뜩이나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전세 세입자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세제와 관련해서는 내년 5월 9일까지 유예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배제를 추가로 연장하지 않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조정대상지역 내 2주택자의 양도소득세율은 20%포인트, 3주택자는 30%포인트 더 높아진다.
업계 한 전문가는 “다주택 중과 유예가 풀릴 것을 예상해 다주택자들이 미리 매물을 내놓으려는 움직임도 보인다”면서 “아직까지는 관망세지만 다음 규제 강도의 분위기를 보고 매물이 대거 나올 수도 있어 일부에서 가격 하락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급책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기존에 추진 중인 신도시 공급에 속도를 내는 한편, 공공 주도의 도심 고밀 개발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3기 신도시를 비롯해 윤석열 정부에서 발표한 서초 서리풀 등 신규 택지의 용적률을 높여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또 이 대통령이 후보 당시 거론했던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보유한 도심 내 유휴 부지, 청사 등을 활용해 주거와 업무시설이 합쳐진 고밀복합개발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재개발·재건축 등 도심 내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정비사업 규제 완화도 거론된다. 인허가 시기를 단축하고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향이다.
김규정 위원은 “하반기에는 전체적으로 숨 고르기에 들어가겠지만 현재로서는 고가형은 별개로 두되, 서민형 공급을 확실히 확대해 나가는 것이 왕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비사업 활성화도 필수적이지만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등의 추진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비사업은 가격 상승을 수반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공급 물량이 충분히 확보되기 전까지는 시장 가격에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윤수민 위원은 “수요를 아무리 묶어봐야 제대로 된 공급책이 나오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어서 공급이 가장 중요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정도의 공급책이 나올지 예상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추가적인 규제가 크게 나오지 않는 한 추석 전까지는 관망세로 시장이 강보합을 이어가고, 공급 대책에 따라 향후 시장의 방향이 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