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부터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화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 실현 등 국가적 책무 이행
외식업계 “취지는 공감하지만”…‘탁상행정’ 비판
배리어프리 기능 장착한 테이블 오더 기기 전무
불분명한 기준에 가격 부담도 높아…“문제점 수두룩”
정부는 이런 불편을 줄이겠다며 내년부터 ‘배리어프리(barrier-free) 키오스크’ 설치를 일부 외식 매장에 의무화하기로 했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장애인의 키오스크 사용에 따른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기능을 갖춘 무인 결제기다. 음성인식 및 음성 안내가 가능해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고, 수어 영상으로 사용 방법을 안내하며, 점자도 표시된다. 또 사용자의 키를 자동으로 인식해 높이를 조절하는 기능도 탑재해 휠체어 사용자와 어린이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 의무화는 지난해 1월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주도로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른 조치다. 외식업자들은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선뜻 내키지 않는 눈치다. 설치 기준이 모호하고, 정부의 지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설치 비용이 고스란히 영세 자영업자에게 전가돼 ‘포용’이라는 이름의 제도가 또 다른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정책이 되레 어떤 이들에게는 새로운 ‘장벽’이 된 셈이다.
불편 진정 시 최대 3000만 원 과태료 물어야
서울의 한 도넛 매장에 ‘배려형 키오스크’가 설치돼 있다. 롯데GRS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를 의무화하려는 이유는 분명하다.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 실현과 동시에 공공서비스 접근권 보장이라는 국가의 책무를 제도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다. 고령자와 장애인을 비롯한 정보 취약계층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일상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실질적으로 이용하기 편리한 환경을 보장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현재 패스트푸드 매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대형 외식업체가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고 있지만, 키오스크 화면을 터치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이마저 삶의 불편을 더하는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음성 안내나 점자 패드가 장착된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점포는 극히 드물다. 이 때문에 옆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주문을 포기하는 상황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정부가 디지털 접근성 강화를 외치며 공공기관과 일부 민간 매장을 중심으로 키오스크 개선 정책을 도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외식 공간은 장애인을 위한 준비가 미비하다. 외식 업장에서 장애인이 느끼는 현실은 ‘문턱투성이’인 것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2023 장애인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사회참여에 다양한 어려움이 존재했다. 외식 주문과 같은 일상적 활동에서도 마찬가지다. 디지털기기 사용에 대한 접근성 문제는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제한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이에 외식은 단순한 소비 활동이 아니란 점이 이번 법안을 만드는 데 큰 힘으로 작용했다. 누군가에겐 일상의 즐거움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사회적 고립을 실감하게 만드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 의무화가 디지털 사용의 공정성을 갖추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과 접근권을 제도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장애인과 고령자도 디지털기기를 이유로 일상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이용 환경을 마련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기기 교체한다고 끝 아냐… 산 넘어 산
그러나 외식업계에서는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선 기존 기기보다 가격이 비싸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의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인증을 받은 기기의 가격은 크기에 따라 340만 원, 600만 원, 700만 원이다. 기존 키오스크가 200만 원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대 3배까지 더 비싸다. 중기부는 기기 가격의 70%까지 지원하고 있지만 예산은 그야말로 생색내기 수준이다. 정부는 올해 2000~5000대 지원을 목표로 325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신규·교체 수요가 많게는 수만 건에 달하는데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게다가 자영업자가 사용할 수 있는 정부 인증을 받은 제품이 지금까지 LG전자, 비버웍스, 한국전자금융, 씨아이테크(CI Tech) 4곳에 불과하다. 이들이 1년에 공급할 수 있는 장애인용 키오스크는 2000~5000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영업자들로선 교체하려야 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기기 설치 비용뿐만 아니라 기존 기기 해약에 따른 위약금, 바닥재 설치 비용 등 부대 비용도 들어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테이블마다 설치하는 ‘테이블 오더’ 기기도 배리어프리 기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테이블 오더용으로는 어떤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아 시장에 출시된 제품이 전무하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은 키오스크를 쓸 때 대리점을 통해 포스기와 결합상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키오스크만 변경하기 위해 결합 상품을 해지하는 데 따른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먹자골목의 식당 모습. 뉴시스
무엇보다 정부의 미흡한 홍보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소상공인 대다수가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화가 내년 1월 28일부터 시행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2024년 소상공인 키오스크 활용 현황 및 정책 발굴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소상공인의 약 86%는 이를 모른다고 답했다.
이처럼 정책의 실효성이 현장 인지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나타나는 현실적 부작용은 적지 않다. 우선 가장 큰 피해는 영세 외식업체 운영자에게 돌아간다. 관련 기준과 일정을 모른 채 법 시행을 맞이하면, 키오스크 개조나 교체를 위한 충분한 준비 기간 없이 불이익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설치 미비 시 과태료 등의 행정처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몰랐다”라는 이유로 면책되기는 어렵다.
정부가 마련한 보조금이나 기술 지원 사업도 정작 수요자인 자영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소규모 사업자일수록 정보 접근성이 낮고, 외식업 특성상 인력과 시간 여유가 부족해 관련 교육이나 컨설팅조차 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제도의 불균형 적용은 접근성 격차를 고착화할 가능성도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나 대형 매장 등은 상대적으로 제도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반면, 개인 외식 업소나 지방 매장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에 외식업계에서는 일방적인 법제화보다는 업계가 자발적으로 디지털 정보격차 해소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한편, 잘하는 기업들을 응원하고 확산시키는 방식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법제화가 자칫 소상공인에게는 부담, 대기업에는 중복 투자와 규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개발 및 설치에 적잖은 비용이 들고, 다양한 장애 유형에 따라 개별 매장마다 필요한 기능이 달라 ‘정형화된 기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잘하는 사례를 발굴해 소개하고, 기술개발을 유도하며, 고객 피드백을 공유하는 생태계 조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해석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구 서초구IT교육센터에서 열린 서초 스마트시니어 IT 페스티벌에서 참가자들이 키오스크 체험을 하고 있다. 뉴시스
경기침체 장기화 속 인건비 상승 위기도
외식업계는 최근 최악의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경기침체 장기화 속 인건비 상승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그야말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손님은 줄었는데 고정비는 계속 오르고, 수익은커녕 대출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점포가 속출하고 있다. “이대로는 문 닫는 게 이익”이라는 자영업자의 말이 더는 과장이 아니다. 산업 현장에 ‘트리플 악재’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외식업계 하반기 경기 회복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매달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소비자가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변동을 측정하기 위한 지표)는 안정 흐름을 보이지만,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물가는 전혀 ‘안정’되지 않고 있다. 이런 영향은 고스란히 외식업계로 직결된다.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내리면서 CPI를 끌어내리고 있지만, 먹을거리처럼 소비자가 가격 상승을 즉각 체감할 수 있는 품목은 여전히 상승률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 상승을 더 재촉하는 요인이 여기저기 산적해 있어 연말을 기점으로 업계의 시름은 한층 깊어질 것으로 분석된다. 4월 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로 상승했으며 1월(2.2%)과 2월(2.0%), 3월(2.1%)에 이어 넉 달 연속 한국은행의 물가상승률 목표치(2%)에 근접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이지만,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예컨대 4월 가공식품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오르며 2023년 12월 이후 16개월 만의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외식 물가도 3.2% 올라 13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국민의 ‘먹을거리’ 물가가 CPI 흐름과는 다르게 최고점을 경신하면서 체감물가가 고공행진했다. 식탁 위 필수 반찬인 무(41%)·양파(17.5%)·깐 마늘(37.7%)·달걀(5.1%)의 가격 오름세도 꺾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6월 28일부터 수도권 지하철 요금도 오른다. 서울시와 경기도·인천시·코레일은 최근 운임 조정안을 확정하고, 교통카드 기준 기본 요금을 1400원에서 1550원으로 150원 인상하기로 했다. 청소년 요금은 800원에서 900원으로, 어린이는 500원에서 550원으로 각각 조정된다. 음료·교육비·대중교통 등 생활 필수 분야의 가격인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 서민경제는 타격을 더 받을 수밖에 없다. 소비 품목별 가중치 등 물가 산정 방식에서 오는 체감물가와의 틈새를 최대한 줄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배경으로 외식업계 종사자들은 올 하반기 경제적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까지는 음식 가격을 조정하지 않고 부담을 감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버티고 있지만, 원재룟값 급등으로 한계에 달했다는 목소리다. 인건비·배달비 등 각종 비용이 크게 상승한 데다, 지난해 1월부터 법정공휴일에 일하는 직원들에게 많으면 2배에 이르는 가산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대규모 외식업체는 대량 구매 계약을 진행해 영향이 미미하지만, 외식업 자영업자들은 상대적으로 원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매출 절벽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이번에는 ‘물가상승’이라는 또 다른 폭탄까지 떠안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내년도 인건비 이슈도 업계 긴장감을 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최저임금위원회는 5월 27일 제2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를 시작했다. 최대 쟁점은 올해도 ‘인상률’이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외식업 특성상 최저임금 인상 여부는 업장의 존폐를 좌우할 만큼 민감한 사안이다. 매출 회복세가 더딘 영세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현실화하면 인력 감축이나 영업시간 단축 등 불가피한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 현재 외식업계 인건비 문제는 심각하다. 올해 적용 최저임금은 시간급 1만30원으로 일급으로 환산하면 8시간 기준 8만240원, 월급으로 환산했을 때 209만6270원가량을 받는다. 인건비가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렌털 비용보다 약 10배 이상 비싸다.
업계서는 인건비가 음식값을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식자재비 상승은 물론 매장 임차료까지 감당해야 할 고정비 부담이 만만치 않은 데다, 음식 가격을 큰 폭으로 조정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매년 지속되는 인건비 상승이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논리다. 높은 인건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영세 사업주는 최저임금을 주지 못해 범법자가 되거나 폐업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프랜차이즈업계 관계자는 “장기 경기침체에다가 물가도 계속 오르고 있어서 점주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라며 “재료비, 관리비, 카드 수수료 같은 고정비용이 다 올라가는데, 음식 가격은 소비자 눈치를 보느라 쉽게 올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반기에도 공공요금 인상이 예정돼 있어서 걱정이 크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내년도 인건비까지 오르게 되면 사실상 버티기 어려운 구조가 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버티는 장사에 해답 필요
자구책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식업계는 정부를 향해 좀 더 실질적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단순한 지원금을 넘어,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실제적 해답’을 바라는 것이다. 국세청 국세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문을 닫은 소상공인이 100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폐업한 소상공인이 100만에 육박한다는 것은 개인의 사업 실패를 넘어 경제·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이에 외식업계는 ‘지속 가능한 장사’를 위한 구조적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인건비 보조, 임차료 완충 장치, 원부자재 가격 안정화 등 실효성 있는 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상가 임차료는 외식업 운영의 큰 부담 중 하나다. 업계는 정부가 상가 임차료 안정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차료 상한제를 포함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강화, 지역별 공공임대 상가 확대 등을 통해 안정적인 영업 환경을 조성해 달라는 목소리가 크다.
여기에 일부 소상공인은 최저임금 수준에 맞춘 고용지원금 확대, 주 15시간 이하 단기 근로자 고용 시 부담 완화 등 ‘현장 맞춤형’ 정책을 요구한다. 업계는 지역 소상공인들이 공동으로 식자재를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유통비용을 줄일 수 있는 ‘소상공인 전용 식자재 플랫폼’ 운영을 정부가 주도하길 바라고 있다. 또한 재료비 상승분에 대한 부가가치세 감면, 카드 수수료 인하 등 세제 혜택도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업계에서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정책과 관련해서도 방법과 속도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상적 정책’과 ‘현장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않은 채 책임만 전가해서는 제도에 대한 불신과 반발만 키우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모든 사람을 위한 배리어프리는, 모든 이해관계자와 함께 만들어야 진짜 ‘무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책의 취지 자체는 너무나 좋지만, 장사가 안돼서 폐업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강제성을 두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라며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많은 사람의 고통을 수반하는 정책은 자발적 협조와 호응을 얻기가 힘들어서 경제 상황이 좀 나아지고, 자영업자 폐업률 역시 낮아지면 현장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 실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