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모두가 염원했던 ‘기업인 출신 관료’
지명받은 5인, 알고 보면 ‘조직 관리’ 전문가
정경유착·정무감각無 등 우려…기업은 대체자 물색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윤창렬 국무조정실장, 하정우 인공지능미래기획수석비서관(왼쪽부터). 뉴시스
1기 내각에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두산에너빌리티 사장),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LG AI연구원장),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네이버 고문), 윤창렬 국무조정실장(LG글로벌전략개발원장)을 지명한 뒤, 인사청문회를 거쳐 합류하길 고대하고 있다. 대통령실 산하엔 인공지능(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을 신설하고 하정우 전 네이버클라우드 센터장을 이 자리에 앉혔다. 기업별로 보면, 네이버와 LG 출신이 각 두 명, 두산이 한 명이다.
정부의 선택에 대한 재계의 시선은 다양하다. 일단 ‘파격’이란 평가가 주를 이룬다. 정부의 부름을 받은 기업인 본인들은 물론, 그들이 속해 일했던 기업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행보인 탓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인선부터 기업인을 5명이나 발탁한 건 역대 정부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 때문에 재계엔 신선하면서도 잔잔한 충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서 변화에 대한 기대감도 새어 나온다. 기업의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아는 인물들인 만큼, 기업의 현황에 잘 맞춘 적재적소의 정책들을 제시해 주길 바라는 희망이 섞였다.
환영만 있진 않다. 한편에선 의심과 우려도 적지 않다. 기업인 출신 정부 관료가 탄생했을 때 맞이할 수 있는 부정부패를 걱정하는 국민이 있다. 이들이 인사청문회를 넘어 실제 정부 일을 시작한 뒤 친정과도 같은 기업들의 뒤를 봐주는 인물이 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엔 늘 ‘리스크’가 있다.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예단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번 정부가 기업인들을 대거 중용한 건 모험에 가까운 면이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정부다운 선택을 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재명 정부는 모든 정책에 있어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각 분야에 일 잘하는 전문가들을 대치해 실효적인 정책을 운용하겠단 뜻을 수 차례 밝혔다. 기업인들의 발탁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결과로 풀이된다. 앞으로는 그 선택이 옳단 걸 증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 관문으로 여겨지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자질을 검증 받고 취임하면 그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한때 모두가 염원했던 ‘기업인 출신 관료’
이전부터 재계와 관가에선 ‘기업인 출신 관료’가 많아져야 한다는, 일종의 희망사항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딱딱하고 보수적인 문화를 기반으로 한 행정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그에 비해 시대 변화에 민감하고 결단해야 할 때는 과감히 나서는 도전정신을 갖춘 기업인들의 특성이 주목받았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우리 정부도 일을 잘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생긴 것이다.그럼에도 앞선 정부들은 기업인들을 잘 활용하려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2017~2022년) 땐 교수, 학자 출신들이 정부 관료로 많이 중용됐고 윤석열 정부(2022~2024년)에선 정부 인사에 검찰 출신들이 많았다. 두 정부 때 일한 기업인 출신이라곤 유영민 과기정보통신부 장관(전 LG CNS 부사장), 이영 중기부 장관(전 여성벤처협회 회장)이 유이했다.
2023년 12월 2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는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뉴시스
특히 정부는 AI 분야에서 기업인들을 선봉장으로 내세워 눈길을 끈다. 여느 분야보다도 현재 나라 간,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기에 그 결정이 이해된다. AI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트렌드도 빠르게 변한다. 그런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면 적합한 정책을 도모하기 어렵다. 기업인들이 적임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분야인 셈인데, 윤석열 정부 시절에는 그것이 잘 안됐다고 한다. AI 관련 부처엔 기업인 출신 인사가 없어 상당히 애를 먹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들이 하고 있는 AI 관련 사업과 기술 개발 현황을 잘 모르는 이들이 부처를 이끌게 되면서 생뚱맞은 정책을 내놓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는 각각 네이버와 LG에서 AI 개발 경쟁의 전면에 나섰던 인물이다. 지금의 우리의 현실을 잘 알고 있어 이런 착오를 범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기업들이 이들에게 가장 기대하는 지점이다. 두 사람은 앞으로 특히 ‘소버린 AI(국가주권형 AI)’ 구현에 힘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우리만의 AI를 개발해 주권을 찾고 이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를 구성해야 한다는 청사진이다. 우리 정부는 한국형 챗GPT 같은 우리만의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해 세계 시장의 중심에 오르고 ‘AI 3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약 100조 원을 투자하겠단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 계획의 실현 여부가 두 사람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명 받은 5인, 알고 보면 ‘조직 관리’ 전문가
이번 정부로부터 지명된 기업인 5인에 대해, 관계자들은 공통분모로 ‘조직 관리’를 꼽는다. 이들은 조직이 지향하는 바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환경과 시스템을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뜻이다.대표적으로, 배경훈 후보자는 이력의 면면이 개발자보다 관리자로 특출 난다. 그는 특히 LG의 초대 AI연구원장으로 일하면서 회사가 초거대 AI 모델 ‘엑사원’을 만드는 데 기여한 공로로 주목받고 있는데, 조직 관리 능력이 큰 점수를 받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배 후보자가 개발자로서 AI 기술을 연구하고 엑사원을 개발해낸 건 아니다. 그는 엑사원이 탄생토록 연구조직을 잘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 두각을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AI에 대한 뛰어난 지식이 밑바탕이 돼 조직 관리의 원동력이 된 부분도 있겠지만, 보다 두각을 나타낸 건 조직 관리였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배 후보자는 LG AI연구원장이 되기 전 LG유플러스, LG사이언스파크 AI추진단장 등을 역임했는데, 이 당시에도 조직 관리 능력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정우 AI수석 역시 같은 부분에서 활약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는 기술자이면서도 기획자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입체형 전문가’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모두 밟아 기술 관련 지식에 해박하고 네이버에선 클로바AI 연구소, AI랩,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 등에서 일하며 연구를 기획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경험을 쌓았다. 정부는 새롭게 만든 AI수석의 첫 단추를 달고 기반을 다지며 이 자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적임자로 그를 낙점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AI수석 아래 수백 명의 개발자들로 구성된 연구 및 개발 조직 등을 잘 이끌어갈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던 것으로도 짐작된다.
조직 관리의 기대감은 김정관 산자부 장관 후보자도 이들 못지않다. 김 장관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근무한 경험에 기획재정부에서 정책기획관으로 일한 이력까지 더해 기업과 정부의 성향을 두루 잘 알고 있을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원자력, 풍력, 수소, 가스 등 사업의 패러다임이 매우 넓다는 점을 감안하면, 각종 산업을 통달해야 하는 산자부 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김 장관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를 기반으로 한 조직 관리에서도 당연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본다.
특히 에너지 산업에서 그가 밟을 행보에 대한 관심이 높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중대 기로에 서 있어서다. AI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센터 확립, 반도체 산업 활성화 등을 위해선 이전보다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한데, 전기를 수급할 방식을 놓고 여러 각도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이 대립하는 듯한 경향도 있다. 원자력은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기조를 보인 정책 행보에 따라 폐기 수순에 들어간 바 있다.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대권을 쥔 이재명 대통령도 같은 기조를 보일지 많은 이들이 예의주시하고 있으나, 아직 이 대통령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지명된 김 후보자는 두산에서 소형모듈원전(SMR) 수출 사업의 실무를 총괄해 본 경험이 있다. 원전을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취임 후 그가 적합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친정과의 ‘고리’·정무감각 無 우려…기업은 대체자 물색
정부의 기업인 지명에 전반적으로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현장의 기대도 상당해 보인다. 다만 그 기대가 우리 눈앞의 성과로 도출되려면 여러 난관을 넘어야 한다. 난관들은 대부분 기업인의 특성상 피할 수 없는 고비들로 여겨진다. 기업인 출신 관료가 남다른 매력이 있다는 점을 전임 정부들도 몰랐을 것이라 보진 않는다. 다만 그로 인해 닥칠 난관들을 기업인들이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등용하기를 포기했을 가능성이 있다.기업인 출신 관료들은 우선 필연적으로 친정 기업과 관계된 각종 의혹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인사청문회부터, 취임 이후 장관직을 수행할 때까지 후보자들을 괴롭힐 가능성이 있다. 친정 기업과의 고리를 계속 이어간다면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에 대한 우려는 식지 않고 이들을 따라다닐 수 있다. 그 판단 기준은 주식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에서 일할 때 보유한 자사주는 이들이 사리사욕을 채우도록 만드는 유혹으로 남아 장관으로서의 권한을 남용토록 하는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다.
이런 우려가 커지자 네이버 대표 출신 한성숙 중기부 장관 후보자는 4일 회사로부터 받은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 6만 주를 행사, 처분했다. 스톡옵션은 미리 약정한 가격으로 일정한 기간 내에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권리다. 한 후보자는 스톡옵션 6만 주 외에 현재 보유 중인 네이버 주식 8934주도 장관 취임 시 전량 매각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다만 다른 스톡옵션 4만 주에 대해선 행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한 처리 방향도 곧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주식을 비롯해, 기업인 출신 후보자들은 앞으로 기업에서 일할 때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사적 영역에 관한 각종 의혹에 휘말릴 수도 있다. 부동산 또는 자녀 등 가족 관련 문제 제기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올 수 있다. 임기 중엔 이런 상황들을 수없이 맞닥뜨려야 한다. 그럴 때마다 정무적 판단도 필요하다. 의혹을 영리하게 피해가면서 자신이 해야 할 책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는 수완이 있어야 한다. 기업인들은 정치인이 아니기에 여기에 밝긴 어렵다. 앞으로 이 문제를 잘 극복해 나가는 것 역시도 기업인 출신 후보자들의 몫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7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 질문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하정우, 배경훈 후보자는 네이버와 LG의 AI 사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기에 후임자 선임이 매우 중요하다. 윤창렬 신임 국무조정실장이 일했던 LG 글로벌전략개발원은 그룹의 싱크탱크 격인 LG경영연구원 산하 조직으로 글로벌 전략 수립 및 해외 대관 업무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았다. 최근 미국의 관세정책에 따라 세계 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최근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