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호

명절은 지나가지만 부부 사랑은 오래 남는다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5-10-1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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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 이혼’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명절 전후 부부간 갈등을 빚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Gettyimage

    ‘명절 이혼’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명절 전후 부부간 갈등을 빚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Gettyimage

    명절에는 시댁 가서 일해야 하는 며느리들만 힘든 게 아니다. 결혼하지 않은 청춘 남녀도, 결혼에 실패한 ‘돌싱’도 가족이나 친척에게 집요한 질문 공세를 받을까 마음이 편치 않다. 명절만 되면 신경이 예민해지는 아내 눈치를 봐야 하는 남편의 고충 또한 작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명절 전후로 부부간에 갈등을 빚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오죽하면 ‘명절 이혼’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그래서 명절 스트레스는 그 자리에서 풀어야 한다. 아무리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더라도 마음에 담아두면 안 된다. 부부관계는 평생을 함께 이어가야 할 삶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단순히 마음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식기능과 부부관계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난임병원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사연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필자는 오늘 부부가 나누는 은밀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사실 스트레스는 명절 때만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다. 일상 속 어떤 종류의 스트레스든 생식기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진료실에서 “내일이 배란일이니 부부관계를 하고 모레 오세요”라고 안내하면, 열 쌍 중 두세 쌍은 이틀 뒤 진료실에 와서 “못 했다”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인다. 처음엔 ‘누구나 쉽게,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랑의 행위를 왜 하지 못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사랑의 행위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닌. 복잡미묘한 감정이 맞물려야 이뤄지는 섬세한 감정의 표현임을 깨닫게 됐다.

    “배란일 남편에게 알리지 마라”

    평소에는 아무 문제없이 뜨거운 눈빛이 오가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랑의 입맞춤이 이어지며 잠자리에 들던 커플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로부터 “의사 선생님이 내일이 배란일이래”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 순간부터 남자는 내일 밤이 걱정되고 정작 당일 밤이 되면 숙제를 강요받은 듯한 스트레스에 아내 몸 위에 포개져 있던 자신을 슬그머니 매트리스 바닥으로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의사가 나를 종마(種馬) 취급하나’ 하는 수치심과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수 있고, 마치 의사가 자신의 성행위를 감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자연임신을 원하는 난임 여성에게 ‘내일이 배란일’이라는 걸 남편에게 절대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냥 평소처럼 하고, 되도록 남편을 편안하게 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갖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라고 거듭 부탁한다. 그래야만 불필요한 압박을 줄이고, 사랑의 행위가 본래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본래 술은 별로 권하지 않는 편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2개의 글라스에 와인을 반  잔씩 담아 분위기를 띄우라고 권한다. 은은한 조명에 부드럽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게 하고, 자연스러운 성관계가 이뤄지도록 남편을 유도하는 귓속말이나 애정 어린 속삭임을 더하는 것도 좋다. 남편의 오감을 자극하는 동작, 소리, 환경 조성에 총력을 기울여달라는 뜻이다.

    또한 두 사람의 성감을 높이기 위해 함께 샤워하는 것도 좋다. 서로의 피부 자극을 높여 더 높은 성적 만족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의 사랑을 숙제처럼 여기며 아무런 감정 표현 없이, 마치 투수가 공을 던지고 포수가 무덤덤하게 받는 듯한 성행위는 바람직하지 않으니 지양해야 한다. 여성 역시 낮 동안 남편의 말이나 행동에 서운함을 느꼈다 하더라도 잠자리에서는 꾹 참고, 임신을 위해 애쓰는 남편을 위해 따뜻한 말을 건네주길 당부한다.

    성적 흥분이 시작되면 남성은 발기, 여성은 분비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는 모두 생식기관의 혈관이 확장돼 혈류가 몰리는 데서 비롯된다. 남성은 음경의 해면체에 피가 차오르며 단단해지는데, 이는 마치 풍선에 바람을 넣으면 물렁하던 풍선이 단단해지는 것과 같다. 그러다가 절정의 순간 정자가 사출된 후에는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성생활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제다. 성관계 중에는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억제된다. Gettyimage

    성생활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제다. 성관계 중에는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억제된다. Gettyimage

    ‘연어 떼’ 같은 정자의 여행

    여성은 골반 내 혈류량이 증가하면서 자궁이 커지고, 자궁 입구인 경부의 점액 창고에서 점액이 흘러나와 정자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질벽 주위 혈관이 확장되면서 혈장이 질강 안으로 스며 나오는데, 이 분비물은 유산균(lactobacillus)에 의해 약산성을 띠는 질 내벽에 카펫처럼 깔리며 정자가 산(acid)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자궁경부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돕는다.

    정액은 음경의 요도구에서 사출돼 질강에 놓이면 약 30분간 묵(coagulum) 같은 덩어리 상태를 유지한다. 이는 정자가 한꺼번에 소실되지 않도록 하는 보호적 현상이다. 약 30분 후 이 덩어리는 액화하고, 정자는 자궁경부를 통과해 자궁강과 난관으로 향하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그제야 정자는 운동성이 더 빨라지며 제1 검문소인 자궁경부를 통과한다. 투명하고 묽은 점액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은 마치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와 같다. 질강 내 1억 만 마리 정자 중 자궁경부를 통과하는 것은 단 1% 남짓, 약 100만 마리에 불과하다. 자궁경부는 평소 세균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닫혀 있거나 점액이 끈적하고 백혈구가 많지만 배란기에는 점액이 묽어져 정자의 통과를 허용한다.

    두 번째 검문소는 자궁과 난관을 잇는 자궁난관 이행부(UTJ)다. 평소엔 닫혀 있다가 배란기에만 열려 정자의 진입을 허락하고, 수정란이 자궁으로 되돌아올 때 다시 열린다. 자궁에 도달한 100만여 마리 정자 중 난자에 다다르는 것은 단지 수백 마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단 하나의 정자가 난자 속으로 들어가면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된다.

    1957년, 미국의 성의학자 마스터스와 존슨은 성 반응을 흥분기–고조기–절정기–회복기로 구분해 맥박, 혈압, 호흡수의 변화를 그래프로 제시했다. 성 반응은 상상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지만(몽정이 대표적) 근본적으로는 보고, 듣고, 피부에 와닿는 자극에서 비롯된다.

    때로는 시각적 자극을 높이기 위해 에로틱한 매체를 활용할 수도 있다. 분위기 있는 음악, 부드러운 속삭임, 서로가 주고받는 마사지는 성감을 더욱 높인다. 반대로 차가운 태도, 타인과의 비교, 부정적 언어, 불필요한 걱정은 성적 긴장을 깨뜨린다. 이 순간만큼은 배우자를 향해 “당신은 왕입니다”라는 긍정의 언어를 건네자. 그래야 그도 춤추는 고래처럼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다.

    성생활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제

    흥미로운 점은 과거의 부부들은 명절을 화해의 장으로 삼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다투던 부부가 함께 서로의 수고를 인정하고, 서운함 속에서 다시금 정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곤 했다. 원수처럼 지내던 부부가 명절을 계기로 화해하고 뜨거운 밤을 보냈던 것이다. 

    의학적으로도 성생활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제다. 성관계 중에는 옥시토신·도파민·엔도르핀이 나와 긴장을 완화하고 쾌감을 높이며, 동시에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억제된다. 심리학적으로 성생활은 단순한 육체적 행위가 아니라, 서로 친밀감과 애착을 되찾는 과정이다. 명절의 부담이 아무리 크더라도 부부가 서로를 향한 존중과 애정을 지켜낸다면 그 무게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명절은 지나가지만, 부부의 사랑은 오래 남는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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