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공동체의 현실, 광야와 다르지 않아
치유와 회복의 힘, 외부 아닌 자기 안에서 비롯
광야에서는 지도가 아니라 나침반이 필요
불안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이은철 목사. 박해윤 기자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실시한 ‘2024년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 결과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 10명 중 7명이 지난 1년 동안 심각한 스트레스와 지속적인 우울감 등 정신 건강 문제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간한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2’ 보고서도 충격적이다. 자살은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로 집계됐고, 자살률은 여전히 증가세다. 지난해 기준 국내 마약 사범 수는 2만3022명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10년 전보다 세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겉으로는 풍요롭고 안정된 듯 보이는 사회지만, 정신적·정서적으로는 이미 깊은 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심각한 위기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
이은철 목사는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바라봤다. 그는 사람들이 절망적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을 꾸준히 모색해 왔다. 최근 펴낸 신간 ‘광야 같은 인생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목회와 심리상담학 연구를 통해 얻은 통찰을 집대성한 이 책은 개인의 삶을 넘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치유와 회복의 방향까지 제시한다.
이 목사는 개인의 인생, 나아가 한국 사회를 ‘광야’에 비유한다. 풍요로워 보이지만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 흔들리는 공동체의 현실은 광야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의 내적 치유가 결국 가정과 사회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하며, 한국 사회가 다시 건강한 공동체로 서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치유와 회복 과정이 절실하다고 역설한다.
인생 자체가 광야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묻자, 이 목사는 잠시 생각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알코올과 마약, 게임 중독, 우울증 등으로 삶이 무너져 내린 이들을 치료하고 돕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며 영적 세계를 경험하고, 심리상담을 연구하며 치유와 변화를 목격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는 이런 통찰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집필을 결심했다.
이 목사는 인생을 외롭고 불안한 광야에 비유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길이 사라지는 광야처럼, 사람들은 갈 바를 몰라 방황한다는 것이다. 불안하고 두렵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현실이 곧 광야 같은 인생이라는 그의 설명이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불안 속에 사는지 묻자, 그는 단호하게 “목적의식의 부재”라고 대답했다. 이 목사는 “심리학적으로 불안에는 실존적 불안, 존재적 불안, 내세에 대한 불안이 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삶의 목적의식이 없기 때문이다”며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면 미래가 보이지 않아 결국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103세 현역 의사로 활동하는 글래디스 맥게리의 사례를 언급하며 목적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맥게리는 미국 애리조나에서 여전히 환자를 돌보며 강연과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자신의 장수와 건강 비결을 ‘분명한 삶의 목적’에서 찾는다. 실제로 그는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은 정신적·육체적으로 더 건강하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해왔다. 이 목사는 이 사례를 언급하며 “목적을 잃은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만, 분명한 목적을 가진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치유의 시작, 자기 사랑
영혼·정신·육체 치유의 해법을 담은 ‘광야 같은 인생에서 승리하는 비결’. 동아일보
이어 한국인의 정서인 ‘정’과 ‘한’을 언급하며, 정이 거부될 때 그것이 곧 병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한으로 쌓이고, 결국 사람을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만 불안을 떨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미국에서 상담학을 공부하던 시절의 경험을 들며 심리상담만으로는 치유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에 영적 차원을 다루지 않으면 근본적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치유와 회복의 힘은 외부가 아닌 자기 안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 목사는 “‘광야 같은 인생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영혼·정신·육체를 통합적으로 치유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며 “독자들이 자신을 스스로 진단하고 회복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책의 각 장에는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진단표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인생 나침반 찾아야
이야기는 다시 오늘을 살아가는 태도로 이어졌다. 이 목사는 “광야에는 길이 없고, 어제의 길도 오늘은 사라진다”며 “따라서 광야에서는 지도가 아니라 나침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나침반은 ‘영적 GPS’가 대표적인데, 그것은 성경일 수도, 영적 진리나 철학적 성찰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이 목사는 통찰력과 분별력의 중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보이스피싱이나 다단계 사기에 쉽게 속는 이유 역시 영적 분별력이 부족한 데 있다”고 지적하며 “통찰력은 배워서 얻는 지식이 아니라 직관에 가까우며, 진실과 거짓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을 때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화의 끝에서 그는 치유의 주체는 결국 자기 자신이라고 정리했다.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환자 스스로의 몫이듯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고 치유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개인은 물론 가정과 사회 전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광야 같은 인생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다. 불안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인생 나침반’을 건네는 안내서다. 이은철 목사는 말한다.
“나침반을 붙잡은 사람은 길 없는 광야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